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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민중의 삶 담아낸 대서사시 |
무당들 신명나면 수십만 자 노래가사 ‘줄줄’ … 단순 재생 아닌 본능에 강렬한 호소 |
필자는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고등학교 때 ‘취주악단’이라는 밴드 활동을 했다. 가로늦게(‘뒤늦게’의 사투리)클라리넷을 배우고 연주하면서 바람이 났다. 어떻게 하면 음대에 갈 수 있는지에 골몰했다. 당시만 해도 시골에서 음대에 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선 악기를 구입하는 것부터가 간단치 않았다. 소 한 마리를 팔아야 클라리넷을 살 수 있던 시절 이었다. 1970∼80년대 농촌에서는 소가 가장 큰 재산이었다. 뿐만 아니라 소는 일꾼 중 일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소를 팔아야 클라리넷을 살 수 있으니…. 결국 1년여 동안 부모님 눈치만 살피다가 말 한마디 못해보고 음대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 후로 나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지고 헤맸다. 어둡고도 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나를 위로해준 것은 밥 딜런 과 존 바에즈의 노래였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즐겼으면서도 나는 누가 노래를 불러보라고 멍석을 깔아주면 금세 주눅이 들고 마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무엇보다 노랫말을 기억하는 노래가 몇 곡 안 되기 때문이다. 공간지각력이나 창의력은 좋지만 기억력이 나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나에게는 사람들 이름을 기억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를 지칭할 때,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그의 이력이나 그를 대표하는 사건 혹은 이미지를 대신 말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친구 중에 노래 전주만 시작되면 노랫말이 절로 흘러나오는 녀석이 한 명 있다. 노래책 몇 권 분량이 머릿속에 입력돼 있어서 밤새 불러도 레퍼토리가 끝이 없는 친구다. “어떻게 저 많은 노랫말을 다 기억할까?” 내게는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 신화를 공부하면서, 굿노래가 어떻게 몇 천년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을까 궁금해했던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어떻게 그 ‘길고도 긴’ 신화의 노랫말이 수천년 동안 사람의 머릿속에 기억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신의 노래 5만 줄 35만 자 현재 우리 신화는 무당이 굿할 때 부르는 노래, 즉 굿노래로 남아 있다. 물론 문자로 기록된 건국신화도 있지만, 건국신화는 우리 신화의 일부분일 뿐이다. 우리 신화의 본령은 굿노래에 있다. 여기서는 수천년을 무당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굿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자들은 굿노래를 보통 무가(巫歌)라 부른다. 하지만 무당들은 ‘신의 노래’, 즉 신가(神歌)라고 한다. 오늘날 채록된 무당의 노래 몇 가지를 보자. 현용준이나 진성기 선생이 채록한 제주도 굿노래는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진성기 선생의 ‘제주도 무가본 풀이사전’은 해설을 포함해 827쪽에 달하며, 해설을 빼도 714쪽이나 된다. 진성기 선생이 ‘후기’에서 30년 동안 채록하고 풀어서 해설을 썼다고 했는데, 젊은 시절 30년은 한 사람의 ‘평생’이나 다를 바 없이 중요한 시기다. 대충 계산해도 72줄×714쪽=5만1408줄의 노래며, 노래 자수를 계산해보면 약 7자×50000줄=35만 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되는 신당본 풀이를 빼더라도 절반 이상을 암기해야 큰무당이 되어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요즘 대중가요 한 곡을 약 8줄로 계산해서 큰무당이 불렀던 굿노래의 양을 따져보면 대중가요 약 6300곡에 해당하는 것이다. 동해안 무당의 노래도 대단하다. 울산 동구 일산동의 별신굿을 채록한 박경신의 총 5권으로 되어 있는 ‘동해안별신굿무가’의 내용을 모두 합치면 3000페이지가 넘는다. (계속)
무당이 춤을 출 때 왼손에 들고 흔들던 청동방울로 국보 146호인 청룡팔주령(왼쪽). 옛 시대에는 논밭의 파종이 끝나면 남녀가 현장에서 풍요를 빌며 성행위를 했는데, 이것은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일종의 제의적 주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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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미로운 얘기에요 호두님~
그렇게 긴 무가는 요즘 기독교 관점에서 보면 '삼신님을 향한 찬송가'와 같은 것이겠지요. 비교하기 좀 뭣하지만, 기독인들이 유태역사를 찬송가 가사삼아 부르니 외워부를 수 있는 것과 비슷한걸까요?
무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와 길흉화복을 함께하는 신들이라 생각하면 친근하기 이를데없고요.~~^^
우리의 신들을 우리 식대로 잘 모시는 참 무당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25편이나 됩니다. 꾸준히 올릴게요.
굿노래를 연구하면 좋겠네요. ^^
연구가 꾸준히 되고 있는 모양이라 다행입니다.
좋으신 글오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