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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하나님의 복을 얻으려는 야곱의 간절한 열망
설교본문 : 창세기 28:1~22, 예레미야 20:1~6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0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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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1) 야곱의 이야기의 첫 시작
구약 성서에서 하나님을 소개할 때 흔히 나오는 말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초를 세운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 세 사람 중에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은 창세기에서 세 사람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합니다.
창세기 25장부터 50장까지(중간에 몇 장을 빼고) 20장 넘게 야곱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더구나 야곱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받기까지 했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야곱이
하나님께로부터 더 큰 복을 받은 자로 인정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 첫 부분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오늘 설교의 배경 :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대신 복을 받는 야곱
이삭이 늙어 눈이 어두워져서 앞을 잘 볼 수 없게 되자
맏아들 에서를 불러 축복하려 합니다.
이삭은 본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내리려 하셨다는 것을 알면서도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여 야곱이 받아야 할 복을 에서에게 선언하려 합니다.
그러나 에서가 아버지 이삭의 명대로 사냥을 하러 나가자
이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리브가가 에서 대신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일을 꾸밉니다.
리브가는 별미를 만들어 야곱에게 주고, 야곱의 매끈매끈한 손과 목에 염소 새끼 가죽을 두릅니다.
이삭은 야곱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손과 목에 털이 있는 것을 만져보고는 맏아들 에서로 착각하고 야곱에게 축복합니다.
이삭은 야곱이 가져온 고기와 포도주를 먹고 마신 후 야곱을 축복합니다.
이삭은 에서인 줄 알고 그가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서 받았던 축복을
야곱에게 그대로 축복하며 선언합니다.
야곱이 모든 축복을 받고 나가자 곧 그의 형 에서가 돌아왔습니다.
에서가 사냥한 고기 요리를 주며 축복해달라고 말하자,
이삭은 크게 두려워하며 자신이 이미 먹고 축복했고,
그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서는 울부짖으며 자기에게도 복을 달라고 말합니다.
오늘 설교는 이 다음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제 1 부 : 하나님의 복을 얻으려는 야곱의 간절한 열망
1. 에서의 뒤늦은 통곡(27:32~34)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그의 말을 듣고 이삭은 심히 크게 떨며 가로되
“그러면 네가 오기 전에 나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온 자는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그것을 다 먹고 그에게 축복하였은즉,
그가 정녕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아버지의 말을 듣고 에서가 크게 소리 내어 울부짖으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그동안 에서는 하나님의 복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의 복을 얼마나 멸시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그에게 최종적인 하나님의 선언이 내려지니
이제야 복을 달라고 통곡하며 웁니다.
2. 야곱과 리브가의 실수 : 왜 하나님의 복을 사람에게서 구하나?
1) 리브가는 왜 하나님의 복을 이삭을 통해 받으려 했을까?
그러나 창세기 27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왜 야곱과 리브가가
이런 거짓말을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왜 리브가나 야곱이 정당하게 이삭에게
그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을까요?
에서에게 복을 주려는 이삭의 태도가 워낙에 완강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복을 거짓말의 방식으로 받아내려 했던 것은
결단코 칭찬받을 일이 아닙니다.
2) 야곱과 리브가의 결정적인 문제점 : 하나님의 복을 인간 이삭에게서 받아내려 한 것.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왜 이삭을 주목할까요?
이미 영이 흐려져서 겨우 고기 맛에 마음을 빼앗겨
복의 흐름마저 바꾸려 하는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이런 거짓말까지 한 것일까요?
이것은 야곱과 리브가의 조급함이고,
더 깊게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믿음의 부족입니다.
3. 야곱을 핍박하는 이삭과 에서
1) 이삭과 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이어받을 자 야곱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27:39~41).
39. 그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살 곳은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멀고), 하늘 이슬에서 뜰(멀) 것이며
40. 너는 칼을 믿고 살게 될 것이며,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메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버리리라.
(혹은, 그러나 네가 애쓰고 또 애쓰면
그가 씌운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깨뜨려 버릴 것이라.)”
41. 에서는 그의 아버지가 야곱을 축복한 일로 인하여
(혹은, 자기가 받을 축복을 야곱에게 빼앗긴 일로 인하여)
야곱에게 앙심을 품고 혼잣말로 이르기를 “내 아버지를 곡할 날이 가까웠은즉,
그때가 되면 내가 아우 야곱을 죽여 버릴 것이라” 하였은즉
가인이 하나님의 사람 아벨을 죽은 것처럼,
저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할 자 모세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그리고 헤롯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두 살 이하의 남자아이를 모두 살해했던 것처럼,
이삭과 에서가 결탁하여 하나님의 사람 야곱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2) 야곱이 도망한 이유 :
➠ 형 에서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을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만일 야곱이 여기에서 자기가 그 복을 포기하겠다고 이삭과 에서에게 말했다면
야곱은 하란 땅으로 도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하란 땅으로 도망한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바와 같이 야곱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복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이 평생 형에게 쫓기는 삶을 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결단코 그 복을 포기할 수 없다는 복에 대한 그의 열망과 집념이
그로 하여금 도망자의 삶이 되게 한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얻기 위해 평안한 삶을 포기한 야곱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 세상에서의 평안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 복을 기어이 받고야 말겠다고 했던
야곱의 이 열망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처럼 간절히 바라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처럼 하나님의 복을 원하고 또 원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제 2 부 :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야곱
1.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야곱
1)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을 그대로 전달하는 이삭(28:2~4)
2. 지금 곧 밧단아람에 있는 네 외할아버지 브두엘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여라.
3.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어 너로 하여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사
너로 여러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4. 또 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도 주셔서
네가 지금 나그네로 살고 있는 이 땅,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야곱을 떠나보내면서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에게 해 주었던 복의 약속을
그대로 야곱에게 전달합니다(3~4절).
그리고 절대로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밧단아람에 있는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택하라고 말합니다(2절).
이삭은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완전히 회복했습니다.
2) 밧단아람을 향하여 떠나는 야곱(28:5)
5. 이렇게 복을 빌어준 후에 이삭이 야곱을 떠나보내었더니,
야곱이 밧단아람에 사는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밧단아람 사람인 브두엘의
아들로서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빠였더라.
야곱은 이삭의 당부의 말을 마음에 새기고
무려 800km나 떨어져 있는 밧단아람을 향하여 떠납니다.
그 길은 한편으로는 형 에서의 진노를 피해 도망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하나님의 복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복에 대한 열망을 품고 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이 여행이 그에게 어떤 시련과 고난을 줄지 몰라
야곱은 몹시 두려워하는 중에 떠나는 길입니다만,
그래도 그의 평생을 포기해서라도
하나님의 복을 반드시 받고야 말겠다는 야곱의 그 간절함으로 떠나는 여행입니다.
➠ 하나님의 복을 위해 세상 것을 포기하는 것 : 이것이 믿음입니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받은 복을 포기하겠으니 형이 그 복을 받으라고 한다면
야곱이 이렇게 먼 거리를 도망치듯 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에서가 듣고 싶은 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니
도망하는 길을 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해 보이는 세상의 평안을 포기한 것,
이것이 바로 야곱이 보여주는 위대한 믿음입니다.
후일 하나님께서 그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십니다.
2. 영적으로 무지한 에서의 어리석은 행동
1) 에서의 무지(9절)
9. 이에 에서가 이미 아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에게 가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야곱이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후에
밧단아람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에서가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가나안 여자들을 아주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미 가나안의 헷 족속의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와서 그 여자를 아버지가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내보낼 수 없으니
에서는 이미 아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마엘의 딸을 새로 아내로 맞이합니다.
에서는 이렇게 그가 가나안 여자가 아닌 다른 종족의 여자와 새로 결혼을 하면
아버지가 기뻐하시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2) 기껏 한다는 일이 아내를 하나 더 얻는 일이었습니다.
에서가 정말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릴 마음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기껏 한다는 일이 아내를 한 명 더 구하는 일이고,
그나마 하나님의 저주받은 종족에 속하는
이스마엘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에서는 영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이라는 영적인 기초조차 에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 묵상 :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은 기회를 주어도 생명의 길을 택하지 못합니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참된 생명의 길인지를 바르게 분별하는
신령한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참 자유를 얻기 위하여 떠나는 위대한 순례자 야곱
1)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얻기 위해 떠나는 야곱(28:10)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을 향하여 가다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얻기 위해 야곱이 외로운 길을 떠났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형의 진노를 피하여 도망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지금이라도 자신이 받으려 했던 복을 포기하고 형에게 양보한다고 말하면,
이렇게 도망치듯 밧단아람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이 여행은
겉으로는 형을 피하여 도망치는 초라한 모습을 갖고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자유를 얻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길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을 얻기 위한 고난의 길(11절)
11. 한 장소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려고
그곳에 있던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를 삼고, 거기에 누워 잠을 자더니
돌 하나만 떨어져도 깜짝 놀랄 정도로 두려움이 많은 야곱이
홀로 이 여행을 떠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특히 그런 연약한 아들을 살아서는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홀로 떠나보내는 어머니 리브가의 심정은 더욱 아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아픈 가슴을 애써 숨기며
하나님의 복을 받는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해 보냅니다.
그리고 야곱은 두려운 마음을 억지로 극복해 가며
참 자유를 얻기 위한 고독한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 묵상 : 우리도 때때로 두려움과 만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자니 직장을 잃을까 두렵고, 친구를 잃게 될까 두렵고,
내가 하는 사업이 더욱 힘들어지게 될까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조차 나의 믿음의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여
집에서도 핍박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이런 두려움을 이기고
참 복을 얻기 위한 고독한 순례의 길을 떠난 것처럼,
우리도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제 3 부 : 야곱을 지지하고 응원하시는 하나님
1. 자유를 향한 야곱의 첫걸음을 축하해 주시는 하나님
1)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복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야곱
야곱이 지금이라도 이삭과 에서를 찾아가서 자신이 복을 포기하겠다고만 말하면
상황은 잠잠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이런 마음을 누구보다도 에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야곱을 죽여서라도 그가 받은 복을 빼앗으려 합니다.
2) 그러나 현실은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가득하고(11절)
(11절 성경구절 위에)
그 두려움에 야곱은 단숨에 무려 80km가 넘게 떨어진 벧엘까지 달려갑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틀을 꼬박 가야만 하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야곱이 얼마나 그의 형을 두려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으나 날이 저무니 더 갈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돌 하나를 주어 그것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잤습니다.
3) 복을 얻기 위한 야곱의 순례의 길을 축하하며 위로하시는 하나님(28:12~15)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 하나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그 사닥다리를 다시 자세히 보니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 곧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아져서 동서남북으로 퍼져 나가게 될 것이며,
이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며,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줄 것이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다시 데리고 올 것이라.
내가 네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런데 꿈에 하늘에까지 닿은 사닥다리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닥다리 위에서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목숨보다 더 간절히 사모했던 야곱을
세상에서는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칭찬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그를 단지 아버지와 형을 속인 나쁜 놈 취급을 하고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로 인정하시고,
그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모든 복을
그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가는 모든 길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땅에서는 축하를 받지 못했으나,
하늘에서는 자유를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나는 야곱을 축하하며 환영해 주었습니다.
● 묵상 : 야곱은 오직 하나님의 칭찬만을 바라며 평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얻기 위한
야곱의 위대한 순례의 길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2.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서원을 하는 야곱
1) 야곱이 돌베개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함(28:16~19)
16.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그리고 그는 두려워하며 가로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며 이곳이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야곱은 머리에 베었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더라. 이 성의 본래의 이름은 ‘루스’더라.
잠에서 깬 야곱은 그가 베개를 삼았던 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으며 여호와께 찬양하였습니다.
그 돌 위에 기름을 부으며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지켜
안전히 다시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그가 앞으로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며,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고,
그가 가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고, 하나님께만 예물을 드리며,
평생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서원입니다.
2)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법을 배운 야곱
야곱이 한 이 서원을 보면 그동안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로부터 신앙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야곱을 장막에 머물며
엄마와 이야기만 나누는 계집아이 같다고 놀렸습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 이삭도 야곱의 이런 모습이 싫어서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에서에게 복을 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결코 계집아이와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였으므로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을 얻기 위한 순례의 첫날 밤에
앞으로 평생에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서원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 묵상 :
만일 우리가 아이를 야곱이 가진 영성을 가진 아이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도 리브가처럼 우리의 아이를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아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고백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웁시다.
3. 야곱을 라반의 집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1) 하란까지 야곱을 인도하신 하나님
오직 하나님의 복을 얻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외롭고 고독한 길을 떠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첫날 밤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그의 길을 지켜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그의 어머니 리브가 외에는 그 누구도 그를 지지하는 이 없었으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그를 지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야곱은
800km가 넘는 그 먼 길을 외롭지 않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2) 처음 가는 길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모른 채 길을 갔던 야곱
야곱이 드디어 동방 사람들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이 라반이 사는 하란 땅이지만
본문에서 막연하게 ‘동방 사람들의 땅’이라고 말한 것은,
야곱이 그 땅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야곱은 그저 동방 사람의 땅 어딘가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바로 라반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땅을 오직 그를 인도하시리라 말씀하신 하나님만을 믿고 갔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순탄한 길로 인도하여 주신 것입니다.
3) 도착한 곳이 바로 라반이 사는 마을(29:5~6)
5.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면 혹시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가로되 “아노라.”
6. 그러자 야곱이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그들이 가로되 “평안하니라. 마침 저기 라반의 딸 라헬이 양 떼를 몰고 오느니라.”
야곱은 그저 막연하게 동방 사람들의 땅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우물가에 세 무리의 양 떼들과 그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목자들에게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라반을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라반의 딸 라헬이 그곳으로 양 떼를 몰고 오고 있었습니다.
2) 라헬을 만나 소리 높여 우는 야곱(29:11~12)
11. 야곱이 라헬에게 입을 맞추고 소리 높여 울며,
12. 그에게 자신이 라헬의 아버지 라반의 생질(누이의 아들)이라는 것과,
자기가 리브가의 아들임을 고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아버지 라반에게 이 사실을 알리매
그 여자가 자신이 외삼촌의 딸 라헬인 것을 확인한 야곱은
다짜고짜 라헬과 입맞춤을 하고는 소리를 높여 울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며 감사의 눈물입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땅을 마음 졸이며 왔기에
그만큼 감사도 기쁨도 컸습니다.
➠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을 가진 이들의 기쁨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때로 마음도 졸이고, 때로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해 보니 이미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해 두고 계셨습니다.
이런 기쁨은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한 중에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아간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성경 말씀에 기록된 그 하나님이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들이 모아져서 야곱은 그 믿음이 점점 자라서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리는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 묵상 :
힘들고 어려워도, 응답이 잘 안되는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기도하였으면 믿고 기다리십시오.
기쁨과 감사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기다린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제 4 부 :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십니까
1. 예레미야를 핍박한 성전 유사장 바스훌
1)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운 바스훌(렘 20:1~2)
1. 제사장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유사장(총감독)이라.
그가 예레미야가 이 일 예언함을 들은지라.
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 베냐민 윗문에 있는 착고(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에 채웠더니
성전의 구역 안에서 공공질서를 유지할 책임을 맡은 최고의 감독자였던 바스훌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행한 예레미야의 설교를 듣고는,
자기의 허락을 받지 않고 성전에서 설교를 했다면서 예레미야를 (채찍으로) 때리고,
착고를 채운 후에 베냐민 윗문에 가두었습니다.
바스훌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통로에 예레미야를 착고에 채운 채로 밤새도록 가두어
그를 조롱거리가 되게 했습니다.
2) 바스훌이 마골밋사빕이 되리라(3~6절)
3. 다음날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착고에서 풀어주매 예레미야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네 이름을 바스훌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마골밋사빕’이라 하시느니라.
4. 대저 너를 두고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너를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그 원수의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네 눈은 그것을 볼 것이며,
내가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그들을 사로잡아 바벨론으로 옮겨 칼로 죽이리라.
5. 내가 또 이 성읍의 모든 재물과 그 모든 소득과
그 모든 귀중품과 유다 왕들의 보물을 그 원수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그것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리라.
6.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거하는 모든 자가 포로 되어 옮겨지리니,
네가 바벨론에 이르러 거기서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너와 네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도 함께 그곳에서 죽어
그곳에 묻힐 것이라’ 하셨느니라.”
하룻밤을 착고에 채워진 채로 갇혀 지냈던 예레미야는
자신을 풀어주는 바스훌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마골밋사빕’이라고 바꾸셨다는 것과,
그를 두려움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되게 하시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바스훌은 ‘자유, 평화, 즐거움’을 뜻하고,
‘마골밋사빕’은 사방에 두려움이 있다는 뜻입니다.
➠ 하나님이 아니라 권력을 의지한 바스훌 : 헛된 권세, 헛된 영광
바스훌은 그가 선포한 모든 설교가 거짓이었음을
마지막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후에 죽게 될 것입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칼의 살육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그를 죽음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난을 몰고 다니는 사람, 재난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가족과 그의 예언을 들었던 친구들이 모두 참혹하게 죽는 장면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후에야 그는 죽게 될 것입니다.
2.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십니까?
1) 예레미야는 유다의 정부 당국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붙잡으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는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로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 힘썼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설교하는 내용이 당시 유다의 정부 당국의 말과 달랐습니다.
유다의 정부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국가 간의 외교력을 통한 체제 안정의 길을 택하였고,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얻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2) 예레미야와 유다 정부 당국의 차이 : 무엇을 의지하여 평화를 얻을 것인가?
둘 다 나라의 평안을 위한다는 면에서는 동일하지만, 그 방법이 달랐습니다.
당시에 외교력을 통한 체제 안정을 꾀하려면
상대국에서 섬기는 우상을 받아들여 그것을 함께 섬겨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하나님 앞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한 편으로 우상을 섬기며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소위 혼합주의 형태의 신앙을
아주 싫어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런 방식의 국정 운영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와서
나라가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이방 나라를 의지하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
외교력을 통한 체제 안정은
당장 힘 있는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에 매력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 나라의 도움을 받으려면 그 나라의 우상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그러나 이방 나라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그 나라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방 나라의 외교적 도움을 받기 위해 우상을 숭배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것을 거절하면
그 나라의 침략을 받습니다.
당신이 유다의 왕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 묵상 :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합니까?
당장의 이익보다는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택하시기 바랍니다.
결 론 : 복과 저주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1) 바스훌은 하나님을 위한 고난보다 당장의 평안을 택했습니다.
바스훌은 제사장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 당국의 말을 들을 것인지 ➠ 그러면 당장은 편안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함께 사역할 것인지 ➠ 그러면 당장은 예레미야처럼 고난을 받게 됩니다.
➠ 바스훌 앞에 이 두 길이 있습니다.
정부의 말을 들으면 일단은 편안할 것이고,
예레미야와 함께 사역하면
당장 그 자리에서 쫓겨나고 심한 고통과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이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바스훌은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로 치닫고 있는 정부의 명령을 따르기로 합니다.
2) 당장의 평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핍박한 바스훌
바스훌은 당장의 평안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고 악한 길을 택합니다.
바스훌이 당장의 평안을 얻기 위해 잠시 하나님을 떠났더라도
그가 악한 일을 하지 않았다면
혹시 다시 회개하여 돌아올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스훌은 유다의 지도자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를 아주 지독한 방법으로 핍박하기까지 합니다
그는 예레미야를 때리고, 착고에 채운 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통로에 있는 베냐민 윗문에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바스훌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초라한 패배자로 보이게 했습니다.
➠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재앙을 몰고 다니는 사람인 마골밋사빕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스훌은 자신이 한 설교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마지막까지 자신의 눈으로 지켜본 후에
자신도 그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게 되는
비극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관리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던 성물들도
모두 다 바벨론에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앞에 놓인 두 길 중에서
당장 편안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시는 길을 그가 택하였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복과 저주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이 바스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당장의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합니다.
복과 저주는 선택의 결과입니다.
선택은 한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토록 당신을 따라다닙니다.
복된 길을 선택하십시오.
때로 그 선택이 당신을 고통 가운데로 몰아갈지라도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길이라면 그 길을 선택하십시오.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많았던 에서가 아니라
문제가 많고 고집불통이었던 야곱을 택하신 것은
그가 평생 하나님의 복을 찾고 찾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하나님의 복을 찾고 구하는 이 일에서는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사랑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열망을 결단코 잃지 마십시오.
주님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영적인 감각을 잃지 않고 살게 하옵소서.
영이 둔해져서 거짓에 미혹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게 하시고,
또 우리가 분별한 대로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시며.
우리가 고백한 그 믿음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