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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이곳저곳에서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어린이날’의 진짜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는 많지 않은 듯하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 해방을 선언한 날’임을 많은 이가 교과서로 배웠는데, 다들 그 의미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미래이자 희망인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는데, 대체 무엇이 ‘어린이 존중’일까. 어린이가 ‘행복한 오늘’을 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며, ‘어린이 해방’을 외쳐온 이주영 어린이문화연대 상임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어린이 문화 운동사》(보리)·《어린이 해방》(우리교육)을 통해 어린이운동의 중요성을 알리고, 말꽃모음 시리즈(단비 출판사)로 김구·신채호·한용운 등 걸출한 근대 사상가들 정신을 쉽게 풀어서 전하며, 각종 동시집·그림책·동화를 펴냈다. 줄곧 어린이 곁에 머물러온 이주영 대표와의 인터뷰는 4월 7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어린이문화연대 사무국에서 진행했다.
어린이문화연대는 어린이 문학가이자 운동가인 방정환·이오덕·권정생 등의 사상을 잇는 단체로, 2010년 세워졌다. 어린이운동 연대 활동과 정보 교환, 모임 등을 위한 사랑방을 자처한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올해가 어린이날 100주년이다. 어린이날에 담긴 본래 의미를 설명해달라.
새로운 민주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어린이’를 새롭게 발견한 날이다. 어린이날의 의미를 따지려면, 3·1만세운동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3·1운동은 동학혁명 이후 흘러온 여러 갈래 민족운동들이 저수지처럼 모여 활화산처럼 폭발한 사건이다. 고종 황제가 1919년 초에 돌아가시면서 ‘군주제’가 백성들 마음속에서도 완전히 끝이 났고, 새로운 나라, 민주제 국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이 흐름이 3·1운동으로 이어졌다. 백성들의 민주 의식이 높아지면서 농민운동·여성운동 등 다양한 ‘사이 운동’들이 불붙었는데, ‘어린이운동’도 그중 하나였다.
3·1운동을 실제로 1년간 더 끌고 나간 이들은 18세 미만 어린이들이었고, 3·1운동을 경험한 아이들이 스스로 소년회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린이들 모습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새 시대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던 어른들이 도움을 줬다. 1921년쯤에는 많은 단체가 생겼는데, 방정환 선생님이 지도한 천도교소년회도 이때 만들어졌다. 이 소년회가 1년 뒤 1922년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해 첫 행사를 열었다.
요즘은 ‘어린이’ 개념을 유치하게 보고 낮추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처음 생길 때부터 ‘젊은이’ ‘늙은이’와 마찬가지로 높임말이었다. 당시 어린이는 ‘아해’ ‘아이놈’으로 불렸는데,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에 ‘이’를 붙여 낯설지만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아이를 높여 부르지 않는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는 자라나는 ‘싹’이며, 새 시대의 주인이라고 했다. 어른들은 뿌리가 되어줘야 한다고 봤다. 새 사람이기에 어른보다 높으며, 항상 독립된 시민으로 대접하라 그랬다.
- 요즘은 어린이날을 ‘어린이를 위해 하루 시간 내서 선물을 사주거나 놀아주는 날’로 인식하는 듯하다.
어린이날이 시작되고 1년 뒤인 1923년 5월 1일, 어린이 해방 선언이 있었다. ‘보호’와 ‘권리 신장’을 넘어 ‘해방’ 관점에서 이뤄진 어린이 선언은 인류 역사상 최초였다. 어린이날은 본래 어린이들이 모여 ‘어린이 해방’을 주장하면, 어른들은 반성·다짐하는 날이었다. 일제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계속 탄압을 받아 1928년에 공휴일인 5월 5일로 날짜를 바꾸고 이어가지만, 1937년 지도자들이 검거·구속되기도 하면서 강제 해산을 당했다.
해방 이후 1946년 5월 5일에 어린이날을 다시 시작할 때 처음 정신을 살리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나고서부터는 어린이날이 축소되었고, ‘선물 사주는 날’ ‘놀아주는 날’로 인식되었다. ‘어린이가 주인임을 주장하는 날’에서 ‘어린이에게 시혜를 베풀어주는 날’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부터 처음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큰 변화는 없었다.
2015년부터 어린이날 처음 의미를 되찾자는 운동을 하고 있다. ‘어린이 주간’을 보낼 때 5월 1일에는 어린이날 본뜻을 되새기고, 5월 5일은 소비지향적이지 않은 창조적 활동으로 지금처럼 아이들과 재밌게 놀아주면 좋겠다.
이주영 대표는 서울 시내 초등학교에서 30년을 일하다가 암이 발병해 교장에서 퇴임한 후로 어린이문화연대에서 활동해왔다. 이오덕 선생님에게서 나눠받은 교육사상을 더 많은 교사에게 나누고자 연구를 이어간 그는, 백석대학교 기독교문학전문대학원에서 ‘이오덕과 어린이문학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대표님이 꿈꾸는 어린이 해방 풍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어린이가 어른에게 억압받거나 조종당하는 데서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기쁘게 살면 좋겠다. ‘어린이 존중’이 어린이 해방을 위한 밑바탕이다. 어른의 물건이나 욕구 충족 혹은 대리만족 대상으로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을 끊어내야 한다. 많은 학부모가 여기에 묶여있다. 어린이는 ‘지금’ ‘이곳’에서 행복해야 한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힌 삶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크게는 노동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어린이가 나중에 커서 일할 때 어느 직종, 어느 직위, 어느 현장에 있든지 인간다운 대접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정규직 만들려고 ‘0-18세’라는 가장 중요한 시기를 붙잡아놓는 게 아닌가.
당장 현실에서 어린이를 존중하려면, 어린이 의견을 정말 귀담아들어야 한다. 단적인 예를 들겠다. 초·중·고등학교 학생회가 있지 않나. 학생회 회의에서 내린 결정이 학교 의무나 규칙에 반영되는가? 의논해서 결정을 내렸는데도 어른들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어린이들이 어떻게 진실하게 자기주장을 하려 하겠는가. 어린이 회의, 학급 회의에서 사안이 결정되면 담임이나 교장이 들어줘야 한다. 마치 정부가 국회에서 정한 법을 실현하듯이 말이다. 들어주기 힘든 내용이 있으면, 왜 힘든지 충분히 설명해줘야 한다. 아이들이 이해해주면 고마운 거고, 이해하지 못하면 들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게 민주 사회의 기본이다.
학교 운영위원회가 있다면, 학생들도 대표로 들어가야 한다. 총 9명이면 학생 3명, 학부모 3명, 교원 3명으로 구성하면 좋겠다. 학생 대표의 경우, 전문 지식을 보완해줄 후견인을 같이 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문집을 만든다면 편집자나 기자를, 법률을 다루면 지역 변호사를 일정 금액을 주고 데려오면 어떤가. 그러면 동등하게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다. 학교에서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대학 가서’ ‘취직하고 나서’라는 핑계로 자꾸 미룬다면 세상은 유보될 수밖에 없다. 어린이들이 지금 이 자리에서 스스로 내린 결정으로 무언가 바뀌는 경험을 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집안 사정을 곧잘 숨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들을 가족의 한 사람으로 본다면, 권리를 인정해주고 집안 사정을 정직하게 나눠라. 경제가 힘들면, 정확하게 설명해주면서 솔직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다 이해하고 도우려 한다. 방정환 선생님은 말했다. “아이들한테는 항상 보드랍게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보드랍게’라고 했다. 아무리 어려도 신기하게 다 알아듣는다. 이것이 어린이 해방으로 가는 길이다. 항상 대등한 관계에서 독립된 인격체로 대해주기를 바란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100년 전 유산을 이어받아 어린이운동에 힘쓰고 계신다. 당시에 어린이 해방 정신을 선구적으로 내세운 방정환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 같다.
방정환 선생님이 잡지 〈어린이〉에 쓴 글을 읽으면서 1980년대부터 공부해왔다. 나중에 한국방정환재단 전집 편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그분이 쓴 모든 글을 보게 되었다(《정본 방정환 전집》은 방정환 탄생 120주년을 맞는 2019년 창비에서 총 5권으로 완간되었다. ― 편집자 주). 1920년대 한 지식인이 보여준 엄청난 생각의 폭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많은 분이 읽었으면 싶어서 ‘정본 방정환 전집 읽기’ 모임을 열었다. 열 살 어린이부터 여든 살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한다.
모임을 해보면, 다들 ‘방정환 선생님이 100년 전 글을 썼는데도 어쩜 이렇게 쉽고 재밌게 썼느냐’며 놀란다. 방정환 선생님은 우리말 보급, 한글 대중화에도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잡지 〈어린이〉를 한 호에 10만 권씩 찍었으니까. 연 단위로 따지면 얼마나 많이 읽었겠나. 이때 선생님이 만들어놓은 문체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런 분이 역사적으로 저평가돼있는 것 같아 슬프다. 방정환의 어린이 해방 정신은 세계 인류가 공유해야 할 유산이라고 생각하는데,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적다. 어린이가 천대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 평소 어린이에게 헌법을 가르쳐야 하고, 투표권 또한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해오셨다. 어린이를 ‘정치 주체’로서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말인데.
헌법을 가진 민주주의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투표로 의사를 표현한다. 참정권은 차별 없이 주어져야 한다. 인류가 계속 참정권 범위를 확대해가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투표할 수 있는 나이가 21세였다. 임시정부 때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동안 그러다가 20세가 됐다. 20세에서 19세로, 19세에서 18세로 오기까지는 각각 20년 정도 걸렸다. 북유럽 국가들은 16-17세에게 투표권을 준다.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기본 17세여야 한다고 본다. 주민등록증이 그때 발급되니까 투표권도 같이 주면 좋겠다.
17세 미만 아이들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국회의원 비례대표가 50명 정도인데, 그중 10%인 5명은 어린이·청소년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뽑자. 투표는 3년씩 차이를 둬서 14-16세가 1명 뽑고, 10-13세가 1명 뽑도록 하는 식으로. 실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면, 어린이를 향한 관심이 높아질 거다. 국회의원 5명을 어린이·청소년 대표로 뽑는다고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진보하지. 지방자치단체 비례대표를 뽑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주영 대표는 2019년부터 ‘방정환 세계화 운동’에도 힘쓰는 중이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그리스·스웨덴·독일·영국·폴란드 등에서 어린이 문화운동 및 교류 활동을 진행한 바 있다. 2023년에는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 행사로, 메타버스 등을 통해 100개 나라 어린이 운동가·문학인이 교류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국제포럼도 기획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대표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교직에 30년 있었고, 계속 어린이 문화운동을 펼쳐왔다.
교육자 집안이다. 아버지도 교장으로 퇴직했다. 집안에 초등학교 교사를 한 사람을 다 합치면 25명 정도다. 학교 관사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부터 학교 속에서 자랐다. 학교와는 늘 5-10분 거리에서 살았다. 교사일 때는 조금만 집이 멀어져도 불안하더라. 먼 곳에 발령받으면 바로 학교 옆으로 이사할 정도였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백범일지》 때문이다. 《백범일지》에서 아름다운 나라, 특히 세계 최고의 문화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문화는 평화를 향해야 하는데, 교사 손으로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 충격을 받았다. 교육 중 가장 중요한 기본 교육은 초등학교 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때는 유치원이 적었으니 초등학교가 가장 기초였다.
어릴 적에 학교를 강원도에서 다녔다. 현직으로 발령받은 곳은 서울 초등학교였다. 와보니 수용소, 감옥 같더라. 나 자신이 간수처럼 느껴졌다. 사표를 내려 했는데, 이오덕 선생님이 쓴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를 보며 마음을 돌렸다. 읽으면서 놀랐다.
- 어떤 부분에서 놀랐나.
일단 당시 이오덕 선생님이 52살, 내가 22살이었는데, 30년 나이 차는 까마득하지 않나. 그런데도 어린이와 교육 문제에 대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품고 계셨다. 예를 들면, 나는 소풍 간다고 했을 때 담임이 아이들과 밥을 같이 안 먹고, 교사들끼리 먹는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우유를 나눠줄 때 아이들이 나르지 않나. 조그마한 아이 둘이서 우유가 가득한 무거운 통을 낑낑대면서 들고 4층까지 옮기더라. 왜 아이들을 시키나. 우유 장수가 직접 나눠주면 되지. 밖에서는 하나만 팔아도 가져다주면서….
또 당시 학교에서 저축심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아이들을 반강제로 정기예금 들게 하고, 각 반 교사가 돈을 걷어 계산한 뒤 은행에 주게 했다. 우유 문제도 그렇지만, 이 문제를 놓고 교장과 싸웠다. 당시 전교생이 1만 2천 명이었는데, 다 합치면 한두 푼이 아니다. 이만큼 많은 고객이 다 예금하는 셈인데, 고객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 직접 오는 게 맞지 않나. 결국 바꿔냈다. 교문 앞에 조그마한 간이 창구를 만들어 직원이 한 명씩 왔다. 그때는 일주일 중 6일을 등교했으니, 토요일까지 학년별로 돌아가며 예금을 넣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줄을 섰다. 서로 자극받아 저축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내가 학교 떠나니까 싹 없어지더라.
《이 아이들을 어찌할 것인가》 서문에는 폴란드 한 교육학자가 자신이 데리고 있던 기숙사 아이들이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자, 1분도 떨어져 있지 않으려고 같이 가서 아이들과 죽음을 함께했다고 쓰여있었다. 그것도 놀라운데, 이오덕 선생님은 그 학자의 1/100도 안 되는 양심으로 이 책을 쓴다고 했다. 바로 이오덕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냈고,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오덕 선생님은 글쓰기 교육으로 많이 알려졌다. ‘모두가 글 쓰는 사회’를 항상 강조하셨다. 이분에게는 민주교육이 핵심이다. 사람들에게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니 글쓰기를 강조하게 된다.
교육이 민주화하려면 교사들이 다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노동자들과 농민들 삶을 나아지게 하려면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다 글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솔직한 자기 생활을 담은 글을 보여주며 서로서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글을 쓸 때 민주화된다고 봤다. 누구나 쓰고 읽으려면 우선 글이 쉬워야 한다. 쉬운 말, 우리말로 써야 한다.
나도 교사로서 보고 들은 아이들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이 써서 발표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현직에 있을 때는 계속 써냈다. 이오덕 선생님 덕분에 아이들 글을 통해 하는 민주교육을 배웠고, 지혜를 더하며 그나마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그 마음을 이어받아 지금까지도 문화운동을 하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어린이가 잡지를 자주 읽도록 해달라고 당부하는 글을 봤다. 잡지 읽기를 권장하는 까닭은?
잡지는 ‘잡’(雜)지다. 한 책에 잡다한 주제가 담긴다. 아이들이 더 다양한 세계에 관심을 두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아이들은 보통 자기 좋아하는 것만 읽잖나. 잡지를 줘도 좋아하는 부분부터 읽지만, 갖고 있으면 다른 내용도 보기 마련이다. 만약 월간지라고 하면, 다달이 아이들 이름으로 책이 간다. 자기 이름으로 정기 배달 오는 잡지를 뜯는 경험을 해보는 일 자체로도 좋다. 책과 만나는 큰 바탕도 된다.
가능한 한 가정마다, 특히 유아나 초등학생이 있다면 잡지를 꾸준히 받아보면 좋겠다. 권할 만한 종합잡지로는 〈개똥이네 놀이터〉와 〈고래가 그랬어〉가 있다.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어린이〉지 계승을 자처하는 〈개똥이네 놀이터〉는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다룬다. 〈고래가 그랬어〉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주로 다룬다. 두 잡지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전문지들은 아이들 관심 가는 대로 찾아보면 좋겠다.
-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게 하는 경우도 많다. 독서 지도를 할 때 주의할 점은?
강제로 읽게 해서는 안 된다. 강제 독서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독후감 대회를 열어 억지로 시키기. 대회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런 방향을 만들어가는 데 반대한다. 다른 하나는 어른들 편에서 ‘이 책 좋아’라며 무조건 사다 주고 읽게 하는 일. 독서의 한 측면이지만, 주가 돼서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어린이가 모든 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생활과 연결해서 즐겁게 읽어야 한다.
-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게 좋은 방법 같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한 달에 한 번 서점에 데려가 책을 고르게 하셨던 일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1980년대 이후 학부모/교사 독서 교육을 해오면서 계속 주장한 내용이다. 내 강의를 들은 분인지 모르지만, 이 아이디어를 실천한 분이 있고, 그 자녀인 당사자를 만나 무척 반갑다.(웃음) 1980년대만 해도 서점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낸 아이디어가 한 달에 한 번 부모가 자녀 손잡고 서점에 가서 자유롭게 한두 권 고르게 하고, 부모도 고른 뒤 함께 외식하는 것이었다.
밥 먹기 전, 먼저 서점에 가서 충분히 고르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 여유 있게 시간을 주면, 구입하지 않아도 많은 책을 들춰볼 수 있다. 다만, 만화책이든 공룡책이든 우스갯소리를 담았든, 자녀가 고른 책은 절대 뭐라 하지 말고 사줘야 한다. 아이들은 흥미를 좇으니 부모 눈에 저질스러운 책을 고를 수도 있다. 그래도 존중하고 인정해줘라. 읽히고 싶은 책이 있다면, 부모가 따로 사라. 그 후 책을 같이 읽고 밥 먹으면서 대화 나누는 게 중요하다. 부모는 따로 산 책을 읽으면서 재밌게 이야기해주면 어떤 아이가 아빠 엄마가 즐겁게 본 책을 안 보려 하겠는가. 조화롭게 중화해가야 한다.
이주영 대표가 기획하거나 집필한 책들. ⓒ복음과상황 정민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린이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라고 그랬다. 하나님 모시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소리가 많이 들리면 좋겠다. 어린이운동 초기에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 기독교에서 소년회와 주일학교를 통해 방정환 선생님 생각이 많이 퍼졌다. 이오덕 선생님도 어렸을 때 주일학교에서 방정환의 어린이 문화운동을 세례받다시피 했다. 이오덕 선생님이 주일학교 교사로 있을 때 권정생 선생님이 주일학교 학생이었다. 같은 교회에서 영향을 받았다. 예수님도 ‘천국에 가려면 어린이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았나.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현북스)를 교회 아이들에게 많이 읽혀주고, 교회가 정말 어린이에게 잘해줬으면 좋겠다. 어린이를 존중하는 교회가 늘어나기를 바란다.
첫댓글 어린이를 존중하는 교회~♡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