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보수주의라는 것의 뿌리, 개혁주의 사상의 뿌리가 종교개혁이후에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 지난 시간에 자유주의 거기에 맞춘 보수주의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1618-1619년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네덜란드 도르트 총회가 있었다.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공격하기 위해서 도르트 총회가 열렸다. 우리 교재를 보면,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다음에 알미니안 사상이 나오는데, 거기 알미니안 사상을 몇가지 이야기 하면 예수님을 믿느냐 안믿느냐는 그 사람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말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그 말에 굉장히 공감을 할 것이고, 기독교 신자라면 의아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머리까락부터 발끝까지 어느 것도 하나님의 간섭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던가요? 사실 우리가 성도라면 늘상 하나님이 간섭을 온몸으로 충만하게 느끼며 살아야죠.
실상 그렇게 느끼지 못하지요, 느끼면 은혜인데 실상 은혜롭지 못하고, 자기가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성도의 일거수 일투족은 하나님의 간섭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 까지 다 예언되어 있다.
지난 시간 개혁주의 신학의 근본토대가 무엇인고 하면 하나님의 성경책이 예언책이고 예언대로 되었다.
예언책이란 말은 인간의 힘으로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경책에 속해 있는 예언된 대로만 현재 인류역사는 끌려 가고 있다. 이것을 믿으면 보수고 안 믿으면 보수가 아니다.
그러니 자유주의에서는 무엇이라고 공격하는고 하면 예언 덩어리인 성경책 너는 별거냐 예언책이 하나의 만화책에 지나지 않는다. 미래에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미래는 비어있는 시간과 같아서 지금 내가 무엇을 채우면 채우는 대로 착착 쌓인다는 것이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끌려간다는 사고 방식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신자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란 알미니안 주의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가 자신에게 달렸다고 본다. 여기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 도로트신경에 나오는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된 대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도르트 회의의 주장이다. 이것은 칼빈이후이다.
이런 알미니안 사상이 여기에 초점이 있다.
알미니안 주의가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선택하셨는고 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조건 하나를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조건만 선택했다. 이것을 믿고 안 믿고는 인간이 하기 나름이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이 현대에 들어오면, 침례교, 감리교, 모든 자유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조건뿐 아니라 믿을 사람인지 믿지 않을 사람인지를 하나님께서 결정하셔서 둘이 만나게 해 주셨다. 이것이 바로 칼빈주의 사고방식이다..
여기에서 도르트 신경에서 무엇을 생각하는고 하면, 그렇게 되니 구원의 조건이 십자가의 속죄사상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 인간을 창세전부터 이 속죄가 믿어지도록 결정 되었는가 라고 시비 걸고 나왔다. 여기에 대해 그야 그렇지 창세전부터 그 사람을 선택해서 그 사람이 예수님의 속죄를 믿도록 결정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죄도 짓기 전에 예수님의 속죄부터 먼저 예정되어 있다면 이 사람은 반드시 죄를 지어야 되겠네 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속죄를 믿도록 결정되었다는 말은 사람이 반드시 죄를 짓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타락도 예정되어 있는가. 인간 범죄도 예정되어 있는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으니 타락도 예정되어 있다. 그러면 아담이 선악과를 안 따먹을 수는 없었는가. 없었다. 아담은 반드시 따먹도록 되어 있나. 따 먹도록 되어 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미 따먹을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밖에 더 되는가라는 말이다.
알미니안 주의는 무엇을 제일 난처하게 여기는고 하면, 하나님 심판을 하시는데 인간의 자기 책임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외부의 관습을 받지 않고 자기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한다. 죄를 지었으면 죄에 대한 책임을 받아야 되고, 의를 행했으면 의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공의, 하나님의 공의성인데 인간 자기 책임이 없는데 그냥 심판만 감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에 합당한가 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믿도록 된 사람이 반드시 믿어진다면 결국 전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전도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 하나님이 알아서 할 것인데, 또 회개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나서서 회개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도르트 신조에 의해 다섯 가지 개혁주의 교리가 생긴다.
제한적 속죄, 창세전 선택, 거부할 수 없는 은총, 견인-한번 구원한 사람은 탈락시키지 않고 끝까지 구원시킨다. 전적 타락. 전적으로 완전히 인간이 타락했다. 이것이 도르트 신조에서, 다섯 가지를 정리한 것이다.
저쪽은 다섯 가지를 공격한 쪽이고, 이쪽은 다섯 가지를 갖고 되받아 치는 전쟁이 21세기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게 교회사다.
그런데 되받아 치는 가운데, 보수주의에서 무언가 낌새가 좋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칼빈주의 오대교리로 버텨야 하는데, 그것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버티는 기운이 있었다. 1883년부터1897년까지 14년 동안 정기적으로 나이아가라 사경회가 있었다. 여기서 근본주의 오대교리가 확립된다.
근본적 오대교리는 성경의 문자적 영감설, 모오성, 오류가 없다는 말이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하나님 되심. 인간되는 것 말고. 세 번째는 동정녀 탄생. 무념동정녀와는 다르다. 마리아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것은 천주교 이론이니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네 번째 구원의 대속성-하나님의 의가 주입되었느냐 아니면 전가되었느냐 하는 문제이다.
예수님의 의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주사바늘로 주입하듯이 주입되면 우리가 착한 일을 하게 된다. 전가된다는 말은 우리가 죄를 짓더라도 우리가 의라고 쳐 주는 것이다. 의라고 해 주는 것이다.
주입된다는 것은 동생이 수능치는데 똑똑한 형에게 그 지식을 다 배워 저도 똑똑히 되어 좋은 점수 맞는 것이 주입이고. 전가는 무엇인고 하면 바보 동생이 시험을 치는데 400점 만점에 400점되는것, 형의 점수로.
시험은 동생이 쳐도 형이 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전가이다.
전가 쪽은 근본주의 쪽이다. 주입 쪽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의롭게 되었기에 의롭게 살아야 된다.
이 의의 전가와 의의 주입을 보니 오늘날 성화론 주장하는 자들이, 주입주의, 자유주의 알미니안 주의이다.
알미니안 주의의 특징은, 믿고 안 믿고는 누구 손에 달렸다는 말입니까? 내 손에 달렸다. 이것이 모토이다. 믿고 안 믿고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혼인잔치 벌려놓아도 음식에 손대고 안 대고는 내게 결정할 문제다. 왜냐하면 내가 결정해야 그에 대한 책임론에 의해 심판이 주어지지. 강제로 먹여놓고 구원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에 어긋난다는 것이 알미니안 주의이다.
이것에 대해 타락전부터 예정되었다는 것은 1618년 도르트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다.
이것과 이것이 싸운다.
다섯 번째는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부활과 반드시 재림하신다.
구원의 대속성은 안셀무스 이론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이 다섯 가지로 인해 근본주의 용어가 튀어 나온다.
근본주의, 보수주의, 복음주의 신복음 주의, 신정통 주의, 세대주의 다 다르다.
1800년 중반에 오면 부흥운동이 일어난다. 찰스 핫지, 무디, 스펄젼, 핫지 제자인 워필드, 메이첸.
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부흥회 했는고 하면 그 당시 성경을 다 찢고 붙이고 난리 났다.
왜 칼빈주의 오대교리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 무엇을 토대로 했는가? 성경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오대교리가 나온 것부터 폭격을 가해 버리면 저절로 오대교리가 날아가 버린다. 사태가 그렇게 심각하게 되니, 성경의 무오성이 나오는 것이다.
참고적으로 말해서 체닝이라는 사람, 18,19세기 걸쳐 있는 사람. 이 사람은 칼빈주의가 인간의 전적 타락과
예정의 교리를 주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도덕성을 부인했다고 주장했다.
체닝의 목표는 기독교를 비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인 교리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인간의 완전 타락은 인간 도덕성, 선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에무스- 가장높은 하나님의 계시는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고 본다.
무한한 자유가 다 있다고 본다.
부쉬네르-모든 교리를 와해 시키면, 교리를 부셔 버리면 거기서 참된 진리가 나온다. 예수님의 대리적 희생이라는 것은 그것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고 그것으로 인간이 용서한다는 가르침은
인간의 도덕적인 것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것은 거짓말이다 라고 본다.
인간의 착함은 교육으로도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 만약 대신 다 죄를 처리해 버리면 교육의 의미와 가치가 다 버린다.
아버지가 대신히 자식이 깨끗해 지만 아버지가 자식에게 애야 바르게 살아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대신 죽는다 하지 말고 좋은 산상설교 같은 것으로 교육시키면 , 구태어 예수님이 죽을 필요 없이 인간이 점점더 향상 되니까 그것이 하나님 자녀다운 생활이 아닌가?
사회복음 라이신 부스- 하나님의 천년왕국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면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참된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뜻이 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투스-예수님이 말하는 복음이라 기독교 사회학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웃사랑으로 축복을 받는, 서로 베풀고 베풀어 줌으로, 그런 베풀어 주는 상태가 하나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기독교로 본다.
그러니 이런 것이 일부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 쪽이 90퍼센트가 넘는다. 열명 중 하나만 오대교리 주장하고 나머지 9명은 자유주의이다.
그래서 핫지, 무디, 스펄젼, 윗필드, 등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세대주의가 나온다.
세대주의는 하도 저쪽에서 성경작고 물어 뜯어니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해야 한다.
문자적 무오성이 문자적 해석으로 세대주의가 나온다.
세대주의는 기독교의 역사를, 진화론-인간이 한때 원숭이, 한때 지렁이, 한때 고기, 종이 점점 더 바뀌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의 조상은 아담이 아니고 원숭이다. 이것이 일부가 아니라 90퍼센트이다.
그러니 이것에 대해서는 성경 자체가 과학책이라고 본다. 근본주의자들은, 세대주의 자들은 세대를 일곱으로 나눈다.
처음 아담이 죄짓기 전에는 순결의 세대, 아주 순결했던 세대.
그리고 아담에서 노아까지를 양심의 세대,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를 인간통치의 세대.
양심의 세대란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는 양심대로 심판을 하신다. 노아의 구원은 양심이 고아서 구원받고 양심이 곱지 않으면 저주받는다.
노아부터 아브라함까지는 인간통치의 세대.
아브라함과 모세 전까지를 언약의 세대, 모세부터 오늘날 교회까지를 율법의 세대, 그 다음 교회부터 마지막 천년왕국까지를 교회시대, 교회시대 끝나면 종말까지를 천년왕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세대주의에서 무엇이 부각 되는고 하면 천년왕국개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천년왕국개념이 등장했다.
천년왕국이 이상적인 낙원 같다. 여기에서 엄청난 양의 이단들이 등장한다. 여호와 증인 몰몬교, 안식교. 전부다 이 한 가지 갖고 대중 집회를 열었다. 그때 부흥운동, 즉 찰스 핫지, 무디, 스펄젼 등 이 시대와 더불어 이단들이 많아짐. 이단들이 노리는 것은 우리교를 믿으면 천년왕국에 왕노릇 한다.
천년왕국의 네가지
전 천년설, 후 천년설, 무 천년설, 세대주의 천년설(전 천년설과 비슷하다)
세대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자들을 공격할 때 그냥 학문으로 따지면 밀리니까 성경을 문자적으로 밀어붙인다.
오직 성경의 문자적 무오성으로 버틴다.
이 다섯가지 원리와 칼빈주의 오대 교리와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어떤 차이점이 있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그리고 이 세대주의가 날짜를 계산한다.뮐러 1840년 경에 주님이 오신다고 하고, 여호와 증인 1924년, 이장림 1999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사기친다. 전부다 근본주의에서 나온다. 문자적 해석.
몰몬교는 지금도 유월절 지켜야 되고, 안식교는 지금도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한다. 문자적으로.
전천년설이란 최종 종말되기 전에, 천년왕국을 거친 후, 천년왕국이 지나면 그 때 옥에 갇힌 마귀들이 잠시 풀려난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론 중 한가지이다.
지금 문자 적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된다. 로마서1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임에도 그들이 십자가를 믿지 않고 행함에 의지하여, 그들의 구원이 유보된 상태이다 라고 본다. 선택은 되었는데 십자가의 온전한 의로움을 챙기지 못해서 유보된 상태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으려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으려면 온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기간이 있어야 한다. 그 기회를 주어야 한다. 패자부활전이죠.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예수님 오실 때 이방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휴거되고, 그 다음 지상에 아직도 이방인 중에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있다. 아브라함 족속들이 있다. 이 때 마귀들을 풀어 놓으니, 이들을 심하게 압박하니, 그 때 유대인들이 이렇게 내가 고생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서 그렇구나. 우리가 주님을 몰라 보았습니다 하고, 천년동안 회개한다. 실제적으로 천년이다.
이단들이 천년계산한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을 상징으로 본다.
그렇게 고생하니, 고생이 너무 심하니까 그들이 예수님 믿어 줄께요.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그들이 구원받고 모든 것은 마귀야 애썻나 너는 유황불에 들어가야지. 그때 믿지 않는 자들(천년동안 고생해도 믿지 않는 독한 자들)과 마귀와 함께 둘째 사망 지옥 불에 들어간다.
나중에 천년왕국 때 기회가 한 번 더 있다. 그래야 요한 계시록의 문자대로 다 맞다는 것이다.
이러한 천년왕국 이론들이 이게 현재 대한 예수교 합동 측의 기본 천년왕국설이다.
이렇게 주장함으로 말미암아 천년왕국을 설명하는 기법을 다른 모든 성경에서 똑같이 권위 있게 적용하겠다는 그러한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문자적 해석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는 것을 시범적으로 천년왕국설에서 보여 주고 다른 것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그래야 자유주의에서 이길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천년왕국에 대해서 18세기 후반 네덜란드에서 두 사람의 보수주의가 나온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이다.
교재에 나온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화철학, 상당히 길고 어렵게 되어 있다.
하기 전에 한 가지 빠뜨린 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근본주의 오대교리를 보니, 문자적 해석을 하니, 문자적 해석에서 발전해서 영적해석이 나온다. 영적해석은 대중들의 구미에, 호기심에 부합해야 하니, 천년왕국 상태와 그리고 재림날짜와 연관된다. 여기서 문자적 해석에서 퍼진 것은 , 결국 문자적 해석을 한다는 말은 성경에 서로 맞지 않는 문자를 끼어 맞추다 보니 이단들이 양산된다. 영적해석하려면, 오순절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되면 문자적 해석이 영적해석으로 한마디로 개판된다.
성경보고 기도하며 해석.
이현레 집단. 나이가 많다.
휘트니스 리, 자기는 영해이다. 영적해석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한국의 부흥사들 전부다 영적해석. 동일교회 조돈제 목사, 조용기 목사, 이장림, 전부다 날짜 계산했다. 책임지고 나간 사람들 한사람도 없다. 부흥사들.
그러니 성경을 공부할 필요도 없다. 문자적으로 입 맞에 맞추어 막 하면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누구를 공격하겠는가? 자기들은 칼빈주의 오대교리 강조하고 , 근본주의 오대교리 강조하고, 자유주의 공격하면 전통보수가 되고, 개혁이 되고, 참된 신앙이 된다. 얼마나 쉬운가.
자유주의가 등장함으로 말미암아 보수주의에서 이단들이, 정상적인 탈을 쓴(웨스트 민스트 고백 인정, 삼위일체 인정) 이단들이 전통적인 참된 신앙으로 껍데기를 다 걸치고 말았다.
이게 오늘날 장로교이다.
여기 우리 교재를 보면 창세전 타락, 창세후 타락.
이 논문을 쓴 사람이 무엇이라고 변호하는고 하면, 타락 전 선택, 타락 후 선택, 둘 다가 맞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것이 시간적이 아니라 논리적 절차라서 그렇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브라함 카이퍼- 무엇을 주장했는가? 이 사람은 일반은총을 주장했다. 일반은총을 주장함으로써 아브라함 카이퍼는 신 칼빈주의란 소리를 듣는다.
카이퍼, 바빙크 ,도이벨트를 신 신칼빈주의, 근본주의, 신정통주의-칼바르트, 부루너, 신복음주의-카넬 헨리, 근본주의에서 나온 메이첸, F.F.부루스
카이퍼가 말하는 일반은총이란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죽으리라 했는데 안 죽었다. 열심히 땅에서 일하면 빵이 생기도록 조치를 하셨다. 카이퍼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은총인 성경을 중시했다.
왜냐하면 칼빈과 루터, 개혁주의자들은 교회가 성경을 만들고 그러니 교회가 먼저 다는 카톨릭의 주장에 대해 교회전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경 그대로가 하나님이 계시고 그 외에는 교회전통과 관습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 오직 성경을 통해 주셨지 교회를 통해서 주신 것이 아니다.
천주교는 개신교보고 답답하다. 성경을 성경으로 정한 것이 누구인데, 칼타고 회의 때 대충 정경이 정해지지 않았는가?(323년) 이것까지는 정경이고 이것은 위경이다. 정경에 넣으면 안돼.
히브리서는 나중까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냐? 교회다. 그러니 교회가 결정한 성경을 갖고 성경이 우선이다고 하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볼 때, 역사적이 아니라 초 역사적인 무리수가 아닌가? 라고 카톨릭이 말한다.
마치 이것과 같다. 천주교에서 노리는 것은 제직회 하면 제직회의록이 나온다. 회의록이 하나님이 계시다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제직회의록이란 교회가 있고 제직이 있고, 제직이 만든 회의록이 있다. 이것이 성경이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칼빈 루터는 그것이 아니다. 칼빈 루터는 교회는 성령께서, 여기에서 어렵다.
메이첸 후배 벤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오직 성경을 통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경을 염두에 두고 교회되게 하셨다.
개신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성경 안에서만 일하신다. 특히 성령께서는.
콘스탄티 회의에서 성령론 확정.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한다.
교회이전에 성경이 먼저 있고, 나중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 개신교의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성경이 먼저 있고 교회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무런 계시를 받지 않았을 때 그때 사람들은 무엇을 보고 하나님 뜻으로 보았는가?
여기에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것을 일반은총을 주장한다. 일반은총이 먼저이고, 그 다음 하나님의 계시가 꿈으로, 선지자를 통해 나타나고 그것이 모아져 특별 은총이 되고 ,그 특별 은총의 예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교회이다.
카이퍼는 개신교이죠. 그런데 성경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전에 일반은총이 먼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러니 어떤 학자가 말하기를 카이퍼 너는 칼빈 주의에서 벗어났다. 칼빈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일반 은총적으로 일반계시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어렴푸이 알고 있어도 정답이 아니고 또렷하게 아는 것은 특별계시이다. 거울에 김이 서리면 얼굴이 잘 안보지요.
희미하게나마 하나님을 아는데 로마서 1장21절. 너희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데 어떤 하나님인지 모르기에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를 주셨다.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통해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셨다.
이방인들아 구약 이스라엘역사를 보아라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그러면 또렷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생각이다.
루터는 일반 은총이 특별 은총을 막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카이퍼는 일반은총, 특별 은총 둘 다 알아야 한다. 칼빈 같이 되어 버리면, 일반은총이 특별은총에 흡수 통합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일반은총이 가치가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19세기 말에 그 당시 사회복음 할 때 보수주의 오대 교리갖고 아무것도 못한다. 문화적으로 과학발전에 아무것도 못한다.
그냥 오대교리, 삼위일체 하나님, 이래서는 교회가 영향력이 없다.
교회란 세상의 중심인데 세상에 할말이 없다는 것은 신학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니 이것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브라함 카이퍼 당시 이미 성경은 산산조각 난 상태에 있었다. 분위가 자체가 몇 퍼센트 했습니까? 거의 90퍼센트 다 넘어 갔다. 이제 교회라면 사회에 대해 이웃 사랑으로 착한일 하는 것, 단정하고 바르게 사는 것, 모범적으로 사는 것, 빛과 소금이 되는 것, 민주주의 옹호하고. 다른 사람 구제하고,
대표적인 사람이 테레사 수녀. 그런 일을 하면 칭송과 존경을 받고, 돈이 생기면 교회 기부해 착한일 계속해, 후원금도 많이 줄 수 있는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교회가 사회에서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고, 그러면 인류역사 발전에 있어서, 과학발전, 모든 기계가 발전하고, 모든 사회가 발전하고, 인간 절대 군주가 없는,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밑에 인간 없다는 민주주의 사회가 발전된 상황에서, 교회도 가치 있는 기관으로 함께 넣어 준다는 그런 분위기이다.
주변에 있는 이런 사상에 대해 교회가 받아들이면, 교회는 어떻게 되는가? 받아 들이면 교회가 발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만약 이것에 대해 거부하면 교회 자체가 날아가 버린다. 교회에 아무도 안 오면 장사 말아먹는 것이 아닌가. 교회가 문 닫을 판이다. 이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는 부흥운동이 있어가지고 그나만 명목 유지하지만, 부흥운동 여파로 인하여 성령운동으로 이어진다. 성령운동, 말이 성령운동이지 이것은 자아도취 아닙니까? 도피주의, 염세주의, 허무주의, 내세주의.
이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 천년 왕국 때 한몫 챙긴다, 라는 식의 그러한 자기들만의 집단주의, 사회적으로 반
도덕적, 반사회적 낙인이 찍힐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위험스러운 그룹으로 달라져 버린다.
그 나머지 대다수 사람의 인식속에 남아 있는 것은 이렇게 과학이 발달되고 산업이 복잡화 된 이런 마당에 일주일 만에 천지가 다 생겼다는 것을 어느 바보가 믿느냐?
화석이 나오고. 신생대 고생대가 나오는데. 지구 연대가 46억년인데.
먼지가 뭉치가 되고 행성이 되는 과학이 있고 로케트가 올라가고 검증하고 확인되는 이백억년 된 우주역사가
과학적으로 다된 판에, 여전히 창세기 일장에 나오는 칠일 만에 짠 하고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래서 타협점이 무엇인고 하면 그래 진화론 맞다. 창세기 일장은 과학이 많고 2장 삼장은 우리가 맞다. 이렇게 타협적으로 나오니까, 듣는 쪽에서 성경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권위로 된 것이 아니고 우리가 마음먹기 따라서 이것이 이것은 괜찮은 것이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하나님의 영감된 곳이네. 아니면 아닌 것이다.
이런 교회가 아슬아슬한 판에 아브라함 카이퍼가 일반은총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칼빈은 일반은총이 희미하게, 기능이 뚝 떨어지 계시이기 때문에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통해 해석해야 한다.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받아들이는 전제적인 배경이다
일종의 마치, 초등학교 가기 전에 초등학교 교과를 미리 당겨 배우는 유치원, 그 정도로 보았는데. 그래 보아서는 안된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계획은 진짜 칼빈주의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사상이다. 그동안 주권은 교회가 있다고 보았다. 그 근거는 에베소서 2장.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다.
이제는 모든 방면에 하나님의 주권이 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있으니 하나님의 주권을 주권답게 행세하려면 일반 은총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아담이 쫓겨 난 뒤에 땅을 메었다든지, 가족을 구성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책이다. 이러한 보호책이 지금도 불신자들,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일반은총이 쫙 깔려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칼빈 같으면 일반은총에 있는 사람들아 오직 예수님을 믿어서 특별은총을 받아 들이세요 이렇게 지금까지 해 왔다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그러지 말고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들은 일반적이 모든 방법에서도 이렇게 뛰어 나고 하나님의 복된 것을 보여주고 증명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모든 부분에서.
예를 들면 지금 ccc 에서나 일반 선교 단체에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술을 행한다고 합니다.
전에 한 30년 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발라드 풍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라는 논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유행가 아닙니까? 유행가 풍으로 가사를 바꾸어 불러도 되는가? 안되는가? 찬송가만 부르자고 하다가 이것이 학생들에게 먹혀 들어가니 된다고 했다.
하용조 목사의 온누리 교회에서 전도란 이름으로 온갖 쇼를 다 벌인다. 이것을 다른 교회에서 욕했다. 그런식으로 애들을 다 끌고 간다.
그런데 불신자들을 끌고 오려면 쇼를 벌이든 무용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간에, 오도록 해야 한다.
전혀 기독교 냄새가 안 나는 것으로 해 놓고, 기독교 복음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 이것은 그동안 교회는 거룩하고, 밖은 거룩지 않다는 이분론에서 이제는 교회가 모든 방면에서, 그런 것에도 하나님의 거룩한 은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어느 부분에서도 겁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 방면에 도사가 되어.
황우석 교수처럼 예수 믿는 사람도 더욱더 많이 배아줄기 세포를 많이 연구해야 한다.
노래를 하든, 유행가를 하든 기똥차게 잘 불어 모든 부분에서 영광을 돌려야 한다.
모든 문화 자체를 하나님의 문화로 변혁시켜야 될 사명을 우리 기독교 신자가 갖고 있다.
그 전까지는 방어체제로 오다가, 아브라함 카이퍼는 방어체제가 아니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데 직접 달라 들어 그것마저 하나님의 은총으로 정복하면 되지 라고 나가서, 적극적으로 교회가 교회 안에 머물지 말고, 나가서 문화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바다 라는 것이
긴 논문의 특징이다.
그래서 인류의 모든 역사는 일반은총의 역사라 보고, 그 역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이다. 모든 방면에서.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예수님 당시에 제자들이 기적을 베풀지 못한 것은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다.
따라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그런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이 일으킨 기적을 우리가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물위를 걷고, 오천명을 먹이고. 믿음이 없어서 문제이지 믿음이 있으면 된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인 곳이 고신측이다.
그러면 아브라함 카이퍼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 사람의 문제점은 바로 창세기 3장부터 나타난다.
창세기 삼장에 아담과 하와가 즉사하지 않고 오래 산 이유는, 그전 까지는 아브라함 카이퍼에 의하면, 특별계시가 오기 전에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을 주셨다는 것이다. 특별계시보다 일반은총이 더 오래 되었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 헤르만 바빙크. 바빙크의 계시론. 카이퍼의 계시론과 동일하다. 성경보다 계시가 더 넓다.
칼빈은 성경 자체가 곧 계시고, 계시가 곧 성경이다.
그런데 바빙크는 그렇게 주장했다.
여기 문제점이 무엇인가?
과연 아담이 즉사하지 않고 오래 산 것이, 아담이 계시를 받기 전의 하나님의 일반 은총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아담이 죽지 않고 산 것은 창세기 3장 15절의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배경이었다.
죽음이란 십자가에 가야 죽음의 의미가 된다. 목숨 끊어지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저주가 진짜 죽음이다.
인간의 죽음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사망이 있고 둘째 사망이 있다. 계시록 20장.
첫째 사망.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둘째 사망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영원한 지옥가는 것이다.
첫째 부활, 둘째부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으면 첫째 부활로 본다. 부활로 본다는 것은 이미 죽었는데 살았다는 것이다.
마리아,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가 살았는가. 예수님은 살았다고 보는데 저들은 죽었다고 우긴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면서 답답해 하셨다. 울면서 죽음에서 끌어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라라는 말씀을 예수님의 부활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되고, 믿어진다.
지금 아브라함 카이퍼는 하나님의 약속의 입장에서 모두 약속을 구현하기 위해서 인류역사를 이끈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의 그 관계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역사가 역사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단지 교회가 인기가 없으니, 사람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호감을 끌 수 있는, 인기를 끌 수 있는 상품권을 계발하고 있다.
교회가 조직체로서 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세해서 교회로서 존속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런데 성경에서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소관은 주님의 소관이다.
일곱 교회가 다 사라져도 일곱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다.
로마서에 나오는 가이오의 집에 몇 명 되겠습니까. 그래도 교회라 봅니다.
교회라는 것은 여러 군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다. 왜 몸이 하나이기 때문에.
교회를 여러 개로 볼 수 없다. 구태여 에규메니컬 할 필요가 없다. 교회가 원래 하나이다.
그리고 그 교회의 머리되시는 주님이 한분이시기에 머리도 하나고 몸도 하나이다.
몸이 살아있고 머리고 살아 있는데 교회가 죽었다고 한다.
워낙 자유주이가 거세니까 평소 보수주의에 호감있는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어쩔 줄을 모른다. 대비책이 그래서 나름대로 신조를 만들어 동의를 받아 내면 자기편인줄 착각하고 있다.
조금전 근본주의 만들어 이단된 것을 알죠. 순복음도 삼위일체, 웨스트 민스터 동의합니다.
칼빈주의 오대 교리, 근본주의 오대교리는 인정해 놓고 나머지는 사람들의 대중의 호감을 끌 수 있는 것으로 한다.
기도하면 병낫고, 기도하면 부자 되고, 기도하면 교회 부흥되고, 천년왕국 이야기 하고, 기도하면 기적 일어나고, 목사 섬겨야 복받고.
이것이 오대 교리 안에 안 들어 있다. 다섯 개만 피하면 이단 되지 않는다고 본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
십일조 하고 주일 지키고, 십일조는 돈 되고 봉사 받고. 이러한 근본주의에 반대하고 나타난 사람이 있었다.
워필드-이것은 아니다. 문자주의 해석은 아니다. 세대주의는 아니다.
그는 저쪽이 성경을 깨니 성경 방어하기 위해 문자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핫지는 상식적으로 해석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상식철학을 만들어 내어, 워낙 자유주의가 똑똑하니까, 이것에 대항하기 위해 상식적으로 성경을 보면 된다고 주장. 그 상식이 무식한 사람도 목사 되고, 무식한 사람도 자신이 성경을 해석하면 영적해석이 된다는 사상이 퍼지기 시작했다.
오대교리, 전적 타락, 무조건적인 은혜, 제한적 구속. 불가항력적인 은총. 성도들의 인내.
이 다섯 가지가 성경자체가 의심되니 이것도 왕창. 주저 않는다. 전적 타락도 아니고, 제한적 구속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납득되는 것을 선별적으로 채택하면 그것도 좋은 신앙적인 태도라고 유행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워필드는 또 주장하기를 진화론도 받아들였다.
진화론 자체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역사라고 본다. 왜냐하면 진화론을 꺽을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었다.
왜 그런가 성경 창세기 일장을 보면서 성경은 과학책이다. 성경도 과학이다 라는 이 말이 옳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무슨 뜻이고 하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여기 화이트 보드가 있고 보드매직이 있습니다.
모나미 제품은 좋은 제품이다. 그런데 북한공장에서 엉터리를 만들어서 백두산 보드가 최고다라고 나온다.
그러면 백두산 보드, 그래 니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될 것인데, 우리도 백두산 보드 만큼 좋다 말이야라고 한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우리 모나미도 백두산 보드 매직만큼 좋다 말이다.라고 한다. 비유를 이해하시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너희끼리 좋아.
그것을 시기할 이유가 없는데. 너 마음대로 좋다고 해. 우리는 모나미 보드가 최고라고 하면 되는데
우리도 백두산 보드만큼 좋다고 해달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오니 지구역사가 56억년. 창세기 일장이 다 날아가 버린다. 그러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자체가 진리가 아니다라고 하면 될 것인데.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기 위해, 신의 창조가 얼마나 과학적인데, 성경이 얼마나 과학적인데, 제발 과학적으로 믿어줘 라고 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억지를 내기 시작한다. 창세기 일장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성경해석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창세기 일장부터 예수님과 결부시켜 해석해야 한다. 전부다.
과학적으로 납득되도록 해석해 버리면 실컷 성경해석해 놓고 복음이 안나온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에 보면 내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성경 자체가 저주를 받게 하는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것이다.
성경본 후에는 저주에서 멀어질 줄 착각한다. 성경에서 복음적으로 해석해 내지 못하면 성경을 천번을 읽어도 저주를 받는데.
다시 할께요. 내가 전한 복음 외에는 저주받는다. 성경을 백번 읽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영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저주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칼빈주의 오대교리, 웨스트 민스터, 근본주의 오대교리를 믿지 않으면 저주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 받는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워필드, 그 당시에는 교회라는 것을 그 시대에서 살아남기기 위해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고 설득이 되도록 그들의 원하는 쪽으로 입맞추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카이퍼고 바빙크도 그렇고.
쉽게 말해서 교인들이 목사님 기도해도 낫지 않네요. 하면 초대교회 믿음으로 기도하면 병이 낫습니다. 라는 말은 어디에 맞는고하면 카이퍼나 바빙크는 맞지만 어디에 어긋나는가? 갈라디아서 1장8절에 어긋난다.
갈라디아서 1장10절을 보면 내가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교회를 운영하든 목사들이나, 그 당시 신학자들은 사람을 좋게 하지 않으면 그 비율이, 10퍼센트 자꾸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에서 급하게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복음을 전하는 부흥운동이 아니라, 옛날의 칼빈주의 울겨먹고, 옛날 웨스트 민스터 울겨먹고, 오대교리 울겨먹고, 옛날로 돌아가자.
브리스톤 신학교에서 갈라진 것이 웨스트 민스터 신학교 이다. 메이첸.
웨스트 민스터 신학출신, 벤틸, 벤틸 제자, 제가 공부했던 박아론 교수이다. 그 사람이 반틸의 사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자유주의, 성경을 다 때려 부수는, 성경을 옛날 만화책으로 보는 것에 대항하는 신정통주의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람이 칼 바르트, 부루너(스위스)이다.
이 사람들은 일 이차 대전을 거치면서, 독일에서는 전부다 자유주의에 물들었다.
칼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오직 성경으로만, 복음중심의 오직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 사람의 주장은 노no에서 에스yes로 나간다.
무슨 말인고 하면 십자가 통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을 저주했다. no 라고 하고,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 부활위에서 모두가 오너라. 모두가 에스가 된다. 내가 다 용서 해 줄께.
여기서 남는 것은 다 저주받고, 부활로 말미암아 다 구원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예수님만 선택했는데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난다.
이제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 안에만 나타난다.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따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는 예수님이 버림받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만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대표자인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우상이고 모든 신은 거짓이다. 인간은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알수 없다.
no 이니까. 모든 것이 부정된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흘만에 부활시키셨다. 인류의 대표자가 부활하셨다는 말은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용납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인류의 대표자이니. 인류의 대표자가 버림받고 아버지의 사랑에 의해 구원되었다는 말은 모든 것이 용납될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본다.
이것은 참된 하나님의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으며, 이것이 변증법이라 하는데.
그래서 칼 바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신다. 새로운 에스가 된다. 이것을 칼 바르트는 기쁜소식, 복음이다. 그래서 이 신앙, 다버리고 다 구원하는 것은 인간의 착함과 선함과 행함과 도덕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이것을 알 수 있다
고가그텐, 부루너가 동의했다.
고가르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무조건 순종할 때 진정한 하나님을 아는 역사가 일어난다.
부루너라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칼바르트와 함께 하다가 나중에 갈라선다. 어디에서 갈라지는가?
불신자와 접촉점이 없다고 본 것이 칼바르트. 어떤 경우든 다 우상이기 때문에 없다. 부루너는 자연계시가 있어서 접촉점이 있다고 본다. 아브라함 카이퍼와 같다고 보면 된다.
콘스탄틴 노플에서 381년 제정된 성령, 성령의 활동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강조했다.
코넬리우스 벤틸은 메이첸 제자이다.
벤틸은 신복음주의를 공격했다.
신정통주의는 다른다. 이 차이점은 신정통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고, 신복음 주의는 성경 비평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카넬, 헨리.
신복음 주의와 근본주의 차이는, 신복음 주의는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인간 양심을 받아들이고,
이것에 대해 메이첸과 벤틸이 공격 많이 했다.
박아론 교수에 의한 벤틸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다른 쪽에서 메이첸을 공격하기를, 저것이 장미꽃이다라는 것이 진리다라는 것을 거부했다. 그런데
메이첸 같은 근본주의 자들은 이것이 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메이첸은, 누가 공격하는가. 신복음 주의자들이 공격할때. 메이첸 같은 근본주의 자들은 마이크를 두고 마이크를 말하면 거짓이라고 말한다고 말한다.
삼위일체의 의한 마이크라고 해야 진리라고 믿는다라고 신복음 주의 자들이 근본주의를 공격한다.
여기에 대해 벤틸이 반박하기를, 우리 스승 메이첸이 그냥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마이크를 마이크라고 하면 진리에 미흡하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장미가 있다면 저 장미를 장미라 하면 안 된다. 장미가 삼위일체에 의해 만들어진 장미라 해야 진리가 맞다.
수학에서 삼 더하기 오가 팔이 맞습니까? 이것이 진리라고 한다면 성경특별계시 진리와 이 진리 두 가지 진리를 다 인정하자는 것이 신복음주의 주장이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는 삼 더하기 오가 팔이라고 아는 지식이, 저질러진 범죄가 무엇인고 하면, 이것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삼 더하기 오가 팔인 것을 안다면
무엇 때문에 성경을 보느냐? 이런 것은 과학과 인문과학이 발달하면 다 되는 것이지.
교회 다니는 요리사가 요리할 때, 간짜장 만들 때 재료를 무엇으로 넣는가 할 때, 이걸 꼭 삼위일체 집어 넣어야 되는가? 아니면 경험상 하면 되는가?
경험적으로 만들어도 맛있는 간짜장이 나온다. 그러면 간짜장 만들때 기도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성경에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한다. 그러니 하나님께 영광이 안된다는 것이다라고 근본주의가 주장한다.
여기에 대해 신복음주의가 공격해 댄다.
성경의 진리도 있고 성경 밖에도 진리가 따로 있다.
근본주의는 이것에 대해 그것이 바로 자유주의이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간짜장 이야기를 꺼집어 낸다. 기도하면서 간짜장 만들어라.
그러면 불교신자 만든 세탁기 사용하면 안되고, 여호와증인이 운전하는 택시 타면 안되고, 박태선 만든 간장 먹으면 안 되고, 그러면 통일교에서 만든 천연 사이다 먹으면 안 되고, 집 계약 할 때 몰몬교 집을 계약하면 안되고. 그렇게 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팀이 할렐루야 팀이고, 신자들 우리 팀만 하라고, 그 반대로 나온 팀이 성남 축구단이 나오고, 누구 소유입니까? 통일교 것 아닙니까? 문선명 통일교는 어디에 속합니까? 근본주의에 속한다.
근본주의는 자기 집단의 절대성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자기 집단의 절대성이, 인간에게 자기 집단이 되면 몸 바치고 정성 바치고, 물질 바치고 다 바친다.
왜냐하면 자기 집단이 커지는 것이 신의 계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내가 구원 받았는냐 안 받았냐를 어디서 보는고 하면, 자기가 속한 교단이 커지는 것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축복의 증거로 찾는다.
이것이 19세기 중반의 무디, 스펄전, 핫지, 이런 인간들이 부흥운동을 하면서 전부다, 교주가 되고 싶은대로 다 된다.
천년왕국적인 황상, 이상적인 교회건설이 유행이 되어. 그 세대주의가 그대로 한국에 다 들어 왔다.
애천교회 정명석, 안식교에서 갈라진 것 , 권신찬에서 갈라진 것. 박옥수, 이현레, 워치만니, 지방교회
특징들이 다 근본주의 사고방식이다. 자기 집단의 절대성이다.
그래서 대성교회 박윤식 욕했다고 이단 연구하는 탁명한 죽여 버리고. 실제로 죽였잖아요.
근본주의 오대교리 빼놓고, 칼빈주의 오대 교리 그대로 지키고, 기도해서 뭐되고, 기도해서 뭐 되고, 사람들의 무속신앙 그대로 다 집어 넣어도, 그래도 그것은 전통 신앙이고,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
라인홀드 니브(신정통주의에 속한 사람)-일 이차 대전 거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쓰면서 왜 인간은 도덕적 인간이면서 사회적으로 비도덕적 인간인가?
그것은 인간은 아가페란 사랑을 실현할 수 없어서 오직 정의만 이루어 질 뿐이다.
인간은 사랑을 알 고 있어도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랑의 대체물로 나온 것이 오직 정의로움만 나올 수 밖에 없다.
역사란 죄가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배경에 불구하다.
니브는 디트로이드 자동차 공장 노동자를 목회 하면서, 진짜 자유주의가 가진 대로 이상적 공동체가 되는 줄로 알았다. 실망과 실망을 하면서. 인간의 죄는 어떤 경우든 항상 나오게 되어 있으며, 이게 신정통주의 특징이다. 오직 역사란 인간의 죄를 받아 내는 하나의 발판 역할 밖에 못한다.
아가페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있다고 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그래도 이상적인 교회가 된다고 하는 쪽이 어디인가? 근본주의 쪽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이다.
이들은 근본주의 오대교리만 있으면 충분하게 이상적인 교회가 된다고 본다.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구미를, 욕망을 채워주어 자기 집단만 채우면, 목사 밥 먹고 살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게 다 가르쳐 왔다. 옛날 천주교가 그렇게 했다.
다음 마지막 시간에는 쟈크 엘룰의 뒤틀려진 기독교로 대미를 장식하겠다.
통일교, 안식교, 합동측, 기장측, 전부다. 합동측이 자기를 향해 무엇이라고 합니까? 장자교단이라고 한다. 이런 인식자체가, 사도바울의 복음에 관심 없고, 우리 특정집단이야 말로 비로소 정통이며, 웨스트 민스터가 여기 있으며 라고 한다.
그래 놓고 하는 말이 치리가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고, 뭐 교회의 삼대표징인 말씀선포와 성례와 치리.
이것은 다 A.A. 핫지가 이야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