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는 1894년 폴란드에서 출생하여 특별한 성모 신심을 갖고 자라나던 중, 14살이 되던 해 콘벤뚜알 수도회에 입회하여 1918년에 사제 서품을 받은 폴란드 사제입니다. 또한 콜베 신부님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제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탈옥한 한 명의 죄수를 대신할 열 명의 유대인 징벌방 행을 대신 자원하여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살아있는 성인이기도 하십니다.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오늘 영성체송의 요한복음의 이 말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가르치셨고 스스로 직접 실천하신 이 사랑을 콜베 신부님은 그대로 본받고자 하였습니다. 감방 동료를 살리기 위해 대신 굶어죽는 형을 받는 아사실행을 자청했던 콜베 신부님의 이 같은 순교자적 죽음은 갑작스런 영웅심에서 유발된 것이 아닌, 주님의 일군으로서, 또한 어린 시절 직접 체험한 성모님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닌 성모님의 기사로서 그의 일생의 삶은 나날이 순교의 준비였으며 훈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강론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만, 모범적인 표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의 이 말씀은 사제로서 “강론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말하는바 그대로 사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의 삶이 바로 그러하였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았던 신부님은 성모님에 관한 가장 큰 축일인 성모승천대축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벗을 위해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품으로 떠나십니다. 이 같은 콜베 신부님을 기억하는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구원의 희망은 바로 지금 여기, 내가 현재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우선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건네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그 내용은 바로 공동체 안에서 죄를 일삼는 형제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 처세에 관한 설명에서 시작하여 땅과 하늘, 곧 내가 지금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을 얻게 될 하늘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다음의 말씀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많은 이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에서의 삶이 먼 훗날 하느님의 약속의 그 날, 최후의 심판의 날에 얻게 될 삶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삶이라 생각하며 또 그러할 것을 기대하고 바랍니다. 내가 지금은 죄의 구렁텅이에서 비루하고 비참하게 살고 있지만 약속의 그날에는 죄도 없는 순결한 삶을 살게 되리라 희망하며 그 날을 기다립니다. 그런 이들에게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으로 들릴 것입니다. 내가 지금 있는 바로 여기에서의 모든 것이 하늘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지금의 상태가 하늘나라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 이야기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아찔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지금의 내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나는 과연 지금 이 순간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만일 지금의 내 삶이 곧 하늘에서의 삶에 직결되는 것이라면 나는 과연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셨던 것일까? 미래의 개선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는 이 말씀을 통해 과연 예수님은 무엇을 의도하고 계셨던 것일까?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공해 줍니다.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2서 말씀을 인용한 복음환호송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남기셨네.”(2코린 5,19)
하느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삶을 하나의 희망으로 약속해 주지 않으십니다. 내가 땅에서 맨 것이 하늘에도 매여 있으며 땅에서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내가 있는 바로 이곳, 지금의 삶이 바로 구원의 희망인 약속의 날의 삶과 바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십니다. 곧 내가 지금 여기서 죄의 구렁텅이에서 회개하여 새로운 삶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구원의 삶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의 이 같은 의미를 신학적으로 유식하게 표현해 본다면 “구원의 현재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하느님의 구원은 먼 미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그 무엇이 아닌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지금의 내 삶의 모습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뜻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반성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같은 의미에서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형제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과 맺는 그 관계의 모습이 바로 내가 얻게 될 구원의 모습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임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을 통해 다시금 확인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자신이 본 환시 속에서 죄악을 일삼는 이스라엘을 하느님이 징벌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모습이란 죄에 물든 이들을 냉혹히 벌하며 그 가운데 죄 짓지 않으려 노력하며 회개하는 이들은 이마의 표시를 통해 구별해 내시고 그들만을 구원해 주시는 모습으로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 곧 지금 여기서 이루어지는 구원을 위해 지금 당장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가 받게 될 냉혹한 결과를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삶을 살아가며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 발생한 문제들로 인해 두려워하거나 좌절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에 우리가 두려워 떨기를 바라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결코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미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가운데 단 두 사람이라도 땅에서 마음을 모아 우리의 죄로 물든 삶을 변화시켜 주시를 간곡히 청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의 청을 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말씀에 희망을 걸고 내 지금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 그러고 나서 모든 일이 하느님이 뜻하신 대로 이루지기를 바라는 것, 바로 그것이 하느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바라시는 우리의 회개입니다. 하느님은 기름진 밀로 우리를 배불리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며 지금의 내 삶을 하느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으로 변화시키려 노력할 때, 우리에게 구원은 먼 미래의 무엇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게 허락되는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선물이 되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전해 오는 이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겨 여러분 모두가 하느님이 바라시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지금의 삶을 구원의 약속의 날 얻게 될 참 기쁨과 희망의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