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 일 >
현대 설악 콘도(07:30) - 속초 원조할머니 손두부 - 정동진 안보전시관 - 영경묘
- 삼척시청 옆 생태집 - 준경묘 - 태백 - 영월 - 제천 - 곤지암(소머리국밥)
- 천호동 강동역(23:10)
이번 여행의 목적이 선조이신 양무장군 내외분 묘소 참배에 목적이 있었으니,
그 곳에서 느낀 것을 먼저 서술하고자 한다.
여행안내도와 묘역 소개 간판의 글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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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濬慶墓)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부 이양무(李陽茂)의 묘이고 영경묘
(永慶墓)는 5대조모의 묘입니다. 이양무는 장군을 지냈는데 상장군의 딸과 결혼
하여 이안사(李安社)를 낳았습니다. 목조(穆祖)로 봉해진 이안사는 성품이 호방
하고 용맹과 지략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의 집안은 원래 전주 땅에 살았는데
그가 20여세 때 산성별감이 객관(술집)에 들어왔을 때 기생을 놓고 다툰 관계로
주관(州官)과 사이가 안 좋았답니다. 이안사는 주관이 군사로 자신을 해치려 한
다는 소식을 듣고 부친 이양무 등 가족과 함께 이 곳 삼척으로 피신하여 온 것
입니다. 이 때 스스로 그를 따라 함께 온 무리가 170여 호나 되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척 땅에서는 배 15척을 만들어 왜구를 방비하고, 또 원나라 군사가 여러 마을
을 침략하니 두타산성을 지켜서 난리를 피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 살 때 부친
상을 당한 이안사가 묘자리를 보러 다니다 준경묘 주변에서 쉬고 있을 때 한 노승
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곳이 명당이라고 알려주면서 장례 치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5대 안에 나라를 짊어질 왕자가 나올 것이라 말
하곤 사라졌습니다. 노승이 말한 장례법이란 100마리의 소(百牛)를 잡고 금관
(金棺)을 써서 장사 지내라고 한 것입니다. 생활이 넉넉치 못 했던 안사는 백
마리의 소 대신 처가의 흰 소(白牛)를 잡고, 황금관 대신 누런 색의 귀리짚으로
선친을 장사지냈습니다. 그렇게 하여 생긴 것이 준경묘입니다.
이럴 즈음 전주의 산성별감이 또 해치러 올 것이라는 소식에 다시 가족과 함께
배를 타고 동북면 의주 땅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도 170여 호의 백성들이
자진하여 따라갔으며, 그곳에 사는 동안에도 수많은 백성들이 진심으로 사모하고
추종하였고 평양의 백성까지 명망을 듣고 붙좇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합니다.
이에 고려에서는 이안사를 의주 병마사로 삼아 고원을 지켜 원나라를 방비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원나라에 항복하여 다루가치를 지냈습니다.
삼척에서 동북면으로 이사한 후부터 태조의 집안은 북방지역을 중심으로 활동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는 삼척에 있는 5대조부 양무 장군의 묘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 세종 때 두 무덤을 찾았고 성종 때 봉분을 보완하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공사를 중지하였습니다. 고종(1899)에 이르러 묘의
이름을 짓고(준경묘, 영경묘) 지금의 모습으로 개보수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
에는 고종 때 조상의 묘를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그에 공이 있는 자를 반드시
포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웠던 때인지라 조상의 묘에 대
한 관심이 컸던 모양입니다.
전주에서 일어나 삼척으로, 다시 동북면으로 옮기고, 또 아국과 적국을 넘나들
면서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여 결국 이 나라 王의 가문으로 이어지게 하였던
이성계 가문의 위기 탈출 능력을 엿보게 하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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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의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보니 "준경묘 - 1.8Km"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200m 이상이 가파르기가 거의 45도 이상인 고갯길이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무척 힘들었을 험로. 삼척시에서 문화재로 지정
하고 깨끗하게 시멘트 포장을 해 놓아 길은 평탄하였으나 주변의 낙락장송과
비교가 된다. 중간 쯤 올라갔을 때 귀퉁이에 주차해 놓은 3대의 승용차를
볼 수 있었다. 경사가 급해 그 이상은 오르지 못하고 길 가에 주차한 듯.
급한 경사가 끝나고 대략 3m 정도 너비의 흙길이 계곡으로 이어진다. 고갯길
의 소나무들은 조금 얄팍했는데, 이 곳의 소나무는 모두 지름 80 내지 90Cm
정도 되는 것들이 10m 이상 곧게 뻗어 있다. 껍질이 붉은 색을 띄는 적송이다.
대략 1Km 정도의 소나무 숲 길이 이어지는데 모두 한결같이 듬직한 낙락장송!
준경묘에 거의 다다랐을 때 쯤, 다른 나무와 달리 주변에 철책을 두른 보호수
하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한 눈에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는데 중간에 가지가
뻗었던 흔적이나 이런 것이 없이 미끈하게 직선으로 뻗은 소나무. 껍질 색도
은은한 홍색이다. 안내 표지판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쁜 소나무라 했
다. 이름하여 신부송.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과 가약을 맺어 신부가 되었
다 한다. 절로 감탄이 나오게 아름다운 소나무의 모습이었다.
하늘 덮은 솔숲길이 끝나는 곳에 너른 광장이 펼쳐지는데, 이 곳이 그렇게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온 곳이라 생각되지 않게 약 2,000평 규모는 족히 될
공간이 아늑하게 펼쳐진다. 정면에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양무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그 앞에 재실과 비각이 있고, 재실 옆으로는 거북상이 샘물을 토해내고
있다. 광장 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보니 앞 뒤로 준봉이 가로막고 바깥 세상
의 시름을 막아주는 듯 하다. 오로지 오솔길 하나가 외부 세계과 이어주는 끈
일 뿐, 이렇게 아늑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들어가면서 광장 왼편으로 있는 연못에는 청포가 무성히 자라고 있고, 아직 꽃 필
철이 아니라 아쉬움을 남긴다.
조선왕조 실록에서 준경묘가 있는 곳의 이름을 노동(蘆洞/갈대가 많은 동네)이라
하였다고 하는 바 지금은 잘 정돈되어 잔디로 치장되어 있다.
계곡길을 걸어오는 동안 어느 정도 식기는 하였으나 땀이 체 가시지 않았기에 시원
한 샘물 한 대접으로 더위를 식히고 양무장군 능에 잡초를 조금 뽑다가 모두들 모여
배례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때 마침 문공부 소속 능 관리인이 나타나서 주변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해 준다.
준경묘역은 약 500정보의 면적으로 일부 개인소유 토지가 가운데 들어있기는 하나
국립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예전에는 이 곳에 3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관리상
어려움은 가끔 개인토지를 가진 사람들이 묘를 쓰려 한다는 것. 문화재인 곳이므로
다른 곳에 묘를 쓰도록 권유하는 과정에서 종종 마찰이 일어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거대한 소나무들의 장관에 취하며 다시 돌아오니 소요된 시간이 대략
세시간 정도이다.
삼척에서 도계로 넘어가는 지방도에서 조금 폭이 좁은 소로를 따라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잘 모르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을 듯..
표지판에 영경묘까지 200m라 되어있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재실과
비각이 있다. 깊은 계곡을 발 밑으로 하고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따라
약 150m 정도 더 들어가니 계곡이 둘로 갈라지는데, 마치 사람의 가랑이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풍수적으로 사람의 배 부위라 하는 곳에 영경묘가 모셔져 있다.
그 힘으로 500년의 조선 건국이 이루어졌다 하니, 풍수를 한낫 미신으로 돌리기에는
마음에 의문이 남는다.
준경묘와 마찬가지로 해풍을 받은 적송들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군데군데 작년
폭우로 인해 쓰러진 거송들이 눈에 띄는데 가슴이 아픈 대목이다. 수백년의 세월,
풍상을 겪어온 거목들이 저리 쓰러졌구나 싶다.
마침 TV에서 무인시대라 하는 연속극을 하고 있는데, 오늘 참배한 양무장군이 잠깐
등장한다. 스쳐지나며 < 조선 이태조의 5대조 > 라는 자막을 보게 되었는데,
감회가 새롭다. 목조께서 전주에서 삼척으로, 다시 함경도 의주 땅으로 옮겨가며
살아온 약 6백여년 전의 일들이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 하다. 금관백우의
전설이나, 준경묘역의 아늑한 분지의 모습도 다시 돌아가고픈 고향이라는 느낌이
든다. 무인시대를 좀 더 열심히 봐야겠다는 생각도....
다른 곳들은 여행정보지나 안내책자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어 언급을 생략한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별미를 맛 본 곳 한 군데만 소개하자면, 진부령을 넘어 속초로
향하던 길목, 오른편에 있었던 "고향 막국수"집이 특별하다.
주 메뉴는 막국수지만, 돼지고기를 굽지 않고 삶지 않고 어떻게 조리를 했는지 수육이
쫄깃했고, 함께 나온 황태포 무침을 돼지고기로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그리고
반찬메뉴로 나온 엄나물. 일명 개두릅이라고도 한다는 엄나무 잎으로 만든 나물인데,
머웃닢만큼 쌉쌀하다. 식사 후 집 주변을 둘러보니 집 주위에 엄나무가 많다.
함께 나온 동동주도 걸죽하고 누룩 향이 감칠맛 난다. 당연히 배 부르게 먹게 되었
는데, 저녁나절에 회를 앞에 놓고도 젓가락이 나가지 않았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