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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11
내 안의 여리고를 점령하자. / 양인순 목사
뉴욕 타임즈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에 선정된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한 지점의 바위에 계속 떨어지면 어느 순간 바위가 균열이 생깁니다. 그 한 방울의 빗물이 떨어져 마침내 바위가 균열이 일어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어떤 일이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어느 순간 균형이 깨지고 한순간에 변화되는 극적인 순간을 말합니다.
허시파피라는 미국의 신발 브랜드가 있습니다. 1994년에 매출이 급감하여 일 년에 3만 켤레 밖에 팔리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는 이 사업을 접으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뉴욕의 소호라는 상업지역에 재고 신발을 모아서 떨이로 싸게 파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몇 몇의 감각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그 가게에 있는 허시파피 신발을 사서 신었습니다. 그것이 유행이 됐습니다. 뉴욕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 신발을 신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광고를 한 것도 아니고 문을 닫으려고 했는데 일 년 만에 43만 켤레가 팔렸습니다. 이 상품은 오늘날 미국 젊은 남성들이 애용하는 패션이 됐습니다.
이처럼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이용되다가 갑자기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3가지 힘이 작용합니다.
첫째는 소수의 법칙이요,
둘째는 고착성의 요소와
셋째는 상황의 힘입니다.
바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는 소수의 법칙에 해당합니다. 지속적으로 물이 떨어지는 것은 고착성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특정 지점에 절묘하게 떨어지는 것은 상황의 힘입니다.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 티핑 포인트가 있습니다. 어떤 작은 상황에 의해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역시 티핑 포인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핍박하던 사울이 다멕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사도 바울로 거듭나는 순간 역시 티핑 포인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순간 역시 티핑 포인트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소수의 리더인 여호수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한 바퀴씩 마지막 날 7바퀴를 도는 고착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나팔 소리와 함께 외치는 상황의 요소가 결합되어 마침내 여리고가 무너집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더 깊게, 더 넓게, 더 멀리 라는 표어를 정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3더 운동
이 정착될 때 우리는 놀라운 티핑 포인트가 이뤄지는 역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몸짓에 불과하지만 이것이 계속되어 공동체의 힘으로 작용하면 어느 순간 부흥의 역사가 불같이 임할 줄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놀라운 부흥과 기적의 티핑 포인트가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배우기를 원합니다.
여리고 성은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30km 거리에 있습니다. 여리고는 정상적인 군사 작전으로는 정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형조건입니다. 지난 번 성지 순례 때 여리고성을 갔습니다. 지금은 요르단 서안의 팔레스타인 거주지역 안에 있습니다. 현재의 지명은 ‘제리코(Jerico)’입니다. 여기에는 삭개오가 올라갔다는 뽕나무도 있습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뽕나무가 없습니다. 돌 무화과나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습니다.
여리고는 8000년 전에 도시가 형성됐습니다. 그래서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이뤄진 도시라고 합니다. 지금은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시 여리고 성은 가파른 경사지의 정상 부분에 위치한 천연적인 요새입니다. 성벽은 이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망루에 서면 수 킬로미터까지 시야가 확보되어 적군의 동태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수많은 전투에서 단련된 막강한 병사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여리고성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요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반드시 여리고 성을 정복해야 했습니다. 그곳은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로서 가나안으로 진입하는 핵심 지역에 위치한 성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을 장악해야 가나안 땅 중심부로 향한 거점을 확보할 수 있고, 남북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어서 적의 연합 전선 구축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 정복을 위한 첫 번째 전투라는 점에서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했습니다.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처음 테이프를 잘 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정복의 시금석이 바로 여리고 전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3400여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여리고 전투와 우리의 신앙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의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비록 수 천 년 전에 있었던 전쟁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여리고 성은 단순히 이스라엘 앞에 버티고 있는 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내적인 문제, 외적인 문제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버티고 있는 여리고를 정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나친 이기심과 욕심일 수 있습니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우상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기쁨을 잃어버린 바리새적인 신앙일 수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나쁜 습관과 버릇일 수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교회를 위협하는 세속주의와 사탄적인 문화일 수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무너뜨리는 사탄의 유혹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이 시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데 걸림돌이 되는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축복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내 안에 있는 여리고를 정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축복의 땅을 앞에 두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누리시기 원하십니까?
그러면 먼저 내 안에 있는 여리고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비밀을 들으십시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라.
이미 여호수아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전쟁을 앞두고 할례를 행함으로 백성들을 성결케 했습니다. 유월절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군대장관 앞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지휘권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노라.”(수6:1)
이 말씀은 “네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직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승리는 너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십니까? 이것은 여호수아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 내 앞에 버티고 있는 영적 여리고를 정복하고자 하는 모든 성지가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를 가져오는 최고의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을 창조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정복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병든 자를 치유하는 회복의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을 끊고, 승리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모든 악한 권세를 깨뜨리고 능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검, 말씀으로 무장하라고 명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은 바로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비결을 여호수아에게 제시하십니다.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7-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면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항상 승리합니다. 그 길이 평탄하고 형통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다시 한번 승리의 확신을 주십니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노라.”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씀대로 순종만 해라. 그러면 내 앞에 있는 모든 대적을 멸하겠다. 닫힌 문을 열어 주겠다. 내가 너로 승리하게 하겠다.” 아멘!
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허탄한 소문이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환경에 지배를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진리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들고 나가는 자에게 반드시 승리하게 하시는 역사가 날마다 임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믿음으로 행동하라.
하나님이 제시한 여리고 성의 공격작전은 상식을 뛰어 넘는 것이었습니다. 성벽을 부술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하라 또는 특공대를 조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 주위를 매일 한 바퀴씩 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소리를 지르면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니 그 성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황당한 명령입니다.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눈 앞에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성문을 모두 닫혀 있고 적막이 감돕니다. 맨 앞에 무장한 선봉대가 섭니다. 뒤에는 나팔을 든 일곱 제사장이 따라갑니다. 그리고 언약궤가 이어지고 나머지 군사들이 행진을 합니다. 여리고성의 크기로 볼 때 적어도 1시간 이상 걸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들은 엄청난 모험이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만약 성 주변을 돌때 성안에서 공격을 감행하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적극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결코 행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래서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칠일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30절)
여리고가 무너진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요, 믿음의 결과였습니다. 믿음은 상식을 뛰어 넘습니다. 믿음은 이성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믿음은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출발이요 기초입니다. 믿음은 보화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자는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적인 방법으로도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철학이나 지식이나 선행이나 자기 의를 가지고 진리에 이르기 위해 몸부림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안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 만이 유일한 진리이십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만이 진정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믿고 나가는 자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성을 돌았지만 그들이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가나안의 적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를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힘으로 방법으로 잔재주를 부리지 마십시오.
세상을 이기는 비결은 오직 예수,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의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믿음으로 전진할 때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여리고는 무너질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침묵으로 인내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군의 목전에서 매일 성을 돌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3,4일 돌았으면 무엇인가 성이 무너지는 징조가 보이든지, 적군이 내부 분열의 모습이 보여야 하지 않습니까? 6일째는 성벽이 금이 가든지 뭔가 조짐이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7바퀴를 도는 순간까지도 여리고성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이때는 침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벽을 돌때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7일동안 성벽을 돌면서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수6:10)
왜 하나님은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불평의 선수들입니다. 1세대 조상들은 광야 길에서 원망하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이미 조상들을 통해서 배운 역사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이 이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는 자연스럽게 원망이 튀어날 올 수 있습니다.
만약 여리고성을 도는데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어떻게 됐을까요?
“무슨 작전이 이 모양이냐? 여호수아는 겁쟁이 아니냐? 우리를 뺑뺑이 돌리다가 죽게 만들려고 하느냐?"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신경이 예민하고 힘든 상황에서는 누구나 이런 부정적인 말을 내뱉기 쉽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엄청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릴 위험성이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한 하나님의 고도의 심리적인 작전이셨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도 백 마디의 말보다 한 번의 침묵이 더 힘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들으려고 애를 쓰십시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십시오. 그리고 할 수 만 있으면 침묵하십시오. 침묵은 곧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묵묵히 침묵하는 자는 하나님의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짐 엘리어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탄은 적어도 세 가지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다. 소음, 조급함, 그리고 군중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적인 리더로 쓰임 받으려면 이 세 가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약속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또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 날 6바퀴까지만 돌고 포기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코 여리고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기도들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마지막 1분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함으로 무산됩니까? 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진짜 순종은 응답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이루십니다.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은 인간의 창칼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원망하거나 불순종하면 여리고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작전이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한 걸음씩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며 집중해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전진해야 합니다. 마침내 여리고가 무너지는 티핑 포인트가 임합니다.
일본의 후나이 유키오가 지은 <100마리 원숭이> 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의 고지마라는 무인도에 원숭이들이 살았습니다. 원숭이들은 당시 고구마를 뽑아서 손으로 흙을 털어내고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 어린 원숭이 한 마리가 물에 고구마를 씻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원숭이들이 모두 하나 둘 흉내를 내더니 결국은 모든 원숭이들이 고구마를 물로 씻어는 행동양식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고지마 섬 이외 지역의 원숭이들도 똑같이 고구마를 물로 씻어 먹는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서로간의 접촉이나 의사소통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치 신호를 보내기라도 한 것처럼 정보가 흘러가더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특별한 행동이 이뤄지면 그것이 점점 퍼지게 됩니다. 그리고 동일한 행동을 하는 자들이 100명이 되면 거리나 공간에 상관없이 전체 공동체에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그것이 계속되면 점점 세력이 커집니다. 마침내 100번째 사람까지 확산되면 전체적인 행동양식이 됩니다. 오늘 우리 안에 있는 여리고, 외부적인 여리고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한 마리 원숭이처럼 새로운 시도가 중요합니다. 그것이 비록 작은 몸짓이라도 100번째 원숭이가 따라하면 마침내 공동체 전체가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대수롭지 않던 작은 바람이 모여 어느 순간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되듯이 오늘 우리의 작은 믿음의 몸짓이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첫 번째 원숭이를 찾으십니다. 아니 100번째 원숭이를 찾으십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주인공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지 가족 여러분!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내 안의 여리고는 무엇입니까?
비록 지금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한 마리의 원숭이처럼 도전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 안에 창조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새롭게 도전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제2,3..마침내 100번째 믿음의 용사가 나올 때 성지교회는 지역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있는 건강한 교회,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 가운데 티핑 포인트의 기적을 일으키는 한 사람의 여호수아를 찾고 계십니다. 계속해서 말씀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인내하는 100번째 원숭이 같은 여호수아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되셔서 내 안의 여리고를 점령하고, 세상의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