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실(柳實)은 날래고 용맹하였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 공민왕(恭愍王) 때 여러 번 옮겨 예의총랑(禮儀摠郞)이 되었고, 신축년(辛丑年, 1361)에 〈왕을〉 호종(扈從)한 일과 흥왕사(興王寺)의 변란을 평정한 공로를 기려 모두 2등 공신이 되었다.
신우(辛禑) 때 판도판서(版圖判書)에 임명되어 전라도병마사(全羅道兵馬使)로 나갔는데, 왜적(倭賊) 20여 척이 임주(林州)를 침략하니 유실이 지익주사(知益州事) 김밀(金密)과 함께 힘써 싸워 물리쳤다. 왜구가 또 낭산현(郞山縣)과 풍제현(豊堤縣) 등을 침략하자 유실이 원수(元帥) 유영(柳濚)과 함께 힘써 싸워 30여 인을 쏘아 죽이고 약탈당한 소와 말 200여 마리를 빼앗아 그 주인에게 돌려주니 신우가 기뻐하면서 후하게 상을 내렸다. 왜적 300여 기(騎)가 또 고부(古阜)와 태산(泰山) 등의 고을을 노략질하고 관아를 불태웠다. 유실이 그들을 추격하다가 부령(副令) 김현백(金玄伯)과 사인(舍人) 민중행(閔中行)이 전사하자 유실이 물러나 진을 쳤다. 왜적이 밤을 틈타 포위하자 군사들은 놀라서 무너졌고 유실은 간신히 빠져나와 도망하니 왜적이 마침내 전주(全州)를 함락시켰다. 유실이 그들과 싸우다가 불리해졌는데, 왜적이 물러나 귀신사(歸信寺)에 진을 치니 유실이 그들을 쳐서 물리쳤다. 왜적이 임파현(臨坡縣)을 함락시키고 다리를 철거하여 굳게 지키니 유실이 몰래 군사들을 시켜서 다리를 놓게 하였다. 도지휘사(都指揮使) 변안열(邊安烈)이 군사를 거느리고 건너가 안찰(按察) 이사영(李士穎)을 다리 곁에 매복시켜 두었다.
왜적이 바라보고 역습을 가하니 아군이 패하였는데 헌사(憲司)에서 상소하기를, “병마사 유실은 왜구(倭寇)가 태산을 침략하자 기회를 놓쳐 패배하였고 또 전주를 수복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원수 유영은 군대를 다스리는 책임[閫寄]을 생각하지 않고 날마다 음악과 여색(女色)을 즐기다가 왜적이 승기를 타고 방자하게 포악한 짓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전주가 함락되었을 때 말에서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군사를 데리고 머무르기만 하였으니 죄가 모두 큽니다. 그러나 유실은 전주에서 힘을 다하여 격퇴시켰으므로 유영의 죄와는 경중이 있으니, 청하옵건대 차등을 두어 죄를 다스리십시오.”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유영은 임명장을 빼앗아 해도(海島)로 유배시켰으며, 유실은 봉익대부(奉翊大夫) 이상의 벼슬을 삭탈하고 멀리 유배시켰다가 곧 석방하였다. 뒤에 밀직부사상의(密直副使商議)로 죽었다. 아들은 유혜강(柳惠剛)과 유혜화(柳惠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