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백 여년 전, 중앙아시아 한 가운데에 제국의 중심이 있었으리라 추측되던 시절, 어떤 계기로 인해 카스피해를 동쪽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살던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후예들의 한 일파들이 대규모 남동쪽으로 이동한 흔적을 여러 자료를 통해서 찾아 볼 수 있었으며, 그와 동시에 상대적으로 소규모 그룹이 천산산맥 남쪽 Silk Road의 협곡을 통해 현재의 China 대륙으로 이동하였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대륙조선사적 관점을 바탕에둔 조선후기 왕조의 부흥을 통해서 접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정남쪽과 동남쪽은 당시 대영제국의 중심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현재의 China 대륙보다는 전세계의 중심의 역할을 했을 법한 자료가 많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더욱 더 남동쪽으로 태국과 말레이반도를 넘어 현재의 인도네시아의 동쪽인 동티무르까지 중앙아시아 유민의 흔적이 지명적으로 나타나게됩니다. 역시, 인종분포가 유사한 그룹이 해당지역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과거 어떤 계기로 해서 해당지역까지 이동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라는 것은 이미 정통과 재야사학의 공통적 견해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계기로 인하여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던 해양세력의 중심이 대륙의 동북으로 이동을 하게되었으며 궁극적으로 현재의 필리핀과 베트남을 넘어 대만 홍콩, 상해, 일본으로 이어져갔다라는 여러가지 자료가 나타나며 인종적으로도 그것을 뒷바침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연구되있다는 것을 publish된 자료들로부터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해당시기를 기점으로 초기 정남과 동남쪽으로 이주한 세력이 보다 강한 분명의 부흥을 가져왔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동쪽으로 이동한 세력을 중심으로 다시 모이게되는 연속성이 과거로부터 존재하였다는 것을 200여년간의 잛은 기록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러한 인구의 이동은 그 전에도 많이 존재했을 것이며, 당시 그 지역은 상대적으로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보다 더 서쪽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1900년대를 넘어 2000년을 훌쩍 넘긴 지금의 시기에 1950년대에 이미 반으로 나뉜 한반도의 무게 중심에 적잖은 변화를 가져올만한 내용이 이미 수십년 전부터 많이 거론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며 최근에는 그 움직임이 보다 구체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데에서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한반도 전체에서 그 움직임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게 될 것이지를 보다 현실적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측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노무현정부의 업무중 가장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져온 이슈는 아마도 현재 대전부근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이전하겠다라는 공약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일 것입니다. 당시 아무런 지역 기반이 없는 황무지에 선거공약을 바탕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는 대다수의 의견으로 당대에서는 국회의 비준이 불가하였지만, 현 정부에서 그것이 비준되었으며 그것은 향후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대한민국의 정치적 중심을 현재의 '서울'에서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라는 대다수의 각오이며, 과거 최고수반들의 의지를 후대가 이행하는 역사적 진보성을 나타내 준다고 하겠씁니다. 몇 개의 행정관청이 이미 해당지역으로 이동을 완료한 상태이며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분명히 국회의사당 자체도 해당지역으로 이동을 하게 될 것이며, 해당지역은 대한민국(남한)에서 동서남북의 교통의 요지로 한쪽으로 치우진 국토개발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되며 지방과 중앙의 소통의 원활함이 가장 큰 장점으로 다가서게 될 것이며, 인구수만으로 고려하였을 때, 이미 전세계 4대 도시에 손꼽히는 서울의 인구집중 현상을 큰 부분 해소할 수 있게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어떤 시기 어떤 계기를 통해서 본격적인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는지는 분명히 모든이의 관심사일 것입니다. 먼저 이동한 그룹은 해당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그곳이 개발되어 도시기능이 제대로 갖추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나중에 해당지역으로 이동한 그룹의 경우 이미 개발된 새로운 도시의 장점을 바로 얻을 수 있지만 과거에 이동하여 먼저 자리를 잡은 그룹에 비해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며 상대적으로 모든 면에서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 부분과 함께, 우리가 고려해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변수는 우리말과 글을 쓰며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대규모의 그룹의 우리의 북쪽 국경밖에 또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말해, 대한민국만을 중심으로 설계했을 때에는 현재의 세종시가 국토의 중심이지만, 한반도 전체를 놓고 고려했을 때에는 해당지역 보다는 현재의 서울 또는 서울에서 더 동쪽으로 이동한 지역이 더 남북의 접근성이 강조되며 국경밖 동북과 동남의 접근성에 유리하다라는 장점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현재적 기술의 고도화는 정시성이 강조되는 교통수단을 통해서 국경밖 동북과 동남지역을 3시간 대에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즉, 국내(대한민국)의 정치 경제적 중심의 부분과 국내외를 포괄하는 Korea의 중심으로 나뉘어서 설명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과거에 선조의 이동경로를 통해보면 상대적으로 정치적 갈등을 보이고 있는 북쪽의 근접성보다는 국내의 접근성과 소통성을 강조한 신 행정수도를 중심으로 단기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생길것이며 그것이 어느정도 안정화될수록 그곳을 중심으로 동북방에 위치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안정된 사회기반을 중심으로 보다 진보적인 그룹이 자연스럽게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놀라운 발전을 보이고있는 서쪽 국경밖의 국가의 도약을 고려했을 때, 분명히 경제적인 부분의 장점이 가시적으로 크게 도출된다면 정치적인 부분의 갈등을 상쇄하게 될 것이다라는 관점이 대두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은 현시기를 중심으로 남북이 통합되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수 있게 하며, 만약 그것이 현실회되어 새로운 경제적 통로가 개척이 된다면 그 지역을 중심으로 분명히 남과 북을 포괄할 수 있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측해보는 내용이나 분명히 그렇더라도 남과 북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다가설 수 없는 위치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제교류 협력을 보다 구체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체계의 수립이 필요하며 그것은 대한민국의 남쪽으로 이동한 대한민국 정통성의 중심을 한단계 넘어서는 새로운 독립적 지대가 출현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보다 권한이 많이 이양된 지방자치 개념또는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인 갈등을 피해 경제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특수목적 국가(동한)'의 설립이 대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의 경우도 위험도가 높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벤쳐회사를 세워 보다 많은 외부의 투자를 바탕으로 위험도를 줄이며 이익이 발생할시 여러 투자자들과 이익을 나누어 갖는 형식을 취하게 되는 것을 선호하는 법입니다. 국가의 개념도 역시 그렇게 다가설 수 있다는 가정하에 다음을 설명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남한에서 동한의 출입국은 자유롭지만 북한으로의 출입은 불가하다라는 기본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북한의 경우도 동한의 이동은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남한으로의 이동은 법적 제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동한의 장점은 북한과 남한을 동시에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다라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해당지역은 과거이래로 기반시설이 남한과 북한보다는 취약하다는 단점이 가지고 있어 대규모 투자를 받지 않고는 보다 빠른 시기에 infra를 갖추기 힘들다라는 잠점이 있습니다. 해당지역의 대부분은 남한에 속해 있으므로 분명히 남한을 근거로 그 움직임 시작되어야 이성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북쪽의 참여가 이루어져가 그것을 성공적으로 완수 될 수 있는 것이죠.
보다 자세하게는 북의 개방화가 이루어지면서 사회주의를 바탕으로한 이념에서 불가하게 제기되던 사유재산의 개념이 동한에서는 보다 쉽게 사회적 갈등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며, 동한의 시스템의 적응을 통해서 전체주의적인 틀보다는 개인의 생활과 능력이 보장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가능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동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서서히 개방회되는 북한에 사헙시설을 확장할 수도 있으며, 보다 더 진보적으로 동한을 기반으로 남한으로 진출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의 특수목적 국가의 설립를 통해서 남북의 정치적 갈등을 풀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당수 진행되어 남한의 인구가 동한으로 이주하고 북한의 인구가 동한으로 이주하더라도 역시 남북의 정치적 대립은 지속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대립이 심각해 질 수록, 유럽의 스위스와 같은 중립국 형태의 동한으로 이동하는 세력이 증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의 경우는 특수목적 국가의 설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최약한 infra의 대규모 보강을 통해서 북한의 Human Resource를 끌어들여 자본주의적 질서를 바탕으로한 인력이 양성을 가능케 한다라는 것입니다. 특히, 교육분야의 투자를 통해서 현재 중국과 러시아, 스위스를 선택하는 북한의 Young Leader 그룹을 자연스럽게 동한으로 이동케 하여 어린 시절부터 보다 자연스럽게 남북의 교류가 가능케 할 수 있는 Human Resource의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즉, 차세대 북의 리더그룹을 남한의 자본을 바탕으로 설립한 동한의 교육 infra를 통해서 대거 양성해 낼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더 '삼한'에게 도움이 되며 그렇게 교류하여 양성된 Young Leader 그룹이 청년의 단계를 지나 해당 국가의 주요 핵심인력으로 성장했을 때, 한반도는 분명히 정치적으로 더 강력한 통합의 질서를 자연스럽게 가져가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저의 시나리오는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 갈등을 '동한'을 통해 풀어볼 수 있는 예를 제시해 보며,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도는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고려했을 때, 분명히 통합의 질서인 '동'에게 더 많은 무게가 국내외적으로 강조될 것이다라는 예측입니다.
미국의 나사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혜성(별)의 경우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스쳐지나가더라도 지구의 지각의 움직임에 영향을 줄만큼 높은 위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1908년 러시아의 퉁구스카에 별동별이 떨어지기 106년 전 분명히 역시 동일한 현상이 존재했을 것이며, 어떻게 해서 카스피해의 바다가 없어지게 되었느지에 대한 과학적 접근도 해당이론을 통해서 가능케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현상이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전해질 충격은 여러가지 전문 지식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고 고려되며, 토박이 정치인이라고 보기보다는 건설과 토목전문가인 현정부의 최고 리더가 왜 현시대 그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되는 것이죠.
명성황후는 사관학교 설립을 통해서 근대적 신식군대를 양성하려 하였으며, 육사 출신의 한 장교는 후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과도하게 집중된 수도권의 인구를 분산화라려는 정책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대는 그것을 실행하려 합니다.
알 수없는 과거의 역사적 유사 연속성과 별에 얽힌 전설과 신화는 우리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지만, 그 흐름과 또 하나의 흐름을 넘나드는 역사의 연결고리는 분명히 우리에게 한 단계 더 진보된 세계관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 고종 41권, 38년(1901 신축 / 대한 광무(光武) 5년) 12월 25일(양력) 1번째기사/ 황태자가 정청하여 세 번째로 아뢰다.
리 부황 폐하께서는 지극한 덕과 크나큰 업적이 모든 임금들보다 으뜸가고 3대 때의 임금들보다 뛰어났으며 더없는 인자함과 크나큰 혜택이 온 나라에 푹 배이고 만백성들에게 미쳤습니다. 당당한 황제의 칭호를 동한(東韓)에서 처음 내었고 아름다운 명성이 오대주(五大洲)에 가득 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후에 올린 글들에서 이미 다 진술하였으니 다시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으며 지난날의 소략한 존호(尊號)만으로는 그 만분의 일도 드러낼 수 없으니 소자가 오늘 가상(加上)하자는 청을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 대한제국 개국당시 자체의 정체성이 동한입니다. 동쪽으로 이동해서 만든 것이 대한제국이라는 것이므로 그 전에는 더 서쪽에 있었어야죠.
<http://cafe.daum.net/ancientkoreanhistory/KhV4/278>
<참고: 한국고대사탐구: http://cafe.daum.net/ancientkorean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