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의역: 인간의 능력으로는 道의 정체를 규정할 수 없기에 이름도 없다. 빅뱅이전의 극도로 응축된 樸은 비록 작지만 우주 어디에도 그를 지배할 자가 없다. 樸의 본성이 우주에 펼쳐지고 만물 내부에 파고 들었기에 천지가 합하여 감로수를 내리듯 모든 생명체들은 樸의 본성을 품었구나. 천지의 시작은 이름을 주었고, 名은 또한 존재를 규정한다. 따라서 樸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도록 色界를 향하는 끝없는 욕망을 멈추어야 하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道를 세상 이치에 비유 하면 마치 골짜기의 물이 江海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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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론의 설명을 보면, 빅뱅 이전에는 시공간도 없었으며 극도로 응축되어 계란처럼 작았으며 어떤 이유에선가 우주에 거대한 폭발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十干으로 표현하면 명확하다.
壬 – 무한응축. 빅뱅 이전, 有物混成
癸 - 빅뱅 이후. 우주가 팽창한 상태
老子는 32章에서 굉장히 독특한 명칭으로 빅뱅 이전과 이후를 표현하고 있다. 樸雖小(박수소)가 그것이다. 이런 표현은 오로지 老子의 道德經에만 나온다.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道大를 생각하다가 樸小를 보면 老子의 표현이 의아하지만 大小가 모두 우주 본성이다. 빅뱅이전에는 극도로 응축되었기에 小요, 온 우주를 펼쳐냈기에 大다.
道常無名(도상무명)
道는 항상 이름이 없다. 老子가 주장하는 道의 정체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다. 常無名은 인간은 영원히 그 정체를 모른다는 뜻이고 無常名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없기에 계속 변한다. 따라서 無名이라는 표현을 이름이 없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無名이 우주를 지배하지만 우리는 무어라 규정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른다.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도, 작기도 하다. 단지 道라는 명칭으로 부르지만 그 위대한 정체를 알 길이 없다.
樸雖小 天下莫能臣也(박수소 천하막능신야)
樸은 비록 작지만 천하에 그를 지배할 자가 없다. 독특한 표현이 樸이다. 투박, 소박, 질박, 가공하기 전의 거친 상태다. 樸은 비록 작지만, 세상 누구도 다스리지 못한다. 樸은 빅뱅 이전의 극도로 응축된 有物混成이며, 그 실체는 우주를 창조한 주인이다. 감히 누가 다스린단 말인가? 老子는 빅뱅 이전의 상태가 극도로 응축되어 매우 작았음을 樸小로 표현한 것이다. 樸의 정체를 정리해보자.
1. 樸은 매우 작지만, 우주보다 더 큰 존재다.
2. 樸을 臣下로 만들자는 천하에 없다.
老子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주 주인을 小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한 것이 분명하다. 삼라만상이 모두 들어가 무한 응축으로 매우 작은 시공간이 樸이다. 박이 있었기에 우주가 폭발하였으니 어미가 분명하다.
壬(樸, 小) ----------> 癸(天下)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후왕 약능수지 만물장자빈)
만약 道의 이치를 지키면 만물이 스스로 찾아든다. 사실 이 표현은 평이하지는 않다. 만약 道의 본성을 유지하면 萬物은 그 본성을 따를 것이다. 道는 항상 만물과 함께하기에 道와 만물은 하나이며 우주 어디에도 도가 머물지 않는 시공간은 없다. 이런 의미를 저렇게 표현하는 老子의 현란한 솜씨에 감탄한다.
天地相合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천지상합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천지가 서로 합하여 감로수를 내리듯 백성들은 명령에 따르지 않아도 스스로 평등하다. 위에서 若能守之 萬物將自賓(약능수지 만물장자빈)으로 만물에 우주 어미의 본성이 숨어있기에 이를 따른다고 설명한 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본성은 모든 생명체에 스며들어 있음을 표현한다. 이 문장을 정치와 제왕, 백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철학적으로 표현하면, 하늘과 땅의 조화, 시공간의 조화로 모든 생명체(民)의 삶은 스스로 조화를 이룬다. 老子가 암시하는 바는, 생기를 퍼트리고 만물을 이롭게 하려는 하늘의 영혼, 본성이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始制有名 名亦旣有(시제유명 명역기유)
천지의 시작은 이름을 만들어내고, 이름은 또한 있음을 규정한다. 樸(우주 어미)이 있기에 자식들은 이름을 갖고, 이름은 존재를 규정한다. 道는 비록 無名으로 이름이 없지만, 만물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道 때문이다. 만물에는 물형이 존재하고 이에 따라 이름이 정해지면 실체를 규정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규정한 존재는 본질은 아니다. 이름은 표상에 불과하며 그 존재를 완벽하게 규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진실한 실체는 무엇인가? 바로 樸이다. 모든 이름들의 본질이다. 道德經 28장에도 유사한 문장이 나온다. 樸散則爲器(박산즉위기) 樸을 나누면 기물이요, 故大制不割(고대제불할) 따라서 큰 틀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따라서 그침을 알아야 하고, 그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겉으로 보이는 이름에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표상에만 집중하면 문제가 생기며 본질을 이해하면 위태롭지 않다. 순환하는 자연에 이름을 붙이고 존재 의미를 규정하여 전부라고 간주하면 위태로워질 것이다.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은 단지 본질의 다른 면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色界를 향한 욕망을 그치며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色界에 빠져 그 것이 마치 전부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라는 당부다.
譬道之在天下(비도지재천하)
道를 세상의 이치에 비유해보면
猶川谷之於江海(유천곡지어강해)
마치 골짜기의 물이 江海로 흘러가는 것과 같다. 16章에서 살펴보았던 歸根曰靜, 是謂復命(귀근왈정 시위복명)의 다른 표현이다. 道란 수많은 시냇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 江河로 모이는 이치와 같다.
壬(樸小) --> 癸(빅뱅) --> 丙(色界) --> 丁(물질, 욕망) --> 壬(江海)
물질을 탐하는 중력을 없애서 樸으로 돌아가게 만들고 다시 일부를 활용하여 폭발하여 새로운 생명체를 내놓기를 반복하는 우주 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