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규 목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입니다. 함께 나눌 수 있는 웃어른, 형제, 친척, 이웃이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즉, 좋은 것을 나눌 수 있는 자녀가 있는 부모님은 행복합니다. 정성어린 선물을 드릴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신 자녀는 행복합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혼자이면 외롭기 때문입니다. 또한 서로 서로 욕심 없이 나눌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욕심 없이 서로 나누면, 천국을 맛볼 수 있습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누어 먹을 때, 세상은 살맛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욕심 없는 나눔"의 삶을 살지 못할까요? 첫째 이유는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움켜쥐는 훈련만 받아서 손을 펼 줄 모릅니다. 일단 자기 손에 들어오면, 움켜쥐고 남에게 베풀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공하려면, 오히려 욕심이 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욕심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을까요?
첫째, 욕심은 죄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욕심이 "죄"라고 선포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이렇듯 모든 죄는 욕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도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창 3:5). 욕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성경은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엡 5:3). 욕심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앗아갑니다. 성경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0:21-22). 그러나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 부자 청년은 영생의 주인을 만나고도 결국 가장 귀한 영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욕심과 소망을 혼동한다는 것입니다. 내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소망입니다. 그러나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입니다.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소망입니다. 그러나 나"만" 부자가 되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마치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내 작은 욕심이 나와 가정과 사회를 멈춰버리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작은 욕심이라도 싸워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 12:15)고 명령하십니다. 욕심을 물리칠 때, 다툼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며, 욕심의 속박에서 벗어나 심령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나눔은 성경의 가르침
성경은 "주는 것"을 가르치는 책입니다. {주라}(눅 6:38).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는 에덴 동산을 주셨습니다(창 2:8). 심지어 멸망받아 마땅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요 3:16).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요 14:18).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된 우리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욕심은 배우지 않아도 아는데, 나눔은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세 살 먹은 아이들조차도 욕심을 부리고, 욕심 때문에 싸웁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인생은 끊임없는 전쟁과 다툼의 연속일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나눔의 법칙은 하나님께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라고 명령하십니다. 또한 말로만 나누지 말고, 이웃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5-16).
그리고 억지로 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나누라고 하십니다(딤전 6:18).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가장 잘 아십니다. 나눔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인생 행복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누면서 사는 것이 행복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물질만 나누지 말고, 시간도 나누고, 사랑도 서로 나누며 삽시다.
셋째, 나눔은 더불어 사는 삶
욕심은 더불어 망하는 길이지만, 나눔은 더불어 사는 길입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어도 서로 나누면, 너도 살고 나도 삽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수만 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오병이어의 기적은 비록 하찮고 작은 것이었지만 그것을 나눈 아이를 통해 일어났습니다(요 6:8-13). 이 아이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고,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까지 얻었습니다.
현대인이 스트레스와 질병에 시달리는 것은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던 이 아이와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것", "내 것" 하다가 지쳐버립니다. 예화 중에 천국은 긴 젓가락으로 서로 먹여주는 곳이지만, 지옥은 나만 먹으려고 애쓰는 곳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눔이 없는 인생은 지옥에 사는 인생인 것입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됩니다. 욕심은 이웃과 높은 담을 쌓지만, 나눔은 담이 없는 동네를 만듭니다. 순복음인천교회는 이웃과 서로 나누는 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의 담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고인물이 되지만, 서로 나누면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인생이 됩니다.
매일 썩은 물을 마시겠습니까, 아니면 생수를 마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나누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우리도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면, 하늘의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넷째, 나눔은 더 받는 복
옛 어른들과 현대인들 중에서 누가 더 지혜로울까요? 옛 어른들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법칙을 아셨지만, 현대인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법칙은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고 약속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나눔의 복은 받은 복 위에 "더 받는 복"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도 복을 받습니다.
{저가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6). 이렇게 쉬운 축복의 법칙을 버려두고, 로또 복권 같은 것을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이 시대는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되는 저금리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흥청망청 낭비하며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우리는 구제를 좋아해야 합니다.
성경은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잠 11:25)질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눌 때에도 억지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윤택하게 하기 위해서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는 사람이 복 있다고 말씀하십니다(행20:35). 복 있는 사람은 나누는 사람이고, 나누는 사람이 "더 받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