13,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전 의원은 부산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43살 때 판사 재임용에 탈락된 인물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주위에서는 그가 반(反)박정희 대통령 시위를 주도한 학생을 석방시켜 정권에 밉보인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유수호 변호사는 대구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고 대구지방변호사회 회장(그의 나이 46살 때), 대한변협 부회장를 지내다 5공시절인 1985년 민정당 대구제1지구당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부장판사 출신 유수호, "긴급조치법 따위야…"
민정당 초선 국회의원 시절 유수호 의원은 1988년 《월간조선》 8월호 <민주정부로 가는 길> 좌담회에서 “긴급조치법 따위는 위정자 구미에 맞는 법”, “국민은 진심으로 그 법을 거부했다” 고 말했다. 야당이나 재야인사가 할 법한 말이다. 다음은 당시 《월간조선》에 실린 유 전 의원의 발언이다.
<...“지나간 3, 4공화국 때 만든 긴급조치법 따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한 마디로 위정자나 한 정부가 자기네들의 구미에만 맞는 법을 제정한 것이지, 국민을 위한 법을 제정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유신시절 긴급조치로 재판받은 피의자에게 7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하곤 했지만 국민은 진심으로 그 법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법을 옳은 법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자연법적 정의를 실증법이 제대로 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월간조선 1988년 8월호에 실린 유수호 의원(왼쪽) 좌담회 모습 |
유수호 의원은 13대 때 민정당으로 금배지를 달았고 14대 때는 3당 합당으로 탄생한 민자당 간판으로 당선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호용 전 국방장관, 고(故) 김윤환 전 의원 등과 경북고 동기(32회)지만, 그들과 가까이 어울리지는 않은 것 같다.
유 의원은 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뜻밖의 선택을 한다. 이종찬 의원 진영에 서면서 그의 정치인생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결국 1992년 민자당을 탈당, 새한국당에 합류했고, 이후 대선을 거치면서 국민당과 신민당으로 옮겨가며 의정활동을 이어갔다. 1995년 신민당이 자민련과 합당하면서 자민련으로 당적이 다시 바뀌었으나 이듬해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나버렸다.
만약 민자당을 탈당하지 않았다면…
만약 유수호 전 의원이 1992년 당시 민자당을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대구는 반YS의 야도(野都)가 되어가고 있었다. 한때 잘나가던 TK가 YS 내각에서 희귀존재가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일보》 1993년 4월 3일자 2면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지금 서울의 정가엔 대구는 야도가 될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있다. 부산·경남의 부상과 대구·경북의 퇴조, 영남 양대 축 사이의 이 뚜렷한 대비가 그 근거다. (중략)
청와대 비서실장 이하 수석비서관 9명 중 4명이 부산중고 동문, 이른바 PK이다. 반면 한때 사회엘리트층을 지배했던 TK는 내각에서 희귀 존재가 됐다.
대신 최근 수뢰혐의로 구속된 허만일 전 문화부차관, 면직된 신국환 전 공진청장, 재산공개 파문으로 사표를 쓴 정성진 전 대검중수부장 등은 모두 경북고 동문이다. 경북고 총동창회장 박준규 국회의장은 만신창이가 돼 국민당을 탈당했다. “안 해보면 몰라, 장관이 얼마나 좋은지”라는 김기춘 전 법무장관의 부산 초원복국집 발언은 TK 엘리트들에게도 절실한 현실이다....>
1992년 14대 총선 당시 대구지역 의석은 민자8, 국민2, 무소속 1석 구도였으나 그해 12월 열린 대선 당시엔 민자 6, 국민 5석으로 바뀌었다. TK가 YS 찬반으로 갈라진 결과였다. 대선 후엔 민자 5, 국민 3, 무소속 3으로 또 바뀌었다. 민자당 의석 수가 격감, 대구는 반YS의 태풍이었다.
그 태풍의 한 갈래였던 유 전 의원은, 자민련으로 당적이 바뀐 뒤 돌연 15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를 떠났다. 당시 대구에 자민련 ‘녹색바람’이 불 때여서 그의 선택은 의외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리고 일절 여의도 쪽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반YS에 섰듯 아들은 反朴 선두에 설까?
유 전 의원이 민자당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의 정치역정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또한 민자당 탈당을 결행한 선친의 선택을 아들 유승민 의원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 유 의원은 민정당→민자당→새한국당→국민당→신민당→자민련으로 이어진 아버지의 선택이 불가피했거나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할까?
어쩌면 아들은 아버지의 정치행로를 떠올리며, 당을 떠나는 순간, 자신이 택해야할 경우의 수가 의외로 적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그 아버지의 아들처럼, 풍찬노숙을 각오하고 정든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올까? 그래서 아버지가 반YS에 섰듯 아들은 반박(反朴)의 선두에 설까?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상대발을 헐뜯지 않는 진정한 대선후보가 나왔으면 참으로 좋겠네요......저의 바램만으로 끝이날까요......
정치는 정도가 없다지만 지금의 정치인들은 나라와 국민을 어렵게만 합니다.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바로 그런사람을 골라내야하는게 우리들의 숙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