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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석으로 바람이 좀 선선해지는 중인 8월입니다.
이 더위 언제 수그러드나 싶었는데, 입추 지나더니 거짓말처럼 기세가 한 풀 꺾이네요.
요즘 절기를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거 보면 괜히 달력에 ‘절기’가 적혀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물론 그래도 덥긴 하지만, 입추 지났으니 단풍 드는 날도 오겠죠.
어쨌든 8월 가기 전에 좋은 작품을 하나 추천하려고 글을 또 남깁니다.
도서명: 대온실 수리 보고서
저자: 김금희
* 이 책은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를 통해 독서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이 소설은 정말 어쩌다 보니 읽게 되었다. 독서하고자 해서 봤던 게 아니라, 그냥 뭔가 플랫폼에 챌린지 이벤트가 떴길래 둘러보고자 터치했었다. 그런데 아뿔싸, 손가락 미스로 그만 책이 다운로드된 게 아닌가?
스마트폰은 가끔 이런 사고가 생긴다. 여기서 선택지는 둘이었다. ‘아이고, 손이 미끌어졌네!’ 하고 읽을 계획 없던 책을 지우거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하면서 독서하거나.
나는 후자를 골랐다. 때마침 읽고 있는 또 다른 책이 있었지만, 어쩐지 ‘창경궁의 대온실’이라는 소재가 나를 이 책으로 이끌었다.
사실 처음 이 작품의 저자를 보고 떠올린 소설이 있었다. 〈너도 하늘말라리야〉라고, 각자 고민과 상처를 지닌 아이들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 소설의 저자는 이금희였다. 성이 달랐다. 혼자 좀 무안해 하면서 독서를 시작했다.
개인의 상처와 시대적 상처가 교차할 때 - 《대온실 수리 보고서》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현재 창경궁으로 불리지만, 과거 아픈 역사에서는 ‘창경원’이었던 곳의 ‘대온실’을 수리 및 복원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을 맡게 된 주인공 강영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영두의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녀 주위의 인물들, 이를테면 하숙집 주인 할머니 안문자(마리코), 그녀의 남동생 박유진(유마), 영도의 친구이자 문자의 손녀 리사, 첫사랑 이순신, 일제 강점기 시절 대온실을 설계한 후쿠다 노보루와 같은 역사적 인물 등 다채로운 인간군상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성이다.
다양하고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심지어 각 인물들마다 별칭까지 있었다. 자칫 얘가 걔인가 헷갈릴 수 있을 뿐더러, 이야기가 어디 산으로 가나 싶게 난삽해질 위험도 있는 구조였다.
그러나 담백한 문체가 여백을 남겼고, 종이 위에 흩어진 점처럼 존재하던 각 인물들이 나중에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는 듯한 대목에서는 묘한 압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래도 인물 관계도 정도는 그리거나 나처럼 메모하면서 읽는 걸 추천한다.
📑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 석모도에 사는 강영두는 친구이자 부동산업을 하는 ‘은혜’에게서 일자리 하나를 소개받는다.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15살 때 섬을 떠나 유학을 갔었던 서울 원서동을, 잠시 머물렀던 ‘낙원하숙’을 떠올리고 불안과 꺼림칙함을 느낀다. 그곳은 영두의 좌절과 실패의 시간이 있는 곳이었다. 하숙집 주인 할머니의 손녀 ‘리사’와 얽힌 결정적인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중학교를 중퇴하게 되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고향 섬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던 것이다. 그녀는 그 시절을 통째로 들어내 애써 기억하지 않음으로써 삶을 견뎌왔다.
🌳 하지만 어쩌다 보니, 대온실 수리 과정을 기록하는 일에 참여하기로 한다. 어쩌면 개성 강한 건축 사무소 동료들이 매력적이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영두는 대온실 설계자 후쿠다 노보루의 설계도를 포함해 그의 수기와 일제 강점기 때의 왕실 연회 사진 등 온갖 기록을 접하게 되고, 기록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 혹은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다. 그 와중 대온실 지하에 뭔가 숨겨진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고, 영두는 온실 도면에서 본 유리문 손잡이가 그녀의 아픔이 있는 ‘낙원하숙’의 대문 손잡이와 동일한 것임을 발견하는데...
영두는 본능적으로 그 지하 공간이 하숙집 주인 할머니(안문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일을 계기로 영두와 건축 사무소 사람들은 창경궁 대온실 지하에 묻힌,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
그러나 대온실의 비밀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담당 공무원은 묻힌 것이 문화재이든 동물의 뼈든, 뭐가 되었건 일이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없었던 듯 묻어버리라 압박한다. 일제 강점기 말미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자 일제는 창경원 동물원의 동물들을 살처분한다고 극독을 먹이거나 총칼을 사용해 떼몰살을 시킨 바 있다. 와, 동물복지가 화제인 요즘 같았으면 욕을 바가지로 처먹었을 만행이 틀림없다. 👩🦯
공사 업체 역시 성가신 일일 뿐이라며 파헤치는 것에 비협조적이다. 물론 ‘법’은 이 경우 확인할 것을 명시하고 있지만, 그 법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단다. 실제로 공사 중 발견된 문화재나 유물이나 역사적인 사건이 방해물 취급받으며 암암리에 싹 묻히거나 묻힐 뻔하거나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부러 유물을 파손하기도 했다고... 뭐 이런 미친 작자들이!
한편 영두는 일련의 조사를 통해 ‘낙원하숙’ 주인 안문자 할머니의 과거와 비밀에 차츰 다가간다. 어린 소녀의 글짓기 원고와 일수 장부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하숙집 할머니는 과거 ‘마리코’로 불렸다. 그녀는 일제 강점기 조선 관리였던 한국인 양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해방 후 어머니는 일본으로 돌아갔으나,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마리코는 한국에 남겨져 양부의 그늘에 기대 ‘박진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귀국한 일본인을 그렇게나 멸시하며 짐덩이 취급했다고 한다. 마리코의 어머니는 자식들이 그런 취급을 당하느니 한국에 있는 게 나으리라 판단했던 것이다.
순수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마리코는 자신의 개명이 부당하다고 여겼으나, 당시 사회상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받을까 두려워하며 평생을 경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다 북한의 공격으로 6·25 전쟁이 터지고, 양부는 마리코와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를 것을 결심한다. 하지만 상사의 업무 지시가 있어 멀리 지방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기자, 어린 남매를 그가 관리하던 창경궁 대온실 지하에 숨겨놓고 다녀오기로 한다.
그러나 양부는 돌아왔으나, 끝내 마리코 곁에 남지 못했다. 그리고 마리코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남동생 유마를 잃고, 부친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남동생의 사건은 안문자 할머니의 삶에 지속적인 그늘을 드리우는 원인이다.
그리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창경궁 대온실 지하에 묻혀 있던 비밀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물의 뼈와 함께 사람의 뼈 역시 발견된 것이다. 마리코의 동생 ‘유마’, 한국 이름으로는 박유진일까? 누가 유마를 죽인 것일까? ☠️
하지만 나중에 그 인골이 소년의 뼈가 아니라는 게 밝혀진다. 오히려 중년 남자의 것이라고...
그때 당시 혼란을 틈타 창경원 장서각이 방화로 불타고 온갖 기록이 다 말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 하나 죽여놓고 하늘을 손바닥으로 은근슬쩍 가려놓기 딱 좋은 시기였다. 과연 대온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십수 년의 시간을 건너 발굴된 ‘이야기’이자 ‘죄책감’이자 ‘상처’의 정체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 - 개인과 역사의 복원이란 무엇인가?
소설 속의 인물들은 주인공 강영두를 포함해 저마다 ‘결핍’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각자의 상처에서 비롯된 결손이다. 그리고 저마다 그 상처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영두는 리사와의 갈등으로 누명을 쓰고 중학교를 중퇴하게 되었다. 검정고시로 학위는 취득했으나 그때의 좌절과 마음에 상처는 깊은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당시 문자 할머니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내민 손을 외면했다는 미안함이 깊은 흔적으로 새겨졌다. 그때 영두는 상처가 커서 자신을 향해 건네져오는 모든 손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의 판단도 믿지 못해 그때의 사건을 통째로 들어내고 잊은 듯 사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대온실 수리 작업을 통해 잊고 싶었던 원서동 시절의 기억과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 반면 안문자 할머니처럼 끝까지 그 상실의 상처를 끌어안고 회복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그녀는 양부의 마음을 믿지 않고 의심한 것에 후회하고, 남동생 유마를 지키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품는다. 슬프게도 그 후회와 죄책감은 일평생 해소되지 못한다. 양부는 모종의 사건으로 죽었고, 남동생 역시 난리통에 죽은 줄로만 알았기 때문이다. 문자 할머니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영두에게 손을 내민 건, 과거의 홀로 절망한 자기 자신이 떠올라서, 또 뒤늦게 깨달은 양부의 사랑과 동일한 것을 과거 그녀와 같은 나이의 소녀에게 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말하자면, 강영두와 문자 할머니는 누군가의 호의를, 사랑을 믿지 못해, 끝내 그 손을 외면하고 만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안문자 할머니의 사연에 공감하고 대온실 지하의 비밀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련의 과정에 영두가 뛰어들고, 그 일을 계기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는 대목이 십수년의 시간을 건너 노인과 젊은이가 서로 연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 안문자 할머니의 의붓 손녀이자 영두의 중학교 친구 리사가 결핍에 대처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 그녀는 도도하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지녔다. 불안정한 가정 환경 속에서 자라며 깊은 외로움을 간직하게 된 건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을 부를 수 있는 요소였다. 그럼에도 나는 리사의 상처에 이입하지 못했다. 그건 그녀의 성정이 너무 기회 중심적이라서일까, 아니면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며 메몰된 모습 때문일까?
📑🇰🇷 “수리한다는 것은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부서진 채로 거기 있었음을 인정하고 다시 이어 붙이는 일이다.” 🌳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복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 복원의 종류는 두 가지이다. 창경궁 대온실을 매개로 역사적인 ‘복원의 의미’를, 문자 할머니와 영도 등의 인물을 통해 개인 상처에 대한 ‘복원의 뜻’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숙성 라테를 좀 말아보자면, 내 부모님 세대만 해도 창경궁은 온전히 ‘궁’으로 불리지 않았다. 동물원이나 식물원도 있었고, 미로정원 같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정부의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궁궐 복원 사업이 추진되면서 동물원 등의 시설이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졌더랬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까지도 창경원과 창경궁 명칭이 혼재되어 있었다. 소풍 때 선생님이 열심히 “창경궁!”이라 강조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
그러나 대온실만큼은 이 소설처럼 아직 창경궁에 남아 있다. 본래 철거될 뻔했으나 우리나라 최초 서양식 온실, 목조와 철제가 결합된 건축학적 가치 등의 이유로 살아남았다. 비록 예술적 건축학적 가치가 있다고 하나, 대온실은 어찌 보면 일제 강점기의 굴욕적인 흔적이고, 역사의 상처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애초에 일제가 왕실과 궁궐의 위엄을 훼손하고 민족적 자부심을 은연중 꺾기 위해 추진한 게 창경궁 창경원으로 격하하기, 동물원과 식물원 조성하기 등의 사업 아닌가.
그럼에도 대온실은 일제 강점기의 명암을 간직한 다른 여타의 문화재와 같이 일종의 ‘이식된 역사’로서 존재한다. 2004년 문화재청에서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 중 하나는, 복원·보존이 아닐까?
소설에서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은 단순히 건물을 고치는 행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리를 매개 삼아 건물의 부서진 틈새마다 박혀 있는 개인 상처의 기억과 민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하나하나 끄집어 낸다. 그것은 곧, 인물들이 외면해왔던 과거의 진실을 캐내는(발굴) 과정으로 치환되고, 온실을 보수하듯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수리) 행위로 이어진다. 대온실이 역사적인 상징물에서 자연스레 개인의 기억이 담긴 상징이 되는 순간, 역사는 어떤 도도한 시대적 흐름이 아니라 개인들의 이야기가 모인 집합체가 되었다. 그리고 영도가 대온실 지하에 숨겨진 비밀에 닿고 문자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며 자신이 가진 상처를 마주하는 순간, 개인이 가진 마음과 역사에 남은 상흔이 일체화되며 기묘한 울림을 느끼게 했다.
🇰🇷 사담인데, 최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소재한 위안부 할머니분들을 위한 기관의 점역 의뢰물을 교정한 적 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할머님들이 하늘로 귀천하여 현재는 기억의 공간으로 보존되어 역사 인식 전시관으로 활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좀 충격을 받았다. 그분들은 그때 그 시대의 피해자이기도 하고, 우리네 아픈 역사의 산 증인이신 분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안식의 길에 오르셨다면, 그 아픈 역사의 기억은 어떻게 되는 걸까 싶었다. 나 같은 일반 시민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떠올리기 쉽지 않은 역사인데... 그분들마저 돌아가셨다면, 그 ‘기억’은 점점 바래고 잊혀지다, 끝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저 찾는 이 드문 어느 책장이나 어떤 문서 한 귀퉁이에 기록으로만 남아, 그렇게...
그런 복잡한 생각 끝에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영도가 친구 은혜의 딸 산아에게 했던 말이었다. “너무 마음이 아프면 외면하고 싶어진다”는, 그 문장...
일제 강점기 위안부 역사가 딱 그렇다. 너무 아프고 치욕스럽기에 외면하고 싶어지는 것. 하지만 결코 눈 돌려서는 안 되는 역사이자, 후손들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 그 기억의 주체가 없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것. 🌺
어쩌면 내가 김금희 작가의 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기로 한 게, 일제 강점기 역사로 상징된 ‘대온실’이라는 건축물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 위안부 기관 점역 의뢰물 영향을 받아서 말이다.
소설에서는 결국 개인(영두)이 과거를 직면하며 상처를 극복한다. 시대의 상처로 대변되는 안문자 할머니의 상처(비밀)도 결국 십수 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드러났다.
글쎄, 이 전개가 어떤 상징성을 띠고 있다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처입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독립투사들의 항거와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는 광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독립은 자랑스러운 일이나, 일제 강점기 역사는 우리에게 자랑스럽기보다 씁쓸하고, 어쩐지 분하다. 하물며 위안부 성노예 문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쪽은 민족의 치욕이다.
그러나 낫기 위해서는 병을 인정하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개인과 우리 역사, 모두에게 대온실 같은 공간은 상처를 오롯이 마주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곳이고, 계속 복원되어야 하는 곳이 아닐까.
책을 덮으며 어쩐지 자꾸 상처를 곱씹게 된다. 개인의 상처이든 역사의 상처이든...
🇰🇷🌺 우리 후손은 그 상처를 곱씹는 일을 그저 되새김질로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독립과 의열의 자랑스러운 역사뿐 아니라, 치옥의 역사와 울분의 역사, 그 시대의 민초로서 받은 개인의 상처까지 모든 걸 다 안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씁쓸한 무언가로 두고, 통째로 들어낼 것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끝내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 할 일이다. 광복 81주년인 오늘, 오랜만에 의미 있는 독서였다.
날 잡아서 야간 개장 창경궁에 가봐야겠다. 소설 속에 등장한 대온실을 보고 싶어졌다. 철과 나무로 빚어진, 더불어 역사와 시대적 명암을 품은, 그 건축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