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그루터기 (사 6;9-13)
산에 가면 종종 벌목한 현장을 보게 됩니다.
나무를 베고 나면 그 밑에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아납니다. 그리고 다시 나무가 되어 크게 자라나게 됩니다.
그 사람만 있으면 그 단체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루터기 사람만 있으면 그 사람이 있는 곳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유다가 바벨론의 침범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갔습니다.
끌려 간 사람들은 공부많이 하여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몸이 건강하여 노예로 쓰기에 적당한 남자들이었습니다.
얼굴이 예뻐서 남자들이 노리게감으로 삼기에 적당한 여자들이었습니다.
10분의 9의 사람들이 잡혀 가거나 죽어 버렸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겨우 10분의 1이었습니다.
그것도 남은 사람들은 바보 천치들뿐이었습니다.
병자들, 허약자들, 무식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이제 유다는 끝장인 듯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까지 버린 상태같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는 영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 데 이제는 왕가도 모두 잡혀 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같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없다고 한숨만 푹푹 쉬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 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 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 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9-13)
10분의 9가 죽거나 잡혀 갔습니다. 10분의 1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그마저도 다 멸망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루터기 사람들이 나타나서 유다를 다시 살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루터기를 이용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됩니다.
생각의 그루터기
생각의 그루터기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종살이 하고 있었습니다. 생명을 건 노예였습니다.
민족이 모두 종이었습니다. 모세가 40살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행 7;23)
모세가 40살에 마음에 들었던 생각의 그루터기가 400년 종살이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이 그루터기입니다.
생각에 예민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각을 쓰시는 분이십니다.
거룩은 생각부터 시작합니다. 우리는 항상 거룩한 생각을 하도록 생각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생각은 그루터기이기 때문입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문둥병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둥병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받아내고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특파원 사진 기자들이 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 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하면 그 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생각이 거룩입니다. 생각이 그루터기입니다.
기프슨(Bamett Gipson) 박사가 그의 저서 <행복한 하루>(hapiness day and night)에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손에 얼마나 쥐어져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행복입니다.
감사하는 생각과 마음이 있으면 무엇에든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생각은 그루터기입니다. 생각만 마음속에 심어 놓으면 무성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생각을 예민하게 받아 드리십시오.
어떤 때는 소원이 강렬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소원이 기적을 일으키는 생각이 됩니다. 소원이 그루터기가 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마음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소원이 불일듯 일어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그루터기입니다.
하나님은 소원을 통하여서도 분명하게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고 싶어 미치도록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을 통한 하나님의 그루터기입니다.
나는 1989년 4월 19일 미국 란카스타에 가서 성막을 보는 순간
한국에도 성막을 만들고 싶은 소원이 분수대처럼 품어 올랐습니다.
자나깨나 그 생각이었습니다. 기도하여도 찬송을 부를 때도 오직 그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 제작에 들어 갔습니다. 많은 이들이 미쳤다고 하였고 헛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원이 오늘 날 우리 교회를 성막 교회로 만들게 하신 하나님의 첫 그루터기였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어떤 일이 미치도록 하고 싶어진다면
그 것은 그것을 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그루터기입니다.
생각에 민감하고 소원에 예민하여야 합니다.
물질의 그루터기
하나님은 있는 물질을 가지고 기적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이 많든지 적든지 물질의 그루터기임을 인정하고 사용하여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열왕기상 17장 이야기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으로 갔습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시내가 다 말라 있을 때였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도착하였을 때였습니다.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 17;12)
엘리야는 그 집으로 가서 마지막 떡을 먹고 축복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왕상 17;14)
비내리는 날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사라지지 않고, 기름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물질의 그루터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을 때도 그랬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던져라.”
뱀이 되었습니다. 다시 집으니 지팡이로 바뀌었습니다. 그 지팡이로 14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내게 있는 것으로 기적을 주십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물질이 그루터기입니다.
종로 빵집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오른 팔을 잃었습니다.
그 곳에 갈고리를 달았습니다. 빵을 뒤집는 데 능숙하였습니다.
자기 손의 일부가 아니라 아예 자기 손이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벳세다 들에서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허기지도록 말씀을 증거하셨고 사람들은 허기지도록 떠나지 않았습니다.
빈 들이었습니다. 해가 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들이 돌아가다가 허기져서 쓰러질 것같으니 먹을 것을 주어라.”
이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빈들입니다. 5,000명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저녁입니다. 5,000명이 먹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입니다.”
“200 데나리온, 약 2,000만원도 부족할 것입니다. 돈도 없습니다.”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모두가 사실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드레가 오병이어를 들고 있는 어린아이 손목을 잡고 예수님 앞에 와서 말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니이까?”(요6;9)
예수님은 오병이어 그루터기를 하늘을 향하여 드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12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하나님께 지금 있는 것을 가지고 축복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을 그루터기로 축복하십니다.
얼마 전에 나는 김동진 목사님과 고은아 권사님과 이탈리아 프로렌스에 갔었습니다.
국회 앞에 다윗상이 멋지게 서 있었습니다. 뒷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501년 플로렌스 시의회는 미켈란젤로에게 거대한 대리석을 주면서 다윗 상 조각을 의뢰하였습니다.
그 대리석은 여러 조각가들의 조각 시도로 곳곳에 상처가 난 상태였습니다.
차라리 원석 그대로를 주면 조각하기가 좋았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상처난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를 받고 곰곰이 구상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차라리 손이나 대지 말지. 이런 망가진 돌을 가지고 어떻게 조각을 해!”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그 상처를 오히려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상처를 조각의 일부로 사용하였습니다. 잘 다듬었습니다. 3년 만에 다윗 상을 완성하였습니다.
불후의 명작이 되었습니다. 봉헌하는 날 교황이 와서 보고 콧날이 조금 높다고 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사다리와 망치를 가지고 조각앞으로 갔습니다.
콧날을 쪼아내는 첫처럼 하면서 망치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흰가루를 가지고 올라가 뿌렸습니다.
멀리서 교황은 정말 쪼아내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대로 두고 내려와서 물었습니다.
“교황님! 어떻습니까?”
교황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됐다.”
가지고 있는 것이 축복의 그루터기입니다.
말씀의 그루터기
하나님의 말씀이 축복의 그루터기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그리고 창세기 12장 4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창 12;4)
그루터기 아브라함 한 분이 갈데아 우르에서 가나안으로 왔습니다. 가나안에 심겨졌습니다.
아브라함 하나가 민족이 되었습니다. 오늘 날 이스라엘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말씀하나 붙들고 아브라함은 이주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그루터기는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의 그루터기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 이야기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28)
마리아는 놀랐습니다. 무서워하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다시 말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位)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말했습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 말씀이 그루터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루터기입니다.
욥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하나만 그루터기로 붙잡고 씨름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모든 사람을 다 상실하였을 때 오직 말씀하나 그루터기로 붙잡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8-10)
다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 그루터기만 붙잡으면 피어날 수 있습니다.
회복할 수 있습니다.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루터기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초목을 베어 내고 남은 뿌리와 그 부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언젠가는 그 곳에서 싹이 나고 다시 자라나게 됩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그 나무는 죽은 나무가 아닙니다.
그루터기만 있으면 그 나무는 생명이 있는 나무입니다. 다시 자라날 소망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지금 바벨론에게 다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여자들은 정복국가 남자들의 첩이나 종이 되었습니다. 살아 남아 있는 사람조차도 절망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루터기들 때문에 언젠가는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루터기가 남아 있는 한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욥은 자녀들이 다 죽고 병들어 잿더미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내도 욥을 버리고 사람들도 욥을 버린 상황이었습니다.
보통 사람같으면 자살이라도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 때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무는 소망이 있어서 찍힐 지라도 다시 움이 날 것이다”(욥14;7)
욥은 그루터기를 보고 소망을 가졌습니다.
다 찍혀버리고 꺽여 버렸다고 하더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움이 돋을 것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기독교 사회학자 토니 캄폴로(Tony Campolo)는
기독교역사에서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상실했던 상황들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그리스로 전했으며, 그리스인들은 기독교를 철학화했다.
그들은 로마로 전했으며, 로마인들은 기독교를 제도화했다.
그들은 영국으로 전했으며, 영국은 기독교를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그들은 미국으로 전했으며, 미국인들은 기독교를 기업화했다.”
그러나 그가 한 마디 더 하게 만들기를 소원합니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인들은 기독교를 말씀화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루터기입니다.
십자가의 그루터기
요한 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부버는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관계에는 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1. 계약관계입니다.
보통 사회는 계약관계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장과 사원의 관계입니다.
한 달 일해주고 계약한 월급을 받으면 됩니다. 학생과 학교도 그렇습니다.
돈내고 가르쳐주면 됩니다. 지하철, 비행기를 타는 것도 계약 관계입니다.
2. 혈연관계입니다.
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녀관계입니다. 끊을 래야 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은 혈연관계도 파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너무나 속썩이는 아들을 야단치면서 말했습니다.
“너를 낳지 않으려고 약을 먹고 낙태하려고 애를 썼다.
잘못되어 너를 낳았다. 끝내 네가 이렇게 속을 썩이는 구나!”
이 말을 들은 아들이 말했습니다.
“낳을 때부터 엄마 아들이 아닌 것을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날 때부터 나를 죽이려고 하였군요.”
그리고 즉시 가출하였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혈연관계도 요즈음은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3. 은혜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무조건적인 것입니다.
이유없이 무조건으로 주시는 관계입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관계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 관계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으로 보내셔서 우리 죄를 짊어 지고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중에 성경은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현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덱거는 현대인을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캄캄한 밤입니다. 망망 대헤에서 배가 파선하였습니다. 다 죽었습니다.
널조각 하나를 붙들고 언제 어떻게 될이지 모르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대인이다.”
고래밥이 될 지도 모릅니다. 상어 떼에게 먹힐 수도 있습니다.
굶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얼어 죽을 지도 모릅니다. 심한 파도에 먹힐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 기다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3.1운동 때 33인 중에 한 분인 신석구 목사의 간증입니다.
새벽기도를 드리는 데 갑자기 십자가의 보혈이 머리에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네게 좋은 집을 주지 아니하고 내가 지던 십자가를 주었다.”
신 목사님은 감격하여 펑펑 울었습니다.
“내가 어찌 주님이 지셨던 십자가를 질 수 있을 가?”
십자가만 지니고 있으면 그루터기가 되어 결코 쓰러지지 않스니다.
다시 소생하게 됩니다. 다시 큰 역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일하고 있는 옥타비아누스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 굉장한 귀신의 역사를 일으키고 있는 남자 무당 소메란 브란드(Someran Brand)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와 대결하든지 아니면 전도하지 말고
이 동네에서 나가든지 둘 중에 하나를 빨리 선택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130Kg의 거구였는 데 시범을 보여 주겠다며 목사님을 마당으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당에서 모이를 쪼고 있는 닭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더니 푹 쓰러져 죽었습니다.
다시 한번 하겠다면서 개를 노려 보았더니 또 개가 푹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무당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저렇게 죽던가 도망가든지 하라. 선택하라.”
그래서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보자.”
그리고 하나님께 엎드려 일주일간 간절히 금식으로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신 줄 믿습니다. 이기게 하옵소서. 십자가 승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드디어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는 의기가 양양하여 왔습니다. 둘이는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눈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생명을 건 싸움이었습니다. 한참 응시하다가 목사님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악한 귀신아. 물러가라.”
그는 죽은 사람처럼 땅바닥에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눈에서 독기가 다 빠져 있는 것을 순간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내 옆구리에는 황금 못이 몇 개 박혀 있는 데 뽑아 주십시오.”
정말 옆구리에는 금으로 만든 못 몇 개가 박혀 있었습니다. 살속에 깊이 박혀서 빠지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그 못을 붙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못아 빠질지어다.”
못이 서서히 나오더니 다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만 지니고 있으면 그루터기가 되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막10;27)
아무 나무나 다 베게 되면 그루터기가 되어 나중에 싹이 나는 것은 아니랍니다.
상수리 나무는 나무를 베게 되면 그루터기가 남습니다.
그러나 소나무 그루터기는 썩어 버려서 죽어 버리고 말게 됩니다.
나무를 자르면 그루터기도 죽는 나무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타난 대로 밤나무나 상수리 나무는 나무를 잘라도
그루터기는 남아 있다가 언젠가는 싹이 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아무나 다 그루터기 믿음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중에는 여러 시람들이 생겼습니다.
(1) 바벨론 사람들에게 아부하여 소위 출세하여 포로 해방 때 돌아 오지 않은 사람들이 수다하였습니다.
(2) 포로로 잡혀 갔다고 절망하여 한숨만 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3)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술과 쾌락으로 그 날 그 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4) 그러나 그루터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지닌 사람만이 그루터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모두 끝난 것같았지만 그루터기 몇 사람을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었습니다.
생각이 그루터기입니다.
적은 물질이 그루터기입니다.
가장 놀라운 그루터기는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튼튼히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이 신유의 역사로 이루어주십니다.
기적도 주십니다. 막힌 것도 열어 주십니다. 굽은 것도 펴주십니다.
십자가는 놀라운 그루터기입니다.
- 갈보리교회 강문호 목사의 보혈의 강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