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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서 기 원
동경에는 우리나라 음식점이 적어도 백여 군데는 넘는다. 그러나 선량한 시민이라면 간판을 눈여겨보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요리라고 적혔거나 대동강 모란봉 따위의 글자가 보이거든 아예 근처에 가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렇게 믿고 있는데 이곳에 사는 교포들은 반드시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뭐 음식의 종류가 다르거나 솜씨가 틀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요리나 조선요리 할 것 없이 들척지근하게 일본화(日本化) 된 맛은 매한가지이다. 메뉴를 보면 가쿠테기라는 것이 있다. 깍두기를 말함인데 서울 삼각동의 곰탕집에서 먹은 깍두기를 생각한다면 문자 그대로 가쿠테기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비교적 제 고장 맛을 잃지 않고 있는 집도 있으니 요즈음 내가 자주 들르는 ‘아리랑’도 그 하나이다.
‘아리랑’이란 간판에는 다른 군소리가 없고 다반 야끼니꾸(불고기)라고만 적 혀 있다. 그러나 ‘아리랑’만으로도 우리나라 음식점이라는 것을 모를 일본 사람은 없다. 한국이니 조선이니 하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쉬 주인의 성분을 알 수가 없다. 내 짐작이지만 아리랑의 임자는 아마도 중립계일 것이다. 그러나 성급한 남북통일론자일지도 모를 일.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얼른 대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곳에 부임한 즉시 상전한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우선 그렇게 의심해야 한다. 아뭏든 내 생각으로는 아리랑의 임자가 한국요리라고 분명히 밝히지 않은 것부터가 괘씸하다. 그자의 사상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 한국을 빼먹을 리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간사스러운 혓바닥이야 스스로 속일 도리가 없다. 김유신 장군의 말은 아니지만 이틀이 멀다 하고 절로 발길이 그쪽을 향하게 된다. 그래야만 뱃속이 편하게 되니 상기 내가 사상의 무장이 덜 되어 있는 탓일까?
그럴 리는 전혀 없다. 적어도 일본으로 파견된 사질은 곧 사상이 백 퍼센티지 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실상 털어놓자면 아리랑에 자주 가는 것은 김치맛 때문만은 아니다(한시인들 내 소임을 까먹고 있을 턱은 없다).
아리랑은 지하실로 되어 있다. 양장점의 쇼윈도를 구경하면서 계단을 내러가면 우선 불고기 굽는 내음새가 풍겨온다. 손님이 한 사람도 없을 때에도 이 특유한 내음새는 여전하다.
도어를 열고 침침한 방안으로 들어서면 십여 평 남짓한 넓이에 전면으로 카운터가 보이고 둥근 테이블이 너덧 개, 고작해서 열 서넛이면 만원이 된다. 카운터 뒷면의 양주 선반에는 반쯤 비운 위스키병이 너덧 개 자그마한 홈바의 꾸밈새 같아, 김치 내음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나 아리랑은 자정이 넘으면 맥주뿐 아니라 강한 술을 찾는 손님이 드물지 않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비어 있으면 오바상(아주머니)으로 불리우는 여주인이 메뉴를 들고 다가서며 인사를 건네다.
“글쎄, 오늘은 뭘로 할까. 아주머니 뭐 좀 맛있는 거 만들어 주구료.”
피차 일본 말이다. 일본 말을 연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우리 말을 못하기 때문이다. 쉬운 말은 더러 알아듣고, 또 한두 마디 지껄일 줄도 알지만, 우리나라 손님을 우리말로 응대할 정도는 못된다라기보다 그녀는 일녀이다. 남편 김태길(金太吉)은 마흔 댓, 나이답지 않게 청년 같은 머리지만, 길쭉한 얼굴에 핏기가 없고 노상 피곤한 눈으로 심약하게 웃는다. 그는 좀처럼 점방에 나타나지 않는다. 간혹 밤 늦게 허기진 행인처럼 나타나서 불고기 굽는 연기 속을 더듬어보고는 변변히 아내와 얘기도 안한 채 어느새 사라져 버리곤 한다. 그러므로 여간 단골이 아니고는 그가 이집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명색이 주인이지, 그가 없대도 아리랑의 운영에는 아무린 변동이 없을 것 같이 보인다. 나는 그보다 열은 손아래로 보이는 여주인의 팽팽한 몸을 볼 적마다 시들시들한 김태길의 얼굴을 연상하고 엔간히 음탕한 상상을 즐기면서 그도 그리려니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내 일거리가 그들 부부의 성생활을 캐내는 것은 아니다. 지부(支部) 에 들어온 보고에 의하면 김태길은 최근에 ‘조국 통일 동맹’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벌이고 있는 통일 운동이란 공산주의자들이 주동이 되어 북쪽의 지령을 받아 꼭둑각시 놀음을 하고 있다는 것쯤 우리들로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김태길이 여편네가 애써 번 돈을 ‘통일 동맹’에 ‘캄파’하고 있다면 필경 그가 공산주의자거나 그 동조자임에 틀림이 없다. 무슨 명분을 붙여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가 아내를 속이고 있지 않는 것이라면 그 일녀도 ‘빨갱이’가 아니고 무엇인가. 어쩌면 그녀는 일본 공산당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공(日共)의 당원인지 아닌지를 알아낸다는 것도 불필요한 일은 아니겠으나 아무래도 먼저 김태길의 동정을 살피는 것이 순서이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상냥한 여주인의 인사지레와 함께 생선찌개와 밥이 들어온다. 백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식당에서는 꼭 ‘라이스’라고 부른다. 일본 말로 밥이라고 해서 아무런 불편이 없을 것 같은데도 기어이 ‘라이스’라고 한다. 그것도 발음이 고약해서 쌈이 아니라 이 벼룩의 이로 들리게 마련이라 남의 일이지만 딱하기도 하다. 일본 사람의 서양 숭배란 우리들이 사대주의라고 스스로 업신여기는 것 이상이며 엉어·불어·독일어 등속의 낱말들이 온통 뒤범벅 이 되어 범람하고 있는 것도 열등감의 소치일 법하다.
“이거 손수 수고가 많으십니다.”
나도 적당히 대꾸를 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잔뜩 시장기를 참고 있던 터라, 된장만은 서울서 날라왔다는 찌개 맛이 한결 더하다.
마침 몸이 비대한 중늙은이와 서른쯤 나 보이는 청년이 함께 들어와 내 등뒤로 자리를 잡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얼굴을 디밀었을 순간부티 나는 그들이 우리나라 사람임을 눈치채고 있었다. 펀펀한 얼굴에 넓은 양미간, 민숭민숭한 턱이 아니더라도 몸 전체에서 풍기는 인상을 감추지 못한다. 그는 안주인과 흉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모양으로 오늘따라 오바상이 더 짊어 보인다는 둥, 어찌구 실없는 농을 던지면서 부산스럽게 요리를 청했다. 아직 초저녁이라 빈 의자가 많다.
맥주가 두어 잔씩 오가더니, 손님 하나쯤은 인중에도 없다는 듯 언성을 높여 얘기하기 시작한다. 사무원 같은 옷차림 인 청년은 가끔 마지못해 대꾸하는 정도로 말수가 적다.
“니시무라상 오늘 저녁은 기분이 좋으신가봐.”
그녀가 한마디 던지며 지나갔다.
“그럼 상등이구말구, 오마상, 오늘 그놈의 토지를 마침내 사들였다오. 까짓것 사내자식이 한판 걸어보는 게지.”
그리고는 맥주잔으로 탁자를 두드린다. 모르긴 해도 딴 음식점에 가서는 그만한 기염을 토하지 못하겠지 싶어 또 괜시리 이편이 무시당한 느낌이기도 하여 도무지 유쾌해질 수가 없다.
가만히 귀를 모아보니 뭣인지 까다로운 화제로 들어간 것 같다.
“아니 그래 은행 이자가 연 삼할로 됐다니 이런 미친놈의 세상이 있나, 코오상! 안그래? 나 원, 애당초 혁명을 일으켰을 때부티 경제는 약하다고 봤지만 설마 이 지경인 줄이야 알았겠나.”
별안간 우리 말로 튀어나온 것은 아마 나를 일본 사람으로 알고 제딴에는 조심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내 귀가 번쩍 뜨이지 않을 수가 없다.
“글쎄 말입니다. 암만 생각해봐도 그건 좀 터무니없는 정책이지요.”
청년의 대답이다.
“여부 있나, 자네는 다이가꾸(대학) 에서 정치를 공부하고 있어 이 무식한 나보다는 분간이 가겠네만, 나도 평생, 이자 계산으로 지내온 장사꾼이야. 은행 빚에 연 삼 할을 내다니. 아니 예금을 해도 그렇다며 ? 대체 어느 놈이 사업을 하겠나, 돈을 은행에 맡겨 두고 이자나 따먹지. 이제 나도 서울로 돈을 보내서 이자나 톡톡히 바라보아야겠네.”
그리고는 너털웃음을 한바탕 웃어제쳤다. 거 참 맹랑한 노릇이었다. 그지 서울만 같아도 당장에 오랏줄에 묶어 사무실로 끌고 가서 족칠 수 있을 텐데, 일본 법률이 다스리는 남의 땅인데야 어쩔 도리가 없다.
작자의 방언(放言)을 새겨들은 즉, 마치 딴 나라의 정사(政事)를 왈가왈부하듯이 도무지 제 나라에 대한 애정이란 것이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비난이 아니라 조롱이었다. 그런즉 작자도 빨갱이가 아니면 조국을 버린 망국(亡國) 의 무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아무래도 돈푼깨나 지녔나본데, 혹시나 공산당한테 자금을 대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저렇게 무지몽매한 노가다일수록 젊었을 때 고생을 생각해서 돈 없는 측에 동정하기 일쑤이쿠 또 공산당의 감언에 넘어가기 쉬운 법, 작자를 때려잡을 수 없을 바엔 좀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작자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품안에 넘어오게 해서, 가능하다면 제2차 5개년 계획에 이바지하게끔 본국에 투자라도 시키도록 선도해야 하겠다.
“지…… 말씀 중에 대단히 실례입니다만, 잠깐 자기소개를 하겠읍니다. ……
저는 △△상사 지점에 있는 아무개올시다.”
나는 공손히 허리를 구부리고 말을 붙었다. 둘의 취한 시선이 일제히 쏘아온다.
“아, 기러십니까? 나 최한돌이라는 사람이오. 여기 이분은 이황(李璜) 씨……”
작자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했다. 한돌이라니 머슴의 자식 같은 이름이지만 일본 이름을 대지 않은 것만도 제법 기특하다. 한돌은 난데없이 표준말로 인사를 건네오는 바람에 사뭇 당황한 꼴이었다. 당황한 까닭에 반사적으로. 공손하게 나온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들과의 첫 대면은 나의 성공이었다고 하겠다.
“자 앉으십쇼.”
그가 권하나마나 나는 의자를 앞당겨 앉았다.
“우리나라 분인 줄은 미처 몰라뵙고 망말을 했군요. 용서하십쇼.”
최 가는 겸연쩍은 낮을 얼버무리듯 식은 물수건으로 한번 턱 밑을 훔치고 나서 빈 컵을 건네주었다. 초면에 선뜻 술잔을 보내오는 것은 내심 싫어하면서도 애써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호감을 가졌는지, 아니 라면 제가 지껄인 말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겉보기에는 담대한 것 같아도 역시 대한민국을 겁내고 있다. 겁내고 있지 않은 놈이 어디 있으랴. 일본은 엎어지면 코가 닿을 데, 어딜 감히 우리나라 사람으로 한국의 정책을 함부로 비방할 수 있으랴. ……나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실레지만 선생께서는 무슨 일을 하십니까?”
지금껏 한마디도 참견을 않던 이황이 불쑥 대들었다. 불쾌감을 참다못해 터진 듯한 질문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황의 눈을 뚫어지게 마주보았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무역회사에 있소.”
그의 공세가 아무리 날카로울망정 이만 판국에 냥패할 내가 아니다. 그러나 이편에서 먼지 인사를 청한 동기 같은 것을 설명해야 할 입장인 듯하여,
“두 분 말씀이 뭐 제 비위를 건드렸다는 것은 아니올시다. 거야 얼마든지 현정부를 비판하질 자유가 있고 또 은행 이자에 태한 고견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두 분께서는 아직 우리나라의 실정을 잘 모르고 계신 듯해서 실례를 무릅쓰게 된 것입니다.”
대충 이런 뜻의 말을 늘어놓았다.
“형씨 잠깐!”
이황이 팔을 흔들며 내 말을 가로막았다. 형씨라는 부름에 차가운 적의를 느꼈다.
“형씨, 좀 말씀이 과하지 않소?”
억눌린 목소리지만 틀림없는 시비조다. 그러나 덩달아 흥분해서 맞붙는다는 것은 노련한 솜씨를 자부하는 나로서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참 제가 실수했군요, 이곳에 온 지 아직 얼마 안 돼서 실수가 많습니다. 타의가 있는 것이 아니니, 달리 생각 마십시오.”
나는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빌었다.
“자 자, 맥주 한잔 듭시다. 뭘 그러시오. 오늘 우연히 인사를 나눴으니 잘 사귑시다요. ……△△상사라면 나와도 전혀 무관하지도 않아.”
최가가 가로맡아 떠벌리는 통에 좌중은 일단 가라앉았으나, 이황과 나와의 엉클어진 감정은 쉬이 풀어질 성싶지도 않다. 네놈이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자동차를 부리며 호강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일주일이면 네놈의 먼지를 남김없이 털어내어 내 앞에 꿇어앉혀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리라. 보나마나 놈은 병 역 미필에 어쩌면 잠수함을 타고 온지도 모른다. 잠수함이란 밀입국의 별칭이지만, 4발 제트기를 타고 왔대도, 쑤셔대면 무엇이든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그들과 친숙해져야 한다. 재일교포란 대개 어딘지 어리숭한 구석이 있지만, 최가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이황이란 이 왕가의 후예 비슷한 이름을 가진 놈은 교포는 아니었다. 본부에 조회해 보았더니 5·I6후에 넘어온 자다. 더구나 군정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투옥되어 아직도 햇빛을 못 보고 있는 이세관의 차남이란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 진작부터 예감이 없지 않았다. 제가 어엿한 여권을 얻어가지고 왔을 리 없고 필경 마산 등지에서 통통배를 타고 대마도에 상륙했었을 것이다.
동경 입국 관리소를 통해 조사해 보았으나 이황은 밀입국자가 아니라 유학생의 스테이터스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 당국도 별수가 없는 모양이다. 정치적 인 망명도 아닐 텐데 밀 입국자에게 재류(在留)를 허가했다니 짐작컨대 일본 정계의 요로를 통해서 스테이터스를 해결해 놓았을 것 이다. 하긴 군정 초기에는 일본의 조야(朝野)가 모두 박정권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만큼 일본 신문에도 꽤 크게 보도된 이세관의 아들이라면 정지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았을 이치다.
아리랑의 주인, 부동산 보로커, 그리고 정치범의 아들, 이렇게 셋을 한데 놓고 보면, 갖가지 있음직한 관계를 상상할 수가 있다. 그러나 내 사업은 정밀함을 자랑하는 성격의 것, 철두철미 과학적 이어야 한다. '이승만 정부의 전근대적 수사관이라면 중학생이 기하학을 공부하듯 아무렇게나 선과 원을 그려 피의자들의 관계와 공범 사실을 날조해 내겠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아니다.
다행히도 나는 아리랑에서 점잖은 비지네스맨으로 행세할 수가 있다. 적어도 나 자신은 그렇게 믿고 있다. 지금도 종종걸음으로 들어온 이황이 카운터로 바싹 쫓아가 안주인과 무엇인가 소곤거리고 있다. 그리고는 몸을 돌이켜 이쪽을 보고 알은 체를 하고는 획 가버린다.
머리를 숙이고 인사한 것도 아니고 서양식으로 손을 흔들거나 윙크한 것도 아니다. 무표정한 채로 눈만 잠시 마주쳤을 뿐이다. 순간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이황을 미행하고 싶은 충동에 붙들렸으나 오랜만에 푸짐하게 벌여놓은 음식에 젓가락도 대지 않았고 마침 가스 곤로 위 쇠그물에선 갈비가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군침을 꿀꺽 되삼키고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두시 오분 전, 노스웨스트기가 하네다에 도착할 시간까지 두 시간은 넉넉하다. 해서 천천히 잘 씹어가며 식사하기로 했다. 오늘 도착하는 분은 동경을 거쳐 사이공으로 떠나는 국회의원 장태권씨이다. 뻔질나게 드나드는 송사리 의원들과는 달리 여당의 중진이다.
지부장의 명령으로 내가 장 의원의 호위를 맡게 된 것이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한 시간 남짓, 공항에서만 슬그머니 호위하면 된다. 슬그머니…… 그렇다. 장태권이 제아무리 권세가 당당한 국회의원일망정 동경에서 권총을 품 속에 지닌 호위병이 붙을 것까지는 없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의 눈치를 채지 않게 슬그머니 보살펴 주어야 한다. 누가 그와 만나는지 또 만나서 무엇을 하는지 살펴두어야 한다.
한참 동안 불고기를 집어삼키고 한숨을 돌리고 있자니까, 같지않게시리 테가 좁은 소프트를 쓴 최한돌이 나타났다.
“이리 앉으시지요. 우리 합석하십시다.”
나는 심심하던 차에 에누리없이 반겨 맞았다.
“번번이 염치없이 얻어먹기만 했으니 오늘은 제게 맡기십시오.”
나는 맥주 한 병과 불고기 일인분을 더 시켰다.
“아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최가는 여느 때의 육중한 몸가짐이 아니다. 몹시 서두르는 품이 불룩한 아랫배로 하여 더욱 우스꽝스럽다.
“아니 최 선생답지 않게 왜 그러십니까?”
“아아니, 아니 저 하네다로 곧 가야 할텐데…….”
“하네다요? 누구 마중나가시나요?”
“장태권이 알우?”
최가논 갑자기 눈에 생기를 돋운다.
“국회의원 말입니까?”
“바로 장 의원이요. 나하군 그럴 수 없는 친군데. 글쎄 전보 한 장 없이 온다는 게 아니요. 허기야 월남 가논 길에 잠깐 정거할 뿐이니까, 비행장까지 나오라고 할 수가 없어 잠자코 있은 모양이지만, 나로서야 어디 그릴 수가 있소. 내 차를 두 시 반까지 이리로 오라고 했더니 공교롭게도 여편네가 타고 병원엘 갔다네. 나 참, 세시까지 안 오면 택시라도 잡아야지…….”
최 가의 얘기하는 품으로 미루어보아서는 장의원과는 죽마지우(竹馬之友)가 틀림이 없고, 지금은 비록 바다를 격해 살고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한덩어리인가 보다.
공항에 나가서 들킬 바에야 미리 알려두는 편이 좋다.
“그러세요? 마침 잘 되었군요. 지도 네시 비행기로 손님이 내립니다. ……장의원은 물론 아닙니다만.”
“전번 동경에 놀러 왔을 땐 하꼬네에 가서 한판 잘 놀았지, 원래는 술을 그다지 못했는데, 감투를 쓰니 주량도 느는 게로군. 핫…… 형도 하네다에 가신다구, 거 잘 됐소. 내 차로 모셔다 드리지, 핫핫핫.”
그러나 나는 한순간, 최가 미간에 어떤 불안스런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간 것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셈을 치르겠다고 다툰 끝에 간신히 내가 이기고, 묵은 빚을 갚아버린 기분으로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유료 주차장으로 걸어가 최가의 차 뒷좌석으로 나란히 올라탔다.
“좀 일찍 올 걸, 늦지 않을까.”
최가는 일본 말로 운전사에게 말했다.
“걱정없읍니다.” 운전사의 대답.
“이 친구는 일본 말밖에 모르거든.”
최가가 나직이 귀뜸해 준다. ‘호오!’나는 무슨 진기한 소리나 들은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이군은 참 우리 말을 잘 하던데요.”
“이군이야 교포라고 할 수가 없지. 여기 나온 지 한 삼 년 될까? 아직 일본말이 서투르지.”
나는 속으로 실소한다. 최가의 일본 말도 첫마디부터 조센징을 통째로 드러내는 주제다.
“호오 그런가요? 일도 안하고 책이나 읽고 있다니. 참 부러운 신세군요. 자기 집이 부잔 모양이지요?”
“모르는 소리, 이군이 놀고먹고 있는 게 아닐세. 그릴 처지도 아니고.”
“어디 직장을 가지고 있나요?”
“일정한 곳은 없지만…… 나도 좀 봐주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지.”
나는 최가의 대답을 조금도 이상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겨울철답지 않게 화창한 날씨에 드라이브하는 맛에 취해 버린 셈인지, 혹은 장 대감을 상면하게 된 기쁨에 들뜬 탓인지 아뭏든 그로서는 중대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왼편으로는 동경만의 고요한 바다가 햇빛에 번쩍이고 바른쪽은 매립지(埋立地) 위에 세운 공장 지대가 잿빛 ‘스모그’ 속에 잠겨 있다. 바람이 없는 날엔 연기가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좋아, 그 한없이 맑고 갠 날씨, 높푸른 하늘!”
이건 삼십 미만인 내가 읊조린 시구가 아니다.
“최 사장께서도 하루바삐 고국으로 금의환향하십시오.”
“글쎄, 그래야 하겠는데, 어디 믿을 수가 있어야지.”
최가는 금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혼잣말처럼 내뱉었으나, 나로서는 아무렇게나 들을 수가 없다.
“믿을 수 없다니요?”
나는 숨을 참고 대답을 기다렸다.
“제 여편네도 못 믿을 세상인데…… 안 그렇소?”
그리고는 예의 너털웃음으로 넘겨 버렸다.
우리는 공항 대합실에서 일단 헤어졌다. 장 의원은 ‘터미널 스데이션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았을 것이다. 한 시간쯤 귀빈실에라도 앉았다가 떠나면 될 텐데, 호텔 방까지 빌어 놓았다니 좀 지나친 느낌이 없지 않으나 한편으로 고쳐 생각하면 나라 체면을 위해 그릴싸싶은 일이기도 하다.
아뭏든 나는 호텔 로비에 진을 지고 드나드는 사람을 살피고 있으면 그만이다.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야 어쩌지 못하는 일, 쫓아가서 통성명을 할 수는 없다. 또 장 의원으로 말하더라도 애초에 안면이 없을 뿐 아니라 내 임무로 하여 인사를 올릴 처지도 아니어서 되레 마음은 홀가분하다.
장 의원이 수행원과 마중나온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카운터 앞을 지나간다. 나는 당연히 최가가 그 속에 끼여 있을 줄 알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맨 꽁무니에 붙어 포터와 나란히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지 않은가. 양 테가 좁은 모자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굽실굽실 따라가는 꼴이 도무지 상상조차 못했던 광경이다. 나는 재빨리 그의 뒤를 밟아보고 싶어졌으나 임무 수행 중에 사사로운 행동은 삼가야 한다.
잠시 후, 로비와 붙은 식당에서 맥주며 콜라며 잔뜩 쟁반에 받쳐들고 실어나른다. 원체 식성이 좋은 한국 사람들이라 잠시라도 입을 쉬고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나도 목이 말라 주스를 청해놓고 담배를 붙였다. 창밖엔 쉴새없이 제트기가 오르내린다. 공항 전망대 위에는 시골서 올라온 구경꾼들이 줄을 지어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촌놈들이란 어느 나라나 꼭같군 그래…… 어쩐지 나 자신이 엔간히 출세한 것 같은 기분이다. 하긴 5월 16일 새벽 칼빈을 메고 세종로 근처를 뜀박질하던 때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면 거꾸로 셈을 쳐봐도 손해 본거야 없다. 그러나 회전의자에 앉아 하루하루 몸이 나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 대면 운수가 과히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약 40분 후, 장 의원이 한결 혈색 좋아진 얼굴로 나타났다. 검은 빛 코트에 새하얀 머플러가 아주 대조적이다. 최가는 이번에도 뒤꽁무니에 매달려간다. 나도 천천히 일어서서 대합실로 내려갔다. 장 의원은 흡사 사열을 받듯이 한군데 우뚝 서서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다행히 최가도 한몫 들고 있다. 채 5초도 못 될 성싶은 시간이었으나, 둘이 다정하게 악수하는 장면은 나로 하여금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최가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소한 위풍이 당당한 장 의원과 오늘따라 피에로 같은 최가 중에서 어느 편에 호의를 갖겠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최가를 택할 것이다.
비행기가 떠난 뒤 나는 한걸음 먼저 주차장으로 가서 최가를 기다렸다. 나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는 최가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분명히 이편을 보았을 텐데 회답의 신호가 없다. 호텔 복도를 걷던 것과는 딴판으로 의젓한 걸음걸이다. 세찬 바람 때문에 모자가 날 듯한데도 목을 꼿꼿이 세우고 있다.
“자네 손님은 어따 두고 혼자 왔나?”
“마침 딴 사람이 차를 가지고 나와, 그걸로 갔읍니다. 어차피 잘 됐어요.”
“음 그래?"
최가는 차 안에서 담배를 한대 붙여문다. 별안간 입이 무거워진 모양이다.
"장 의원과는 묵은 회포를 푸셨겠군요.”
“음, 원체 공사로 바쁜 친구라 어디 나 혼자 독점할 수야 있나.”
문득 멈추고 나서 한동안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더니,
“이참에도 좀 도와줬지. 평소 아쉬울 턱은 없겠지만 객지에 나오면 아무래도 허전한 법이야.”
말투부터 여느 때의 그보다는 훨씬 묵직해진 것 같다.
“그런 분을 도와 드리자면 상당히 들걸요. 맥 달라 한 장을 드릴 수는 없겠고.”
“거 뭐, 알맞게 해야지.”
최 가는 코웃음치듯 느릿느릿 대꾸했다.
이곳에 와서 반 년도 못 돼서 잘하면 상부를 깜짝 놀라게 할 성적을 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최가는 무척 남 도와주기를 즐겨하는 호인인 모양이다. 아니다. 천만의 말씀, 나로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임무를 포기하는 결과가 된다. 아무런 곡절이 없이 남을 봐줄 이치가 없다.
최가는 공산주의자는 아닌 것 같지만, 통일동맹에 돈을 댄다는 ‘아리랑’에 단골이라는 점과 반정부주의자인 이황을 도와주고 있다는 사질은, 그가 적어도 공산당의 동조자임을 반증하는 자료다. 그리한 최가 장 의원에게 여비를 보조했다니, (아니 어쩌면 거액의 정치자금을 줬는지도 모를 일)장 의원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르고 있었노라고 해서 죄를 면할 수 없는 것이 서슬 시퍼런 법이 아닌가. 그러나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편의 목이 먼저 달아난다. 섣부른 수작을 할 수는 없다. 나의 삼단논법에 의거한다면 이황이 통일동맹에 가담하고 있는 증거만 잡으면 그들의 계보는 절로 풀어지기 마련이다. 어쨌든 이런 좋은 자료를 동료들한테 선사해 줄 필요는 없고, 또 내음새를 맡게 해서도 재미가 없다.
느지감치 표면상의 연락처로 되어 있는 △△상사의 사무실에 들렀는데 즉시 지부로 연락을 취하라는 전갈이다.
“아니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 통 대가리를 내밀지 않는 거야?”
“007모양으로 무선전화를 달아주고 나서 그런 말씀 하시오. 며칠만 두고 보시라니까, 큼직한 것 하나 건져낼 테니까요.”
나는 제법 농담을 섞어가며 장담을 늘어놓을 수가 있었다.
“잔소리 그만하고, 당장 긴자로 나가봐, 3가에서 세라(世良)라는 놈이 사진전을 열고 있다. 가서 구경하란 말이다.”
“아니 누구요? 누구의 사진전이요? 도대체 사진 구경은 뭣 땜에 갑니까?”
“자네 좀 인텔린 줄 알았더니 생판 무식하군 그래, 아 그, 전번에 한국을 다녀간 카메라맨 있지 않아, 세라 말이다. 세상이 좋다고 쓰는 세량이 말이다. 무얼 어떻게 찍었는지 가보고 그녀석의 사상을 검토해서 보고하도록!”
가다가 괴상한 일거리도 다 생기는군. 직업상 사진은 찍을 줄 알지만 이른바 사진을 비평하는 능력이 내게 갖추어져 있을 성싶지는 않다. 아뭏든 명령이라 안 갈 수도 없다.
세라. 어디서 한번쯤 들은 기억이 나는 것도 같다. 옳지, 지난달인가, 소위 진보적인 색채로 이름난 (아시아)라는 월간 잡지에서 한국의 실체라 하여 하꼬방촌과 동대문 시장만 찍은 바로 그 녀석 이구나.
이런 일은 대사관의 공보 담당자가 할 것이지 내가 맡을 처지가 아닐 텐데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긴자로 나갔다. 필시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나서야 할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령 세라의 ‘카메라 아이’가 한국의 참모습을 그릇되게 포착했다손 치더라도, 또한 빨갱이들이 손뼉을 칠 효과만 내고 있다 하더라도 설마 그 녀석을 잡아가둘 수도 없는 일이고 카메라를 뺏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사지의 맥이 풀리고, 택시를 몰아 서둘러 대는 나 자신이 싱겁기 짝이 없게 여겨졌다.
백화첨 7층에서 열고 있는 전람회는 초만원의 성황이었다. 입구 옆으로 다다미 두 장은 되게 벽을 덮어 버린 사진은 사골 아낙네들이 보퉁이를 이고 줄을 지어 먼지가 뽀얀 시골길을 걸어오는 광경이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농부(農婦))라는 제목. 사진전의 이름이 ‘한국을 본다’로 되어 있으므로 흔해빠진 농촌의 정경을 간판으로 내말았다 하여 큰 잘못은 아닐 터이지만 첫머리부터 찬바람이 일고 있는 것 같다.
왼편으로 돌아가면 (베트남 전쟁〉이란 표지가 붙어 있다. 대뜸 내 시선을 사로잡은 사진은 전사자의 장례식에서 울부짖는 부인의 크로즈업 된 표정이다. 하하하, 그녀석의 사상은 이것 한 장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구나.
(군사분계선)이란 대목에 이르니 서울서도 눈에 익은 평화촌의 전경이 길쭉하게 확대되어 있다. (북조선)이라고 화살로 가리킨 농촌 풍경에 비해서 이편은 몹시 초라하게 보인다. 지편은 기와집이 즐비한데 이편은 여전한 초가 삼간들이다. 내 알기로는 북쪽은 대남 선전을 위해 일부러 기와집을 지어 전시하고 있지만, 아무 설명도 없이 사진만 보여주고 있으니 그 꿍꿍이속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는 더이상 ‘한국을 볼’ 필요를 느끼지 않아 발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 심각한 표정들이 겹치고 있는 틈바구니로 이황의 옆얼굴을 엿본 것이다. 처음엔 약간 놀랐지만 그가 이 사진전을 구경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중 후미진 구석으로 몸을 피하고 황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심각하게 굳어 버린 것 같았다. 어느 장면에서는 두 볼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듯했다. 뭘 좀 아는 체하는 꼴이라니…… 그러자 월남전쟁 앞에 가서는 잠시 멍청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고개를 숙이고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다급히 손수건을 꺼내서 코를 푸는 시늉을 한다. 전쟁의 현실을 보자 갑자기 몸이 추워지고 감기 기운이 생긴 모양이다. 저런 자식이야말로 논산훈련소에서 단단히 기합을 넣어 베트남으로 보내야 한다. 설마 거기서야 쉬 감기 들지 않을 테니까.
나는 한껏 이황을 경멸하면서 회장 밖으로 나와 엘레베이터 옆 구석에서 이황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나오다가 접수(接受)에 들러 방명록에 싸인을 한다. 그리고는 세라로 침작되는 덥수룩한 머리의 청년과 굳게 악수한다. 사방을 손가락질하며 무어라고 지껄여대는 것이 제 딴엔 평을 하는 모양이다. 들으나마나 아첨이겠지, 행여 한국을 가랑이 밑으로 본 세라의 눈을 나무라고 있을까보냐. 세라와 악수하는 꼴을 본 나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려던 계획을 변경하고 몰래 뒤를 밟아보기로 했다. 그의 행방이 궁금해서라기보다 이런 기회에 집을 알아 두자는 속셈이다.
참으로 일본인은 근면한 민족이다. 사람을 생산하는 데 근면한 사람들. 아무때고 사람이 넘쳐흐른다는 것은 미행하기엔 십상인 환경이다. 그렇지만 큰길을 횡단하려면 이황이 인파 속으로 녹아버리지 않도록 바짝 긴장해서 민첩하게 누벼가야 한다.
이황은 국전(國電) 을 탄다. 나도 그가 탄 옆칸으로 살짝 올라선다.
(일간 베이스 볼)을 정신없이 들여다보고 있는 중년의 어깨 너머로 이황 쪽을 살펴본다. 놈은 뭘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 기색이다. 옳거니! 아까 사진전을 본 충격을 되새기고 있는 것이 아니면 흉측한 반정부의 음모쯤 궁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전차가 우에노(上野)에 멎었다. 이황이 내린다. 잠깐 한눈을 판 나는 자칫 내리지 못할 뻔했다. 본시 우에노 일대는 조련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다.
이황은 공원 계단을 올라간다.
오후 세시께, 바람은 좀 차지만 동경치고는 희한스럽게 맑은 날씨다. 그러고 보니 점심을 굶고 있다. 이황은 벌써 점심을 먹었을까. 다소 허기진다고 미행을 중지할 수는 없다. 공원에 들어가 빵이라도 사먹기로 하고, 줄곧 알맞은 거리를 유지해 간다.
아베크들, 초조하게 약한 상대를 기다리는 무리들, 그리고 어린애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로 공원 안도 빽빽이 찼다.
이황은 서양 미술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누굴 찾는 눈초리로 두리번거린다. 어떤 놈과 접선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리라. 그러나 내 기대는 어이없이 빗나갔다. 이 황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이번엔 동물원으로 들어갔다. 동물원이라면 접선의 장소로는 안성마춤이다. 나도 황급히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황은 어리석게도 미행을 전혀 모르고 있다. 그는 매점에 들러 빵과 우유를 사들고 벤치를 찾는다. 나는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무집행 중이긴 하되, 놈은 배불리 먹고 나만 곯은 배를 움켜쥐고 있으란 법은 없을 것이다. 나도 빵과 우유를 사서, 멀찌감치 이황의 등뒤가 보이는 벤치로 자리를 잡았다.
일순, 나는 이십 원짜리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 이황의 모습에 어떤 애처로움을 느꼈다.
최가가 봐준다고 해야 학생의 신분인만큼 용돈이 넉넉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애비를 잘못 타고난 죄로 고생깨나 톡톡히 맛보고 있는 것이려니 생각하면 한편으로 언짢은 마음이 든다. 이황의 애비도 딱한 사람. 공연히 옹고집을 부리지 말고 정부를 지지한다고 한마디 성명만 냈더라면 지금쯤 국회의원은 따놓은 것이고 장관 한 자리쯤 어렵지 않았을 텐데, 집안 망치려니까 끝내 망령이 들고야 만 것이다.
지조(志操)! 거꾸로 읽고 나서 다자를 붙여봐라.
별안간 나는 소스라쳐 우유병을 떨구었다. 우유 방울이 무릎 위에 튄다. 누군지 어깨 위를 짚은 것이다. 나는 겁먹은 눈을 뒤로 돌렸다.
“뭘 그리 놀라시오. 일요일도 아닌데 웬일이십니까?”
목소리의 임자는 이황이었다. 어두컴컴한 눈자위 속에서 가느다란 눈이 차갑게 웃고 있다.
“그저, 일기가 하도 좋아서…… 헌데 이형은 웬일이슈?”
나는 입안에 빵조각을 담은채 우물거렸다.
“나야 월요일이고 일요일이고 따로 있나요. 요즈음도 아리랑엔 자주 가십니까?”
“네 가끔 들르지요.”
겨우 자세를 가다듬고 몸을 일으켰다.
“마침 잘됐군요. 함께 구경하십시다.”
우리는 원숭이 칸에서 그중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창경원의 관중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비스킷 조각을 던지는 아이들, 분홍빛 섹스를 드러내고 암컷을 쫓는 광경에 얼굴을 붉히는 젊은 여자들, 간혹 돌멩이를 던지는 심술장이.
“갑시다!”
이황이 실컷 보고 나서 화를 낸 듯 뇌까렸다. 묵묵히 앞장을 서던 이황은 걸음을 멈추며 나직이 말했다.
“서대문 생각이 나서요. 일본으로 도망온 내가 잘못이지요?”
“…….”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간 조용하게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지만…… 거처는 불편하지 않습니까? 아직 혼자 계신가요?”
“홀아비 신세를 못 면하고 있지요. 죽을 지경이올시다.”
나는 이황이 무척 변덕스러운 성미라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론 화제가 바뀐 것을 적이 다행으로 여겼다.
“이형도 고생이 많으시겠읍니다.”
내딴엔 그지 인사치레로 대꾸한 말은 아니었다. 분수 곁의 잔디밭에 이르자 좀 쉬고 가자고 한다.
“그런데 형씨는 남북통일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황은 전혀 무표정하게 나직이 물어 온다.
“통일 문제라뇨? 통일을 해야지요.”
나는 엉겁결에 이렇게 대답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그의 장단에 춤을 추고 있는 느낌이다. 이황은 이마를 반쯤 가린 앞머리를 희고 가는 손가락으로 빗어 올리더니,
“제가 일본에 와서 느낀 게 바로 그겁니다. 서울에 있으면 실감이 잘 안 나지만 이곳에 오면 통일을 해야 우리 민족이 일본 놈들한테서 지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거요. 가뜩이나 약소국인데 두 동강이 나 있으니 더 깔보거든요.”
내심 이황의 한마디 한마디를 귓속에 새겨 두려고 벼르고 있던 나는 적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통일 문제를 일본인과 결부시켜, 이를테면 우국의 충정을 토로하고 있는 셈이라, 내가 기대하던 방향과는 좀 각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곳에도 통일 동맹이라고 뜻있는 사람들이 신문도 내고 생활도 하고 있읍니다만, 제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한국에서 온 분들이 통 관심을 갖지 않는 일이지요.”
이제야 놈이 음흉한 속셈을 내비지기 시작하는가 보다.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그러나 놈이 좀이 쑤셔 못견딜 지경이라면 그물을 쳐서 낚아올릴 태세는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제 애비를 걱정하고 슬픔에 잠긴 얼굴이 가련하기도 하여 오늘일랑 고이 물러가려고 했었으나, 이황은 되레 나를 선동하는 좋은 찬스로 생각한 듯싶다. 하지만 나는 열뜨게 되물었다.
“이형, 통일은 꼭 해야 하지만 지금 단계에서 경솔하게 나서다간 북쪽의 계략에 넘어갈 위험이 많지 않을까요?”
“헷 …….”
별안간 이황은 괴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일그러진 얼굴을 거두고 입맛을 다셨다.
“형씨도 화석이 되셨군. 동물이나 식물의 화석(化石) 말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엔간히 참을성이 있는 나도 낯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서는 몰라도 여기까지 와가지고 뮐 그러십니까?”
이 황은 곁눈질을 하며 내가 불쌍하다는 태도다. 참 교묘한 화술이구나. 요령이 잡히지 않는 소리만 늘어놓으며 당겼다 놓았다 엉뚱한 수작을 걸어오지만 꾹 참고 있어야지. 아니 놈은 말끝마다 서울서는 어쩌구 하는데 그것부티 서울을 버리고 달아난 망국의 무리라는 증거가 아니고 됫이랴, 실상 놈은 동경에 있으니망정이지, 서울이라면 진작에 ‘골로갔을’것이 틀림없다. 내 일년치 월급을 몽땅 걸어도 좋다. 나와 만난 이튿날, 벌써 캄캄한 콘크리트 방바닥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저 서울만 같아도!
“이형도 통일동맹인가 하는 데 더러 나가십니까?”
“…….”
황은 못 들은 척을 하고
“형씨! 이런 상상을 해보신 적이 있어요? 만일 일본에 있는 60만 교포만이라도 남과 북의 대립을 해소시키고 정치를 떠나서 한데 단합한다면 어떨까요? 그럼 일본인도 좀 인식을 달리하게 될 텐데…….”
놈은 굉장히 영리하거나, 바보인 것 같다. 나를 경계하고 연막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면 공산주의자도 못 되는 공상(空想) 주의자다. 정칠랑 뉘한테 떠맡기고 한데 뭉치다니 원 세상에 미친놈 다 봤네. 그래가지고 국제정치를 공부하고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어 잔뜩 힘을 주었던 등뼈가 스르르 녹아 버리는 것 같다. 더 이상 상대를 하다가논 나까지 머리가 좀 이상해질 것 같다.
사나흘 뒤 부슬비가 내리는 밤이다. 동료들과 늦도록 맥주를 마시고 헤어져 자정 가까이 혼자 아리랑에 들렀다. 맥주로 속을 훑어내린 탓인지 시장기를 넘어 속이 쓰리다. 이럴 때는 콩나물 수프라는 별물에 고춧가루를 듬뿍 뿌린 다음 수저 위에 깍뚜기를 얹어 훌훌 들여마셔야 가라앉게 마련.
연기 속을 헤치고 들어서자 낯익은 얼굴들이 약속한듯이 모여 있다. 테이블을 잇대어 놓고 대여섯이 둘러앉았다. 모두들 주기가 돋은 눈으로 ‘후래 삼배’어쩌구 지껄이며 ‘사까즈끼’를 코앞에 들이댄다.
“오늘은 주인이 한턱을 내는 것이니 마음 턱 놓고 드슈.”
상좌에 앉은 최가가 흡사 제 술을 내듯이 떠벌리고 있다.
“오늘 무슨 날입니까?”
나는 술잔을 공손히 받으며 옆사람에게 물었다.
“아시면 술맛 떨어져요. 그냥 덮어 주고, 자, 내 잔이나 한잔 받으시오!”
사뭇 명령조로 말한 것은 다름아닌 이황이었다. 영문모를 술을 얻어먹기도 술맛 안 나기로는 매일반인 것 같다. 더구나 얼큰한 국물을 찾아온 참인데 안주는 더 서비스할 눈치는 아니고 연방 도꾸리만 갈아대니 그다지 고마울 것도 없다.
알아서 술맛이 떨어진다? 요 며칠 전에 정말 그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지부로 들어온 것 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대판에 사는 임모(林某)라는 사람인데 재산을 빼앗긴 채 집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다.
일본 사직 당국에 호소해 봐야 거들떠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관과 요리점을 경영하던 그는 3, 4억을 넘는 재산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주인이고 임자인데도 가족한테 쫓겨나다니 알다가 모를 일이었다. 마침 나의 담당이라 임모를 앉혀놓고 장시간 사유를 정리해 본즉 치명적인 실수가 그에게 있었다. 일본 여편네를 사랑하는 나머지 혹은 세무서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선지 부동산을 온통 여편네 명의로 해뒀더라는 것이다.
나이는 내외가 다 50 안팎, 20년을 동거했다는 것이다. 10년 전까지 고생을 같이 할 때는 사이좋게 지내다가 차츰 재산이 불어나고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여편네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여 아제는 대학에 다니는 제 친자식마저도 에미와 한 패가 되어 애비를 학대한다는 것이다.
“사생아가 되어도 상관없소. 그러나 조센징의 자식은 싫소!”
하늘이 무섭지 않은지 이런 소리를 마구 지껄여 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가는 닭똥 같은 눈물을 책상 위에 떨구었다. 나도 주먹을 불끈 쥐고 흥분했으나 그런 문제는 일본의 재판소가 해결할 일이지만, 애시당초 자기 명의의 재산이 아니므로 하늘을 향해 호소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음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너무 박절하게 대할 수도 없어 적당히 달래어 보냈는데 이제 한일협정이 발효하게 되어, 누구에게 해당하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뱉는지는 몰라도 불행했던 과거를 청산하는 이 마당에 참으로 불행한 불상사가 아닐 수 없어 보고서에 만은 그 전말을 소상히 적었던 터이다.
“뭘 생각을 해, 우리 유쾌하게 놉시다!”
최가가 거듭 잔을 건네오며 호탕하게 웃는다.
“자, 오늘 경사스러운 날에 주인 솜씨 한번 보이시오. 술만 가지고 때우려곡 하면 안 돼. 자 십팔번 있지 않소.”
그러자 손님들이 일제히 손뼉를 친다. 푸르스름한 카운터 그늘에서 줄곧 심약한 미소를 띠고 있던 김태길이 주섬주섬 기타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다. 그 작자한테 그런 재주가 있었던가. 호오―. 제법 신통한걸.
태길이 의자 위에 한 발을 걸쳐놓고 기타를 튕기기 시작한다. 장내가 잔잔해진다. 여주인이 묘한 웃음을 머금고 남편을 지켜보고 있다.
곡조는 아리랑. 그런 정도겠지. 재즈쯤 신바람을 피울 줄 알았는데, 한편 실망이지만 예상한 대로다. 한두 해 장난한 솜씨는 아닌 듯하다. 구석에서 우리를 흘겨보던 일본 손님도 호기심에 찬 눈으로 구경하고 있다. 두번째 곡조가 나오자 좌중에서 별안간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루라루리요오― 아리랑 고개를 노므가안타ㅡ”
우리나라 사람의 발음이 아니다. 그러면 그렇지. 최가의 운전사였다. 자동차 안에서 최가가 우리 말을 못하는 교포라고 소개하자, ‘죄송합니다’라고 일본 말로 꾸벅 하던 친구다.
“자네도 노래해!”
최가가, 주먹을 쥐고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모두들 목청을 높여 아리랑을 부른다. 간간이 기타의 가냘픈 선율이 여운을 남긴다. 노랫소리는 엉망, 아리랑인지 천안삼거리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운전사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맺혀있다. 노래가 끝나자 또 박수. 나는 그 자가 땀들인 것을 기다려서 옆구리를 쿡 찌르고 물었다.
“그만하면 우리말 잘 하시는걸. 헌데 오늘은 주인의 생일인가요?”
그러나 그는 사뭇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일본 말로 일러 주었다.
“아, 한일협정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비준된 것도 모르시나요? 그걸 축하하러 모인거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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