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충북 청주로 볼 일을 보러 자주 갑니다.
갈 때는 대전 신탄진을 거쳐 청원을 통해 청주를 가지만
올 때는 대전에 볼 일이 없으면 청원에서 부강을 통해 세종시 방향으로 새로운 길이 뚫려있어서
그곳을 통해 공주 반포로 그리고 계룡산을 넘어 집으로 오고 한답니다.
그 새로난 길은 통행하는 차량이 그리 많지도 않고 거의가 직선 도로라서
시속 100킬로 이상을 달려도 전혀 불안을 느끼지 않을 만큼 포장이 잘 깔려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다보면 청주나 조치원을 거쳐서 흐르는 물과
대청댐을 통해 신탄진을 가로질러 흐르는 물. 이두 물이 만나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물이 서로 만나 그 물이 공주로 해서 부여로 그리고는 금강하구둑이 있는
서천 장항으로, 결국 서해로 흐르게되는 금강이 되는 것이지요.
올 겨울에는 물이 만나는 그곳에서 금강둑을 따라 대평리 방향으로 차를 몰고 갈 때면
그 탁트인 평원 하늘위로 넓게 펼쳐진 그 곳을 새들이 떼를 지어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새들이 움직이는 그 동선은 무척 아름답고 오래도록 볼 수 있어서 너무나 좋았습니다.
한동안 도시에서만 살다보니 새들은 내 주위에 홍길동처럼 금방 나타났다가 앞 건물 뒤로 금방
사라지는 모습에서 새들의 날개 짓을 그리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새들이 떼를 지어 나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고, 이를 자세히 살펴볼 수가 있었지요.
새들끼리도 일정한 룰과 함께 비행하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새들이 날개가 있다고 자기 마음 것 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해야 만이 아주 멀리에 있는
목적지를 향해 무사히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은 혼자서만 살 수가 없듯이 누군가가 함께 있어
그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혹은 나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있듯이 서로 어울리고 함께 해야 만이
우리가 추구하는 아주 멀리에 있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또한 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헤르만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한 귀절이 생각이 납니다.
“새는 알에서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새는 알이라는 한 세계를 깨트려야만 한다.
새는 날아간다. 저 너머 아프락삭스에게로! "
여기서 아프락삭스는 선악의 신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삶과 죽음, 참과 거짓, 빛과 어둠 그리고 선과 악 등 양극적인 것에 흔들리며 서로 사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과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를 다녀서 이런 생각은 그냥 과거로 묻혀버렸지만
어쨌든 함께하는 새나, 사람이나, 같이할 동료가 많을수록 멀리까지 비행을 하고
그 바라는 목표에 도달할수 있지 않을까요.
도요새처럼 말이지요.
이섭아빠 송인겸올림.
첫댓글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연대를 영성신학자 헨리 나우웬은 하나님의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긍휼은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바쳐주기 보다는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라고 했지요. 서로 마주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연대를 통해 같은 곳을 보고 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겠지요. 번개돌이님 우리는 한 곳을 바라보며 함께가는 동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