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사봉 (國師峰 688m)
의령에는 이름난 산이 많지만 국사봉은 독특한 산이다 국사봉 정상에 올라서면
자굴산, 한우산, 만지산이 한 눈에 보이며 북쪽으로 천황산, 미타산이 훤하게
보이며 기묘한 바위들과 탁 트인 조망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산행에 부담없어 인근 도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정상에 오르면 합천군의
초계벌이 넓게 펼쳐져 한눈에 들어오고 봄이면 온갖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
산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 준다. 등산로 주변에서는 계절마다 산딸기, 머루,
다래 등의 우리나라 산열매들을 볼 수 있으며, 활엽수림의 숲으로 해질 무렵의
풍경 또한 유명하다.
산행 들머리인 서암마을은 글 그대로 풀이하면 서녁바위이다. 마을회관과 한지
전시관 사이에 서 있는 개 모양의 개바구(개바위)가 있으며 옛날 국사봉 장수와
만지산 장수가 힘자랑을 하면서 이 돌을 던지고 또 되받아 던지다가 그만 떨어져
꽂혔다고 한다.
정상 아래 국천사라는 절이 있는데 주지 스님이 ‘나라 다음에 하늘이 있으니 격이
맞지 않다’라고 하여 봉암사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국사봉은 운래 미륵부처님이라며 사실 봉우리 자체가 미륵불이라고 한다.
상스로운 기운이 그득한 국사봉은 옛날부터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대신이나 지방관속을 시켜 명산대천, 서낭신에게 제를 지냈던 국사당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향토사학자들은 본다.
● 국사봉의 유래 : [영남읍지]에 전해지고 있으며 ‘청계산 동쪽 산줄기이고 상봉에
큰바위가 여럿 있고 그 바위 밑에는 큰 굴이 있어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으며 백자 항아리가 있는데 그 않에는 구슬이 2개가
있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국사의 사리 유골이라 거기에서 치성을
드리고 기도하면 큰 영험이 있다‘ 하는데 확인이 되질않아 낭설로
치부되기도 한다.
◎ 미타산 (彌陀山 662m)
미타산은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묵방리와 합천군 적중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군의 북쪽에 위치하며 남서쪽으로 천황산(657m), 국사봉(688m)와 연결괴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의령에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의령에
신번현 북쪽 3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동일문헌의 초계현조에는 ‘미타산
봉수는 남쪽으로 의령현 가막산에 의하고 북쪽으로 합천군 미숭산에 응한다‘ 라는
기사가 있다. [여지도서] 의령에 ‘황매산에서 뻗어 나온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 의령에 ‘미타산은 동북 60리 유학사가 있다’ 라는 기사가 있다.
산의 모양은 민드름한 모양에 경사가 완만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옛날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던 산이라 봉화산 또는 방아산이라고도 한다.
● 미타산은 깨달음의 산이다. 서방 극락정토에 산다는 아미타붕의 ‘미타’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미타는 무량수, 무량광의 지혜 강명을 상징하는 부처이다 그 부처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깨치게 하는 산이다.
● 산 중턱에는 1399년(정종 1)에 창건한 유학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 터라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 초계에 ‘미타사는
미타산에 있다’ 라고 하였다.
● 산의 북쪽 방향으로 삼국시대 축성된 미타산성이라는 성곽이 있으며 김유신 장군이
이곳에서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옛날 미타산 본화지기에게 한 노인이 하루 밤을 쉬어 가기를 청하였으나 거절
당하자 ‘너의 심성을 보니 저기 솟는 우물의 맑은 물도 아까우니 흙물이나 먹으라
’고 하면서 사라진 후 오늘날까지 미타산 우물물은 항상 흐려 있다는 전설이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새봄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장관을 이루어
등산객의 발걸음을 즐겁게 하고 있다. 9부능선에는 약 2㎞에 이르는 토석 혼축으로
된 미타산성이 있는데, 삼국시대 축성된 것으로 보아 당시 합천 대야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타산 기슭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여년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 유학사가 있다.
미타산 북방향 9부능선에는 약 2㎞에 이르는 토석 혼축으로 된 성곽이 있는데
이것이 도지정기념물 231호로 지정된 미타산성이다.
삼국시대 축성된 성으로 성곽 둘레가 2㎞, 높이 3.5m, 폭이 3m로 축성 규모로
보아 군사적 요충지로서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이 성열성에서(미타산성)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의 각축장으로 합천 대야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또한 산 정상에는 둘레 20m, 높이3m, 폭12m의 조선시대 통신수단인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다
● 미타산 기슭에는 지금으로부터 약1300여년전 통일신라시대 때에 창건되었다는
고찰 유학사가 있다. 유학사는 원래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라잡고 있었으나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가 유학사에 들러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왔다고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미타산의 8부 능선 예전의 사지에는 지금도 절터의 흔적이 완연히 남아있다.
● 한편으로 미타산은 ‘칼부림의 산’이다. 고려 무인정권기에 셁을 떨친 천민 출신
장군 이의민이 미타산에 숨어 들었다가 최충헌 형제의 칼에 맞아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 ‘칼 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역사를
보여주는 산이다
미타산의 중턱에는 구 묵방초등학교를 절로 개조한 불관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목마른 등산객들이 약수 한 그릇 마시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6. 사진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