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벌써 일흔하고도 두 살이다.
'눈 깜박 할 사이' 라더니 참 세월 빨리도 간다.
나는 특별한 경우 외에는 승용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도심 진입이 쉽지 않아 시간 약속도 지키기 어렵거니와 운동 삼아 전철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건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대한민국 전철의 냉난방 기술(?)은 세계최고다. 어떤 때는 무릎이 시릴 정도로 아주 세게 펑펑 틀어준다. 그러면서 계속 적자란다. 성수기 전력난이 심각하다느니 블랙아웃이 된다느니 하는 말은 적어도 한국의 전철에서는 통하지 않는듯하다.
유럽을 다녀온 후 냉난방이 심하다 싶으면 1544-7769로 온도를 조절 해 달라고 문자를 보낸다. 친구들은 이런 날을 보고 너무 유별난 게 아니냐고 곱지 않게 본다. 사실은 찬밥 더운밥 따질 형편은 못된다. 왜냐하면 무료승차를 하는 공짜 승객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전철 무료승차도 우리 노인들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노인 파워를 의식하여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일종의 선심공약으로 내걸었던 것이 현실로 이루어 진 것 뿐이다. 스웨덴 등 복지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도 전철의 전액 무료승차를 하는 나라가 없다. 하기야 칠팔십 년대에 산업화를 일궈낸 우리들이 이만한 혜택을 받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기는 하다.
남들은 공짜 전철 나이, 소위 ‘지공도사’가 되면 처음으로 하는 일이 만 원짜리 한 장 달랑 들고 온양 온천과 호반의 도시 춘천을 제일 먼저 기념으로 다녀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처음 해당되는 만 65세 때는 무료승차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무료승차 카드는 개찰구의 단말기 소리부터가 다르다. 일반승차 카드는 ‘삐’하고 한번만 나지만 무료승차 카드는 ‘삐삐’하고 두 번을 울리는데 얌체 무임승객을 단속하기 위해 차별화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삐삐하는 이 소리가 ‘공짜’라고 하는 소리로 들리는 것 같아 아직은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에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소리가 듣기가 싫었다.
이렇게 찜찜한 마음을 가지고 개찰구를 지나 전철을 타면 그때부터 노약자석으로 갈까 아니면 일반석으로 갈까 망설여진다. 그런데 나는 노약자석으로 가는 것이 썩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노인네 취급을 받기가 싫고 아직은 그자리가 내가 앉을 자리가 아니다 라는 생각과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일흔이면 전철의 노약자석에서는 청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간혹 노약자석이 비어 있어 앉아 있노라면 80세가 넘어 보이는 분들이 앞에 서 있으면 양심상 자리를 양보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리를 양보하고 나면 목적지까지 사오십 분 정도를 꼬박 서서 가야한다. 나이가 들면서 오래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노약자석을 포기하고 항상 일반석으로 간다.
그러나 일반석 쪽에서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요즘은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아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지만 일반석의 젊은이들 앞에 서 있으면 그들이 부담이 될까봐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일부러 먼 곳을 쳐다본다. 빈자리가 있어 좌석에 앉아있자면 노약자석이 비어있는데 무료승차한 노인네가 여기에 왜 앉아있나 라고 욕할까봐 눈치를 보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대선 때 일부 젊은이들이 자기들이 지지한 사람이 노인들 때문에 낙선했다고 노인들의 무료승차 폐지 운동까지 벌어 지지 않았던가. 어느 조사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노인들의 무료승차로 바깥나들이가 많아져서 건강에 도움을 주어 무료승차 비용보다 병원에 다니는 의료비용이 줄어들어 국가적으로는 더 이익이 된다는 통계가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확인은 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고 전철 타는 것이 영 마음이 편치 않다. 이게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고민 아닌 고민을 하면서 또 공짜 전철을 탄다. 언제나 이런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날이 올는지, 천상 내 생각에는 팔십이 넘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그때까지 살 수 있을는지...
첫댓글 프란치스코 선생님의 글을 읽고 저도 몇 줄 소감을 씁니다.
저도 지하철 무임승차자가 되었으나 솔직히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경로우대는 전부터 있었던 제도이니 65세 이상 노인에게 30%정도 요금할인, 많이 해 주어도 50% 는 받아야 합니다. 이 정도는 내고 타야 떳떳하고 일부 젊은이들로 부터 불손한 대접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거저타고 가는 주제라서 노약자석에 가서 자리가 나면 앉습니다. 그런데 신문지상에 80 먹은 노인이 60대에게 행패를 부렸다는 기사를 읽고나서는 거기 앉는 것도 찜찜합니다.
일반석 앞에 가서 서면 불편해 하는 젊은 승객들로 말미암아 저도 불편해져 진퇴양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