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희망과 신뢰의 영성
가. 하느님의 사업에 감탄
진리 연구가였던 나가이 다까시는 과학적 실험 속에서도 거기서 관찰한 사실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수없이 감탄하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석(尿石)의 제40호 라우에 반점을 관찰하면서 그가 감탄한 바를 "망하지 않는 것" 속에 생생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결정배열(結晶配列)을 보교 있노라면 하느님의 신비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석이라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돌입니다. 그 보잘것없는 돌에조차 그렇게 정연하게 결정을 배열했습니다. 참으로 우주란 구석구석까지 섬세한 질서가 서있습니다! 선생님, 단 한 가지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저는 과학을 공부하기로 한 뜻의 보상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3권 "망하지 않는 것" 337쪽)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백혈병의 백혈구마저 예외가 아닙니다.
"병에 걸리면 백혈구의 수며 그 비율이 변한다. 백혈병이 그 점에서는 가장 뚜렷하다. 건강한 혈액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랗고 여러 색깔로 물든 백혈구들이 백귀야행(百鬼夜行)처럼 나타난다. 소위 골수세포, 골수모세포, 임파모세포..... 인간의 몸속에는 병에 걸려도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존재하는가 하고 느끼며 그만 정신없이 들여다보게 된다.("나가이 다까시전집 1권" 성 바오로 2003. 113쪽)
"과학의 힘으로는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 즉 하느님의 정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일들은 볼 수 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이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우주를, 그 아름다운 질서, 바른 법칙, 정교한 기구,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행복이 아닌가."(나가이 다까시 전집 1권. 성 바오로 2003 쪽 364쪽)
이 하느님의 사업을 앞에 놓고 외경의 마음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름다운 꽃, 풍경을 앞에 놓고 읊는 시인 나가이 다까시의 또 하나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나. 섭리에 대한 신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창조주에 대한 신앙이 확고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도 또 깊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원폭의 고뇌를 뛰어넘어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앗아가신다"고 한 의인 욥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는 많은 고난을 껶고 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나가이 다까시의 희망의 영성은 단순한 낙천주의(optimism)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지옥을 소상히 보고 더더욱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은 사람의 암흑 속을 뚫고 나온 서광의 영성인 것입니다.
나가이 다까시는 아기예수의 성녀 데레사를 좋아하여 그의 작품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1997년에 교회박사가 된 이 현대의 성녀와 나가이 다까시의 영성이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매우 흥미 깊게 생각합니다. 두 사람 다 놓인 상황이 달랐을 뿐 절망의 구덩이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가지고 살고 신뢰의 영성을 확립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나가이 다까시가 도달한 신뢰의 경지는 그의 만년의 수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들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믿습니다. 또 하나 하느님의 지혜는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둡시다."(2권 "뇨꼬도수필" '서한모음 5' 209쪽)
"어린 가야노가 모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나 또한 주어진 여러 가지 괴로움이 실은 주어진 여러 가지 은혜이듯 모든 것의 처음은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에서 주어진 것임을 요즘에 와서야 겨우 깨달았으니 말이다."("꽃피는 언덕" '선물' 141쪽)
그리고 신앙의 눈으로 보게 되었을 때 나가이 다까시는 죽음마저 최후의 희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새 색시, 이제 곧 나에게 올 새 색시 - 그것은 죽음이다. 죽음과 결혼하여 새 생명이 태어나는가? 태어난다. 새로운 행복이 넘치는 영원한 생명이 태어난다. 그것이 부활이다. 죽지 않는다면 부활은 없다. 사람은 죽음과 함께 있어서 비로소 부활의 영광을 받게 된다."(3권 "묵주알" '결혼' 213쪽. 2권 "뇨꼬도수필" '하늘에서의 초대장' 80쪽)
파스칼이 "팡세"에서 자신의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생각되는 하느님 이해는 나가이 다까시의 만년에 이르러 도달한 하느님 이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하느님은 단지 기하학적 진리이며 제 원소의 창조자에 지나지 않는 하느님이 아니다. (중략)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있어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사랑과 위로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 스스로 택하신 사람들의 영혼과 마음을 채워주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들에게 자신들의 비참함과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내적으로 깨닫게 하는 하느님이시다. 그들의 영혼 깊숙한 데서 그들과 결합하여 그들에게 겸허와 기쁨과 신뢰와 사랑을 채워주시고 그들을 하느님 이외의 목적을 가질 수 없게 하는 하느님이시다.(파스칼 "팡세" B556 주꼬분꼬<中公文庫> 351쪽)
끝으로
마지막으로 내가 살고 있는 이 日本의 가톨릭신자로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항상 앞을 가로막는 현실에서 나가이 다까시와 같은 삶의 방식 그리고 그 영성을 터득하는 일은 "소리 없는 절망" 속에 놓여진 것 같은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희망을 잃는 일 없이 살아가기 위한 근본적인 격려를 받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만년의 나가이 다까시에게는 환하게 환희에 차서 웃는 얼굴 사진이 몇 장 있습니다. 모성애 그것인 마더 데레사의 웃는 얼굴을 연상시키는 잊을 수 없는 웃는 얼굴입니다.
모든 평신도가 "성성(聖性)"에의 초대를 받았음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제5장 ‘교회내의 성화성소(聖化聖召)의 보편성“에서 분명하게 선언했습니다. "성성"이란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와 동시에 하느님과 함께 사는 자의 기쁨의 길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지옥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모든 것을 잃은 절망의 구덩이에서 일어난 사람의 이처럼 웃는 얼굴은 우리들에게 성성으로의 손짓이기도 합니다. 그 희망과 신뢰의 말에는 탁상에서의 공론이 아닌 무거운 인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설득력이 있습니다. 나가이 다까시는 그의 인생의 석양에서 참된 행복이 결코 물질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영혼의 행복에서 그것은 "영원히 망하지 않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걸어온 길, 그 영성은 지금 日本에 사는 우리 평신도들에게 주는 아주 힘찬 호소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획득한다.
그들을 설득하고 재촉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그들의 존재가 하나의 호소이다."(Henri-Louis Bergson "도덕과 종교의 두 개 원천" 이와나미분꼬(岩波文庫) 42쪽)
<주요 참고문헌>
"永井隆全集 Ⅰ,Ⅱ,Ⅲ," サンパウロ 2003年
パウロ・グリン" '長崎の歌" マリスト会
片岡弥吉『永井隆の生涯』サンパウロ。
永井誠一『永井隆』サン・パウロ
ヨハネ・パウロ二世『信徒の召命と使命』カトリック中央協議会
佐久間勤編『キリスト教の神学と霊性』サン・パウロ。
본문 속의 나가이 다까시의 저서 인용은 모두 "나가이 다까시 전집 1,2,3권"(성 바오로 2003년)에서 한 것입니다. 또 나가이 다까시의 작품은 アルバ文庫(성 바오로),聖母文庫등에서 거의 모두 출판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