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린곳은 통영운하를 가로지르는 충무교였다.
물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저 멀리 횟집, 다찌, 반다찌 같은 간판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느 집이 좋은지 몰라서 비교적 많이 알려진 이 집으로 갔다.
유명세에 비해 가게 내부는 좁고 허름해보였다.
테이블마다 하얀 플라스틱 양동이에 술병을 담아놓고 마시는 모습이 특이했다.
들었던대로 메뉴판에 안주는 없다.
소주가 10,000원, 맥주가 8,000원. 그리고 통영 주변의 섬 이름을 딴 메뉴들이 있다.
섬의 크기 순서로 가격을 매겨놓은 모양이다.
아마 술의 종류와 병의 개수로 계산을 하기때문에
이 술양동이는 일종의 계산서 개념이 아닐까.
기본을 주문했는데 일단 이렇게 한상이 차려졌다.
기본에는 소주 4병이 포함된다.
그리고 다른 안주들이 하나씩 차례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중엔 상위에 올려놓을 자리가 없어 안주를 합쳐 놓거나 손이 안가는건 물려야 했다.
어묵탕, 브로컬리, 고등어조림, 꼴뚜기 조림, 골뱅이, 마즙, 과메기, 물메기알, 굴무침, 야콘, 새우,
석화찜,멸치회무침, 전어구이, 돼지고기 수육, 잡채, 계란찜, 날치알, 해삼, 밴댕이젓갈, 꼴뚜기, 관자,
개불, 도미회,멍게, 굴, 전어회, 가리비, 아나고회, 등등 30여가지 이상의 안주가 나왔다.
아주머니께서 뭘 더줄까 물으시길래 배가 불렀지만 석화찜을 한번 더 달라고 얘기했다.
다른 안주도 맛있었지만 석화찜이 너무 맛있었다. 나중에 굴 사다가 집에서 좀 쪄먹어야 겠다.
소주 몇 병을 더 시키면 다음엔 어떤 안주가 나올지도 궁금했고,
술 잘먹는 친구들이랑 같이 오면 참 재밌겠다 싶었다.
아, 정말 긴 하루였다. 취기도 오르고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제일 가까운 모텔로 가달라고 얘기했다.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다. 오늘도 화창하고 맑은 날씨다.
접질린 발목이 욱신거렸고, 어제 술을 많이 마셨는데 신기하게도 숙취가 없었다.
샤워를 하고 머리도 잘 말리고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겨울 아침 공기속에 묻어나는 바다냄새가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통영 전통 공예관이 있었는데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서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아침을 먹기위해 다시 서호시장으로 갔다.
어제 먹었던 시락국밥이 생각났지만 한번 먹어 봤으니 오늘 아침은 다른걸 먹자.
골목 양쪽으로 복국을 하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한 가게 앞에서 아주머니가 미나리를 다듬고 계시길래 물어봤다.
"아주머니, 이게 뭐에요?"
"졸복. 요새는 안나니까 제철에 사서 얼려놓고 쓰지."
아~ 저 작은 복어가 졸복이구나. 졸복은 5~6월이 제철이라고 한다.
이 집에서 졸복국을 먹기로 했다.
복국은 8,000원.
햇볕이 드는 자리에 앉았다. 반찬이 이것저것 많이 나오는데 전어회 한접시가 눈에 띈다.
소주 없이 회를 어떻게 먹어. 그렇다고 아침부터 또 혼자서 술을 마실수도 없고...
졸복국이 나왔다. 맑게 끓여낸 지리탕이다.
손질된 작은 복어 여러 마리를 통째로 넣고, 미나리, 콩나물등과 함께 끊인 것이다.
커어어~!!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한모금 마셔보니 형언할 수 없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 나온다.
한입 크기의 복어도 입안에서 녹는듯 부드러웠고, 담백한 맛이 시원한 국물과 잘 어우러진다.
통영에와서 이걸 안먹고 그냥 갔다면 정말 후회 했겠구나 싶었다.
속이 확 풀리는 졸복국으로 든든한 아침을 먹고 이제 뭘할까,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가 어제 봤던 통영우체국을 떠올리곤 청마 문학관으로 가보기로 했다.
청마 문학관이 있는 정량동에서 오랜만에 보는 저 목욕탕 굴뚝이 반가웠다.
내가 어릴때 부산에선 어느 동네를 가든 저런 굴뚝이 있었는데...
청마 문학관을 둘러보고 다시 내려 갔더니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산대첩 기념공원이 있다는 안내표지판이 보여 가보기로 했다.
한산대첩 기념공원은 바닷가의 언덕위에 넓은 잔디밭과 산책로로 꾸며진에
예쁜 공원이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산책하기에 좋았다.
공원 한 가운데에는 우뚝 솟은 이순신장군 동상이 호령하는 모습으로 통영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가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은 오른손에 칼을 쥐고
왼손은 허리춤에 있는데 여기선 왼손에 칼을 쥐고 오른손으로 바다를 가리키고 있다.
잔디가 뒤덮힌 산책로는 바닷가로 이어진다.
이 공원까지 오는 길에는 수백 미터의 길 양쪽으로 선박용 엔진 수리 공장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분위기도 좀 이상해서 그냥 가지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와보니
그 공장 지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한산대첩 기념공원에서 내려오니 점심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이제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야겠다.
점심은 먹고 가야겠는데 이번엔 또 뭘 먹을까 생각하다가 곰장어를 먹기로했다.
택시를 타고 예전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던 무전동으로 갔는데
아직 대낮이라 그런지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문을 연 집을 발견하긴 했는데
연탄불에 구운 소금구이가 먹고 싶다고 말했지만 가게 문을 연지 얼마 안되서
연탄을 피우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며 그냥 양념구이를 먹으라고 했다.
역시 자갈치 시장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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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풀향기 원문보기 글쓴이: 慧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