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임병식 rbs1144@daum.net
입안에 박하사탕 향이 번지듯 머릿속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다. 뜻밖에도 그것은 현대수필이 아니라 고전수필을 읽을 때 찾아왔다. 강희맹의 「오줌통 이야기」와 박지원의 「도로 눈을 감으시오」를 읽으며 오래 잠들어 있던 감각 하나가 문득 깨어났다.
세태를 풍자하고 인간의 허위를 드러내는 그 이야기들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왔어도 낯설지 않았다. 권력의 오만도, 인간의 위선도 시대에 따라 옷만 갈아입을 뿐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봉생마중 부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
쑥이 삼밭 가운데 자라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게 선다는 뜻이다. 사람 또한 자신이 머무는 자리와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빚어진다.
수월선사도 그러했다. 글을 몰랐지만 사람을 통해 배웠고, 가르침을 말로 옮기기보다 삶으로 받아들였다. 한 걸음 한 걸음 수행의 길을 걸어 마침내 자신의 생애를 수행으로 만들었다. 세상을 떠날 때 머리에 짚신을 이고 갔다는 일화는 그가 무엇을 품고 살았는지를 말없이 전한다.
생각해 보면 사람은 거울 앞에서만 자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거울이 되고, 어떤 말은 거울이 된다. 우리는 그 거울들 속에서 배우고 경계하며 조금씩 자신을 다듬어 간다.
문득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가난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평생 거울 없이 살았다. 대신 사람을 거울로 삼았다. 바른 모습은 따라 배우고, 그릇된 모습은 스스로 경계하며 자신의 삶을 가꾸어 왔다.
어느 날 그는 깨진 동경 하나를 주웠다.
냇가에 앉아 그것을 정성껏 닦고 있는데 지나가던 이가 물었다.
“무엇을 하시오?”
젊은이는 손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내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잠시 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지금껏 남을 통해 나를 다듬어 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어떤 얼굴이 되었는지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알게 된다. 그가 보고 싶었던 것은 얼굴이 아니라 살아온 삶의 모습이었음을.
얼굴은 거울에 비치지만 삶은 비치지 않는다. 살아온 시간의 결도, 마음이 지나온 길도 유리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진짜 거울은 손에 든 동경이 아니다. 타인의 삶을 통과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흐려지지 않을 때 사람은 비로소 얼굴보다 삶을 먼저 돌아본다.
어느 순간 거울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자신을 비추어 온 시간의 깊이이며,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가장 오래된 스승이다.
(2026)
첫댓글 푸른솔문학 봄호
사람은 늘 배우고 자신을 돌아 봐야 사람다운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거울을 보고 외모만 닦은 들, 행동이 변변치 못하면 봉변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좋은 例話를 통해 삶을 되돌아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전에 카페에 글을 올렸는데 검색이 되지 않아 다른 곳에서 찾아서 다시 올려놓았습니다.
내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어디 한 군데 잘난 곳을 찾으려는 것인지 흠을 찾으려는 건지 참 아리송해집니다 거울 속에서 편견없는 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여 거울 삼아 고치고 가다듬기를 그치지 않아야 될 것같습니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 자기를 돌아본다는 의미가 크지 않나 생각합니다.
얼굴 다듬기 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자기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태도도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봉생마중 부부자직(蓬生麻中 不扶自直).
이 말은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