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가스라이팅(심리적 지배) 국가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학회를 나오니 이제야 정신이 좀 드네요.”
전북에 사는 30대 여성 A 씨는 2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최면심리학회’의 운영자인 전북경찰청 소속 박모 경위(49)를 두고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2014년부터 최근까지 8년간 이 학회에 몸담으면서 자신이 겪은 일을 돌이켜 보면 ‘몸서리쳐진다’고 했다.
최면을 통한 프로파일링(범죄심리분석) 기법으로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박 경위는 학회원들에게 수년간 ‘갑질’과 성범죄 등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전 학회원 4명이 최근 강간과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 다양한 혐의로 박 경위를 검찰에 고소한 가운데 피해를 당했다는 추가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 “자격증 미끼로 잡일 강요해”
A 씨는 심리학을 배우기 위해 2014년 박 경위의 학회에 가입했다. 박 경위가 유명 시사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걸 보고 믿음이 갔다고 한다. 그런데 2018년경부터 박 경위는 노골적으로 A 씨에게 사적인 일을 시켰다고 했다.
A 씨는 “박 경위가 전남 신안군에 있는 자신의 땅에서 농약치기, 페인트칠 등 잡일을 하라고 시켰다”라며 “거부하면 ‘최면 관련 자격증을 못 따게 하겠다’는 식으로 나와 안 할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A 씨는 박 경위의 압박 탓에 억지로 땅을 비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갈취를 당했다는 주장도 했다. A 씨는 “박 경위가 자신이 1300만 원에 매입한 신안군의 한 섬 토지를 2주 만에 5700만 원에 사라고 강요했다”라며 “거절하면 학회에서 쫓겨날까 두려워 대출까지 받아서 샀다”고 밝혔다. A 씨는 2018년부터 이 같은 방식으로 전남·북 지역의 토지 4곳을 강매당했다고 했다. A 씨는 또 박 경위가 교통법규를 위반해 신고를 당하자 “네가 운전했다고 하라”며 경찰에 거짓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2015년 이 학회에 들어간 40대 여성 B 씨는 2020년경부터 박 경위의 지시에 따라 거의 매일 2만∼3만 보를 걸었다고 한다. B 씨의 20대 딸은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 경위가 엄마에게 새벽 4∼5시경 메시지를 보내 걸으라고 시켰다”라며 “엄마가 늦잠을 자거나 걸음 수를 채우지 못하면 벌금 명목으로 박 경위에게 돈을 내야 했다”고 전했다.
○ 피해자들 “교수 아닌 교주”
피해자들은 박 경위가 학회에서 ‘교수’로 불리며 사실상 ‘교주’처럼 군림했다고 증언했다. A 씨는 “학회가 사이비 종교단체와 다름없이 운영됐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박 경위는 끊임없이 “다 너를 위한 것”이라며 학회원들을 세뇌하는 한편으로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발급하는 ‘임상 최면사’ 자격증을 주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또 상담하면서 채무 등 회원들의 약점을 파고들며 신뢰감을 쌓았다고 한다.
B 씨의 딸은 “아직 학회 소속인 엄마는 박 경위에게 항상 ‘죄송하다’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고 들었다”며 “엄마가 박 경위에게 심하게 맞은 적도 많다고 학회원들에게 들었지만 엄마는 나에겐 ‘꿀밤 정도 맞은 것’이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박 경위가 전문성을 악용해 피해자들을 가스라이팅한 것 같다”고 했다. 박 경위는 지난달 전북경찰청에서 직위해제됐다. 동아일보는 박 경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전혜진 기자
출처 :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30/115206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