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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백파] ♣ 낙동강 1300리 종주 대장정 (9)
생명의 물길 따라 인간의 길을 생각한다! 강은 드디어 바다가 되어 하늘과 만나게 되나니!
☆ [낙동강 종주] * 제4구간—② ‘낙동강 예던 길’(명호→청량산)
▶ 2020년 08월 16일 (일요일)
* [봉화 명호면]→ 현수교→ 예던 길→ 명호교→ 선유교→ [청량산] *
* [낙동강 예던 길] ② ☞ [명호(면)] 점심식사(연화식당)-낙동강 발원비(낙동강-운곡천 합류지점)→ 현수교 건너→ (잘못 든 산길-되돌아 나옴)→ 현수교 아래, ‘낙동강 예던 길’(시작점)→ 강변을 따라가는 예던 길→ [연한당(燕閑堂)]→ 명호교→ 예던 길→ 절벽의 테크 길→ 현수교(선유교)-[백룡담]→ 다리 건너 [35번 국도]→ 관창2교→ 오마교→ 관창1교→ 청량산 입구-[(숙소) 하늘정원팬션]→ 청량산문-[퇴계시비공원]→ 민박(별밤)
* [낙동강 예던 길] ① ☞ [임기교~명호(낙동강 발원비)] 구간, 즉 '봉화 원시비경탐방로'는 홍수로 인해 탐방로가 폐쇄되었다. 부득이 도로를 지나가는 트럭에 편승하여 이동했다.
* [봉화군 명호] ← 북쪽에서 운곡천 합류(백두대간 구룡산-옥석산 발원)(춘양, 88번도로 경유)
* [낙동강 종주 제4구간 ② ; 명호→청량산] — 명호「연화식당」점심식사 …
☆… 오후 2시 30분, 봉화군 ‘명호’(면)에 도착했다. 워낙 배가 고파 우선 식당을 찾았다. 시원한 막국수 한 그릇 먹고 싶었으나, 이 동네에는 ‘그 맛있는 막국수’를 하는 집이 없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골목 안에 있는 ‘연화식당’이었다. ‘우거지선지해장국’밖에 안 된다고 하여 그것을 주문하여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눈물겹도록 맛있게 먹었다. 뜨거운 해장국과 따뜻한 밥 한 그릇! 시장이 반찬이었던가. 식사 중, 건너편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어떤 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를 가느냐’고 묻기에 ‘태백을 출발하여 부산까지 낙동강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말했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봉화와 낙동강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인정이 있어 보이는데 말씀이 많았다.
* [그해 겨울, 명호의 추억] — 다시 55년 전, 선생님을 생각하며 …
그런데, ‘봉화군 명호면’ 하면 나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명호는 바로 고등학교 시절 우리 광산과 3년간의 담임이셨던 강재성 선생님의 고향이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 금반, 태백에서 시작한 낙동강 종주 중에 장성을 지나오면서, 나는 55년 전 강원도 장성광업소에서 막장실습을 한 이야기를 쓴 바 있다. 그때에 있었던 ‘명호의 이야기’이다.
1965년 그해 추운 겨울, 빡빡머리 고등학생들이 그 험난한 강원도 오지의 탄광으로 실습을 가던 중이었다. 당시 방학을 맞아 명호의 고향집에 와 계시던 선생님이 주소를 가르쳐 주면서, ‘장성 가는 길에 우리집에 한번 들렀다 가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 나중에 생각해 보니, 험한 광산으로 실습 가는 제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여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봉화군 명호는 강원도 태백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장성광업소 실습조 다섯 명(김대호, 서종태, 오상수, 홍남섭, 고재우)은 영주에서 동해로 가는 영동선을 타고 가다가 봉화의 어디엔가에서 내려 선생님 댁을 찾아간 적이 있다. 하루해가 짧은 겨울날이었다.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고감2리 1000번지!’ 달랑 집 주소 하나만 들고 찾아갔다. 너무 아득하고 오래되어 자세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날처럼 길이 잘 나있는 것도 아니요, 차도 흔하지 않은 때였다. 봉화의 어느 기차역에서 내려 어찌 어찌해서 묻고 물어 찾아간 선생님 댁은 산골 중의 산골이었다. 사방이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산중에 대여섯 가구가 있는 오지의 산간 마을이었다. 추운 날 짧은 겨울 해, 거의 어둑해서 찾아간 선생님의 고향집에는 선생님과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셨는데, 멀리서 찾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아들의 제자들을 위하여 금방 저녁밥을 지어주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쌀밥에 국과 갖가지 반찬을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참으로 맛있게 먹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맛있고 따뜻한 저녁 밥상이었다. 어머님의 자애로운 정성이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워 주신 것이다. 지금도 친구들이 만나면 ‘서울의 몇 십만 원 짜리 한정식도 그렇게 맛있지는 않을 거야!’ 말하곤 한다. 그리고 뜨겁게 불을 지핀 온돌방에서 깊은 잠을 달게 잤다. 워낙 배고픈 시절이었고 먹성이 좋은 성장기의 고등학생들에게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도록 고맙고 뜨거운 추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강재성 선생님은 한양공대 광산과를 졸업하고 바로 우리 학교에 부임하셨다. 아담한 키에 얼굴이 곱상하여 우리는 선생님을 ‘이뿐이’로 통용했다. 사실 선생님은 우리보다 정확히 9살 많으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선생님을 고등학교 때 이미 결혼을 하셨다, 외아들인 선생님은 연로하신 할아버지-할머니와 부모님의 강권(?)으로 조혼을 하신 것이다. 누님 두 분, 여동생 세 분 등 6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시다.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광산과가 폐지됨에 따라 선생님은 수학과로 전과하여 영주의 중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정년퇴임을 하시고 지금 영주에서 살고 있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는데, 모두 성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지난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12시, 15명의 우리 제자들이 선생님을 모신 적이 있다. 졸업한지 50년만에 만난 사은의 자리였다. 선생님과 함께 모교의 교정을 거닐고 따뜻한 식사를 함께 했다. 선생님의 모친께서 지어주신 그 밥상을 생각하며 ….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은성광업소와 석탄박물관을 둘러보기도 하고. 가은의 아자개장터에서 막걸리로 회포를 풀었다. … 오늘 나는 명호에서 허기를 채우며, 55년 전 선생님의 고향집의 따끈한 밥상을 생각했다. … 그리고 선생님은 실업계 학교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나를 특별히 아끼고 조용히 도와주셨다.
* [운곡천이 낙동강이 유입되는 합류 지점 ] — 이른바 ‘낙동강시발점 테마공원’
☆… 오후 2시 55분, 식사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명호는 서북쪽에서 유입되는 ‘운곡천’과 낙동강이 감싸고 돌아가는 ‘물돌이 마을’이다. 소나무 정원이 있는 명호면사무소 앞을 지나, 35번 도로, 큰 길로 나왔다. 면사무소 앞에서 동네 사람인 듯한 분을 만났는데, 여기서 청량산 가는 길을 물었더니, 자동차도로가 아닌 ‘탐방로’를 안내해 주었다. 조금 내려가면 ‘현수교’가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가면 ‘낙동강 예던 길’이 있다는 것이다.
큰 길, 35번 도로는 바로 운곡천과 낙동강 본류가 만나는 강변을 지난다. ‘운곡천’은 백두대간 구룡산과 옥석산 사이에서 발원하여 춘양을 경유하여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옥천교차로에서 35번 도로 서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흘러내려와 명호에서 낙동강에 유입되는 지천이다. 운곡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 한 가운데, ‘낙동강시발점 테마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명호에서 운곡천 도천교를 건너가면 된다. 시간 관계로 가 보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낙동강 발원비’가 있다.
봉화군 관광 자료를 보니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에, ‘영남의 젖줄 낙동강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커다란 자연석 돌비를 세워 놓았다. 또 무슨 ‘낙동강 시발점인’가. 봉화군 관광과 주무관의 설명에 의하면, 낙동강이 강원도 태백에서부터 발원하여 내려오기는 하나, 여기 명호에서 운곡천의 물은 받아들여 강폭이 넓어지고 수량이 많아져서 본격적인 강의 형세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봉화 낙동강’의 청정풍경을 지역관광 자원으로 홍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좌우간 명호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이정표에는 모두 여기 ‘낙동강 시발점’을 기점으로 하여 ‘이정표(里程標)’를 적어놓았다.
* [최고 일급수 낙동강 명호천의 맑은 물] — 시인 권달웅「은어」
낙동강 명호천은 맑은 물이 흐른다. 거기에 여름이면 맑은 명호천을 타고 은어떼가 올라온다. 봉화가 낳은 시인 권달웅은 그 은어의 회귀성을 통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팍팍한 여정에서 깊은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은빛 언어를 만나는 기쁨이 있다.
은 어 / 권달웅
나 여기 떠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청량산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맑은 물 되리
어머니 쪽진 비녀만한 은어가 되리
나 여기 떠나 자라난 곳으로 돌아간다면
달밤에 올 고운 안동포 짜는 어머니 바디소리 만나리
저 아득한 바다로 항해하는 수만 척의 배처럼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거슬러 올라가
가슴에 품었던 반짝이는 물 만나리
꿈처럼 이슬 머금고 핀 들꽃 만나리
나 여기 떠나 저 투명한 낙동강으로 돌아간다면
원앙이 새끼쳐나가는 저 먼 비나리 지나
명경처럼 맑은 명호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강바닥 속 은모래처럼 환히 비치는 유년의 내 얼굴 들여다보리
은어처럼 내 몸에서 나는 수박향기 맡으리
- 시집 『염소 똥은 고요하다』(동학사, 2015)
권달웅 시인은 1944년 경북 봉화 출생으로 유년시절 낙동강 기슭 산골에서 성장했다. 안동과 인접한 곳이라 어머니는 낮엔 밭 매고 밤엔 안동포를 짰다. 시인의 먼 기억 속 어머니는 쪽진 비녀가 말해주듯 늘 단아한 모습이었다. 올 고운 안동포를 짜는 바디소리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돌아가고 싶은 회귀성을 부추긴다. 낙동강 상류의 맑은 ‘명호천’에서 반짝이며 유영하는 ‘은어’를 떠올릴 때면 이미 마음은 그 순수한 유년시절로 가닿아 있다.
은어는 1급수에서만 사는 민물고기이며 봉화 낙동강이 대표적인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은어는 부화 직후 바다로 내려가 살다 다음해 5월경부터 자기가 태어난 하천으로 거슬러 올라와 9월 산란을 하고 죽는 회귀성 어류다. 생김새는 도루묵과 비슷하며 주로 이끼를 먹고 자라는 탓에 살에서 수박향이 난다. 민물고기의 양귀비라 불리는 은어는 맛이 좋아 영어로는 ‘sweet fish’라고 한다.
* [명호의 명물, 현수교 ‘이나리 출렁다리’] — 강 건너 ‘낙동강 예던 길’의 출발점
☆… 그런데 그 큰 길에서 운곡천 건너편 ‘낙동강시발점 테마공원’을 건너다보고 있는데, 식당에서 대화를 나누던 분을 다시 만났다. 경운기를 타고 있었다. 친근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겼다. …
운곡천과 낙동강 본류가 합류하는 그 아래에 산뜻한 현수교(懸垂橋)가 있다. ‘이나리출렁다리’라고 부른다. 장대하고 멋진 ‘현수교’였다. 개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도 주변에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었다. 면사무소 앞에서 만난 사람이 안내한 대로, 현수교를 건넌다. 현수교 한 가운데 전망대에 서니, 운곡천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조성된 ‘낙동강시발점 테마공원’이 저만치 건너다 보였다. 그리고 다리 아래에 지나가는 강물은 넘치는 수량으로 유유히 흐른다. 파란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떠가고 눈부신 햇살이 내리는 화창한 날씨가 되었다. 따가운 햇살이 이마를 찔렀지만 바람결은 선선했다. 다리의 좌우에서 솟아있는 그 현수교의 주탑(柱塔)이 하늘을 찔렀다. 아름다운 위용이다.
[좌측에 운곡천[도천교]이 유입되고 우측이 낙동강 본류이다] - 그 가운데 낙동강 테마공원이 있다
* [아, 이게 무슨 일인가] — 잘못 든 산길, 어이없이 체력을 소모한 시간!
☆… 오후 3시 16분, 현수교를 건너 ‘낙동강 예던 길’을 찾아 나아갔다. 길은 여기 명호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9.1km의 노정이다. 갈 길이 멀다. 서둘러야 한다. 그런데 눈앞에 보이는 ‘길다운 길’이 이어지는데, 산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강변길로 이어지겠지’ 생각하며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 현수교 건너서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산간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한참 동안을 걸었다. 고갯마루는 매우 가팔랐다. 거의 30분을 임도를 타고 올라간 것이다. 다리는 뻑뻑하고, 온 몸에는 뜨거운 담이 흘렀다. 숨이 턱에 차오른다. 그래도 ‘예던 길’이 곧 나오겠거니 하고 걸었다. 드디어 고개를 넘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다가 갈림길이 나왔다. 길이 아니었다. 난감했다.
스마트 앱으로 지도를 열어보니, 앞을 가로막은 황우산 정상을 넘으면 명호교로 가는 산길은 있다. 저 거대한 산을 넘어간다? 이건 분명 내 갈 길이 아니었다.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한참 머뭇거리고 있는데, 아래쪽 길에서 트럭이 한 대 올라오고 있었다. 뒤에 사람들이 가득 탔다. 손을 들었더니 차가 섰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잘못 왔다고 했다. 여기서 청량산 입구까지 가는 길이 없으니, 다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 사람들이 가득 타고 있는 짐칸에 올랐다. 산골 안 동네 사는 사람들이 명호 현수교 부근 공원에 소풍을 나오는 길이었다. 낙동강 종주를 이야기했더니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호의를 베풀었다. 시원한 수박까지 건네주었다. 차를 타고 고개를 넘어 다시 현수교 앞까지 왔다. 고맙기 그지없는 분들이었다. 미지의 길에서 헤매는 나그네가 의인(義人)을 만난 것이다.
아! ‘이나리 현수교’, 다리 바로 아래에서 강을 따라가는 길이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산길을 잡기 전에 주변을 잘 살폈어야 했다. 나의 불민함으로 괜한 고생을 했다. 많이 지체된 시간, 금쪽같은 시간이 아까웠다. 제 길을 찾게 되어 안도는 했지만, 문제가 많은 사건이었다. 분명 ‘나의 경솔한 판단’이었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 [‘낙동강 예던 길’] — 현수교에서 명호교까지 강변을 따라가는 길
☆… 오후 3시 52분, 현수교 아래 ‘낙동강 예던 길’ 입구에 ‘세계선비문화공원 낙동강지구 종합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거기에 ‘낙동강 예던 길’의 개념도와 여정이 아주 자상하게 적혀 있었다.
☆…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낙동강 예던 길’ 종주가 시작되었다. 거의 40분 이상을 지체했다. 강 건너 ‘낙동강 시발점 테마공원’을 기점으로 하여 0.8km, 명호교까지는 2.2km(이정표)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운곡천과 낙동강 합류하는 지점을 포함한 풍경이 보인다. 올려다보니 현수교의 장대하고 하얀 기둥이 파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산뜻한 그림이다. 강변을 따라 난 길은 2m 남짓한 너비로 조성되어 있었다. 왼쪽의 산록 아래, 오른쪽에는 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길이다.
숲이 우거진 길은 쾌적했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잡초가 무성하다. 이 길을 따라 오늘의 목적지 청량산 입구는 9.1km를 걸어야 한다. 목적지 다다르기 건에 해가 지면 곤란하다. 걸음을 빨리했다. 이 길은 일전 폭우가 내렸을 때 완전히 잠겨버렸다. 물길에 휩쓸린 잡초가 무성했다. 홍수 때 떠내려 온 나뭇가지, 쓰레기 등이 길을 가로막기도 했다. 어떤 곳은 물살에 길이 파여 유실된 곳도 있었다.
☆… 평평한 바닥을 흐르는 저 강물은 유유히 넘실거리고 있었다. 최근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듯했다. 지금은 홍수가 난 직후이므로 인적이 전혀 없다. 오늘도 혼자서 걷는 길이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묵묵히 걷는다. 그러나 마음이 바쁘다. 또 안내판을 지났다. 앞에서 본 같은 똑 같은 안내판인데 현재 위치를 표시하는 지점의 화살표가 조금 이동했다. 지나보니 이런 표지판에 길목 곳곳에 있었다. 친절한 시설물이다. 길에는 무릎 위까지 자란 잡초가 무성했다. 도저히 길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풀더미 강변이었다.
* [잡초가 우거진 ‘낙동강 예던 길’] — 파란 하늘, 그리고 거송 한 그루 …
나무가 없는 지역을 지난다. 시야가 확 열려서 좋았지만 햇살이 따갑다. 강물은 여전히 느리게 넘실거리고, 강 건너 35번 도로에는 많은 차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잡초가 우거진 길이지만, 소나무 한 그루가 독야청청 하늘을 찌르고 서 있다. 주변의 산들과 어울려 멋진 풍경이다. 그 맑은 공간에 잠자리 한 마리가 높이 떠 있다. 문득 가을이 다가오는 듯했다.
풀더미 잡초로 뒤덮인 길
정지한 듯 고요히 흐르는 낙동강
한 그루 소나무와 잠자리 한 마리
‘연리지(連理枝)’에 대한 해설을 겸한 이정표(里程標)가 있다. 명호교에 많이 가까워졌다. 연리지에 대한 설명이 시적이다. ‘서로 엉겨서 각자의 열매를 맺고 사는 나무를 연리지라고 하는데, 인접해 뿌리를 생긴 두 나무가, 자기만 살겠다고 버둥거리게 되면 둘 다 죽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한 몸으로 살아가는 현상을 말한다.’고 써 놓았다.
길은 망초를 비롯하여 온갖 잡초가 무성하여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스틱으로 긴 풀대궁을 헤치면서 걸었다. 강 건너 서쪽 하늘에 걸린 해가 뜨거운 화살을 쏘아댄다. 잡초가 감긴 발목이 따갑고 근질거리기도 했다.
산천에 내리은 오후의 햇살
* [‘낙동강’ 강변 위의 ‘연한당’] — 명호교와 넘실거리는 강변 풍경
☆… 오후 4시 33분, 저만큼 명호교가 보이는 길목, 길의 왼쪽 둔덕 위에 날아갈 듯한 기와집이 올려다 보인다. 강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어 올라가 보았다. 잔디가 잘 가꾸어진 정원에, ‘燕閑堂’(연한당)이라는 당호가 붙은 산뜻한 기와집 한 채와 그 옆에 현대식 주택이 있다. 돌아보니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과 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나뭇가지 사이로 명호교가 넘실거리는 강물을 건너가고 있었다.
燕閑堂
명호교
풀더미 험한 강변길을 걸어 내려온 터라 고즈넉한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주인이 나타났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와, 무슨 볼 일이 있어 왔느냐고 물었다. ‘낙동강 물길 따라 가는 사람인데 아름다운 집이 있어 그냥 한번 들어와 본 것’이라고 답했더니 반색을 하며 쉬어가시란다. 낙동강 종주에 대해 말을 했더니 나이 등을 묻고 머나먼 종주 길에 관심을 보이면서 놀라움과 함께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통성명도 했다. 임규철 님, 구미에서 사업을 하는 분인데 공기가 맑은 이곳에 별장[燕閑堂]을 짓고 때때로 올라와서 지낸다고 했다. 둘이서 망중한의 시간 —, 다정하게 인증샷을 누르고 서로 전화번호도 교환했다. 임 사장은 나의 건승을 빌어주었다. 낙동강 여정에서 우연히 만난 따뜻한 사람이었다. 다시 힘을 얻는다!
* [명호교에서 절벽의 테크 길] — 오후의 햇살이 내리는 낙동강 풍경
☆… 오후 4시 46분, 명호교 앞에서 섰다. 저 명호의 현수교[이나리출렁다리]에서 2.2km 내려온 지점이다. 명호교는 그 ‘이나리출렁다리’에서 ‘선유교’까지의 중간 지점이다. 백룡담 출렁다리[선유교]까지는 2.4km를 남겨두었다. 다리 앞에서 망설였다. 잡초가 우거져 걷기가 힘든 ‘예던 길’을 계속 갈 것인가, 다리를 건너 35번 도로를 따라 편한 길로 갈 것인가. 그러나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보다 걷기 불편하지만 조용한 강변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던 길’은 요즘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아 잡초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중간에 길이 끊어진 곳도 있어, 빠지고 긁히고 많은 고생을 했다.
넘실거리는 낙동강 강물 위에는 래프팅 보트가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봉화의 래프팅은 명호의 이나리 현수교에서 청량산 입구까지 10km에 걸쳐 이루어진다. 풀더미 속에 홍수로 인해 이정표가 쓰러져 있다. 길을 점령한 잡초 때문에 가장자리 시멘트 축대 위로 걸었다. 어떤 곳은 마대포를 깔아놓았는데 홍수에 벗겨지고 유실된 곳도 많았다.
* [‘낙동강’ 절벽의 테크 전망대] — 아름다운 강,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 오후 5시 2분, 명호에서 4,2km 내려온 지점(이정표)를 지나니 길이 아주 좋아졌다. 2미터 너비의 길이 잘 다듬어져 있다. 강 쪽으로는 나무가 없어 시야가 환하게 열린다. 한여름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강바람이 서늘하게 온 몸을 감싼다. 시원하게 열린 길을 따라 빠른 걸음을 걸었다. 앞을 바라보니 저만큼 강안의 절벽에 나무테크 잔도가 보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홍수 쓰레기가 잔도 위에 널려 있다. 상당히 높은 곳인데 … 강물이 엄청나게 불었나 보다. 절벽의 잔도가 산굽이를 돌아간다. 잔도 중간에 쉼터가 있다. 걸음을 멈추고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본다. 물길의 경사가 급하여 물살이 세차다. 레프팅 보트가 물살을 치고 내려간다. 보트 위의 사람들이 환호를 한다. 잔도를 지나니 울창한 숲길이 이어졌다. 바닥에 깔아놓았던 마대포가 벗겨지고 뒤집어져 있다. 홍수의 물살이 그렇게 한 것이다. 길이 파이고 깎여 나간 곳도 있다. 험한 길을 한참 걸어 내려왔다.
* [‘낙동강 예던 길’ ; 선유교 백룡담] — 천인단애의 절벽 아래 푸른 강물이 고여
☆… 오후 5시 25분, 출렁다리 가까이 이르렀다. 선유교(仙遊橋)다. 나무테크 계단을 올라 다리를 건넌다. 선유교도 현수교이다. 강비탈에는 ‘추억으로 가는 예던 길 그리고 선유교’라고 쓴 입간판을 세워 놓았다. 다리 위에서, 내가 걸어 내려온 물길을 바라보니, 산과 강이 어우러진 풍경이 깊고 아득하다. 다리의 남쪽에는 천인단애의 절벽, 그 아래 시퍼런 강물이 고여 깊은 소(沼)를 이루고 있다. 이곳 ‘낙동강 예던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으로 꼽는 ‘백룡담(白龍潭)’이다. 명불허전, 깎아지른 절벽과 그 아래 맑은 강물이 빚어내는 풍경이 아름답다. 절벽에는 ‘예던 길’이 없으므로 지금부터는 다리를 건너 도로를 따라 걸을 수밖에 없다. 35번 도로는 서쪽 만리산 아래에 있으므로 이미 해거름이 드리워 있었다.
내가 걸어내려온 낙동강 물길
백룡담(白龍潭)
낙동강 예던 길 그리고 선유교
선유교가 있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황우산, 문명산(894m)과 청량산(870m)이 있고 서쪽에는 만리산(792m)이 있다. 청량산은 문명산 남쪽에 있는데 그 아름다운 전경은 맞은 편 만리산에서 보아야 한다고 한다(이봉원 님). 만리산 아래에는 관창폭포와 갈골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과 청석바위와 자연석이 조화를 이룬다.
* [‘낙동강 예던 길’ ; 35번 국도 ] — 팍팍한 아스팔트 길,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
☆… 오후 5시 39분, 선유교에서부터 35번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 낙동강은 도로의 왼쪽에서 흐르고 있다. 오늘의 목적지인 청량산 입구까지는 4.5km 남았다. 보도가 따로 없는, 팍팍한 아스팔트길의 가장자리,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해는 서산 위에 걸렸다. 여린 햇살이 맞은편 산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스틱과 발걸음이 나의 몸무게를 나누어지고 부지런히 걷는다. 아직 갈 길은 멀고 어둠은 가까워지고 있다. 뻑뻑한 허벅지와 종아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많이 무겁다. 명호의 현수교 산길에 잘못 들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체력도 많이 소모되었다.
* [‘낙동강 예던 길’ 관창2교~오마교] — 저만큼 청량산이 보이는 길
☆… 도로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를 건넌다. 낙동강을 건너가는 관창2교였다. 강이 오른쪽에서 흐른다. 다리를 건너 한참을 내려오니 강 건너편 만리산으로 들어가는 골짜기 길이 보인다. 그 안에 관창폭포가 있다. 나아가는 길 가에는 ‘민들에 들꽃처럼’과 같은 팬션, 상점이 있다. 그런데 몇 집 마을 앞을 지났다. 오른쪽 낙동강에 오마교가 있다. 오마교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이쪽 북곡리와 건너편 관창리 주민이 힘을 합쳐 세운 다리이다. 오마교는 황건적의 난을 피해 청량산으로 피난 왔던 공민왕의 마차를 끈 ‘다섯 마리의 말’[五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관창2교
이제 오른쪽에서 흐르는 낙동강, 저 멀리 오마교가 보일 듯 말 듯
강 건너 만리산으로 들오가는 계곡, 그 안에 관창폭포가 있다
<민들레 들꽃처럼> 팬션
* [혼자서 가는 길] — 탈탈탈탈 다가온 경운기, 따뜻한 호의를 베푸는 마음
☆… 낙동강 오마교 앞을 지나 한참 내려가고 있는데, 뒤에서 탈탈탈탈 경운기 엔진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내 옆에 멈추어 선다. 점심 때 식당에 처음 만나 말을 나누고 명호의 큰 길에서 손을 흔들었던 그 아저씨였다.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내가 강 건너편 ‘예던 길’을 걸어왔다고 했더니 정말 제대로 걸었다고 하면서 ‘오늘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는다. 청량산까지 간다고 했더니 경운기 뒤칸에 타란다. 나는 강을 따라 걷는 것이 목적이므로 사양을 했다. 청량산까지는 아직 2km 정도는 더 가야하고 해가 곧 저문다고 하면서 타라고 한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 걷는 것도 좋지만 촌에 와서 경운기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단다.
호의가 고맙기도 하고, 사실 날도 저물고 몸도 무겁고 다리도 천근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과감하게(?) 경운기에 올랐다.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경운기였다. 경운기는 내가 걷는 것보다는 빨랐다. 그런데 상당히 위험했다. 빠르게 따라오는 차들이 경운기를 피해 중앙선을 넘어 추월을 해 나간다. 앞에서 차가 오거나 곡선의 도로에서 추월은 더욱 위험하다. 시간이 단축되고 다리는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리고 경운기 앞쪽 엔진 배기통에서 나오는 배기가스가 그대로 엄습해 와서 고역스러웠다. 그러나 경운기는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 오후 5시 50분, 관창1교를 지나면서 강은 왼쪽에서 흐른다. 관창1교[두실마을]에서 청량산 산문까지가 도로가 아닌, 청량산 밑으로 ‘낙동강 예던 길’이 개설되어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청량산이 보이고 유장하고 맑은 강물이 흘러가고 쭉 뻗은 도로가 이어진다. 얼마가지 않아 초록색의 도로 안내판이 나온다.[도산서원 15km, 안동 38km, 예천 70km] 한 구비 돌아 조금 내려가니 ‘청량산도립공원’을 가리키는 도로안내판이 나타났다.
멀리 보이는 청량산
* [‘낙동강 예던 길’ 종착지] — 청량산 입구, '하늘정원팬션'
☆… 오후 6시, 경운기가 청량산 입구의 관창리 관광촌에 도착했다. 원래 도착 예정한 시각이 6시인데, 그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했다. 명호에서 산길을 잘못 들어 허비한 시간을 친절한 경운기 아저씨가 메워 주었다.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다. 우연히 만난 길손에게 베풀어 준 그 순박한 인정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오늘 나는 두 사람의 의인(義人)을 만났다. 명호 현수교에서 잘못 들어선 고단한 산길에서 나를 태워준 트럭 아저씨, 늦은 시각 팍팍한 도로 위를 걷는 기진한 나를 태워주신 경운기 아저씨가 바로 그분들이다. 통성명을 하고 전화번호를 나누었다. 이봉원 님, 진성 이 씨라 했다. 내가 흠숭하는 퇴계 선생이 진성 이 씨이고, 내일 여정이 도산의 퇴계 선생의 묘소와 종택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했더니 더욱 반가워한다. 인사를 나누고 나서 탈탈탈탈 경운기가 멀어져 갔다.
청량교-청량산문
☆… 우선 숙소를 정했다. 옛날에 인연이 있던 ‘하늘정원팬션’을 찾았다. 그런데 주인도 바뀌고 미리 예약하지 않고 와서 방이 없었다. 어렵게 방을 구했다. 주인이 바뀌었지만 나의 사정을 들은 배선일 사장은 특별히 깨끗한 방 하나를 제공해주었다. 이제 오늘 고단한 육신을 누일 방을 구했으니, 이제 중요한 일은, 해가 지기 전 청량산 산문에 있는 퇴계시비공원을 찾아보는 일이다. …♣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