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살아 생전 연세가 드셔서는 일년에 최소 한번은 고향을 다녀왔지만, 예산역에서 지척인 예산여고는 한 번도 방문할 생각을 못했었죠* 그런데 엊그제 맑은 가을날 하늘이 하도 좋아서, 더 추워지기 전에 부련듯 고향집에 다녀오고 싶어졌어요* 그리고는 이제 부모님 두 분이 다 떠나시고나서야 예산여고를 찾게 되었어요.
수업 중인 학교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점심시간을 틈타 벤치에서 그네를 타는 여학생들을 먼 발치에서 쳐다보았답니다♡
학생수가 줄어서 공간이 여유가 생긴 탓인지 못보던 건물도 두어 채 새로 보이고~^-^~
운동장에서 조회서던 고등학교 1학년 월요일 아침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교장선생님 훈화가 지루해진 또래 여학생들은 재잘재잘 쉴새없이 친구들과 조잘되는데 ~
저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혼자만의 고민속에 빠져있었죠♡
지금 사십 년만에 다시 그 운동장에 서서 보니 정말 그때 판단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을 각오로 하나님과 독대를 했어요~ 이제 더 이상 성경을 보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크게 부르짖으며, 지금부터 나의 종교는 가장 휴머니즘적인 불교다 라고 선언했지요^-^
운동장에서 달리기며 뜀뛰기도 많이 했건만,
운동장에서 노는 학생수가 줄어서인가 땅이 푸석푸석~ 안타깝네요♡ 체력이 있어야 공부도 하는건데~ 하기사 키크고 체력 좋은 저를 운동선수 만들려고 옛날 체육선생님이 엄청 공을 들이셨었죠. 하지만 저는 매정하게도 배구선수 테니스선수 조정선수~ 등등 모두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답니다^-^
첫댓글 추억이 아련한 예산여고를 댕겨오셧 습니다
그때 체력적으로 밑받침돼고 배구나 농구를 하셧으면 좋았을낀데 단박에 거절하셧으니
지금은 추억으로 빛바랜 책갈피속에 익어가는 잎새가 되겟습니다
많이 허약해진 몸을 보며 가끔 중고등학생 때 체육선생님 말씀을 들었더라면 더 건강해졌을텐데~^-^~
그런 생각들이 어쩌다 스치곤 했지요^^
하지만 운동한다고 수업시간 빼먹고 나가는 친구들 예를 보며, 저는 같은 등록금 내가며 수업도 못받는 건 너무 억울하게 여겨져서 용납할 수 없었죠*
그리고 엄밀히 제가 몸이 약해진 것은 출가후 석박사 공부한다고 서울에서 10년간 지낸 이후예요* 동대에서 대학원 다닐 무렵 모친이 10만원 보내주신 돈으로 한 달을 버티려니, 무척 배가 고팠죠* 정말이지 밥먹듯이 밥을 굶은 채 밤10시까지 연구실에서 공부했는데~ 박사수료 이후부터 밤낮으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어요♡복없이 공부하려니 참^-^
아~옛날이여~~
단발머리에 교복입은 여학생때
훌쩍 큰키에 체력까지 좋으셨다니 재미난 학생시절을 보내겠습니다.
40년전 그운동장에서 불교를 선언하신 단호함이 오늘을 만드셨습니다.
학생수가 적어진 학교가 어디에서라도 느껴지는 현시대입니다.
옛추억 잘 회상하고 오셨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하나님 안 믿으면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다 죽는다는 말에 놀라서 맹목적으로 성경공부를 했어요^^ 그렇게 중학교 때까지 자나깨나 수업시간 끝나고 쉬는 시간만 나면 매번 성경책을 보았어요* 그렇게 6년 정도 정신없이 공부하다가 다른 문학 철학서적도 보며, 이게 아니다 싶었죠^-^
그런데도 고등학교 와서도 매일 성경공부를 하는 자신을 돌이켜보고, 성경 내용이 옳다거나 하나님을 존경해서가 아니라 죽을까봐 무서워서 믿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렸죠* 그걸 알고는 독립운동으로 기꺼이 죽음을 감수했던 분들께 부끄럽고~ 그래 차라리 죽어야겠다고 결단했죠* 그때 출가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릉 출가했을거예요^-^
그런때가 있었기에
지금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40년만이라 참 오랜만에 졸업한 예산여고를 방문하셨다니 출가하신 스님이시니 남다른 감회가 있었곗습니다.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주마등 스치듯이 스쳐겠습니다.꿈 많은 여고시절인지라 더더욱 추억이 많았을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철없던 시절~~
같이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고맙습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