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첨] 공개 제안문 - 송경동 시인
‘2차 희망의 버스’를 타러 가요
지난 6월 11일 밤 12시 머나먼 부산 영도에서 촛불을 들었던,
가난한 우리는 다시 2차 ‘희망의 버스’를 타기로 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의 아픔과 절망의 상징인 저 85호 크레인 위에 있는 한 여성노동자를 구하러 갑니다.
‘당신이 희망입니다’라고 적혀진 양말 하나씩을 나눠주며,
우리가 떠난 뒤 다가 올 탄압과 고요가 두려워 서럽게 울던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의
아내들과 아이들을 구하러 갑니다.
십수년간 목 잘려나간 수백만 노동자들, 900만에 이른 이 참혹한
비정규직 시대를 구하러 갑니다.
그 아픔의 현장에서 두 어깨가 축 늘어진 우리들의 ‘소금꽃’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구하러 갑니다.
다시는 누구도 함부로 잘려 생의 벼랑에 서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갑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구하러 갑니다.
신자유주의 시대 돈만이 최고인 이 살벌한 착취와 경쟁의 시대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런 세상을 우리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해 갑니다.
이 버스는 모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반대하고,
그 누구의 삶이던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연대의 버스,
실천의 버스입니다. 왜 모두가 연대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수 자본가들의 금고로만
들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고자 하는 버스입니다.
그래서 이 버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버스이기도 합니다.
누가 얼굴 내밀자고 가는 버스도 아니고,
누굴 또 시대는 변하지 않은 채 영웅으로 만들자고 가는 버스가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들이 맑고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버스입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버스이고,
너무나 소박한 버스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버스입니다.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차 희망의 버스 185대가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연인의 손을 잡고,
친구의 손을 잡고, 동지의 손을 잡고 출발하는 2011년 7월 9일은,
아마도 한국사회 운동의 역사상 중요한 날로,
우리가 잊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역사의 한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날은 80년 광주의 5.18과 87년 6월과 7,8,9를 잇는,
2008년 촛불광장을 잇는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그런 희망으로 다시 2차 희망의 버스 185대의 출발을 전 사회적으로 제안합니다.
6.11일 그 눈물겹고도 신나던 밤을 함께 했던 모든 날라리들께 제안합니다.
모든 지역의 숨은 양심들께 제안합니다.
광주에서, 순천에서, 전주에서, 수원에서, 평택에서,
하남에서 또 어디에서 1차 희망의 버스를 타주신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모아 제안합니다.
다른 세상으로 이제 우리 출발합시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저 소통부재의 낮은 담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소수들을 위해 평범한 다수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잘못된 장벽을 넘읍시다.
이번엔 185대입니다. 그날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7월 9일을 두고,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합시다.
벌써 누구는 일주일마다 희망의 봉고, 희망의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합니다.
그날 김치 한 조각이 없어 맨밥을 먹던 설움을 없애고자 한 차 분량의 쌀과 김치를 보
내겠다는 촛불 시민들이 계십니다. 사진가들은 부산 지역 작가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한진의 절망을 카메라에 담겠다고 합니다.
백기완 선생님과 박창수 열사 아버님 등 유가협 어르신들이 맨 첫 차를 타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연대의 마음들이, 공동체의 마음들이 잡혀 갈 일이라면
1번으로 자신들을 내세워주시라고 합니다.
7월 9일 전까지 우리 모든 귀를 열고, 눈을 열고, 손을 내고, 발을 냅시다.
7월 9일 전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저 눈물겨운 여성노동자 김진숙이 살아 내려올 수 있게 합시다.
매일 계단을 내려가는 훈련을 한다는 저 눈에 피눈물이 아니라 환한 웃음을 돌려줍시다.
그가 정말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떠도는 혼들을 고이 안고
이 안전한 평지로 내려 올 수 있게 합시다.
6월 12일 우리를 배웅해주며 그 누구랄 것도 없이 펑펑 울던
그 가족들과 아이들의 눈물을 딱아 줍시다.
그렇게 모두가 눈물바람을 하며 떠나온 뒷날, 김진숙 선배가 트위터에 썼더군요.
“희망의 버스 한번만 더 와주면 저도 살아 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울지 맙시다. 더 이상 우리만 피눈물을 흘리지 맙시다. 더 이상 절망하지 맙시다.
그 시간에 조직합시다.
그 시간에 단 한 대의 버스라도 더 만듭시다.
누가 말을 걸어 올 거라고 기다리지 말고,
김진숙이 열 여덟 시절 했던 화진여객 버스 안내양처럼
내가 이 희망의 버스의 안내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주십시오.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아름다운 소풍을 가는 길이라고 말해 주시고,
저들의 모든 비방과 왜곡을 넘어 진정한 평화마음의 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십시오.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 어두운 시대 절망의 벽을 넘으려면 내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먼저 열어야 합니다.
그 열린 마음들이 전혀 다른 열린 세계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 믿어 봅니다.
* 이 공개 제안문은, 6월 15일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전체회의(민주노총, 인권단체, 종교단체, 문화단체, 사회단체,
학술단체 등 50여개 사회단체 참여)
결정과, 당일 오후 2시 기자회견 시 백기완 선생님을 비롯한 사회원로 선생님들,
그리고, 6.11일 함께 해주었던 서울과 지역의 희망버스
참가자 분들의 마음을 모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