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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커피] (31) 본질을 잃은 크리스마스와 커피
성탄의 의미가 축하 파티에 있지 않듯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실종됐다. 휑한 거리에 울리는 캐럴은 차라리 쓸쓸하다. 작은 조명들은 텅 빈 공간에서 창백하게 깜박인다. 크리스마스가 왜 이렇게 됐을까? 한숨만 짓다가 문득 답을 찾아야만 한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크리스마스는 ‘메시아(Messiah)에게 생명까지 바칠 수 있는 심성을 표현하는 의식, 곧 제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하는데, 이 의식을 통해 하느님의 직책을 받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메시아가 희랍어와 라틴어를 거쳐 그리스도(Christ)로 바뀌었고, 우리말로는 구세주라고 적는다. 신약성경은 구세주를 예수라고 증언한다.
영어 표현인 마스(Mass)는 ‘파견하다’라는 라틴어 미사(Missa)에서 왔다. 고대 로마 시대에 의식이 끝난 뒤 그 모임의 의미를 널리 알린 데서 비롯됐다.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찬미하는 ‘말씀 전례’와 구세주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기리며 성체를 모시는 ‘성찬 전례’를 차례로 거행하는 의식을 라틴어 발음 그대로 ‘미사’라고 부른다.
크리스마스의 본질은 축하 파티와는 거리가 멀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애를 따르고 실천하기를 다짐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코로나19로 의미심장함 마저 자아내는 작금의 풍경은 어쩌면 크리스마스 초창기의 정신과 모습을 더 닮았을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산타클로스와 연결되는 접점 역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그리스도적 사랑에 있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당초 가족이나 연인을 향한 게 아니었다. 산타클로스는 지금의 터키 땅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죄인들을 회개시키는 데 삶을 바친 성 니콜라오(270~343)에게서 따온 것이다. 빚에 찌들어 딸을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한 부부를 니콜라오 성인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돈을 전해줄 방법을 찾던 그는 굴뚝으로 돈다발을 넣었는데 그것이 물기를 말리려고 걸어 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양말 모양에 담는 관습은 여기서 생겨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따뜻한 손길이어야 한다.
19세기에 루돌프 사슴과 산타클로스 요정 등 동화적 요소가 덧붙여졌고, 20세기에 들어서 산타클로스는 아예 코카콜라 등 대기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 더 이상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의 삶을 따른 성 니콜라오도 아니다.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아야 행복하다는 환상을 심어 소비를 부추기는 정체불명의 산타클로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에 대해 본질을 헤아려보는 좋은 기회다. 커피 분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커피의 가치는 인류의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커피의 본질은 마땅히 건강이다. 인류는 몸에 유익한 것을 맛이 좋다고 느끼도록 진화했으므로, 커피의 맛은 중요한 지표이다. 그런데 커피의 맛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다. 커피 자체의 품질을 따지지 않고 심지어 어디서 온 커피인지 정체도 따지지 않고 추출에 사용하는 물이 맛을 좌우하는 요인인양 떠들고 소비자들에게 불안감을 준다. 수돗물을 끓여 사용해도 커피 추출에 모자람이 없다. 주전자를 멋지게 돌려 물줄기를 차분히 해야, 특별한 그라인더로 커피를 분쇄해야 커피 맛이 좋아지는 것처럼 떠드는 것은 잘 보면 상술과 연결돼 있다.
본질을 잃은 것은 아름답지도 않을뿐더러 행복하지도 못하다. 크리스마스가, 커피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사유하는 커피] (32) 크리스마스 캐럴의 딜레마
구원의 소식 전하는 캐럴의 의미 새기며
크리스마스 캐럴이 딜레마에 빠졌다. 방송과 인터넷에서는 캐럴이 음원 차트 1위를 휩쓸고 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거리에서는 캐럴이 실종됐다는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하기에는 허전하고 황량하다.
머라이어 캐리가 1994년에 발표한 캐럴만으로 벌어들인 저작권 수익이 이번 시즌에만 5억 원으로 추정되는 등 모두 700억 원을 훌쩍 뛰어 넘어섰다는 전언이다.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캐럴이 강세를 보여 일부 가수들에게는 캐럴이 수익을 보장하는 ‘성탄연금’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거리에서 사라지다시피 한 캐럴이 음원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캐럴이 곧 돈이 되는 가요기획사와 음원 사이트는 “코로나19로 지친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 위해 캐럴을 찾고 있다”고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반면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예술가와 봉사단체들이 재능기부로 크리스마스 음원을 제작했다는 기사는 애써 찾아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캐럴은 거리에서 울려 퍼져야 한다. 캐럴의 본질은 음악 감상이 아니라 구원의 희망을 전파하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800년 전 ‘가난한 자의 아버지’, ‘또 한 분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라고 불린 프란치스코 성인이 구유를 만들어 예수 탄생을 재현하며 기도를 드린 데에서 오늘날의 캐럴 문화가 형성됐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촛불을 밝히고 구유를 둥글게 둘러싼 신자들은 성가를 바치며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맞이한 구세주 탄생의 감격을 나눴다. 이어 프란치스코 성인과 신자들은 병들거나 몸이 불편해 구유를 찾지 못한 환자들, 생계에 쫓겨 일터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집을 찾아 문밖에서나마 성가를 들려주며 구원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 앞에서 캐럴을 불러 축복의 마음을 전하는 캐롤링(Carolling)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17세기경부터 구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캐럴이 예수 탄생을 알리는 내용의 ‘저 들 밖에 한밤중에(The First Noel)’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캐럴은 5세기경에도 가톨릭교회 안에서 불렸다. 구전으로만 500여 곡이 전해진다. 내용도 성탄뿐 아니라 사순과 부활, 연중 시기에 각각 맞도록 다양하다. 이것이 로마로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로 전해져 각 지역의 문화와 결합하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야외에서 춤추며 부르는 ‘찬송의 노래’라는 성격이 짙어졌다. 따라서 이들 성가를 춤을 뜻하는 라틴어 ‘카롤라(carola)’ 또는 헬라어 ‘코라울리엔(choraulien)’에서 따와 캐럴(carol)이라 부르게 됐다.
돈을 주고 통신망에서 캐럴을 구입해 홈파티 분위기를 띄우는 데 소비하는 모습은 차라리 슬프다. 캐럴의 본질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찾아가 확신에 찬 구원의 소식을 전하며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캐럴은 구세주 예수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임해야 한다.
본질을 보지 못해 정신이 사라지는 현상은 안타깝게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커피에서는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가 그렇다. 이 커피의 본질은 품질이 좋아 비싸게 팔아도 된다는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출처를 정확하게 밝혀 산속 오지의 작은 땅이라도 그곳의 커피나무에 내린 신의 축복과 이를 땀 흘려 가꾸고 수확한 농부의 노고에 감사하고 기억하는 심성을 기르자는 다짐의 징표이다. 스페셜티 커피가 장사의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이 인터넷을 통해 요란한 파티장에 소음처럼 울려 퍼지는 캐럴과 중복된다.
[사유하는 커피] (33) 합창교향곡과 인류애, 그리고 커피
인류의 형제애 생각하며 커피 한 잔
유난히도 험난했던 경자년을 넘어서는 고갯길에서 인류애를 다짐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마음의 길’마저 끊겨선 안 된다는 절실함 때문이다. 신축년 새해에도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두려움과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신념이 교차하는 가운데 떠오르는 한마디가 “모든 인간은 형제다”라는 명제다. 송년음악회를 장식하는 곡으로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에 울려 퍼지는 노랫말이기도 하다.
괴테와 함께 독일 고전주의의 2대 문호로 일컬어지는 프리드리히 폰 실러가 1785년에 지은 ‘환희의 송가’에 붙인 곡인데, 인류애를 상징하는 최고의 작품이 됐다. 베토벤이 스물두 살 청년에 이 시를 만나 감동을 받았고, 그의 삶에서 절반이 넘는 32년간 정성을 쏟아 교향곡으로 승화시켰다. 특히 청력을 완전히 잃은 절망적인 상태에도 의지를 꺾지 않고 12년을 매달려 탄생시킨 사연 때문에 아픔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강한 의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베토벤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강렬한 관현악 연주에 200여 명 대규모 합창단의 목소리까지 어우러져 듣는 사람들에게 내재한 에너지를 솟구쳐 오르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런 가슴 벅찬 경험은 절대자에 대한 경외감과 환희로 이어져 가톨릭 성가(401번 ‘주를 찬미하여라’)로도 사랑받고 있다. 인류애가 주님의 본질임을 성가로 고백하고 되새기는 것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합창교향곡 연주가 취소되거나 다른 곡들로 바뀌었다. 대규모 합창단이 한 공간에서 노래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렛 어스 드림 -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길」이라는 책을 내고 인류애를 상기시켜 주신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로 무관심이라는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으며,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외면받고 힘겨워하는 이들을 향한 시선을 거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황의 말씀은 팬데믹 속에 울려 퍼지는 합창교향곡이다.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은 자들을 신비로운 그대의 힘으로 다시 결합시키는도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온화한 그대의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서.” 실러의 노랫말은 마치 작금의 코로나 상황을 예견하고 인류에게 선사한 위로인 듯 보인다. 베토벤의 폭발적인 교향곡은 이 대목을 더욱 고양하며 파편화되는 인류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 정신을 샘솟게 한다. 여기에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해결책도 무럭무럭 자란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위로 말씀까지….
전쟁과 폭력이 아니라 무관심이 인류애의 반대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19에서 찾아내야 할 교훈은 “연민을 갖고 삶의 속도를 늦춰 주변을 살피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교황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커피를 마주하고 묵상한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연이어 떠오른다. 지리한 가뭄과 혹독한 폭우를 이겨내며 한 알 한 알 열매를 키워낸 미얀마 오지의 난민들, 총알이 슝슝 날아가는 내전 속에서 목숨을 걸고 커피 포대를 이고 지고 험준한 산을 넘어온 카메룬 보요의 농부들, 뙤약볕에서 일사병으로 커피 밭에 쓰러졌던 콜롬비아 안티오키아 농장의 스무 살 아기 엄마….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행복이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각자의 소소한 삶에서도 인류애를 실천하는 시작점을 찾을 수 있다. 한 잔 커피라도 농장이나 작은 마을 단위까지 정확하게 명시되는 직접무역 또는 공정무역 커피를 가려 마심으로써 형편이 어려운 재배자들과 형제가 될 수 있다.
[사유하는 커피] (34) 성 요셉과 로부스타 커피
평범한 일상 속 강인함이 필요한 때
“아버지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의미를 신축년 벽두에 새롭게 새긴다. 새해를 ‘성 요셉의 해’로 선포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신 말씀이 울림이 되어 가슴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 가는 것이다.”(Fathers are not born, but made)
이 말씀은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서 성 요셉의 면모를 잘 드러내 준다. 성 요셉의 모범은 성령으로 잉태된 마리아를 배필로 받아들인 순종과 믿음에만 그친 게 아니다. 예수의 양부로서 임무를 다했고 마리아를 평생 보호하고 지켜주었다.
성경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비해 나자렛 요셉의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문맥을 거듭 헤아려보면 목숨을 건 성 요셉의 노고가 우러난다. 나자렛에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헤로데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천사의 전갈을 받고 다시 나자렛으로 이어진 성가정의 험난한 여정은 성 요셉이 있어 가능했다. 그에게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돕는다”는 의미를 지닌 요셉(Joseph)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계시가 아닐 수 없다.
이후 성 요셉의 활약은 묘사되지 않다가 12살 예수가 갑자기 사라지자 성모 마리아와 함께 애타게 찾는 장면을 묘사한 루카 복음에 등장한다. 성 요셉이 아버지가 되어 가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되지 않지만, 어린 예수를 보호했다는 면에서 그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1870년 복자 비오 9세 교황이 성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성 요셉은 이어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서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인물,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서는 노동해방을 위해 힘을 쏟는 사람들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1962년에는 성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성 요셉의 이름이 로마 가톨릭 미사 전문에 실리게 됐다.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성 요셉에게 구세주를 충실히 돌보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어, 교회가 인류 구원 사업에 충실히 봉사하게 하소서”라는 대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성 요셉을 기억하는 기도문이 가슴을 파고든다. 팬데믹으로 불안과 공포 앞에서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강인함’이 필요할 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나자렛 요셉이야말로 주목을 받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게 매일을 살아간 사람이자 구원 역사에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수행한 분이다.
커피에서 수호자로서 성 요셉의 모습을 찾는다면, 로부스타 커피이다. 이 커피는 향미가 고급스러운 아라비카 커피와 비교해 홀대를 받아왔다. 고무 냄새와 여러 번 우려낸 보리차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스턴트 커피 제조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인해 커피 재배지의 부족과 수확량 급감 등의 위기 속에서 로부스타는 커피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커피나무는 기온이 낮은 상태에서 서서히 자라야 향미를 씨앗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 그래서 해발고도 2000m 위에서 자라는 아라비카 품종들이 대우를 받는다. 반면 콩고의 열대우림에서 탄생한 로부스타는 해발고도 1000m 아래에서 병충해와 싸워가며 강인함을 길렀다. 향미는 떨어지지만 카페인과 트리고넬린 등 험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갖춰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커피 품종의 수호자가 되고 있다.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아라비카 품종이 로부스타의 강인함에 기대 탄생한 F1 교배종이 산지를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일상 속에서 성 요셉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사유하는 커피] (35) 기적의 본질과 맹글라바 커피
미얀마 난민에게 기적을 안겨주자
그야말로 기적을 갈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당혹감이 두려움을 거쳐 분노로, 이젠 낙담과 좌절로 이어져 인류를 주저앉히려는 기세이다. “내일 출근길에는 모두 마스크를 벗고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켜 달라”고 염원하며 잠들고 있다. 기적까지 청하며 가고 싶은 곳이 1년 전 일상이라니…. 우리는 그때 기적 속을 살아갔던 것일까?
기적이란 무엇인지를 되뇐다.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이다. 무신론자에게 기적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고, 유신론자에게 기적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간절함이다. 이렇게 두 가지 입장으로 선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적은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신을 부정하는 자들에게 모든 현상은 과학적으로 설명돼야 한다. 그런데 기적은 정의 자체가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반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기적은 ‘신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사건’으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기적의 본질’을 생각한다. 본질이란 ‘불변하는 무엇’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행하신 많은 기적들에서 불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느 부분에 집중해야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기적의 본질은 그것을 행한 신의 의도에 담겨 있다. 한편으로 에드문트 후설은 “본질은 현상 안에 있다”고 말한다. 기적은 인간의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현상이므로, 우리는 기적 속에서 본질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철학자의 견해만 따져보면, 예수께서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눈멀고 말 못하는 이들을 고치신 여러 기적의 본질은 두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신성(神性)을 드러냄으로써 기적을 본 냉담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신의 영역을 감각하기는커녕 알 수 없다. 신은 인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적은 신과 인간 세계의 접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적을 통해 신의 존재를 느낀다. 기적의 본질에 대한 다른 하나는 복음(마태 8,27)에 적혀 있듯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가 누구인지 묻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기적의 본질이란, 절대자의 존재를 느끼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의지로 신에게 의지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시에 예수께서 행한 현상으로서의 기적에는 ‘불변하는 사랑’이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랑이 예수의 기적 속에 항상 존재한다.
코로나19 속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기적도 결국 사랑의 실천이겠다. 기적과 사랑은 양쪽으로 흐른다. 기적이 사랑을 낳을 수 있고, 사랑이 기적을 부를 수 있다. 기적은 신과 인간세계의 접점이자 교집합이기 때문이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올리는 기도를 “사람들이 서로 손잡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커피로 ‘기적의 본질’을 실천할 수 있을까? 코로나19가 끼치는 해악이 미디어에는 주로 선진국 상황만 전해지고 있는데, 형편이 어려운 나라들의 사정은 더욱 충격적이고 눈물겹다.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시아에 있는 커피 생산국의 소규모 농가들은 끼니를 잇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동 자체가 금지됐으며, 애써 수확한 커피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묶여 있다.
특히 이곳저곳으로 쫓겨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 미얀마 난민들이 자연에서 채집하다시피 하는 커피는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는 생명과 다름없다. 미얀마 맹글라바 커피 한 잔을 가려 마시는 우리의 일상이 미얀마 난민에게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커피의 본질은 ‘사랑의 실천’과 닿아 있다.
[사유하는 커피] (36) 고종과 김대건 신부의 커피
김대건 신부, 마카오 유학 중 커피 마셨을 것이다
한국인 중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마신 인물로 고종(재위 1863~1907)을 제치고 김대건 신부(1821~1846)가 주목받고 있다. 항간에는 고종이 을미사변으로 인해 1896년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 뒤 커피를 접하게 됐고, 이것이 한국 커피의 효시라는 말이 파다하다. 하지만 이는 몇 가지 기록만 봐도 어렵지 않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오류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고종의 시대에 커피가 들어왔다는 의미쯤으로 가볍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고 있다. 커피가 물보다 자주 마시는 음료가 될 정도로 일상에 깊이 파고들고 있으며, 관련 직업군도 확대되면서 시장 규모가 와인의 10배를 훌쩍 넘어섰다. 이와 함께 커피 인문학이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채택될 정도로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분위기다. 커피에 관한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고종이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이라는 소문”은 수많은 커피 애호가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역사교과서에서는 접할 수 없는 내용까지 고종의 삶과 신념을 속속들이 알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러시아 공사의 가족인 미스 손탁으로 하여금 ‘정동화옥’이라는 사실상의 영빈관을 운영케 함으로써 치밀한 외교전을 펼쳤다거나 아관파천을 통해 경복궁에 남은 친일파를 처단한 전략을 구사한 것은 커피 애호가들이 아니면 묻힐 수 있었던 고종의 일면이기도 하다. 아관파천보다 10여 년 앞서 경복궁에서는 외교관과 선교사들을 접대하는 자리에 커피와 샴페인, 시가가 공식적으로 나왔다는 증언과 자료들이 여럿 있으니 우리 커피 역사의 깊이는 마땅히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이 연장선에서 실마리가 될 역사적 사건은 열다섯 살 김대건을 비롯해 조선의 10대 청소년 세 명이 마카오 신학교에서 가톨릭 사제 수업을 받은 장면이다. 이들은 1836년 12월 한겨울, 걸어서 만주 몽고 중국 대륙을 횡단해 7개월여 만인 이듬해 6월 마카오 신학교에 도착했다. 김대건 신부는 1937년부터 거의 7년간 마카오에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생활하면서 서양식 식사와 함께 커피를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터라 신학교의 식단은 모두 서구식이었다. 김대건 신부가 커피를 마셨을 정황을 추적하면서 사제가 되기 위해 그가 치러야 했던 처절한 사연이 구절구절 드러난다. 포르투갈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필리핀으로 여러 번 피난해야 했으며 사제품도 고국을 향하는 길에 중국 상해에서 받을 수 있었다. 소년 김대건이 신부가 되기까지 모든 순간이 십자가의 길이었다고 할 정도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신학생 김대건은 마카오에서 바뀐 식생활 환경 탓에 복통, 두통, 요통을 달고 살았다. 당시 신학교 자료를 보면 조선 신학생들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빵과 커피를 먹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내 잘 이겨냈다는 내용이 있다. 특히 지도 교수격인 리브와 신부가 1839년 5월 6일 쓴 서신에는 “(김대건이) 잘 먹고 잘 잡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커피를 마신 최초의 조선인이 고종 시대에 있던 것이 아니라 이보다 50년 앞선 헌종 때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조선 신학생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대건은 상해에서 사제가 된 뒤 라파엘호를 타고 조선을 향하다 풍랑을 만나 한 달쯤 표류하다가 제주에 표착했으며, 역경을 겪고 1845년 10월 한양에 도착했다. 이듬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했으니 신부로서 조선에서 활동한 기간은 1년이 채 안 된다.
유네스코가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성 김대건 신부를 세계 기념 인물로 선정했다. 커피를 통해서도 그분의 삶이 보다 구체적이고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