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의 뜨락에 바위 하나가 서 있다. 그 바위에 음각된 선시 한 수가 수시로 흔들리는데 내 마음을 제자리에 세워두곤 한다.
팔순 중반을 넘어선 등 굽은 노객老客은 예부터 생활 덕목이 무애無碍여야 편안하다고 했다. 무엇에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 내놓으며 희로애락 즐기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한데도 말로는 물 같이 바람 같이 산다고 하면서도 속마음은 내가 나를 속일 때가 많다. 이럴 때 그 선시 한자 한자가 금방울이 되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나를 깨우친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 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 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聊無愛 以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 以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靑山兮 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蒼空兮 要我以無垢(더러울구)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聊無怒而 無惜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如水如風 而終我
여말의 고승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청산은 나를 보고>이다. 이 선시를 처음 접한 것은 젊은 시절 질병의 늪에 빠져 내일이 기약 없는 때였다. 폐결핵으로 생피를 토하며 깊은 산사에서 요양생활을 할 즈음 한 객승이 찾아들었다. 며칠 동안 요사寮舍 귀퉁이 한 방에 안거하면서 그 선시를 알게 됐다.
그때 나는 비록 몹쓸 병에 걸려 생의 밑바닥을 헤매고 있었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건강을 되찾아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늘 붙들고 있었다. 교단생활이 적성에 맞고 생활도 보장되며 항상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이미 중견 교사였던 나는 나름대로 교직관이 서 있었다고 할까. 그런 나에게 그 선시는 ‘패자의 독백’으로 느껴졌다.
나의 맹안盲眼과 천박한 인품 탓으로 그 선시에서 처절한 진실이 불타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영혼의 절규도 듣지 못했다. 품격 높은 선미禪味도 감지할 줄 몰랐다. 그저 글귀의 껍데기에 집착해서 건성으로 읽었을 뿐이었다. 감춰둔 속뜻을 깊게 파헤쳐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인생의 중년은 도전과 성취 영욕과 애환이 출렁이는 격랑의 시기가 아니던가. 어쩌다 그 선시가 분주한 틈새에 떠오르면 ‘은자隱者의 넋두리’로 여기고 얼른 지워버렸다.
이제 나는 황혼이 붉게 타오르는 광야를 걷고 있다. 나 자신이 구름나그네임을 발견했을 때 그 선시는 ‘법등의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낱말들이 하나 같이 황금덩어리로 배열되어 있지 않은가. 온갖 도덕, 온갖 계명, 온갖 종교가 모두 녹아 있다. 범종의 영음보다 더 은은하게 사람의 영혼을 흔들어 깨운다. 탈속의 경지는 한사寒士를 부끄럽게 하고 우객羽客 울린다고 하리라. 행간에 깔려 있는 수많은 묵언은 너무 드높고 존엄해서 차라리 평범하다고나 할까.
선시에 스며있는 상념의 뿌리를 만나보려고 관조며 명상이며 사유를 거듭해 본다. 마침내 그 선시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없을 무無’ 한자가 나타난다. 피멍울이 맺도록 파헤치고 탐색을 계속해 본다. 이번에는 ‘무無’ 대신에 ‘빌 空’ 한자가 등장한다. 재미가 솔솔 하다. 드디어 ‘공空도 없어지고 ’마음 心‘ 한자만 최후로 남는다.
산승들은 ‘석녀石女가 물을 긷다.’ ‘철우鐵牛타고 몰현금沒鉉琴 퉁기다.’ ‘토끼풀과 거북털’ 등 온갖 화두를 들고 무문관無門關수행을 하기도 한다. 그분들의 깊은 사색과 치열한 참구를 속인이 어찌 흉내인들 낼 수 있으랴.
<토굴의 노래>라도 진언眞言으로 여기고 읊고 읊어본다. 심오한 뜻이 불빛을 발산하며 나의 내면을 비춰준다.
내 몸 속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것 같다. 하늘과 땅, 이 세상 만물이 나와 무관한 존재는 하나도 없다. 그들이 있기에 내가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지구에서 삶을 누리는 행복에도 감사드린다.
오직 내 마음 하나 먹기에 따라 내 발길 머무는 곳곳이 낙원이요, 순간순간이 보람인 것을.
(김규련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