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명산, 환산(環山)
1. 환산 감로봉(555.5m)에서 조망, 앞은 금강, 그 건너는 마성산
“관산성(管山城)은 현재 충북 옥천군 옥천읍으로 비정(比定)된다. 고시산(古尸山), 구례성(仇禮城), 구리성(仇利
城), 고리산(古利山), 구타모라(久陀牟羅), 함산성(函山城)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고리산으로도 불리는 관산은
현재의 옥천군 군북면 환평리의 환산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환산성은 현재 군북면 이백리와 환평리·증약리
·추소리·항곡리 사이의 해발 581.4m의 고리산(환산)과 그 남쪽 및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곳곳의 산봉우
리에 고리 형태로 석축한 6개의 보루를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백리산성’
또는 ‘할배성’이라 불리며, 한동안 고리산성이라고 추정하였던 제1보루에서부터 약 200~900m의 거리를 두고 각기
떨어진 5개의 보루들이 능선 양쪽이 모두 험하고 가파른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환산 전체를 하나의 요새처럼 꾸미
고 있고, (…)”
―― 삼국사기 신라본기 「관산성에서 백제를 물리치다(554년)」의 각주에서
▶ 산행일시 : 2025년 4월 27일(일), 맑음, 미세먼지 좋음
▶ 산행인원 : 5명(킬문,칼바위,곰발톱,문필봉,악수)
▶ 산행코스 : 개산골 입구,369.0m봉,412.5m봉 환산성지,523.6m봉,감로봉,삼각봉,환산,봉화대,황룡사,부소담악
▶ 산행거리 : 도상 9.3km(황룡사 앞에서 부소담악과 도로 거리 3.6km 포함)
▶ 산행시간 : 7시간 49분(08 : 33 ~ 16 : 22)
▶ 갈 때 : 서울역에서 KTX 열차 타고 대전역에 가서, 곰발톱 님 승용차 타고 이백리 개산골 입구로 감
▶ 올 때 : 개산골 입구 이백리 버스승강장에서 버스 타고 대전역에 와서, 근처 단골식당에서 저녁 먹고 KTX
열차 타고 서울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43 – 서울역
07 : 48 – 대전역
08 : 33 – 이백리 개산골 입구, 산행시작
08 : 58 – 359.9m봉
10 : 03 – 412.5m봉, 환산성 제2보루
10 : 29 – 523.6m봉, 환산성 제3보루
10 : 56 – 감로봉(555.5m)
11 : 53 – 환산(環山, 고리산, △578.9m), 환산성 제5보루
12 : 07 – 576.6m봉, 봉화대, 환산성 제6보루, 점심( ~ 13 : 53)
14 : 49 – 황룡사(黃龍寺)
15 : 15 – 부소담악(浮沼潭岳)
16 : 22 – 환평리, 산행종료
17 : 30 – 대전역 앞 음식점, 저녁( ~ 18 : 50)
19 : 19 – 대전역
20 : 33 - 서울역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보은 1/25,000)
대전역에 도착하자 곰발톱 님과 문필봉 님이 나와 있다. 우선 산행 끝나고 귀경할 열차표 예매가 급선무였다. 오늘
산행일정을 주관할 두 분은 우리가 저녁 19시경 귀경할 것을 예정하였다. 역사내 열차표 자동판매기를 들여다보니
그 시각의 열차표는 매진이었고, 매우 드물게 입석표가 잡혔다. 킬문 님은 운이 좋게 입석표 1장을 잡는 데 성공하
였다. 나는 좌석이 보였다. 얼른 잡았다. 그런데 출력되어 나온 열차표를 보니 서울이 아닌 부산이었다.
(나의 경우) 자동판매기에서 열차표를 취소하기가 예매하기보다 더 어려웠다. 내가 자동판매기 스크린 터치에 더듬
거리는 것을 본 칼바위 님이 창구에 가서 역무원과 대면 상담하시라고 한다. 역무원은 친절했다. 서울을 부산으로
잘못 끊었다는 내 얘기를 듣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더니 마침 서울 가는 좌석이 1장 나왔습니다. 서울로 여행변경을
하겠습니다, 하고 열차표를 끊어 주는 게 아닌가. 여행변경은 취소수수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좌석은 이때 나에게
돌아온 1장뿐이었다. 킬문 님과 칼바위 님은 입석(입석도 잡기 어렵다)으로 서울로 와야 했다.
곰발톱 님 승용차로 환산 들머리로 간다. 가는 도중 식장산이 가깝게 보인다. 곰발톱 님은 자기 집에서 승용차로
5분 거리이라며, 자기가 즐겨 찾는 산책코스라고 한다. 나는 두 해 전 식장산을 올랐을 때 그 숨 막히게 화려했던
산 첩첩 조망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옥천군 군북면 이백리로 넘어간다. 식장산 북쪽 자락 끄트머리다. 경부고속도로 굴다리 지나 개산골 입구다.
갓길에 주차하고 개산골 왼쪽 능선을 오르기로 한다. 오를 때는 험한 길을, 내릴 때는 순한 길을 안내하겠단다.
오룩스 맵으로 오늘의 산행을 살핀다. 오가는 길 모두 등고선이 촘촘하다. 능선 진입 초반은 약간 가파르지만 인적
이 훤하다. 길섶 풀꽃들을 들여다보며 간다. 호제비꽃일까. 나는 제비꽃이 알아보기 퍽 어렵다. 국생정에는 54개 종
의 제비꽃이 등재되어 있다. 몇 개 종을 제외하고는 구별하지 못한다. 10분 정도 오르자 무덤이 나오고 그 뒤로 인적
은 끊겼다. 아울러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고정밧줄 붙들고 기어오기도 한다. 길은 수북한 낙엽에 묻히기도
하여 미끄럽다.
369.0m봉이다. 조망이 트인다. 서대산과 장용산이 반갑다. 다시 하늘 가린 숲속에 들고 오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길이다. 412.5m봉. 환산성 제2보루 백제계성이라는 표지석이 있고 주변에는 석축 흔적이 남아
있다. 모처럼 역사 공부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관산성에서 백제를 물리치다(554년)」의 내용이다.
“〔15년(554)〕 백제왕 명농(明穠)이 가야[加良]와 함께 와서 관산성(管山城)을 공격하였다. 군주(軍主) 각간(角干)
우덕(于德)과 이찬(伊飡) 탐지(耽知) 등이 맞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신주군주(新州軍主) 김무력(金武力)이 주병(州
兵)을 이끌고 나아가 서로 맞붙어 싸웠는데, 비장(裨將)인 삼년산군(三年山郡)의 고간(高干) 도도(都刀)가 갑자기
공격하여 백제왕을 죽였다. 이에 여러 군대들이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4명과 사졸(士卒) 29,600명의
목을 베었고, 한 필의 말도 돌아간 것이 없었다.”
다음은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모은 각주이다.
“백제왕 명농(明穠)은 백제 제26대 성왕(聖王, 재위 523~554)의 이름이다.
가야는 대가야를 중심으로 하는 가야연맹을 가리킨다고 한다. 종래에 가야연맹에서 동원한 군사가 어림잡아
18,600명 이상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고 한다.”
3. 호제비꽃(?)
4. 할미꽃
6. 장용산과 서대산(오른쪽)
7. 359.9m봉에서 조망, 왼쪽 동네는 옥천
8. 각시붓꽃
9. 족도리풀
10. 오른쪽 중간쯤에 정시용 시인의 생가가 있다
11. 멀리 왼쪽은 속리산, 그 오른쪽은 구병산
삼년산군(三年山郡)은 지금의 충북 보은이라고 한다.
백제 성왕은 구천(狗川)에서 신라군에게 생포됐고, 삼년산군에서 달려온 도도에 의해 참수됐다고 한다.
‘구천(狗川)’은 2023.6.1.자 옥천향수신문의 기사 ‘관산성 전투의 전개’에 따르면, 그 위치에 관해서 지금까지 2가지
설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군서면 월전리 군전부락을 감싸고도는 협곡인 구진베루(구전벼루)로 비정하는 견해로 지리적 조건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삼국시기 성곽들, 그리고 전쟁관련 지명의 존재, 전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대체적으로
이곳을 구천으로 비정하고 있다. 두 번째는 구천을 군북면 이백리의 갯골(식장산 자락)로 보는 견해로 전설에 의하
면 환산성 밑의 골짜기 이름이 승지골인데 이곳에 신라군이 기어오를 때 마침 이곳에 도착한 성왕이 이 광경을 보고
배후를 급습하여 대승을 거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성왕이 여창과 함께 있을 수 없다고 하여 환산성 서편의
노고산성(할미성)에 오르기 위해 한밤에 갯골에 이르렀을 때 신라 비장 도도의 급습을 받아 살해되었다는 내용으로
갯골이 성왕이 죽은 구천이라 하는 견해이다.
혹시 오늘 우리가 들머리로 삼은 ‘개산골’이 갯골이 아닐까? 등로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한 개에도 1,500년 전의
비참한 역사가 서려 있다. 방금 전에 휴식할 때 증약막걸리를 분음하였는데 헌주하지 않은 게 걸린다. 미처 몰랐다
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그럴 경우 두 가지 죄를 범한다고 한다. 알지 못한 죄, 행하지 않은 죄가
그것이다.
523.6m봉 환산성 제3보루는 빼어난 경점이다. 봄빛 또한 눈부시다. 문필봉 님의 눈을 빌어 첩첩 산을 알아본다.
속리산 관음봉, 문장대, 천왕봉, 구병산, 팔음산, 백화산, 주행봉, 마성산 등등. 저쪽 언저리에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
가 있고 …….
이문구 작가의 『글밭을 읽는 사람들』(열린세상, 1994)의 ‘내가 왜 울어야 하나, 박용래’ 편에 정시용 시인의 얘기
가 나온다. 그 대목의 일부를 옮긴다.
“우리 일행(시인 이씨와 작가 유광우)은 차 시간에 늦어 막차를 놓쳤으므로 대전서 하룻밤을 묵어 올 수 밖에 없었
다. 나(이문구)는 (…) 목척교 옆의 허름한 탁배기집으로 박시인(박용래)을 불러 모셨다. 내가 초면인 유씨 ㆍ 이씨
를 만나 인사시키자 박시인은 무슨 바람이 불어 옥천같이 빼어난 고장을 다 둘러보게 되었더냐고 여간 기특해 하여
마지않았다. 이에 힘입었는지 이씨는 시키지도 않은 옥천 지방의 산수(山水)를 자랑삼아 덧거리하였다. 그러자
박시인은 대번에 이씨를 겨누어보며 ‘산 좋고 물 좋은 것은 어느 두메나 일반인데 시인이 고향을 쳐들면서 어떻게
물경풍치(物景風致)만을 떠들 수 있는가. 그런 것은 관광객에게 맡기고 시인이라면 모름지기 자기 고을이 배출한
시인부터 기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하고 바로잡아준 다음,
“내가 옥천을 기억하는 건 오로지 시인 정지용을 낳은 땅이기 때문이오.”
하며 찻잔을 들어 서운한 마음을 가시려고 하였다. 나와 유씨는 숙연히 고개를 숙일 때였다. 물정 모르는 이씨가
“그런가요? 나는 정지용이가 우리게 사람인 줄도 몰랐네…….”
하며 새퉁스런 소리로 두런거렸다. 박시인의 결곡한 성미를 알고 있던 내가 이제 큰일났구나 싶어 민망한 낯을
둘 데 없어 하던 순간이었다. 바람벽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터지면서 박시인의 성난 음성이 귓전을 갈겼다.
“야, 이문구 너 정말 한심하구나. 너는 이런 것밖에 친구가 웂네? 정지용이 제 고향 선배인 줄두 모르는 이런 무녀리
두 시인 명색이라구 하냥 댕기는겨? 이런 것두 사람이라고 마주앉어 술 마시네?”
박시인은 술잔을 벽에 던져 박살내고도 성이 안 풀려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뒤미쳐 따라나가
다른 술집으로 모시고 공자왈 맹자왈 앞뒤를 누누이 변명했지만 그의 옹이진 마음은 저녁내 풀어지지 않았다.”
12. 멀리 왼쪽은 주행봉
13. 중간 가운데 동네는 옥천
14. 멀리 왼쪽은 백화산, 그 오른쪽은 주행봉
15. 멀리 맨 오른쪽은 팔음산
17. 앞은 금강 부소담악
18. 576.6m봉, 봉화대에서 조망, 물줄기는 금강
19. 부소담악 주변
봉봉을 넘는다. 비록 봉은 낮지만 가파르게 오르고 내린다. 우리가 걷는 길이 산천의 중심이다. 좌우의 산 아래에는
충주호와 금강이 둘렀고, 그 건너에는 올망졸망한 뭇 산들이 우뚝우뚝 솟았다. 환산. 너른 공터다. ‘환산성 제5보
루’라는 오석의 표지석이 있다. 조망은 사방에 키 큰 나무숲으로 가렸다. 동쪽으로 방향 튼다. 한 차례 뚝 떨어졌다
가 곧추선 능선 길을 오른다. 576.6m봉 봉화대다. 동국여지지 ‘옥천군’에 의하면, 환산 봉수(環山烽燧)는 서쪽으로
회덕현(懷德縣) 관족산(鸛足山)에 응하고, 남쪽으로 월이산에 응한다고 한다. 관족산(鸛足山)은 지금의 계족산(鷄
足山)을 말한다.
솔바람이 차도록 인다. 너른 공터 노송 그늘 아래 점심자리 편다. 문필봉 님이 오리훈제를 내놓는데 그 많은 양에
질려 배가 미리 더부룩하였으나 얘기를 나누며 먹다 보니 바닥이 보인다. 옥천의 명주 증약막걸리와 대전의 명주
원막걸리를 연거푸 들이킨다. 봄놀이 술발 받는다. 곰발톰 님의 히말라야 트레킹 얘기는 언제 들어도 동화 같다.
먹고 마시고 웃고 또 웃고, 두 시간이 금방이다.
하산이다. 처음에는 온 길로 뒤돌아가려 하였으나, 그 까칠한 봉봉을 오르내릴 일이 달갑지 않아 곧바로 남동릉을
내려 황룡사 쪽으로 가기로 한다. 부소담악을 구경하기도 좋다. 여기도 만만하지 않다. 가파르고 긴 돌길 내리막이
다. 핸드레일 밧줄을 손바닥이 화끈하도록 붙들고 내린다. 벌목지대를 잠깐 지날 때는 부소담악의 멋진 풍경이 요연
하게 보인다. 다시 숲속 길에 들고 곧 황룡사 앞이다. 황룡사가 겉으로 보이에는 대찰이다. 두 개 돌기둥에 쓰인
한문이 이곳 산천을 형상했는지 구불구불한 게 인상적이다. 어렵사리 판독한다.
古利山 黃龍寺(고리산 황룡사)
世界佛敎洗心宗總本山護國怨靈薦度道場(세계불교세심종총본산호국원령천도도장)
옥천 명소라는 부소담악(浮沼潭岳)을 구경하러 간다. 많은 사람들이 구경나왔다. 유람선 한 척은 강을 유유히 돈다.
부소담악은 옥천군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그대로다.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부소무니 마을 앞 호반에 암봉들이 700m 가량 병풍처럼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이 암봉들
의 파노라마는 우암 송시열이 소금강이라 예찬했을 정도로 예부터 옥천 제일의 선경을 자랑한다.
부소담악은 부소무니 마을 앞 물위에 떠있는 산이라 하여 ‘부소담악’이라 불리운다. 2008년 국토해양부가 전국의
하천, 호수, 계곡, 폭포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아름다운 하천 100곳 중의 하나로 선정 되었다. 환산에서 바라본
부소무니 마을과 그 앞의 부소담악. 마을 언저리 북쪽의 산봉우리가 남동쪽으로 동물 꼬리모양의 암벽으로 이루어
진 줄기를 뻗어 내리고 있다.”
대전 가는 길. 대중교통이 불편하다. 트럭 히치도 어렵다. 산자락 굽이굽이 도는 대로를 걷는다. 곰발톱님이 달음질
하고 히치하여 어렵사리 개산골 입구 굴다리 지나 이백리 버스승강장에 다다른다. 버스 타고 대전역에 오니 저녁
뒤풀이 시간이 충분하다. 작년에 갔던 음식점에 간다. 석별의 술잔 나눈다. 내년에는 누에능선을 가기로 한다. 벌써
그날이 기다려진다.
21. 부소담악 주변
24. 부소담악
25. 부소담악 가는 길 주변의 모란꽃
27. 부소담악, 위험하여 더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28. 둥근조팝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