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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빛보래 허공을 찢고☆]의 앞표지(우)와 뒤표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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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래 허공을 찢고]
김효중 시집 / 한국의 서정시 075 / 시학사(2013.12.25) /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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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보래 허공을 찢고
김효중
회폭에 펼쳐진 영혼의 세계
소리없는 시시로 읽는다
성모마리아 구원의 빛바다
아름다운 신비로움으로 다가오는데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푸른 세상
진선미 화살짓는 빛보래 허공을 찢고
*라파엘의 <의자의 성모>에 부쳐
시는
김효중
속가슴에 꽂히는 화살이라네
흐트러진 삶의 불향기 모듬은
채움
김효중
밝음은
어둠의 비움이 아니고
밝음의 채움이듯이
비움은
지혜의 채움이라네
고독은
김효중
영혼의 벗이다
마음만 비운다면
김효중
시궁치에 벙그는 연꽃도
저렇게
실겁고 고르로운데
풍진세상 사란들의 영혼
얼마나
의초롭고 헌걸찰가
비움은
김효중
비우는 것이 아니라
나 안에 있는
참나를
찾는 것이라네
껍지만 벗기면
김효중
나비 애벌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지만
명사들은 외면보살이 된다네
무등등無等等 행복은
김효중
영혼의 깊깔은
고독 속에서
찾아야 한다내ㅔ
가슴밭에
김효중
꽂힌 그 한마디
말에는 씨가 있다네
고운 말시 고운 열매
나쁜 말씨 열매
참나
김효중
물속에 빠져야
무링 보이고
삼매에 빠져야
참나가 보이고
마음귀 활짝 열어
김효중
하늘악기 무한공천 메우고
영혼 담은 무궁 가락 한것 띄우니
우주의 춤사위 장엄하게 펼쳐지누나
소리들의 축제에 마음귀 활짝열어
무직한 비구름 떼 맑게 걷히고
색바람에 생명길 트여 오네
소소리바람 생명바다 노을 위에
함성으로 번져 허이연 영혼들
생금생금 빛살아기로 태어난다
*악성 베토벤에게
가슴악기 후려 때라고
김효중
스페인 무희의 붉은 옷자락 사이로
아롱다리 비최는 아랑후에스 궁전
기타가 이슷이 걸어 나오자
갈마드는 음악의 소슬한 수풀이 평쳐진다
하프가 설거퍼 날개 퍼득이면
보첼리의 목마친 흐느낌
로드리고 가슴악기 후려때린다
닫혔지만 열려 있는 가슴창 너머
슬픔은 가거라 바람 따라
첫아이 유산한 아내 밤드리 부등켜안고
소름우는 기도가 구름꽃 몰고 날아오른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협주곡>에 부쳐
밀밭은 바람을 마구 흔들어
김효중
밀밭이 바람을 마구 흔든다
밭이랑 굽굽이 굽이쳐 흔들리는데
까마귀 그 위를 까악까악 날고 있다
오베르 들녘 삶의 찬란한 한 순간
그 너머 숨겨진 핏빛 절규와 격정
밀밭에 웅수리고 있던 죽음의 사신
고흐의 영혼 섬뻑 영원 속으로 솟쳐 오른다
*고흐의 <까마귀 떼 나는 밀밭>에 부쳐
풋여린 가슴빛 일렁이고
김효중
촛불리 꺼지는 순간
천국의 문이 열리며
가이없는 진리의 순살결 드러난다
천사는 날진한 날애를 펴고
쉬어진 백합곷 꽃다히 피어나니
순처녀 춧여린 가슴빛 일렁이고
수룻한 마음길 열리며 갑가워라
다시 찾은 고절과 평온 생각꽃 피고
*로베르 캠핑(1375~1444)의 <메로드 제단화> 중 수태고지를 보고.
허서그푼 선상 호텔에서
- 프라하 몰다우 강에서
김효중
돛대 우람한 범선 한 척
반세기 전 화려했던 몸체 퇴락해 가고
등불도 화려했을 선장실 불도 꺼졌네
희뿌연 기둥들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선원 승객 이미 세상 다 등지고
그 빈 배 지금은 허서그푼 선상호텔이라네
바다난끝까지 누비던 시절 기루며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 맞아들이네
강물은 파도에 시간을 출렁대며
오늘도 유유히 흘러갈 뿐
옛날 그 구름은 머흘머흘
밤밤 고요 몰다우 강물속에 번져 가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김효중
두꺼운 암흑의 장막을 찢고
르네상스 횃불 퍼언히 집힌
천재들의 땀 냄새 진진하게 그믄
좁은 골목길에는 삶의 불향기
자자히 여운을 남기고
휴머니즘의 요람 예술의 꽃
하공을 향그러이 품어 안는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피란체는 과거의 발자취가
헤아릴 수 없는 밤하늘
별 냄새처럼 실핏하게 나비치고
과거 현재가 공존하는 피렌체에는
인류 미래를 밝힐 지혜의
불꽃 구름이 감사납게 피어오른다
천국의 문이 열리는 순간
김효중
지중해의 루비알 홍보석
어야 소피아 대성당
시공을 이고 나르는 하늘 성당
아아라히 번져 오는 고요 밀물
오요한 영성이여
비금차게 나울친다
지혜로움 아름다움 신비로움의 gosh을
굽닐은 영혼의 불비늘 솟음치고
사바세계 불산지옥 허러랑한 삶을
으긋으긋 품겨 내주네
성령의 불비 폭포수 되어 쏟뜨리니
우아함 아름다움 가슴 속에 그믈어들고
아름다움의 새엄이 부룻 솟치네
삶의 의미 가슴 언어로 새엄돗고
가슴 언어 시의 물보라로 몰껴오네
릴라수도원에서
김효중
산개 울어 숲이 파르르 떨고
순례자들 다스운 눈물 고요를 적시니
영혼 물고너흐는 삶의 놀 잠재운다
발아래 무진무진 깔려 구르는 돌들
밟으면 밟을수록 솔바하는 하늘의 별밭
생명의 빛으로 깜빡 깜빡 이어져 오네
삼라만상 시시각각 온몸으로
성인의 말씀 마음하노니
일필휘지 바람붓으로
세상 번뇌망상에 불서러운 나는
사운사운 까치발로 뜰 안을 서성거리니
수세기 요한 성인의 숨결이 온 숲을 물들인다
*불가리아 릴라산맥 산자락에 위치함
손가락만 보고
김효중
그림자는 물속에 들어가도
물에 젖지 않고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도
청정한데
중생들은
손가락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하는
속빈 외면보살外面菩薩이라네
늦가실 이름 아침에
김효중
서리무지개 곱땃스레
산모랑 위에 떠오르니
곱닥한 안개이불 깔리는
두레산길을 억새비탈이
포스근히 안아 준다
아침 정금정금고요
산드르 산드르 바람자락에
살피살피 도사리 떨어지는 소리
까까중 실잠 깬다
밀알 한 톨
김효중
손에 받쳐 드는 순간
우주를 받드는 그 순간
밀알 한 톨 속에서
거룩해지는 내 몸
천둥벌거숭이 머리 갈비뼈 마디 속
으르렁거리며 만물 안에
꿈틀거리는 생명의 씨알
팽창하는 기운이여!
치어나는 꽃잎 소리에 천지가 들석들썩
저 거대한 대자연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인 내 시어詩語의 산맥이여!
마음꽃 솟음치니
김효중
아침이면 사내가 의기양양 집을 떠나고
속절없이 설거지통에 하루를 내맡긴다
우런히 흐느끼는 아내의 속울음소리
빈집은 곁눈으로 읽고 있다
별밭 저음의 등불이 켜질 때
둥근집 둥근방 꿈구며
온종일 집살이에
엉클어지고 흔들리던 아내
식솔들을 빈 가슴으로 껴안는다
지친 삶 속에서도 참행복 느껍다
조마로운 마음꽃 솟음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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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시를 창작하고 이해하는 문제는 언 정도 문화적 취향에 관련된다. 그래서 시 속에는 시인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욕구가 반영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시는 추향 이상의 보편적인 가치 척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요즈음 급변하는 시대에 이러한 생각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확고해진다.
이와 같은 나의 시적 경향을 반영한 시편들을 모아 내 번째 시집을 내게 되었다. 세상에 내놓기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금년이 나의 고희가 되는 해여서 가족들에게 작은 사랑의 징표로서 이 시집을 바친다.
2013년 겨울
김효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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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詩集 [※빛보래 허공을 찢고※]
[ 작품 해설 ] -
낯선 시, 예술시를 찾아서
김재홍
(문학평론가, 경희대 정년연장 명예교수)
김효중 시인에게 시란 과연 무엇인가? 이제 시는 그녀의 호흡이자 맥박이 되었다 말해도 되겠는가? 2009년 계간『시와 시학』으로 등단한 이래 만 4년 동안 그녀는 네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년에 한 권씩 시집을 펴낸 셈이니 가히 놀랄 만한 일이다. 양적인 면에서도 그러하지만 또한 그녀가 시집 1권에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천착하고 있는 우리말 찾아 쓰기와 새로운 시어 창조와 같은 일관된 노력은 시인으로서의 근본 사명을 올바로 인식하고 그것을 충실히 감당 실천하고 있어 믿음이 간다. 시적 사치와 허영관념의 유희로서 시 쓰기가 아니라 한결같이 진정성과 항상심을 가지고 시와 언어를 탐색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더 정진하여 시인으로서 큰 성과 이루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이번 시집에서 삶과 시에 대한 그녀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1. 다시 깨달음을 향하여
시인이 시를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왜 사느냐?”라는 질문처럼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쓰고 싶어서, 자기만족을 위해서, 쓰지 않고는 못 견딜 어떤 절실한 이유 때문에, “이유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처럼 시를 쓰는 데도 분명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김 시인에게도 시를 쓸 수 밖에 없는 절실한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녀는 큰 소리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방식대로 시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길이 크게 주목받지 않는 외로움의 길이라 할지라도 결코 뒤돌아서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 길 끝에 무엇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저 그녀는 깨달음의 삶을 위해 한 줄 시에 몰두하고 스스로 행복해한다. 그 자체가 바로 그녀에겐 시를 쓰는 절실한 이유가 될 것이다.
사람 사는 삶터에
아름참의 새싹이
엄돗지 않는
황무지가 있다네
시詩가 없는
-「황무지」전문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망망대해도 넘치게 한다네
-「한 방울의 물」전문
시가 없으면 사람 사는 삶터란 새싹 하나 돋지 않는 황무지가 된다고 시인은 생각한다. 그만큼 그녀에게 시는 삶을 삶답게 만들어 주는 원천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생명을 잉태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생명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낳아 잘 키우면서 결국엔 다시 새 생명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사라져 가는 것, 그런 과정 자체가 바로 삶, 그것이 아니겠는가? 그녀는 시를 통해 세계의 창조자, 우주의 조물주로서 신의 섭리를 깨닫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의 삶은 이제 시가 없다면 황무지나 진배없이 된 모습이라 하겠다.
황무지란 무엇이던가? “사람이 오랫동안 손을 대지 아니하고 그냥 내버려 둔 거칠고 쓸모없는 땅”을 말하지 않겠는가? 시가 없으면 시인의 삶도 황무지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이제 시인은 절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시인도 이제 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시가 곧 삶이요, 시 쓰기가 곧 그녀의 호흡이자 생명률이 된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밤을 고통과 절망으로 지새워 왔겠는가?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어야 망망대해를 넘치게 한다”는 단순한 듯한, 그러면서도 인간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이 생철학적 인식이 결국 인간 세상을 정화하며 여기에까지 견인해 왔다. 이러한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 그녀는 지난 70년 가까이, 한생을 다 바쳐 온 것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지”와 같이 얼마나 스스로를 달래며 위무하고 혹독하게 채찍하며 생의 난바다를 헤쳐 왔겠는가? 채워도 채워도 생의 망망대해는 넘칠 줄을 모르고 늘 허기진 입을 벌리며 그녀를 삼키려 했을 것이다.
가슴파도 무여지는
가시밭 가난고개라네
처음엔 살고 싶어 발버둥
나중엔 죽고 싶어 몸부림질
-「세상에서 가장 무선 것은」전문
가슴파도 무여지는 가시밭 가난고개를 마주하여 살고 싶어 발버둥치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어 몸부림치는 인생들 사이에서 시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으리라. 다행히 운이 좋아 일평생 대학교수라는 좋은 직업인으로 살아온 그녀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어려움과 각고의 노력이 어찌 없었겠는가?
나를 낮추면
마음귀 열리고
마음눈 뜬다네
-「내 탓이오」전문
물속에 빠져야
물이 보이고
삼매에 빠져야
참나가 보이고
-「참나」전문
“내 탓이오”를 외치며,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 자신을 낮추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뇌의 물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겠는가? “물속에 빠져야/물이 보이고//삼매에 빠져야/참나가 보이고”라는 그녀의 깨달음은 그녀가 자신의 본모습을 깨닫기 위해 얼마나 고뇌하고 치열하게 분투해 왔는지를 짐작케 해 준다. 그녀가 시를 쓰는 일에 열심을 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2. 고유어 되살리기와 시어 창조의 길
그녀가 제1시집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 온 고유어 찾아 쓰기와 새로운 시어 창조에 대한 노력은 시인으로서 그녀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동인으로 작용한다. 난해하고 현기벽에 빠져 비평가들에게 화젯거리가 되는 시를 써야 주목을 받는 오늘날 시의 한 풍토 속에서 이미 어제의 언어가 되어 사전 속에 갇혀 있는 우리 고유어를 새삼스럽게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오히려 그런 노력은 낡은 구시대의 유물을 들추는 것과 같다며 쓸모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실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성경』구절이 있지 않은가? 새로운 것도 금방 낡은 것이 된다는 뜻으로 단순히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오늘 새로운 것은 결국 어제의 낡은 것 토대 위에서 만들어지는 온고이지신의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어제 없는 오늘이 어찌 있을 수 있으며, 오늘 없는 내일이 어떻게 존재하겠는가? 그렇게 본다면 우리 고유어를 오늘에 되살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어제의 언어를 단순히 오늘로 가져와 사용한다는 1차원적인 의미를 넘어서서 오늘의 정신과 감수성으로써 언어를 새롭게 재창조하는 작업이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김 시인의 이러한 작업은 그야말로 시인이라면, 또한 시인의 숙명을 깊이 자각한 사람이라면 누구도 간과해서는 안 될 소중한 권리이자 신성한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방 안 가득 파도가 아디지오로 되울림치다가
허공을 찢고 들난이 바람에 비자닌다
엊그제 떠나간 가을의 쓸쓸한 등짝
산비알 벌써 돌아 보이지 않는다
빨가벗은 나무 한 그루 성에꽃에 흔들리는데
맑은 날 모아 놓은 햇살대롱을 제 몸 안으로
끌어내어 움치는 내 젖은 가슴 등불을 켠다
이내 밝고 다슷해진다
-「내 젖은 가슴 등불을 켠다」전문
“되울림치다가/들난이/비자닌다/산비알/움치는/다슷해진다/햇살대롱” 등 시 한 편 속에 고유어와 조어가 빈번하게 활용 된다. 시인이란 누구이던가? 흔히 ‘시詩’를 한자로는 ‘言+持’라고도 한다. 이때 ‘持’의 손을 의미하는 ‘手’는 즉, 무엇을 ‘만들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 ‘手’ 대신에 ‘言’이 들어가 말로 만들다는 제작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또한 영어의 poetry도 행하여 ‘만들다’라는 희랍어 poiesis에서 왔다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시는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면 ‘만들다’라는 뜻이 되고 시인poet은 만드는 사람, 즉 제작자, 창조자가 되는 셈이다.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 즉 신을 절대자, 제1의 창조주로 본다면 시인은 조물주가 창조한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 창조자라는 뜻이 되겠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을 제2의 창조자라고 부를 수도 있음이 물론이다.
이렇게 볼 때 김 시인이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고유어 살려 쓰기와 새로운 시어 창조의 노력은 사물에게 제 이름을 찾아 주는 일일 뿐만 아니라 『파우스트』에서처럼 시인이란 신이 창조한 사물에 의미를 붙여 주는 사람이라는 관점을 잘 설명해 주기도 한다. 김 시인의 이러한 작업이 지금은 아직 미미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결정적인 일임에는 틀림없으리라.
3. 교양과 예술 지향의 삶을 위하여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 속에는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욕구가 반영되게 마련”이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시 속에도 시인 자신의 문화적 취향과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는 뜻이리라. 그녀의 지난번 세 번째 시집 『침묵의 돌이 천년을 노래한다』(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13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시집에서도 음악이나 미술 취향의 예술시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중요한 특징이 된다. 지난날 독일에서 생활했던 그녀이고 보면 자연히 유럽 문화에 친근함을 느끼게 마련일 것이고 그런 문화적 취향이 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나고 있다는 뜻이 되겠다.
① 카랑카랑 휘뿌리는 꽃불춤
황제의 걸음으로 우줄활활 다와친다
때로는 돌풍이 불어닥쳐도
불굴의 예술혼 타협을 모르네
아다지오 운 포코 무소 잔조로이 흘러
마음귀에 화살짓는 론도 알레그로
애연한 마음 사려잡은 초록 빗발 후려치도
불비늘 하늘마다 천상의 교향시 나울친다
마침내 웅장하고 호쾌하게 펼쳐 나가는 비바체
저 늠름한 기상은 인간정신의 승리인가
가이없는 구원의 팡파르 온누리 울려 퍼진다
베토벤의 <황제>는
삶의 축복이어라 영원한 구원이어라
-「하늘교향시 나울친다」전문
② 밀밭이 바람을 마구 흔든다
밭이랑 굽굽이 굽이쳐 흔들리는데
까마귀 그 위를 까악까악 날고 있다
오베르 들녘 삶의 찬란한 한 순간
그 너머 숨겨진 핏빛 절규와 격정
밀밭에 웅수리고 있던 죽음의 사신
고흐의 영혼 섬뻑 영원 속으로 솟쳐 오른다
-「밀밭은 바람을 마구 흔들어」전문
이 두편의 시를 보면 그녀의 문화적 취향과 시적 교양의 수준을 짐작해볼 수 있다. 먼저 시①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를 제재로 한 시다. “모든 예술은 다 음악을 지향한다.”는 쇼펜하우어의 그 유명한 말이 있지 않던가? 예를 들어 베토벤의 표제음악 <전원교향곡>을 들으면 새들 지저귀고 시냇물 돌돌 흐르고, 때로는 천둥 번개 치고 소나기 쏟아지는 전원의 사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지 않은가? 또한 쇼팽의 <녹턴>을 듣다 보면 달빛 쏟아지는 밤, 창가 피아노 앞에 홀로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사랑에 상처 받은 한 영혼의 마음을 바로 눈앞에서 만날 것 같은 고독의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시는 언어로 말하고 미술은 선과 색채로, 그리고 음악은 리듬으로 말할 뿌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결국 같은 것이라 할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늠름하고 당당한, 호쾌하고 유쾌한 승전 장군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하다.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에 음악적 용어를 적극 활용하여 시의 사실감,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비바체, 바로 눈앞에 승전한 개선장군의 의기양양하고 웅장한 행진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베토벤이 음악 <황제>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것도, 시인이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표현하고자 했던 그것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시②도 고흐의 작품 <까마귀 떼 나는 밀밭>을 시로 옮긴 「밀밭은 바람을 마구 흔들어」도 마찬가지다. 시와 그림은 더욱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예로부터 ‘시화일률詩畵一律’이라는 말이 있다. 즉 시와 그림은 하나, 곧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시가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다. 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시의 회화성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시를 읽을 때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질 때 그 시는 회화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림을 살펴보면 밀밭이 바람에 마구 흔들리는 모습, 밭이랑은 한 마리 커다란 짐승처럼 살아 꿈틀거리고 그 위에는 잘 익은 밀이삭을 다 먹어치우려는 듯 검은 까마귀 떼가 허기진 식욕의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다. 고흐가 이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풍요와 행복이 넘치는 삶의 들녘, 그러나 그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의 공간 어느 곳에선가는 그것을 순식간에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도 있는 검은 유혹과 불운의 손길이 숨어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운명 의식을 표상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인가? 그럼에도 삶을 슬프도록 찬란하고 아름답고 경이롭다는 것을 고흐는 그림 속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리라.
시인은 그 그림을 보며 또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추수를 기다리는 오베르 삶의 들녘, 그 뒤에 도사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검은 운명의 예감, 그러나 내일 죽음의 순간이 찾아와도 오늘은 살아 있어 찬란하고 경이롭고 감동스럽다는 영혼의 내밀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김 시인은 시를 통해 고흐가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오베르 들녘의 풍요와 감동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두 시편에서 보듯이 시인의 삶은 음악과 그림 등과 같은 예술적 취향의 삶을 추구하면서 갈망하고 있다. 그것은 곧 그녀의 삶이 정신적으로 더욱 고양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자 하는 예술 지향성 또는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일생을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가 이제 직장으로부터 놓여나 제2의 자유로운 생을 꿈꾸며 살고 있는 시인이 절실하게 소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기보다는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영혼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내면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런 맥락에서 그녀의 이번 예술 취향의 시편들은 그녀 정신의 예술 지향적 내면 풍경을 잘 묘파해 내고 있어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4. 영혼의 삶, 낯선 세상을 찾아서
이번 시집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행 시가 많다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리라. 미지의 어느 곳과의 만남이 익숙하고 낯익은 것에서 오는 권태와 나태로부터 시인의 감성을 일깨우고 생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느끼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보통 예술가들에게 창조의 동력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은 사물과의 새로운 첫 대면에서 오는 감동일 것이다. 첫눈, 첫사랑, 첫 경험, ‘첫’이라는 말만 들어도 뭔가 설레며 감동받을 만한 그 어떤 일들이 뒤편에 숨겨져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시인은 틈만 나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지도 모르겠다.
두꺼운 암흑의 장막을 찢고
르네상스 횃불 피언히 집힌
천재들의 땀 냄새 진진하게 그믄
좁은 골목길에는 삶의 불향기
자자히 여운을 남기고
휴머니즘의 요람 예술의 꽃
허공을 향그러이 품어안는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보는
피렌체는 과거의 발자취가
헤아릴 수 없는 밤하늘
별 냄새처럼 설핏하게 나비치고
과거 현재가 공존하는 피렌체에는
인류 미래를 밝힐 지혜의
불꽃구름이 감사납게 피어오른다
- 「미켈란 젤로 광장에서」전문
무엇이 그녀를 먼 나라의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이끌고 간 것일까? 중세의 암흑시대, 사람의 감성을 얼어붙게 만들었던 기독교 절대 신앙과 시대의 질곡을 과감하게 걷어 내고 인간의 뜨거운 심장을 뛰게 했던 예술가 미켈란젤로, 피렌체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귀족들의 단장 소리가 메아리처럼 올 것만 같은 광장 어귀에서 그녀는 600여 년 전 과거의 어느 한 모습을 만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시인은 시를 통해 미켈란젤로 광장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새롭게 만나고, “르네상스 횃불 퍼언히 집힌” 천재들의 땀 냄새 가득한 역사의 한 뒤안길을 책상 앞에 앉아 거닐고 있다.
오벨리스크 청동 뱀기둥 쉬멋없이 서 있고
그 옛날 영화榮華의 빛바랜 그림자 깃발만 펄럭인다
세계의 중심 길은 이스탄불로 통한다 했던가
보석상자 톱카프 궁전 하렘에서는 시든
꽃숭어리 깡마른 향깃함만 가느슥히 어른거린다
벨리댄서의 가슴을 타고 흐르는 젖은 땀 기운
황홀경 속에서 성그러운 수도사들의
에도는 수피 춤사위로 머루밤만 깊어 가고
어슴새벽 되울림치는 수도승의 기도 소리
보스포루스 해협의 물결 되질하며 잠재우니
세월하고 비단길 대상들의 속삭임만 들려온다
-「이스탄불 그림자-술탄아흐메트 광장 히포드롬에서」전문
그녀는 다시 터기 이스탄불로 날아가고 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이스탄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역사 속에서 이스탄불은 로마와 같이 풍요와 동경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당시 그 지역은 동서양 교통의 요지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교류가 잦았으며 따라서 문화가 왕성하게 꽃피던 지역이었다. 오죽했으면 대상들이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오고 가던 그 길을 비단길이라 불렀을까? 그러나 이제 그 당시 골목을 가득 채웠던 낙타의 목방울 소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양탄자를 팔고 향료를 팔던 상인들 모습 또한 찾아 볼 수 없다. 이제 그 빈자리를 벨리댄서와 먼 곳에서 온 수도사들이 채우고 있다. 시인은 변해 버린 고도의 옛 터를 둘러보며 인생무상을 노래한다. 그러노라면 자신이 부르는 노래 속으로 떠나갔던 대상들이 다시 돌아오고, 떠오르기를 포기한 별들이 다시 도시의 하늘 위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처럼 시인은 시를 통해 세월 속에 묻혀 간 시간과 역사, 사람들과 풍속들을 다시 살려내고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여행 시의 장점이자 매력이 아니겠는가?
5. 맺음말
시인은 등단 반십 년 만에 네 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중견시인으로서의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통상적으로 시인이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낼 단계에 이르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한다. 이제 김 시인도 그 강을 건넌 것이다. 이 말은 곧 앞으로는 어쩔 수 없이 지상의 마지막 날까지 시인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 길이 설령 아무도 주목해 주지 않는 외로운 길일지라도 김 시인 스스로 자부심을 갖고 책임감을 느끼며 노력해 가는 운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의 길이라는 뜻이다.
다행인 것은 김 시인의 그동안 천착해 온 우리 고유어 살려 쓰기, 새로운 말 만들기 등과 같은 일련의 시적 작업은 어떤 시인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인의 운명에 해당한다는 점을 시인이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 작업이 비록 어느 면에서는 미약하게 보일지라도 깊이 숙성되고 발효되어 갈수록 제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 내야 하리라 기대한다. 우리 국어가 외국어, 외래어의 유입 등으로 혼란이 가중돼 가고, 혼탁해져 가고 있는 요즈음 세태 속에서 김 시인의 우리말 지키기는 누군가는 반드시 감당해야 할 소중한 운명의 몫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 시인이 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문학 교수로서 쌓아 온 오랜 경력을 적극적으로 또 치열하게 활용하여 우리 언어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고 순화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시집 발간을 거듭 축하하며 끊임없는 시적 전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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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김효중 시인의 그동안 천착해 온 우리 고유어 살려 쓰기, 새로운 말 만들기 등과 같은 일련의 시적 작업은 어떤 시인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시인의 운명에 해당한다는 점을 시인이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그 작업이 비록 어느 면에서는 미약하게 보일지라도 깊이 숙성되고 발효되어 갈수록 제 역할을 톡톡히 감당해 내야 하리라 기대한다. 우리 국어가 외국어, 외래어의 유입 등으로 혼란이 가중돼 가고, 혼탁해져 가고 있는 요즈음 세태 속에서 김 시인의 우리말 지키기는 누군가는 반드시 감당해야 할 소중한 운명의 몫에 해당한다.
―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정년연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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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중 시인∥
∙ 충남 부여 출생
∙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 문학박사 현재 대구 가톨릭대학교 묭예교수
∙ 2009년『시와시학』으로 시인 등단
∙시집 :『시보다 아름다운 꽃 어디 있으랴』『화살, 그리움을 쏘다』 『침묵의 돌이 천년을 노래한다』(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저서 :『새로운 번역의 패러다임』(학술원 우수도서) 외 다수
▲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김효중의 시집『침묵의 돌이 천년을 노래한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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