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뒤에는 항상 그렇지만, 세월이 가면 , 더 이상의 정보가 표면화될 터이다.
미래는 항상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이로움을 제공해 주며,
그리하여 잘만 하면 후회나 비난보다는 지혜를 가져다준다.
인간 의식 진화의 길은 평탄하지 않다.
반복되는 교훈은 "진실에 대해 깨어 있어라."이다.
현재까지 그것은 현실적인 가능성이 아니었지만 ,
그러나 200 시상으로 측정되어 온전성이 지배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새 시대가 동터 올랐다.
이라크 전쟁은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인 동포 살해를 중단시켰는데,
그는 걸프전과 이라크전에서 죽은 사람들을 합친 수보다 더 많은 동향인을 일삼아 죽였다.(3만 개의 공동묘지)
이라크 전쟁 뒤에도, 이라크 반군은 점령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이라크인을 죽였다.
침공 세력의 선제공격으로 죽은 이라크인보다 더 많은 이라크인이 같은 동포에게 살해당했는데,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 이어진 정치적 반응의 일부는 인간 에고의 어떤 특이성의 사례인데,
여기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헷갈리게 되고 두 역할은 뒤바뀐다.
역설적인 것은, 순진하거나 의식이 진화되지 않은 이들은
온전치 못한 거의 범죄적인 가해자를 서둘러 포웅하고 온전한 것을 비방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응 태도는 460으로 측정되고 9.11 공격 자체로는 35로, 그 가해자는 50에서 70으로 측정된ㄷ.
심각한 타락과 온전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이해를 가로막는 큰 한계이며 오류의 원천이다.
어던 것을 그것과 정반대로 상징화하려는 무의식의 이 야릇한 성향
(예: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고 보는 유행)에 맨 처음 주목한 이는 프로이트 였다.
그러한 성향은 에고가 정제되지 않은 동물 본능과 폭력의 저장고인 이드를 통제 및 억제하려고 분투하는 가운데,
에고의 하위 요소로 이루어지는 원시적 기제다.
따라서 전쟁을 미워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주지 않는 것은,
죄를 미워하는 것이 순수성이나 성스러움을 가져다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덕은 그것과 반대인 것을 비방함으로써라기보다는 그것을 선택함으로써 성취된다.
이라크 전쟁에 계속적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으모,
더 많은 측정치가 있어야 전체적 상황이 그려질 것이다.
그 다음에 우리는 전쟁의 진짜 뿌리에 대해 보다 기본적인 연구를 해 나갈 수 있다.
이크 전쟁 시기(후기)에 대한 추가 측정치
자우주의자의 위치 205 전쟁 반대자의 위치 185 할리우드 좌파 엘리트 130 아카데미 시상식(2003)에서 부시 대통령를 향햔 공개적 감정 분출 65 평화주의(정치적) 95 사담 후세인의 위치 (후기) 95 이라크군 95 탈레반 65 알카에다 65 이슬람 테러리스트 50 | 이라크의 포로 처우 65 이라크 집권당의 군사적 의도 45 이라크 대중매체으 보도 45 이라크의 미국인 포로 처우 155 미국으 이라크인 포로 처우 (아부 그라이브) 165 이라크에서 여성의 위치 95 이라크에서 어린이으 위치 75 이라크에서 개의 위치 40 (미국에서의 개으 위치 450 미국 정보부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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