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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전국 228개 시군구(市郡區) 지역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나라처럼 둘레길이 많은 나라도 드물다는 생각을 하는데 산마다 마을마다 수많은 둘레길을 만난다.
대부분 옛 전설을 찾거나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길이며,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걸을 수 있게 최대한 안전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방법을 찾아가며 둘레길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기존의 둘레길은 낡고 새로운 길이 또 생기고 그 정점에 출렁다리가 길게 생긴다
하지만 인위적이 아닌 자연의 길이 있으니 달(月)이 만들고 파도가 만든 해안길이 갑(甲)이며,두번째로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만든 굽이친 강길이 있다이 길은 특별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이다.
오늘은 금강북쪽을 지키는 금북기맥 마루금인 충남 서천군 판교면과 부여군 옥산면 고갯마루인 부소치(扶蘇峙)에서 시작한다
부소치는 인근의 부소산(원진산)에서 유래된 고개 이름이다
이른 아침 첫 기차로 대전 그리고 서대전에서 논산 역에 내려 깽이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논산에서 한 시간가량 걸려 부소치 고개에 선다
에어컨 나오는 1시간 동안 시원 했는데 차에서 내리니 덥기만 하고
깽이님은 시원한 물이라며 몇 병 건네주시더니 집안일이 있어 차를 돌려 논산으로 가버린다.
깽이님 바쁜시간 내주셨어 감사드립니다.
고개에서 잠시 오르면
"가선대부 중추부사 경주이공지비"라 쓴 묘를 지난다
요즘으로 치면 도지사급의 벼슬이며 대단한 분이 누워계신 산소와 오래되었지만 후손들께서 관리를 잘한듯하다
바다를 품은 서천땅이 더 좋은가?
서천군과 부여시를 나누는 경계이건만 하늘을 이고선 몇 그루의 소나무가 가지를 모두 서천땅으로 뻗어 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따져 물어보고 싶었지만 덕분에 잠시라도 그늘을 두고 걷는다
무덤을 덮고 있는 풀밭을 지나고 밤나무 단지를 지나는데 가을에 오면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짧은 소나무 잡목을 허리 굽혀 지나면 금강북쪽의 산길은 우측으로 가고
판교천 발원지는 왼쪽으로 90도 굽어 가는데 생각보다 산길이 좋고
228봉
삼각점 하나가 마빡을 내밀었다.
판교천은 이곳에서 작은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산아래 복대리로 향하는데 능선에서 우측 복대 2리로 내려가는 길이 조금 짧고, 좌측으로 내려가는 곳이 조금 더 길다
십자가 문신을 한 마빡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어떤 계곡이 형성되어 나를 반길지 기대가 크고
지나간 경로
하천길 250개 진행
228봉 삼각점봉에서 왔던 길 따라 조금뒤로 돌아 진행해서 계곡으로 들어서며
나뭇잎 사이로 앞이 조금 훤 하게 보여 조금 전에 올라왔던 밤나무 단지인가 하고 좋아라 했는데
이건...
가을을 닮아 영글어가는 밤나무 단지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칡덩굴이 계곡 좌,우로 빼곡하다.
계곡을 내려가야겠지만 어디쯤에서 끝이날지 지도를 다시 보며 거리를 확인하니 직선거리로 200m 정도 칡 길이 이어질 것 같다.
이럴때는 좌고우면(左顧右眄) 할것없이 앞만보고 ...
하천길은 100% 계곡으로 내려오다 보면 칡이나 미역 덩굴줄기가 빼곡한 곳을 지나는데 어느 게 쉽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칡이 조금 더 부드럽고 쉽다
찔레나무 가시와 칡이 엉겨 붙은 내려온 곳이고
내려갈 곳으로
키보다 더 크게 자란 칡을 밟아가며...
멀리 보이는 산은 내일 내려갈 길산천 발원지가 있는 원진산 자락의 일부인 것 같다.
이쪽은 판교천, 산능선을 사이에 두고 저쪽은 시초면의 길산천이다.
칡덩굴을 밟으며 발아래를 일일이 확인해 가며 찾은 판교천 발원지
옛 조선시대때는 장교천(長橋川)이라 불렀던곳
물은 미미하지만 그래도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춰 흐르고,이 물이 흘러서 서천 판교면, 종천면,서천읍 그리고 마서면까지 20km를 흘러 서해 바다 장구만에 안긴다
내려온 곳
칡과 친구 격인 한삼덩굴
잎이 단풍잎처럼 생겼으나 줄기는 연한 가시가 수도 없이 달려있어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어디 가서 술 안주삼아 이야기도 하고,
물이 어디에 있나
칡을 들춰가며 확인해서 찾은 두 번째 물
갈수기에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
뜨거운 날
칡과 찔레나무 그리고 한삼덩굴까지 성가신 3종 녀석이 죽자 살자 달라붙어 화끈하게 사랑해 주고 내려와 이제 본격적인 땡볕길이 기다린다.
복대 2리 마을 앞으로
경상도의 계곡물처럼 맑지 못한데 이유가 뭔지
복대 2리 마을 뒷 산인 가운데 228봉이며
좌측 물길이 조금 짧고 산 능선 뒤에서 오는 물이 조금 더 길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야 물이 깨끗할 텐데
산이 높거나 골이 깊지 않아서 물 색이 별로다
그렇다고 주위에 민가가 많은 것도 아닌데
물이 흐려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이러하니...
"이 길을 지나는 자 잊지 말아요!"
국도에 자리하는 복대리 옛 판교장터 미군 폭격사건(양민학살 사건) 현장으로 지금은 도로가 지나는데
1950년 9월 10일 추석 직전날 장터에서 장사를 하거나 추석장을 보던 민간인에게 미군 공군기가 기관총을 난사해 40명 사망 60명 부상당한 사건 현장이다.
이곳 말고 전국에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 사건은 많이 있어 안타깝기만 하고 잠시 고개 숙여 묵념하고
판교면 "시간이 멈춘 마을"로 들어서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유년시절의 소중한 추억 뭐가 있을까?
시간과 마주 서며 작은 기억이라도 하나 생각난다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갈대가 빼곡한 하천길을 지나며
갈대 없는 곳
하천 바닥과 물 위에는 생활하수, 들판에 뿌려진 가축 분뇨 같은 영양 성분이 흘러 들어와
지금은 부영양화로 이런데 물속에는 물고기란 녀석들이 그래도 좋다고 헤엄치며 돌아다닌다.
예전이라면 아이들이 물놀이했을 곳인데
아이들은 모두 떠나고 물은 이렇게 흐른다
타는듯한 땡볕아래 콩 심고 계시는 비엣남 여성 두 분
"안녕하세요? 힘들지 않으세요!" 라며 인사를 건네니
"비엣남 사람이라며 한국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하며
애써 웃어준다
땡자땡자 걸어가는 사랑이라 일하시는분께"쉬었다" 하란 말도 못 하겠다
충남 서천땅에 여행 왔으면 꼭 한번 들러야 할
판교면의 수많은 시간이 흘러 가슴 한편에 살아있는 "시간 멈춘 마을"에 들어와
현암 2교에서 하천가의 일편단심 백일홍이 붉게 피어 있는데
나무에서 피던 그렇지 않던 꽃은 꺾이는 순간 시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꺾은 꽃을 좀 더 오래 두고 보려 화병에 넣기 전 줄기를 다듬고 물을 가라 준다.
그리고 꽃잎이 시들면 꽃은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고...
사람들은 꽃을 살 때 꽃이 얼마나 예쁜지만 살펴보는데 어디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자랐는지 관심은 두지 않는다.
걷는 이에게 꽃은 벌이나 나비의 생활터전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판교면 현암리에 들어와 옛 우시장을 알리는 글도 보이고
이곳 골목은 시간이 멈춘 마을로 1960ㅡ70년대 시간에 멈췄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무렵 전북 군산과 함께 식량약탈 장소로 그리고, 젊은 청년들을 잡아 전쟁터로 보내던 징병과 꽃다운 처녀들을 전쟁터의 성노리개인 위안부로 보내기 위한 수송을 위해 건설된 장항선이 있었으나 장항선 직선화로 판교역이 인근으로 옮겨지면서 마을도 점차 쇄락의 길로 갔으며 지금은 구 판교역 인근은 음식촌으로 바뀌었다
단층으로 이뤄진 마을 안길 따라 들어오니 보신탕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곳에서 만나는 보신탕집은 최소 수십 년은 한자리에서 장사를 했을 것이며 나름대로 개고기를 좋아했던 지금의 장년층이 주축을 이루는데 몇 해 전 개고기 금지법으로 개 대신에 염소 고기를 팔고 있을 것 같다.
개고기는 한때 전국 5천 가구에서 식용으로 키워 한해 52만 마리가 도축되었지만 내년부터는 개고기 먹으면 안 된다.
이로 인해서 개고기를 좋아했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염소고기로 갈아탈 일이 없을 것 같은데 장사는 잘 될지...
국가 등록 문화재 동일 주조장
술을 빚던 술도가로 박 씨 집안에서 1932년에 세워 2000년대까지 3대째 운영했다고 한다
쌀이 귀하던 시절에 막걸리와 동동주를 만들어 인근지역 주민들의 고달팠던 삶과 애환이 녹아들게 했던 맛술 술도가
어릴적 짐 싣는 자전거에 한말짜리 술통을 여러 개 싣고 비포장의 울퉁불퉁한 오르막길을 오르던 아저씨가 마을로 배달 왔다가 마을 점빵에 한두 개 내려놓고 다음 마을로 갈 때는 옷자락이 휘날리며 달려가던 모습도 그려진다.
수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 한편에 남아있는 기록
지나온 시간보다 남아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옛 초등학교 때 기억만 끄집어낸다.
그냥 왔다가
술 생각 한번 해봤어
근대 상가주택(장미사진관)
1932년에 일본인 지주(地主) 가옥으로 만들었으며
1층은 점빵 2층은 주택으로 보인다
지금도 사람이 거주하는지 모르겠으나 판교면 마을의 상징과도 같은 2층 건물이란다.
주말인데도 골목 안으로는 구경 나온 나들이객들도 전혀 보이지 않고 마을분들 모습도 땡볕아래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하다
바위가 있고
그 위에 건물을 세운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구, 삼화 정미소 오 방앗간
1936년에 세워진 정미소로 판교마을의 산업유산이며 생활 유산인데 역사적 상징성이 큰데
건축은 1970년대의 건축물이라 한다
함석지붕과 벽면은 세월을 겨우 버티고 서 있으나
빠른 세월을 얼마나 이기고 견딜지
깨끗하던 함석판이나 세월을 이기지 못한 흰머리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예전 고향마을 앞 정미소도 이런 함석을 덧댄 모습이었는데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는 자동차가 귀한 시절이라 제주도 조랑말이 앞에서 끌고 다니던 구르마로 집집마다 짚으로 짠 쌀 가마니를 운반해서 방아를 찌어 다시 마을로 들어왔는데 한여름으로 기억된다.
큰 느티나무아래 조무래기들이 모여 구슬치기, 딱지치기, 작은 돌을 모아 공기놀이를 하다 보면 쌀가마니 몇 개를 실은 늙은 말이 끌고 다니던 구루마(수레)가 느티나무아래 그늘에 쉬는데 주인은 집집마다 방아 주문을 받으러 가거나 잠시 그늘에 휴식을 한다며 주무시면 꼬마들은 나무 위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를 잡아보겠다며 늙은 말 꼬리 한가닥씩 뽑아서 대나무 장대 끝에 말꼬리로 올무를 만들어 매미를 잡아 놀았던 기억, 말 꼬리는 동네 꼬마들의 표적의 대상이 되어 풍성했던 꼬리는 동네마다 다니며 뽑히다 보니 몇 가닥 남지 않았고 그 꼬리로 연신 파리를 쫓던 모습
지금 방앗간 앞에 서고 보니 죽어라 일만 하던 늙은 말(馬)이 생각난다.
마을을 구경하고 나오다 보니 예전에 다녔던 기차선로가 지났던 흔적도 보이고,언제 다시 이곳 판교면에 올지 모르겠으나 생각에 생각을 덧댄 시간을 소중하게 해 많이 그리울 곳이다
판교면의 오래된 건축물을 보고 나와
다시 물길여행이다
쉬었다 가기 좋은 미루나무가 더위를 이기지 못해 나뭇잎 절반은 땅 위에 내주며 서있고 그 옆에 서부 저수지 상류의 마른 바닥이 보인다.
이곳 말고 비슷한 크기의 저수지로 시천면에 동부 저수지가 하나 더 있는데, 둘 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든 농업용 저수지다
일제 강점기 때 1,527개의 농업용 저수지를 만들었으며 그 외 410건의 농수로 건설 했다고 하며 국내의 어지간한 저수지는 일제 때 만들었다고 보면 될듯하다.
올해 여름은 워낙 가물고 비가 오지 않아
서부저수지 상류는 맨땅을 드러내고 드러누웠다
서부저수지 돌아가는 만덕리 부근
오늘도 더우니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재난 안전문자가 날아온다.
저수지 중간부터 물이 고여 있고
천안에서 군산으로 가는가는 장항선 철로가 저수지를 가르고
서부 저수지
일제 강점기때인 1926년에 준공 했으며
규모는 118정보이며 354,000평이라고 한다
저수지 뚝 앞에 선 플라타너스가 그늘을 만들었고
바람은 없지만 그늘이 좋아 잠시 엉덩이 땅에 붙이고 쉬어 간다
물은 저수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으나 갈대 무성한 곳으로 물은 조금씩 천천히 흐르고
예전에 소풀 뜯으러 가서 지게로 가득 담아지고 왔는데 지금은 다양한 동, 식물이 산다며 마음대로 베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시원한 바람만 지날 것 같은 4번 국도 다리아래
뜨거운 햇살을 피해 보따리 벗어놓고 잠시 서서 누군가 지나가길 내심 기다렸으나 끝내 아무지 나타나지 않는다.
나도 그렇지만 땅바닥에 벗어둔 배낭만 덩그러니 내 옆 자리를 지키는데 오늘도 길을 걸으며 대화가 없으니 묵언수행도 이런 수행도 없을 것 같다.
갈대무성한 하천길
그동안 많은 하천을 걸으며 대부분 한마디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길을 걸으면 대화가 없다.
처음인 곳에서 조용하게 걷는 것도 좋지만
아무리 좋은 경치도
아무리 맑은 물을 보더라도
결국 사람이 그립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리워진다
물빛은 흐리고
바람은 간간히 불지만 뜨겁기만 하고
예전에 도로 갓길이나 철길아래 제방둑에 많이 자라던 싸리나무로 이곳을 점령해서 잘 자라고
충남의 마지막 자락인 서천땅 그리고 대백제로에 들어와 하천길을 걸으며 마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해지고 싶었으나 하천길에 마을분들 만나기 쉽지 않다
서천읍의 아파트가 보이고 그 뒤로
서천 남산성이 있는 남산이 지척이다
판교천이 흐르는 곳에서 남산리 그리고 길산천이 흐르는 곳까지 넓은 평야 지대인데 예전 남산 일대가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 환경이었다가 일제 강점기 때 매립해 육지가 만들어 진건가 생각했지만, 서천시 문화원에 계시는 분께서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이미 자연 퇴적과 간척으로 육지화가 되었다 한다.
판교면에서 흘러와 판교천이란 이름을 얻었고
길은 다시 거칠어지고
서천군 군사리 818-10번지
판교천 물이 서천 오거리 아래를 지나서 길산천으로 흘러드는 수문(水門)
조선 시대인 1800년대에 서천 군수가 뚫은 수로(水路) 인데 길이는 대략 4km가 조금 넘으며
서천군 문산면 천방산에서 흘러온 직천과 만나서 길산천으로 흘러든다.
배수문을 통해서 수로따라 물이 동쪽의 길산천으로 유입하면서 인근의 농지에 물을 대주던 곳
높이 차이가 거의 없다보니 물이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모르며
주간지점의 농수로와 장항선 선로가 보인다.
금북기맥이 지나는 서천 오거리
오거리 아래로 농수로가 지나는데 기맥길 지날때는 물이 발아래로 지나는지 거의 모르고 지난다.
농수로 4km지점의 판교천 물이 농수로따라 흘러와 길산천과 만나는 지점
이곳은 해발 고도가 서쪽보다 조금 낮다.
지형을 고려할때 금북 기맥길 마루금은 서천여중에서 이곳이 아닌 서천 행정복지센터 방향이나 공원산인근에서 곧바로 남산으로 올라가야 할것 같다
지도 참고 하시고
오래전 자연 퇴적과 함께 고려, 조선시대 때 금강이 흐르는 곳에 제방을 쌓고 일부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된 서천 신송리 평야지대
강물은 직선길보다 휘어지는 매력이 있어야 하고
서천읍과 오석산
서천은 한산 소곡주와 김, 신성리 갈대밭, 주꾸미 그리고 한산 모시가 유명한 땅이다
들기름 입힌 김이나 한여름에 입으면 시원한 모시는 그렇다 치고 한산 소곡주로 말하자면 맛이 달달하여 한자리에 앉으면 일어설 줄 모른다는 앉은뱅이 술로도 유명한데 술맛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만독불침하고 불로장생"할 술로 느껴진다.
희리산과 서천읍
안개가 자욱해 흐릿하게 보인다 하여 흐릿산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희리산으로 부르며 그 옆에 문수봉은 산아래 문수보살을 모신 문수사가 있어 유래한 산으로 보인다
오늘도 변함없이 초지일관하는 태양
그나마 그늘은..
그 그늘도 고맙다며 한쪽으로 붙어서 진행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일제 강점기때 지도 한장 첨부하며
귀한 자료는 서천군 문화원에 계시는 분께서 보내 주신 자료 입니다
판교천이 서해로 나가기 전에 배수갑문이 있는데
사람이 하천물을 붙들고 바닷물이 못 들어오게 잡는 곳이다
80m의 배수갑문
하천 물을 붙들었지만 물색은..
배수갑문 너머에 바닷물이 멀리 나갔고
예전에 걸었던 서해길
이곳에서 짧은 하천길 정리하고 남은 물 3리터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옷 갈아입으며 마서면 해창마을버스 승강장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서천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씻어도 그늘 없는 땡볕 아래서 땀은 줄줄
20분 정도 지나 버스가 한대 달려온다
오늘도 더워서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버스안에 에어선생덕에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느낄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서천에서 걸었고 내일도 서천에서 걸어야하기에 서천읍에 가서 저녁 먹고 빨래하고 자고 내일 길산천을 준비한다.

첫댓글 배낭을 챙겨 두고,
폭우를 피해 기다리고 있어요.
단비가 되어야 하는데
엄청 쏟아 붓네요.
개척의 발길 늘~응원합니다.
비오는날 빗물 샤워는 기본이고
천둥과 번개도 좀 쳐줘야 걸음걷는데 즐겁죠
글 감사드립니다
첫물길 찾는다는 거
지도를 도니 부소치 고개쪽과 복대2리마을쪽
100m 정도 밖에 차이가 없는 듯 합니다.
부여 서천 이쪽에 오셨는데
들머리 택배밖에 못해드려서 죄송했네요.
같이 걸음하며 심심치않게 걸음하게 해서 보내드렸어야 했는데..
죄송요.
서천에 판교면이라고 있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
산길 넝쿨이 장난 아닌 모습
판교 시간이 멈춘 마을...
언제 시원한 날 시간되면 가보고 싶어지며
보기만해도 뜨거운 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쪽 충청도 전라도 구간 또 오실 때 연락주시면
방장님 심심치않게 같이 걸어봐야겠습니다.
배움의 자료의 걸음 늘 응원드리며 건강도 잘 챙기십시요.
^^
집에서 지도를 수십번 보고오지만
현장에서면 능선 하나 사이로 아리까리 한곳이 많습니다.
그럴때 참 난간한데 이번 경우도 그렇습니다.
부소고개까지 택배 감사 드리고
시간내서 긴걸음 한번 가보도록 합시다
다행히 옛 지도 구하셨네요.
시간이 멈춘 마을,
개고기,
술도가에 이버지 막걸리 심부름 하면서 호기심에 주전자 꼭지에 입 대고 쫄쫄 빨아 먹었던,
그리고 함석판 정미소,
어릴 적 옛 추억이 떠 오릅니다.
추억 상기 주셔서 감사하고 담 여정도 안전히 다녀 오십시요.
다행히 서천지역 역사 연구가분과 알게되어 옛지도를 구할수 있었습니다.
그분께 많은걸 알게되어 후기를 쓸수 있었구요
지부장님 글 감사드립니다
ㅎㅎ 옛 추억이 떠오르는 판교천입니다. 흥림저수지를 지나온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키우려고 잡았지만 금방 죽어서 나중에는 잡고 놔주고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고향에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동창들은 몇몇이 있지만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르고 친한 놈들은 다 서천을 떠나 있지요!ㅠㅠ
이번주에 고향을 다녀왔는데 날이 시원해 한주만 늦게 다녀오셨으면 나름 편하게 진행했을 것 같은데... 혼자 방장님을 떠올리며 연휴를 보내고 왔습니다.ㅎㅎ
날머리 장구만에 절친집이 있는데 이 놈도 서울에 살아서~ 부모님만 계시죠!^^
아무튼 고생하셨습니다.
고향이 서천이시죠
지나가면서 레선생님 생각많이 해구요
지금은 하천물이 흐려서 물고기가 얼마나 사는지 궁금증도 생겼는데 예전에는 물이 깨끗했었나 봅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의 세월에 지나간하천 250개 진행하면서 열정 시간 페이등 많은것을 소모하면서 우리나라의 최초의 해안 강 하천등 무수한 새로운길을 개척하셨습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얻은것 배운것도 많으리라 봅니다
감히 엄두도 못내는 일들입니다
이번 판교천 발원지 진행하며 천사님도 만나고 오래되고 잊혀진 옛동지들이 간혹 만날수 있다는게 반가운 일이죠
앞으로 안전하게 이어가시고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