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가정(세종의 연호.1522-1567)때에 중국 강서 지방에 유공이 있었는데, 휘는 도이고, 자는 양신이었다. 재주가 뛰어나고 박학다식하여 18세에 제생이 되었는데, 매번 시험 볼 때마다 반드시 우등을 차지하였다.
장년이 되어서는 집안이 가난하여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동학 십여 명과 함께 문장사를 결성하였다. 그래서 글자와 종이를 아끼고, 동물을 방생하며, 사음 살생 구업 등을 범하지 않도록 계율을 지켰다.
그러기를 몇 년간 계속하는 동안, 전후 일곱 차례 과거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하고, 다섯 아들을 낳았으나 넷은 병으로 요절하였다. 셋째 아들은 왼쪽 발바닥에 검은 점이 둘 있었는데, 몹시 총명하고 재주가 뛰어났다. 그래서 부부가 집안의 보배로 여겼으나, 여덟 살 되던 해에 동네에서 놀다가 잃어 버려, 간 곳을 알 수가 없었다. 또 딸은 넷을 낳았는데, 겨우 하나만 생존하였다. 그리하여 그 아내는 자녀들 때문에 어찌나 슬피 울었는지, 마침내 두 눈이 모두 실명되었다. 유공도 실의에 잠겨, 해가 갈수록 빈곤이 더욱 심해졌다.
스스로를 되돌아 보면 큰 허물은 없는데, 너무나 참혹한 천벌을 받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40세가 넘어서는 매년 섣달 그믐날, 노란 종이에 상소문을 스스로 적어 조왕신(부뚜막신)께 불살라 바치면서, 그 뜻을 천상 옥황상제께 올려 달라고 기도하였다. 이러기를 수 년간 계속했으나, 역시 아무런 보답이나 감응이 없었다. 47세 되던 해, 섣달 그믐밤에 눈 먼 아내랑 한 딸과 함께 앉아 있는데, 온 방안이 소슬하고 처량하기 짝이 없어서, 서로 위안할 따름이었다.
그때 홀연히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 유공이 촛불을 들고 나가 보았다. 문 앞에는 각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한 선비가 서 있는데, 머리와 수염은 반쯤 희끗하였다. 서로 공경스럽게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 내 성은 장씨인데, 먼 길에서 되돌아오다가 집안에서 수심이 가득 찬 한탄 소리가 들려 나오기에, 특별히 위로하러 들렀소."
유공은 마음 속으로 그 사람을 특이하게 여기고, 더욱 공경스럽게 예의를 올렸다. 그리고 자신이 평생 글공부와 선행에만 매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부귀공명을 이루기는 커녕, 처자식도 온전하지 못하고 의식주도 제대로 잇지 못할 형편과, 몇 년 동안 계속 조왕신께 상소문을 적어 불살라 올린 내력을 소상히 진술했다.
이 말을 들은 장씨 선비가 말했다.
"내가 그대 집안의 일을 아는지 이미 오래 되었소. 그대는 악의가 몹시 중하고, 오로지 부질없는 헛된 명예에만 힘쓰고 있소. 그러면서 상소문 올리는 종이에는 온통 하늘 원망과 남의 탓이 가득하여, 옥황상제를 모독하고 있소. 그러니 아마도 천벌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되오."
이에 유공이 대경실색하여 물었다.
"제가 듣기로, 그윽한 유명 중에 터럭 끝만한 선행도 반드시 기록한다고 합니다. 저는 선한 일을 실행하기로 서원한 뒤, 그 조목을 공경스럽게 준수해 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모두 헛된 명분에 불과하다고 하십니까?"
그러자 장씨 선비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가령 그대가 실행하는 글자와 종이 아끼는 한 조목만 봅시다. 그대의 학생이나 동료들 중에 많은 사람이 묵은 책이나 문서 종이를 사용하여 벽을 바르고 물건을 싸며, 심지어 그것으로 탁자를 훔치기도 하면서, 더럽히지 않는다는 구실로 불사르기 일쑤이오. 그런데 그대는 이러한 일을 매일같이 보면서도, 한 마디도 타이르지 않고 그냥 소홀히 넘어 가오. 단지 길 가에 떨어진 글자 쓰인 종이를 보면, 주워다가 불사르는 정도에 불과하오. 그러니 그게 무슨 보탬이 되겠소?
또 그대가 결성한 문창사에서 매달 방생을 실시하지만, 그대는 대중이 하는 데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며, 남들 틈에 끼어 방생의 일을 성취할 뿐이오. 만약 다른 사람들이 일을 거행하지 않는다면, 그대도 또한 따라서 그만 둘게 뻔하오. 사실 자비의 염원이 마음 속에서 조금도 일지 아니하기에, 그대 집에서는 새우나 게 종류가 줄곧 주방에 오르는데, 그들은 생명이 아니란 말이오?
그리고 구업의 조목을 봅시다. 그대는 말이 기민하고 재기 발랄하여, 듣는 사람들이 자못 그대에게 매료되곤 하오. 그런데 그대가 그 때 입 밖으로 내는 말이 남의 마음을 몹시 상하게 하는 줄 그대도 속으로 잘 알면서, 다만 친구간의 대화에 습관적으로 분위기에 따라 비방과 조소를 그칠 줄 모르오. 그러니 혀 끝으로 내뱉는 말이 귀신의 분노를 촉발하여, 무의식 중에 죄악이 얼마나 쌓여 가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오. 그런데도 오히려 간소하고 후덕하다고 자처하니, 자신이 누구를 속인단 말이오? 하늘을 속일 것이오?
사음은 비록 실제 행적이 없긴 하오. 하지만 그대는 남의 집 어여쁜 부녀자를 만나면, 으례히 눈으로 빤히 바라보면서,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려 차마 떠나 보내지 못하오. 단지 사악한 인연이 서로 맺어지지 않았을 따름이오. 그대 자신이 만약 그러한 사악한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상황에 처했을 때를 한 번 생각해 보시오. 정말로( 비 오는 밤에 길을 가던 미녀가 비를 피해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구원을 청했을 때, 홀로 살기 때문에 남녀 분별의 예의상 딱한 처지를 받아 줄 수 없다고 거절했던) 노나라의 결백한 선비와 같을 수 있겠소? 그러면서도 스스로 종신토록 사음의 기색이 없다고 말한다면, 천지신명께 대해 정말로 망령된 짓이라고 할 것이오.
그대가......................*다음에 계속^^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함니다.8정도 행이 될수있도록 노력하여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