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한국의 역사』라는 제목이 보여주듯 초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춘 일종의 한국사 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백과하면 흔히 떠오르듯 한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을 발췌하여 연대기별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 밝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백과’라는 말에 충실하면서도 우리가 여태껏 보아왔던 ‘백화점식 나열’과는 전혀 다른 체제라는 - 차라리 '발상'이라는 편이 맞겠군요. - 기묘한 형식이 공존하는 책이 본서의 묘미입니다. 적절한 코멘트일지 모르나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왕조사를 완전히 배제한 점이 아닐까 합니다. 시대의 순서를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특정 왕조별로 늘어놓는 식의 체제는 타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백과의 특징답게 실용적인 면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생생한 컬러 사진과 그림, 각 주제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된 연대표가 그러하지요. 기본적으로는 초 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추어 학교 과제물과 시험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구성되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그쳤다면 다른 책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시도한 영역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서가 널리 읽힐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삶과 관련한 주제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측면이겠지요.
이 책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의 전개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종교와 정치', '문신과 무신', '왕과 신하' 등 주제별로 묶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제에서 통시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들간의 관계,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역사의 흐름을 보면서 어떠한 흐름이 후대에도 계승되어질만한 것이 있는가, 또 진정한 전통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기도 하는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색다른 요소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지요.
가령 '소외된 자들의 역사'라는 주제는 순서상으로 고대 파트에 속하지만 그에 속한 소주제인 '우리 역사 속의 여성'을 보면 단순히 고대 여성 이야기만을 한 것이 아니라 고려 및 조선의 여성들과 비교하면서 그 지위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신으로 모셨던 여성(고대) ⇒ 남녀 차별이 적었던 시대(고대 및 고려) ⇒ 조선시대의 여성 차별'이라는 항목들만 한 번 읽어보아도 시대에 따른 여성상의 변화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전통의 왜곡'이 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지요. 흔히들 '삼종지도'를 '미덕'이자 전통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지요.
그보다도 더 확연한 의식은 '전쟁의 시대'라는 주제에서 잘 드러납니다. 고대 사회에서 전쟁은 '일상생활'이었다는 명제부터가 남다르지요. 다만 그 접근법이 다른 것은 전쟁이 적어도 고대에는 '인간의 삶을 파괴'한 측면과 아울러서 '인간의 역사를 발전시키기도 했다'는 기능성도 함께 다루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조선 시대는 평화의 시대요, 고대는 폭력과 수탈로 난무하던 시대라는 인식이 암묵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있어왔지만 그런 반면 '정체'와 '활력'이라는 또 다른 측면은 간과되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고대라고 폭력과 수탈만이 난무하지만은 않았음을 책을 읽어과는 과정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경쟁'이라는 측면이 있는만큼 제도든 다른 어떤 무엇이든 '나태'한 쪽이 지게되는 사회가 고대사회인 점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까요. '민심 끌어안기'도 경쟁인 이상 말이지요.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나 요소에 대해 지면을 할애했다는 점에 있을 것입니다. 가령 일제시대 독립군 수장들 중 한 일에 비해 주목 받지 못했던 서 일 장군 같은 사람을 따로이 소개하였다는 부분이 그러합니다. 서 일이라는 상대적으로 '참신한(!)' 인물을 등장시킨 점은 자칫 조선시대에 비해 소홀해지기 쉬운 일제시대를 보충하면서도 구태의연한 서술을 지양하는 2중의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에서 음미할 만 합니다.
또한 '임금의 종친을 제거한 외척들'이라는 소주제에서 남 이 장군과 더불어 이름을 남긴 구성군 이 준이라는 생소한 인물을 들어 한명회로 대표되는 당시의 외척이 '종친 세력'을 억눌렀고, 이것이 조선시대 정치에 또 다른 파행을 불렀다는 서술도 볼 만합니다. 외척의 비대화가 늘상 시대의 퇴보를 불러왔음을 감안하면 통사에서 의외로 무시된 주제이기도 하지요.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비록 한 줄에 불과한 짧은 서술이지만 유자광에 대한 평가입니다. 초-중등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책임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유자광을 그저 '누명'이나 씌우는 간신으로 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더군요. 주자학 위주의 세계관을 극복함이 용이하지 않다는 생각을 문득 해보았습니다.
본서의 결정적 요소는 268쪽의 연대표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기존의 연대표가 나라별, 시대별 순서로 일관했다면 이 책에서는 '주제별 연대표'라는 이색적인 시도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야 일목요연하다 못해 간단하지만 그것을 도출하기 위한 노력이 의외로 컸음이 한 눈에 드러났으니까요. 연대표의 순서를 잃지 않으면서도 '통시대적'인 흐름도 읽을 수 있어 보다 '입체적'인 효과를 살리는 요소가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만큼 색인까지 이 책을 꼼꼼히 읽어도 284쪽까지이며 본편은 265쪽까지이니 큰 부담은 없을 듯합니다. 삽화 및 사진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고 글도 묵직한 내용에 비해 놀랄만큼 선선한 흐름인만큼 읽는 데는 전연 부담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짬을 내서 2시간 가량을 할애해서 다 읽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문체도 쉽고 어려운 용어도 최대한 사용하지 않아서 역사에 대해 전혀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더라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름 세부적으로 읽은 것치고는 소개가 거칠어서 염려가 됩니다. 제가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진부한 말이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한 번 이 책을 읽어보심이 좋겠군요. 읽고 나시면 아마도 저같이 '은근히' 쇼킹한 부분들을 적지 않이 접하리라고 봅니다. 연륜이 있으신 성년 회원분들은 또 다른 생각을 가지실지도 모르지만 그 자녀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첫댓글 천편일률적 내용의 역사전집보다 훨씬 알찬 자녀용 교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