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로마 시내에 바티칸이라는 또 하나의 국가가 있다. 테베레 강 서안에 자리한 바티칸 시티는 산피에트로 광장이 있는 남동쪽을 제외하고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전체 면적이 0.44km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이지만, 전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다. 수용 인원이 30만 명이라는 성 베드로 광장 앞 도로 위에 그어진 흰 선이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나누는 형식적인 국경이다.
프랑크 왕국이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8세기의 메로빙거 시절, 카롤링거왕조의 시조인 피핀은 교황의 묵인 하에 쿠데타를 통해 왕조를 세웠다. 이 때 피핀이 왕조를 세우게 된 대가로 교황에게 헌납한 땅이 현재 교황령의 시초이다. 후에 동로마인 비잔티움 제국과의 마찰을 피하려고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황에게 땅을 내려주었다'고 법적으로 보증한 것이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다.
콘스탄티누스의 증여서는 이전부터 관습적으로 전해지던 교황청의 권리에 법적인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이는, 이 증여서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교황청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던 이 문서가 위조됐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르네상스 시절의 추기경이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칙령에 의해 공인된 이래, 가톨릭의 영향력은 확대되어 19세기 중엽에는 교황이 이탈리아 중심으로 1만 8,000㎢에 달하는 지역과 300만 명 이상의 주민을 통치하였다. 제1대 교황 베드로로부터 266대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르는 동안 세계 가톨릭 신도 8억 5천만 명을 거느리고 있는 교황은 바티칸의 통치자일 뿐 아니라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 전 세계 교회에 대하여 직접적 통치권을 지닌다.
교황은 종신제이며, 지금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3년 3월에 교황으로 즉위하였다. 1994년 6월 이스라엘과 10월에는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PLO)와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도 했다. 1859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일으킨 빅토르 엠마누엘이 1870년 교황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시를 점령함으로써 교황의 세속적 권력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후 교황청과 이탈리아 간에는 교황청의 지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협의는, 1929년 2월 교황청과 실정으로 궁지에 몰렸던 당시의 무솔리니 정부가 이반된 민심을 돌리는 고육지책으로 라테란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바티칸은 독립국이 되었다. 바티칸 시티는 독자적인 통신체계, 은행, 화폐, 우체국, 라디오방송국, 근위대 등을 갖추고 있고, 성 베드로 광장, 대성당, 교황 궁전, 바티칸 박물관, 은행과 우체국 등이 있다. 이탈리아 정부의 보조금 및 바티칸 소유 부동산과 바티칸은행의 투자수익 외에 각국의 가톨릭 협회로부터 온 기부금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바티칸은 행정, 입법과 사법에 대한 절대적 권한을 갖는 교황이 통치하는 국가이지만 국방은 이탈리아에 위임되어 있고 경비는 근위병 몫이 다, 지금은 테러 방지용으로 중무장한 군인과 장갑차가 삼엄하게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다.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보낸 신교를 믿는 독일 용병이 로마를 약탈했을 때, 스위스 용병들만이 남아 목숨을 걸고 교황을 지켰다고 한다. 그 후 지금까지 약 100여 명의 스위스 국적의 용병들이 창과 칼만으로 바티칸을 수호하고 있으며,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한 것이다.
바티칸을 관광할 때는 소매가 없는 민소매 옷 이나 배꼽티, 미니스커트, 반바지, 샌들 차림의 복장을 하면 입장이 금지되고, 바티칸 박물관에 서 배낭을 검사하는 경우도 빈번하니 큰 가방 은 들고 가지 않는 것이 좋다. 개별 여행자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 라파엘로의 방- 지도의 방- 태피스트리 회랑-벨베데레 정원- 피나정원 (솔방울 정원)-피나 코테카-피나정원 순으로 투 어를 권장하며 일반 코스는 피나 코테카-솔방 울 정원-벨베데레 정원- 동물의 방- 뮤즈의 방 - 원형의 방- 촛대의 복도- 테피스트리의 복도 - 지도의 복도- 성모 마리아의 방- 라파엘로의 방- 시스티나 성당 순이다.
바티칸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은 18세기에 산 피에트르 대성당과 인접한 교황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방대한 양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시스티나 경당을 포함해서 바티칸 내에 있는 여러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명칭이다. 1973년에 새로운 건물을 지으면서 박물관 전체가 일반에게 공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등의 대가들이 남긴 르네상스 회화들과 역대 교황들이 수 세기에 걸쳐 수집한 막대한 미술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어, 대영박물관, 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리는 것은 일본인들의 정의(定義)이니, 차라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더해 세계 6대 박물관으로 부르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겠다.
이 박물관의 기원은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인근의 포도밭에서,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군이 철수한다면서 트로이 성 밖에 두고 간 거대한 목마를 ‘도시 안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던 성직자 라오콘을 묘사한 조각상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 소식을 들은 교황 율리오 2세는 조사차 파견한 다 상갈로와 미켈란젤로의 제안대로 이 조각상을 구매했고 바다뱀에 사로잡힌 라오콘과 두 아들을 조각한 라오콘 상을 발견된 지 한 달 만에 벨베데레 정원에 진열하여 일반에게 공개한 것이, 지금의 박물관으로 발전하는 단초가 되었다.
미켈란 젤로가 설계한 박물관의 계단
라오콘이 공개된 이후 18세기에 이르러 고고학이 성행하면서 각지에서 발굴된 유물과 기증자들이 교황청에 기증한 유물과 교황이 구입한 유물 등이 누적되어 소장품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1771년 미술관을 설립했고 후임 교황 비오 6세가 건축가 미켈란젤로 시모네티의 설계에 따라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확장한 미술관 건물은, 두 교황의 이름을 붙여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시스티나 성당과 총 54곳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있는 미술관에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군 사령관에 오른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오스트리아 군대의 퇴각로인 이탈리아까지 침범한 여세를 몰아 로마까지 들어와, 1797년 2월에 체결된 톨렌티노 조약에 따라 비오 클레멘스 미술관에 소장되었던 걸작 예술품 500여 점을 프랑스로 강탈해가 루브르에 걸었고, 2년 후인 1799년에는 교황 비오 6세가 나폴레옹 군대에 의해 프랑스로 납치되어 그곳에서 선종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나폴레옹 몰락 후인 1815년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의 외교적 노력으로 약탈해간 예술품의 약 절반은 반환받았다.
약탈품을 반환받은 비오 7세는 치아라몬티 박물관과 브라치오 누오보 박물관을 열었고, 그레고리 16세는 로마 근교에서 발견된 유물을 모아 에스트루칸 박물관을 개관했고, 이집트 박물관도 만들었다. 교황 비오 11세 때인 1932년, 보르자 아파트에 있던 기존의 회화관(피나 코테카)에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여 재개관했고, 교황 바오로 6세는 1973년 보르자 아파트에 현대 종교 미술관을 개관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1층에는 회화관, 피오 클레멘스 미술관, 이집트 박물관, 키아라몬티 박물관과 시스티나 예배당이 있고, 2층에는 에트루리아 미술관, 지도 갤러리, 라파엘로의 방과 라파엘로 복도가 있다. 2개의 건물에 13개의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약 7만점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나 약 2만여 점이 전시 중이다. 일부 귀족에게만 개방되었던 박물관은 바티칸 시국이 탄생하면서 개방되었고, 비오-클레멘스 박물관은 팔각 정원, 뮤즈의 홀, 살라 로톤다와 동상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수리 중인 솔방울
피나 정원의 거대한 4m에 달하는 솔방울은 판테온 인근에 있었던 고대 로마의 분수 장식이었고, 솔방울 아래 장식은 아 그리파 용장에서 옮겨온 대리석이다. 로마 올림픽 기념으로 제작된 ‘지구 안의 지구’는 지구의 오염으로 인한 멸망 을 우려한 바티칸의 유일한 현대 조형물 이다. 지금은 수리 중이라, 공작은 실내 복도에 전시 되어있다. 솔방울 위의 둥근 돔 형태는 판테온을 모방한 것이라 하며, 좌측의 사진은 수리 전의 것이다.
좌우의 공작은 2세기경 만들어진 작품의 복제품이란다. 아래의 기단은 3세기의 것으로 운동선수 모습이다. 솔방울 정원에서 다시 왼쪽 계단을 따라가면 팔각형 정원이 보인다. 이곳이 비오 클레멘스 박물관으로 역대 교황이 수집한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실질적인 박물관 관람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