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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과 현대사회 8강
안토니오 그람시, <감옥에서 보낸 편지>
* 책과 독서법
오늘은 안토니오 그람시 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읽겠다.
옥중서한이라고 하니 서준식 의 옥중서한이 떠오른다. 서준식은 스물 넷에서 마흔 하나까지 17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가 쓴 옥중서한들은 인간의 정신이 미망의 상태에 있다가 모든 갈등을 겪고 세상에 나왔을 때 보편적 위치에 들어서는 정신의 현상학을 보여준다. 각자 한번씩 읽어보길 권한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읽을 수 있다.
공부 좀 한 사람들은 편집자 서문은 꼼꼼히 읽으면서 밑줄 치고 그럴 것이다. 그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문학적인 감성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가령 그람시가 편지 말미에 잘 쓰는 "당신들 모두에게 부드러운 포옹을 보냅니다" 에 주목하여 읽어도 된다는 말이다. 하나의 책을 읽어도 읽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이렇게도 읽어보고 저렇게도 읽어보는 게 필요하다.
최승자의 시 <삼십세>의 첫머리는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란 구절로 시작된다. 27살에 그걸 읽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지만 30살에 읽으면 정말이지 가슴을 저미는 뭔가가 있다. 그런데 40살에 읽으니 그저 담담했고 요즘에 다시 읽으니 내가 왜 저걸 읽었나 싶었다.
어떤 책이든지 삶의 흔적이 자신에게 쌓였을 때 읽으면 달리 읽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책이란 것이 놀랍고도 고급스러운 물건이란 생각이 든다.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늘상 무한한 것을 추구한다. 사람이 발명해낸 물건 중에 가장 영원에 가깝게 닿은 것이 책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오늘날 읽는 키케로의 저작들은 로마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중세 시대 카롤링거 르네상스 때 쓰여진 필사본들이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것이 로마 시대 때 쓰여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래서 카롤링거 르네상스 필사본에 쓰인 서체를 로만체라 부른다. 생각해 봐라. 9세기에 필사를 했으니 1000년도 넘은 것이다. 인간이 믿을 만한 건 정말이지 책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책의 간지에다 도움이 될만하겠다 싶은 것들을 적어 놓는다.
이렇게 간지에다 적어놓으면 자기도 나중에 읽을 때 도움이 되고 남이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이렇게 책 자체에 대한 History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 아이가 중학생인데 학교에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 서재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카탈로니아 찬가>>를 본 것이다. 작가가 같으니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혔다. 그런데 그 무렵에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를 샀다. 이번에는 책 제목에 오웰이 들어가니까 아이가 관심을 가져서 책을 읽게 했다. 그리고 다 읽은 다음에는 이 책의 자매편인 <<호메로스에서 돈키호테까지>>를 읽혔다. 이렇게 읽히되, 아이가 책을 읽기 전에 아이에게 어필할 만한 부분을 소리 내어 읽어주면 무척 좋다.
소리내어 읽으면 듣는 맛이 있다. 소리가 나가면서 자기 귀에 들린다. 즉 자기가 자기에게 읽어주는 셈이다. 특히나 오리아나 팔라치의 <<한 남자>>나 <<인샬라>>같은 것은 읽어보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조금 촌스럽긴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도 무척 좋다. 물론 35세가 넘어서도 읽고 있으면 좀 추접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몸과 마음을 온전히 텍스트 속에 담궈 보면 자기 자신이 믿음직스러워 진다. 이런 경험이 정말 필요하다.
* <<감옥에서 보낸 편지>>
현재 여기는 모두 60명 가량이 수용되어 있는데, 그중 36명은 이곳저곳에서 온 친구들이야. 로마 사람들이 다수라네.
수형인들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학교를 시작했는데, 제1과정(1, 2학년), 제2과정(3학년), 제3과정(4, 5학년), 특별 과정, 2개의 프랑스어 과정(기초 및 중급), 그리고 독일어 과정이 있다네.(p.92)
아래 있는 각주 11을 보자.
우스티카에서 그람시와 그의 동료 죄수들이 설립한 이런 종류의 <옥중 수고>는 나중에 정치범들이 유치되어 있거나 감금되어 있는 다른 모든 곳들로 확산되었다.
그 과정, 학습, 독서 프로그램은 <옥중 대학>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모든 사회계층 출신의 수천 명의 죄수들이 참여하였는데, 그 가운데는 반문맹인 노동자들과 농민들에서 지식인들과 정치가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p.92)
지식인이란 개념을 학적으로 정초하고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린 것은 그람시의 공이다. 그람시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옥중수고>>(거름) 1권의 끄트머리에 달려있는 <아메리카니즘과 포드주의> 글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에르네스트 만델이 지은 <<즐거운 살인 – 범죄소설의 사회사>>(이후)를 보면 가장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 국가는 유에스(미국)말한다.
순수한 형태의 자본주의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시장으로 들어와서 기득권없이 일대일로 경쟁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상적인 완전시장경쟁사회인 셈인데 이런 공간이 쉽게 형성되지 않는다. 그람시가 말하는 '아메리카니즘'이라는 것이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유에스에서 포드주의와 같은 축적체제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데에는 유에스라는 독특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에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랜 세월동안 중간계급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왜 서유럽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평생에 걸쳐 탐구한 사람이다.
혁명이 일어난 러시아에서는 귀족계급과 농노계급 사이가 아무 것도 없었다. 뚝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뉴턴에서 조지 오웰까지>> 의 <포트르 대제의 서유럽>이란 속글을 보면 이 얘기가 나온다. 서유럽에서는 변호사, 회계사 등의 중간계급이 자기네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그람시의 말을 빌리면 '대중의 상식'으로 까지 퍼뜨렸다. 포드주의조차도 적용시키기 어렵다. 왜 유럽에서는 포드주의가 자리잡지 못했는가를 논의하고 있는 것이 이 <아메리카니즘과 포드주의>이다.
이렇게 그람시는 이탈리아라는 상황 속에서 지식인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켜 지식인론이라 하는 일반이론으로까지 발전시킨 것이다. 이것이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이다.
헤게모니 아주 거칠게 말하면 물리력force + 설득력persuasion 다.
물리력만 있으면 전두환처럼 하면 된다. 그런데 박정희 같은 철권통치 때도 설득력이 필요했다. 한승조같은 애들이 '한국적 민주주의론'을 내놓은 것이 괜히 내놓은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대뽀 정권이라도 체제를 정당화시켜 주는 기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을 담당하는 이들이 지식인들이라 그람시는 본 것이다. 그렇기에 그람시가 말하는 지식인론은 헤게모니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람시의 지식인론에서 유기적 지식인은 부르주아 계급에 봉사하는 지식인과 프롤레타리아에 헌신하는 지식인으로 나눌 수 있다. 흔히 프롤레타리아에 헌신하는 지식인을 좌파 지식인이라 부른다. 따라서 자신을 좌파 지식인이라 내세우려면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헌신하겠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그람시는 스스로 좌파 지식인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옥중대학'같은 것을 시작했던 것이다.
자네는 일반죄수들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얼마나 침체되어 있는지 상상하기 힘들거야.
그들은 술 한잔을 위해 입고 있던 셔츠를 벗어 팔고 구두나 웃옷도 팔 수 있는 사람들이야. (p.93)
이 편지는 그람시가 친구 피에로 스라파에게 보내는 것이다. 스라파는 이탈리아의 경제학자이다. 그람시가 지식인이라 하는 스라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죄수들이 감옥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속된 말로 민중이었다. 그 당시 민중들의 삶이 이러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그람시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람시가 대중이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자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0 페이지를 보면 "네 가지 구상" 라는 말이 나온다. 그람시의 공부 계획이다.
죽 살펴보면 첫번째, "이탈리아 지식인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지식인들의 기원과 집단 형성을 문화적 흐름과 연관하여 보고, 그들의 다양한 사유 양식을 탐구하는 작업"이다. 그람시가 역사적 통찰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번째는 "비교언어학" 고, " 란델로와 그가 대표하였고 결정하였던 이탈리아의 연극적 취향의 변화에 대한 연구"이다.
마지막 네번째는 "신문 연재물과 문학의 대중적 취향에 관한 논문"이다.
이 네번째가 중요하다. 그람시가 굉장히 관심을 가졌던 주제이다. 으젠느 슈Eugene Sue 아는가? 비유하자면 '19세기 파리의 최인호'라 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이 쓴 책 중에 <<파리의 비밀>>이라는 책이 있다. 뒤마의 <<삼총사>>와 비슷한 소설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다. 실제로 일반 대중들에게 으젠느 슈가 어필되었지 보들레르가 어필되지는 않았다. 마르크스가 이 문제에 대해 파고들어간 책이 <<신성가족Holy Family>>이다. 하비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도 다루고 있는 작가이다. 그람시 역시 이 문제를 파고든다.
나는 … 서로 다른 종류의 책들 – 특히 통속적인 소설들 – 을 잇달아 읽었다.
만족스럽게도 나는 슈Eugene Sue, 몽테팽퐁송 뒤 테라아으 등을 찾아 냈는데, 이들의 책은 다음의 각도에서 보면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다네.
왜 이러한 책들은 항상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자주 출판되는가?
그것들은 어떤 필요를 충족시켜 주고, 어떤 열망을 채워주는가? 이 너절한 문학 속에 어떤 정서와 의견이 담겨 있길래 그토록 광범위한 호소력을 갖는가?
으젠느 슈는 몽테팽과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내용의 관점에서 볼 때 빅토르 위고는 이 그룹에 속하지 않는가? 다리오 니코테미의 <<찌꺼기>>, <<해오라지>>, <<날기>> 역시 1848년의 퇴락적인 낭만주의의 직계 후예들이 아닌가?(pp.196-197)
한국 상황에 적용시켜 보자. 왜 사람들은 세 권만 분석해보면 똑 같은 얘기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변주되는 잡지 <좋은생각> 읽는 것인가? 왜 노래에는 사랑노래가 많이 들어가 있을까? 왜 사람들은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나 한수산의 <<밤의 찬가>>, <<바다로 간 목마>>에 열광하는가? 왜 김승옥은 분석하면서 최인호는 분석하지 않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1848년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의 시대이다. 이렇게 "퇴락적인 낭만주의의 후예들", 으젠느 슈를 읽던 대중들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이들이 이탈리아 파시즘을 키워올린 자양분이다.
그래서 그람시가 이런 책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문학의 대중적 취향과 대중의 문학적 취향이 서로를 보조해가는 과정,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인호의 <<해신>>같은 소설, 요즘 드라마되어 엄청난 반향을 끌고 있다.
정말이지 최인호는 7,80년대를 거쳐서 2000년대 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대중소설 작가이다. 최인호의 작품 중에 가장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샘터> 연재했던 <<가족>>이다. 왜 남녀노소 계급불문하고 정서적 연대감을 갖고 이 책을 읽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여기서 네 부분들로 나뉘는 그람시의 계획은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야심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연구 과제들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동시에 그는 또 다른 연구 주제들을 추가시켰다.
이탈리아 라소르지멘토, 마키아벨리의 현대의 군주, 크로체, "속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새로운 역사적 기능들의 견지에서 재생시키는 문제 등으로서 이것들은 그람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착수했던 연구 주제들 가운데 일부였다.(p.113)
그람시는 지식인론을 연구할때 항상 크로체 시작으로 삼는다. "속류 마르크스주의"는 휴머니즘적 토대를 몽땅 배제한 채 마르크스주의가 가지고 있는 과학적 측면만 강조하여 경제적 결정론으로 빠지는 것을 말한다. 이런 내용들이 <<옥중수고>>로 묵어져 나온다.
148 페이지를 보자. 흔히 이탈리아에서 파시즘이 기원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 이전에, 말하자면 1800년대 말, 1900년대 초, 이른바 '세기말'의 유럽의 사상지형도를 살핌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책은 최근에 출판된 도데와 모라의 『<악시옹 프랑세즈>와 바티칸』을 보고 싶군요.(p.148)
도데와 모라!
아래 각주를 보자.
레옹 도데(1867-1942)는 <<타라스콩의 허풍쟁이>>와 <<나의 방앗간으로부터의 편지>>로 잘 알려진 작가 알퐁스 도데의 아들이며, 샤를르 모라(1868-1952)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가톨릭 – 군주제주의 신문을 주관하였다.
1932년부터 그들은 파시즘을 지지하였으며 제3제국이 프랑스를 점령하는 동안에는 나치스에 협력하였다. 이로 인해 모라는 1945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pp.148-149)
내 웹사이트 manuscript 게시판에 업로드 되어 있는 벤야민이 쓴 <<독일 파시즘에 대한 이론>>에 레옹 도데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어딜 가나 극우끼리는 통하는 법이다. 독일의 유명한 극우파인 에른스트 윙어란 이가 있다.
그가 편집한 책 <<전쟁과 전사>>이 있는데 이에 대해 벤야민이 서평을 쓴 것이 <<독일 파시즘에 대한 이론>>이다. 윙어는 전후에도 살아남아 훈장도 받았다. 윙어의 인생을 알고 싶은 사람은 <<역사에서 도피한 거인들>>(박종철출판사)을 읽어보기 바란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인간의 역사는 이 같은 극우들이 이끌어 왔다. 결국 몰락했지만, 한때 유럽인들을 고통에 몰아넣었던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한국사회도 그러하다. 맘 편하게 살아 본지 얼마 안 된다. 박정희 총 맞아 죽고 나니까 전두환이 나타나고, 물태우 나타나고 그랬다. 해방 이후의 한국역사를 지배해온 놈들을 한번 봐봐라. 친일파에, 우파에, 군바리들에, 그것들한테 빌붙어 먹은 끄나풀들이었다.
도데와 모라의 원조들이 전면에 부각된 최초의 사건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 때이다. 드레퓌스 사건하면 우리는 에밀 졸라만 기억한다. 졸라가 애쓴 것은 분명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졸라 못지 않게 드레퓌스 죽여야 한다는 반유태주의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알퐁스 도데에 대해선 검증된 바가 없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한 번 검증해 봐야 한다.
민족주의와 쇼비니즘은 경계가 모호하다.
"어머니 대지와 우리의 뜨거운 피" 는 구호. 이게 대중들에게 어필이 된다. 이것이 파시즘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즉 '밑으로부터의 대중의 열광적 동원' 다. 박정희가 애석하게도 파시스트의 반열에 올라서지 못하고 권위주의자에 그치고 만 것은 열광적인 대중이 없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가 됐으면 동아시아의 유일한 파시스트가 되어 세계사의 이름을 올렸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에서 도입된 새로운 노동체제에 관련된 과학 간행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불행히도 그것은 점차 일상화되고 있습니다.(p.249)
"미국에서 도입된 새로운 노동체제" 가 바로 포드주의 다.
포드주의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포드가 도입한 노동통제체제 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그런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으면서 노동자들을 기숙사에 재우고 금연금주하게 하고 평생직장을 보장해주는, 생산방식이 노동자들의 생활문화까지 개입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단순히 자본축적체제system of accumulation라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조절양식, 이를테면 법률, 이데올로기, 사회적 관습 등과 맞물려서 돌아간다.
그러니까 포드주의는 단순히 미국에 도입된 노동체제를 뜻하기도 하는 동시에 축적체제의 하나로서 케인즈주의 복지국가와 쌍을 이루며 돌아가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1972년 오일파동을 계기로 포드주의와 케인즈주의가 무너지고 전세계의 경제체제가 이른바 유연적 축적체제로 전환되었다. 유연적 축적체제 시대에 두드러지기 시작한 문화적 대세가 포스트 모더니즘 이라 이해하는 학자들이 있다. 데이비드 하비의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한울)이 이런 책이다. 한국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이 논의된 것은 90년대이나 서구에서는 80년대에 이미 그 논의가 끝난 셈이다.
포드와 같은 미국 기업가들이 취한 조치 역시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기 종업원들의 사생활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일단의 감독관들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은 음식, 침대, 방의 용적, 휴식 시간, 그리고 더 은밀한 문제들까지도 감독합니다.
따르지 않는 이는 누구든지 해고당하고 하루 6달러라는 자기의 최저 급여를 잃게 됩니다.(pp.249-250)
아까 얘기했던 <아메리카니즘과 포드주의> 가 문제삼고 있는 부분이다.
<<지식인과 문화의 조직화>> 의 바로 첫장에서 그람시는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고 있는데, 그것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지식인들(저술가들, 철학자들, 예술가들)보다는 그람시가 <유기적인>, 즉 <기본적인 사회집단들, 계급들에 어느 정도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이라고 정의하는 <상부구조 복합체>의 <직업적인 기능인들>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식인으로서 기능하는 핵심적인 <상부구조적> 층위들은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또는 국가>이다.
전자는 <지배계급이 사회 전체에 행사하는> <헤게모니>의 기능에 해당되며, 후자는 <국가의 "법적" 통치로 표출되는 직접적인 통제 또는 지배>의 기능에 해당된다.(p.252)/
이것은 <<옥중수고>> 2권에 나와있는 내용들이다.
지식인론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는 것이다.
유기적 지식인 을 "기본적인 사회집단들, 계급들에 어느 정도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이라 설명하였으니 유기적 지식인에는 부르주아에 봉사하는 지식인도 있을 수 있고 프롤레타리아에 헌신하는 지식인도 있을 수 있다.
대다수의 경우에는 부르주아에 연계되어 있는 지식인들이 강한 역할을 한다. 경제연구소 연구원들, 대학교수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렇게 그람시의 지식인 개념을 가지고 지식인들을 분석해 보면 썩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직업적인 기능인들"은 정보통신부 장관 진대제, 윤종용 같은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는 흔히 이공계들은 지식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들도 지식인이다. 이들이 끼치는 영향이란 실로 엄청나다. '옥자'는 상대조차 안 된다.
"<지배계급이 사회 전체에 행사하는> <헤게모니>의 기능에 해당되며, 후자는 <국가의 "법적" 통치로 표출되는 직접적인 통제 또는 지배>의 기능에 해당된다. "
지식인들이 활동하는 영역은 시민사회이다. 여기에 교사로서, 시민운동가로서, 회사의 부서 관리자로서, 이런 사람들이 활동하는 영역에 이데올로기를 뿌리내리는 역할을 지식인들이 맡는 것이다.
그람시는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진다.
하나의 철학이 협소한 지식인 집단들의 관습적인 한계로부터 벗어나 대중들 사이로 확산되고, 그들의 멘탈리티에 적응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어느 정도 상실할 수 밖에 없게 될 때, 이는 그 철학의 강점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약점을 드러내는 것인가?(p.261)
당연히 강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협소한 지식인 집단에서 벗어나 대중들의 멘탈리티에 적응하여 그것이 상식인지 철학인지 모를 정도로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이들이 아까 대중문학과 관련해서 얘기했던 바와 같이 소설가들이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관이 대중들 속에 매우 널리 퍼져 있고 뿌리 내리고 있으며, 끊임없이 새로운 지적 탁월성으로 보강하여 되살아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오로지 케케묵은 지식인들만이 합리적 비판에 의해 세계관이 논파될 수 있다고 믿는다.(p.261)
"케케묵은"은 "덜떨어진" 정도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대중이 가진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합리적인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그들의 생활 자체를 장악해야 한다.
우파 지식인들이 대중들의 세계관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테는 그들이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이예크 나 칼 포퍼 등 우파 지식인들의 논리는 산업교육 시장에서 국가 – 노동부 - 의 지원을 받아가며 대중들에게 전파된다.
반면에 어떤 학생이 풀로엮은 집에서 강의듣는다고 국가 – 노동부 – 의 지원을 받지 못하지 않은가. 즉 국가는 어쨌든 자본가들의 전략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우파의 이데올로기가 일상 속으로 스며든다.
이것이 우파 헤게모니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역사적 유물론과 베네데토 크로체의 철학>>에 실려 있는 수고 <부하린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의 대중적 해설에 관한 비판적 노트>의 몇몇 흥미로운 구절들은 그람시가 <비非철학자의 철학> 이라고 부르는 <상식>의 철학을 다루고 있다.
그에게 <상식>은 특정한 세계관이 일반 대중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어떤 진리들이 지식인 사회를 넘어서 확산되는 것이다. 그것을 그는 또한 <철학의 민간 전승> 이라고 부른다.
상식에 대한 크로체의 태도에 대해 그람시는 이렇게 말한다.
상식에 대한 크로체의 태도는 명료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철학자라는 그의 주장은 그의 상식 개념에 지나치게 많이 의존한 것이다. 크로체는 확고한 철학적 주장들이 상식에 의해 공유되거나 지지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상식은 완전히 이질적인 관념들의 무질서한 집성체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각자가 원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상식에 대한 크로체의 태도가 국민적 – 민중적 문화 – 즉 철학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주의화된 관념 – 의 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은 의미있다.
오직 실천의 철학만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p.317)
그람시 책에서 "실천의 철학" 이란 말은 마르크스주의 이다.
옥중에서 감시를 피해 마르크스주의 라는 말을 잘 안 썼다 한다.
어쨌든 어떤 진리들이 지식인 사회를 넘어서서 <철학의 민간 전승>으로까지 올라서게 되는 것, 여기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지식인들이다.
당신은 델리오가 자기의 공작 세트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내게 말해 줘야 해요. 이것은 내게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오.
왜냐하면 공작 세트가, 아이의 창의적인 정신에 아무런 배출구도 제공하지 않는데도, 과연 바람직한 최신의 놀이인지를 도무지 확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오.
이것에 대해 당신과 장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오?
대체적으로 나는 현대의 미국형 문명 – 공작 세트는 그 전형적인 산물의 하니지요 – 은 사람들을 다소 메마르고 기계적이며 관료적이게 만들고 추상적인 심성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해요.
나는 19세기적 의미에서 <추상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아니요.
19세기의 추상성은 형이상학적 도취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에 오늘날에는 수학적 도취에 의해 결정되는 추상성이 존재하고 있소.
조그만 아이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이러한 교육 방법들을 관찰하는 것은 분명 흥미롭지 않겠소! 더구나 당신 자신의 아이, 당신이 단순한 <과학적 관심>보다 훨씬 강한 느낌으로 결속되어 있는 아이라면 말이오.(pp.188-189)
헤겔, 마르크스 모두 19세기의 추상성과 형이상학에 속해 있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람시는 수학적 도취가 20세기의 추상성이 될 것이라 말한다. 여기서 추상성이란 휴머니즘적인 이상을 가리킨다. 그러한 추상성을 삶의 활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그렇게 했다.
그러나 20세기의 추상성은 휴머니즘적 이상의 자리를 수학적 도취가 꿰어찬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인간적인 부분이 빠져 나가버린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라 그람시는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판단 따위는 필요 없어진 것이다.
공작 세트와 같이 엄밀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것들이 기술technolog에 의해 만들어 진다. 20세기의 비극이란 기술에 의한 수학적 엄밀성만을 추구하고 도취한다는데 있다. 우리가 인간적/교양적이라 부르는 부분은 깡그리 무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부분은 무엇으로 채워지는가?
아까 말했던 대중적 취향의 감성소설 이 그 자리에 들어간다.
더 이상 고상한 것을 향유하지 않는다. 어려운 것 대신 쉽게 쉽게 가자고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이 고상함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기 전에는 쉽게 해주면 해줄수록 그것에 굴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헤겔 은 정신을 끊임없이 도야함으로써 절대적 정신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도야함이 점차 수학적 엄밀함으로 대체되면서 인간정신이 기술문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벤야민이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끄트머리에서 말했듯이 인간은 기계문명이 이룩한 전쟁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파괴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게 된 것이다.
기계 문명에 대한 끊임없는 찬미가 파시즘의 첫번째 조건이다.
이렇게 기계 문명에 도취되려면 우선 인간이 맛이 가야 한다. 그렇기에 더 이상 특정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필요 없어 진다.
독일 나치스당의 이름이 '국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이다. 이 이름만큼 희극적인 이름이 없다. 사회주의자에겐 국가나 민족은 필요 없다. 그럼에도 정당 이름에 버젓이 국가가 들어간다. 노동자당이라면 응당 부르주아들을 잡아 쳐넣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부르주아들을 지원했다. 이렇듯 '짬뽕된 이데올로기'를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려면 대지를 적시는 뜨거운 피가 필요하다. 열정과 광기의 파시즘이 탄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은 19세기의 총제적/교양적 인간관이 완전한 파국에 이르렀을 때 장엄하게 탄생한 것이다.
19세기의 추상성이란 근대 계몽주의가 낳아놓은 최고의 업적이다. 어떤 면에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라 할 수 있다.
그 같은 바탕 아래 헤겔은 인간의 정신을 도야함으로써 절대적 정신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 것이고 마르크스는 인간이 완전한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면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공산주의 프로젝트 를 기획한 것이다.
이것은 두 사람 만의 업적이 아니라 19세기 계몽주의 전체가 낳은 업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 하는, 인간을 더 이상 물질화 시킬 수 없는 체제와 맞닥뜨림으로써 그것에 저항하지 못한 채 파괴되어 가는 모습이 데이비드 하비 의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 나타났고 마침내 파시즘으로 파국적 귀결을 맞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란 무엇인가?
미완성으로 남아있는 계몽의 프로젝트를 회복하는 것이다.
즉 19세기의 추상성과 형이상학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람시는 그런 것들을 실천 할 수 있는 방안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20세기 사상가 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사상가라 하겠다.
/ 강유원 '고전과 현대사회' |
첫댓글 매우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