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릿글
최승희 이후 한국창작무용을 선도한 안무가 그룹인 문일지, 김매자, 배정혜와 동시대 인물로 가장 오랫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 주목받는 무용가 김현자는 ‘오늘의 춤은 새로운 현대를 표현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김영태,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 눈빛, 2002)라고 말하면서 한국적 현대성을 강조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무용사상 기업과 예술과의 만남을 최초로 이룩하여 직업무용단을 창설하였고, [황금가지]를 통해 ‘현대무용이냐?’, ‘한국무용이냐?’ 하는 논란과 파문을 이르켰으며, [바람개비]를 통하여 극장예술의 전문적 조화와 [생춤]으로 무의식적, 무계획적, 무정형적 또는 순간적 즉흥성을 존중하는 등 동양적 사유와 고전적 춤미학을 현재화 시겼으며, 춤 아카데미를 통해 안무와 실기 외에 무용예술론, 무용음악, 미술론, 연극론, 민속학 등 이론과 실제를 겸비 할 수 있는 과정을 마련하여 총체예술로써 무용의 발전을 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김현자는 한국창작무용의 무용사적 고찰이 필요한 인물이며, [그 물 속의 불을 보다]는 동양적 사유와 현재적 파격성 등 김현자의 작가적 역량을 모두 포함한 작품으로서, 본 과제는 비평을 중심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한국창작무용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2. 김현자의 예술적 배경
김현자는 1947년 경남 진주 태생으로 다섯 살 때부터 춤을 배웠고, 이화여대 무용학과을 졸업하고, 마사 그레이엄 센터를 연수하였으며, 동아대학교 대학원, 한양대학교에서 박사를 졸업하였다. 이매방과 한영숙 등 전통무용과 스승 황무봉을 통해서 창작과 발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박사과정에 이르러 동양사상과 철학적 사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가 시작되었었다. 부산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를 역임(1976-1982), 부산대학교무용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재직하고 있으며, 3년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한국창작무용단(럭키무용단으로 개칭 / 1985년 창단, 1988년 해체), 김현자춤아카데미(1985년) 발족과 새남무용단 창단을 하여 무용이 총체예술로써 역할을 강조하였다.
1967년 스승 황무봉 공연(1967)으로 데뷔했으며, 송범, 김진걸, 황무봉, 강선영의 추천으로 [초혼](1968), [연꽃], [황진이](1969)에 계속해서 주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이화여대(4학년) 재학중이던 1969년, 제1회 대한민국 예술상 신인수상 기념으로 이대학보 ‘월요 손님 초대란’의 인터뷰에서 “춤은 하나의 교양”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모든 예술이 춤 앞에 무릎 꿇기를 바란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지금은 춤이 생활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으며, 또 인간적인 면에서 예술에 임해야 하는 것을 배우는 중”이라고 소감을 피력했다.(김영태,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 재인용, 2002)
1982년 서울무용제에서는 연기상을 수상하였고, 1984년 대한민국무용제에서는 정재만과 공동으로 안무한 ‘홰’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문예진흥원지원금 수혜(1989)하여 ‘생춤’을 발표하였고, 서울시문화재단 무대공연작품 제작지원사업에 선정(2002)되어 이듬해 ‘그 물 속에 불을 보다’로 한국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비평가상과 무용예술지에서 수여하는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3. 비평을 통해서 본 작품세계
-육완순. 국제신문. (1978.4.12)
[‘하늘에 피는 꽃’ 종합예술로서 뛰어난 구성과 창의성]
표현기법에 있어서 제한된 춤사위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인간이 이야기하고 싶은 내면세계를 성실하게 전달,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감정을 밑바탕으로 하여 현대적인 특이한 표현력을 겸유한 이채로운 작품.
-작곡 안일웅. 무대미술 최연호. (1980)
[‘여자 새 되어 울다’ 전통춤사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춤을 창출하려는 노력]
우리춤의 불필요한 가지들을 제거하고, 필요한 춤사위를 선별 재조립시켜 새로운 춤을 창출하려고 했다.
-국제신문. (1980.7.5)
‘여자 새 되어 울다’ 3장은 이번 작품을 성공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특별 출연한 최현의 독무는 그의 독보적인 위치를 증명했고, 김현자와 2인무는 극무용의 조화를 이룬 극치였으며, 마지막 학들의 춤과 하녀의 독무는 설득력 있는 종결어미였다.
-강이문. 부산일보. (1981.11.5)
[부산시립무용단 제9회 정기공연, 상징적 인간 본능 표상]
‘보리피리’는 옛 문둥이 마을 집단적 애환을 안무자의 감정이입으로 애정있게 다루었다.
사실적인 내용이지만 표현적인 상징적 수법으로 인간 본능의 기미를 원색 짙게 표상하여 성공한 작품이다. ‘사랑아’는 한국무용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작으로 현대무용의 방법론에서도 가히 우수한 작품이다. ‘비가’는 학의 고고함을 무난하게 다루었으며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 수준은 손색이 없는 내용이었다.
-제니퍼 더닝. 뉴욕타임즈. (1984.8.21)
[델리케이트한 사랑의 노래]
김현자 무용단의 뉴욕 공연은 출연자들이 색동저고리 소매를 흔드는 우아하고 잔잔한 궁중무용에서부터 극적 효과는 강렬하나 의식으로서의 밀도가 짙지 않는 굿에 이르기까지 여덟 가지 한국 전통무용이 소개 되었다.
‘사랑가’는 매우 델리케이트한 사랑의 노래를 듀엣으로 부른다.
-조동화. 조선일보. (1986.3.11)
[‘황금가지’ 현대 한국인의 의식을 표현한 발전적 시도]
한국춤이 현대 한국인의 의식을 춤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직업무용단 방향을 제시한 지성적인 작업이며,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발전적 시도라고 본다.
-매일경제신문. (1985.3.6)
김현자에 의해 한국창작무용단(럭키무용단으로 개칭)이 창단되어 ‘황금가지’와
정재만 안무의 ‘사랑 하나’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예술감독인 김현자는 “오늘의 춤은 새로운 현대를 표현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일. 월간조선. (1986.3월호)
[‘황금가지’ 기업창설 무용단의 성공적 출발]
한국무용 상식으로 봐서 전통무용 춤사위가 지배적일 것이라는 상식을 깨고, 전통적인 한복을 벗어던진 작품 또한 현대무용이어서 그것은 마치 기업의 새로운 아이디어 제시처럼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충격이 아니라 예술을 통한 정서에 충격이었으므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이르는 충격의 물결이 되고 오래 기억되는 강화의 체험이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춤사위의 대담한 도입으로 한국무용적인 한계는 철폐되고 영역을 확대했다.
-이병옥. 기업과 예술. (1986.4월호)
[‘황금가지’. 후원의 무대, 파문의 작품]
한국무용적 선입견으로 본 관객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었고, 무용계 파문이었다.
새로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안무가의 창작의지와 과감성을 높이 살만 했으며, 보다 적극적인 무용의 시도로 볼 때 ‘국적초월의 세계성’과 ‘한국무용의 영역확대’로 표현할 수 있는 참신한 무대였다.
-김영태. 춤. (1986.6월호)
‘황금가지’는 한국무용의 영역 확대라는 긍정론과 독자성을 잃었다는 부정론으로 양분화 되었지만, 이 작품은 장식적 자체가 아닌, 움직이고 끊임없이 샘솟는, 이어지고 다시 이어진
매듭이 퍼져 나가는 지체의 시위 같았다.
-김태원. 한국일보. (1987.7.16)
[‘바람개비’ 극장예술의 전문적 조화]
한국춤과 현대춤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장치, 조명, 음악, 영상, 의상 등 극장예술의 제반 요소가 근래에 보기 드물게 고도의 극장 예술화를 시도했다.
-장광렬. 객석. (1987.8월호)
[‘바람개비’ 무대영역 확장시킨 수작]
이번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단조로운 무대 공간의 평면성을 벗어나 입체화시킴으로써 무대영역의 확대를 꾀한 것이다. 주제를 풀어나가는 아이디어나 철골 구조물을 소도구로 사용하면서도 춤의 배열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점 등을 높이 평가, 전체적으로 개성이 드러난 수작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채현. 객석. (1987.8월호)
[‘바람개비’ 새로운 예술세계 창조]
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지향한 작품 ‘바람개비’는 한국무용 전공자들로 구성된 럭키창작무용단이 현대적인 감각으로 움직인다는 인식을 다시금 다져 주었다. 무대 공중으로 모형 헬리콥터가, 무대 바닥에 모형 자동차가 원격조정으로 운행한 것도 작품 구성 상상력이 점진적인 비약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무엇보다도 작품 서두에 아이들의 유희가 일상복 차림새로 전개되어 우리 무용계에서 점차 사그라지는 고답적인 경향을 떨구어 버렸다.
-리빙뉴스 대담. (1988)
김현자 춤아카데미는 그가 럭키창작무용단을 해체한 뒤 1988년에 발족되었다.
발족한 이유는 “전통이니 현대니 하는 도식적인 구분은 경계해야겠지만, 한국춤의 뿌리를 찾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작업이 시급함”을 역설했다.
춤아카데미는 전체과정(1년 44주) 동안 안무 실기 외에 무용예술론, 무용음악, 미술론, 연극론, 민속학 등 총체적인 과정을 마련하고 해당 분야 강사를 초빙했다. 1년 과정을 수료하면 우수한 인재를 뽑아 공연지원금 및 뒷바라지를 했다. 조성주, 김삼진, 강미선, 백연옥, 최데레사, 김혜은, 이혜경, 박미영 등이 춤아카데미 출신들이다. 춤아카데미 주최 새남무용제는 88년부터 90년 하반기(1997, 10주년 기념공연)까지 계속 이어졌다.
-김영태. 춤. (1989.7월호)
[‘생춤’은 자연의 반영]
‘생춤’은 날것, 원시적인 자연 그대로를 반영한다.
눈 깜짝할 사이 관객은 보지 않은 것 같은데 상상력을 초월한 무위자연을 보았다.
-김영태. 일간스포츠. (1989.7.6)
[原始율동..., 無와의 대결]
‘생춤’은 ‘氣와의 대결’로 40대 춤꾼 김현자가 걸어온 춤의 길은 변모와 실험으로 일관되어 있다. 제1期가 선배들이 걷던 전통춤의 맥을 잇는 작업이었다면, 제2期는 창작무용단에서의 실험적 활동, 제3期 무대의 주조색은 ‘기’라고 볼 수 있다. 황진이를 춤추던 김현자의 ‘끼’는 그의 춤 반생에서 ‘氣’와 조우한다.
-김경희. 일간스포츠. (1990.3.4)
[‘생춤’ 선구자인가 이단자인가]
형식에서 해방 ‘생춤’ 창조, 몸 안의 氣모아 가득 차 오른 생명을 육체로 표현.
-김태원. 춤. (1992.8월호)
[백남준과 김현자의 만남]
신체를 계속 굴곡적으로 궁형으로 꼬는 것에 의해 한국춤이 쉽게 가지는 평면성을 사려 깊게 극복한 한국적 혹은 동양적 미니멀리즘의 한 모습을 비교적 성실히, 또 인상 깊게 제시한 춤이었다. 백남준의 포퍼먼스는 김현자 춤과의 결합 때문에 장르 파괴를 성취했는지도 모른다.
-김채현. 객석. (1995.11월호)
[‘생춤’ 인위성 털어내고 자연성으로 복귀]
氣와 의식간의 관계 단절에 연연하는 춤이 아니라 바로 춤의 유력한 근원으로 인정되는 기의 흐름에 근접해서 우리의 춤틀을 새로 짜야한다는 의도를 바탕으로 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몸의 인위성을 털어내고 자연성으로 복위함으로써 춤의 자유로움을 다채로이 보장하는 방향으로 새로 출발하자는 다분히 전환기적 발상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관의 변화 없이는 생소한 춤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성기숙. 공연과 리뷰. (1998.11.12월호)
[‘생춤’ 신무용에 반기를 든 한국창작춤의 의식적 산물]
김현자의 ‘생춤’은 춤에 있어 전통적 관념 내지 가치관에 대한 회의와 자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떤 새로운 것의 발견이라기보다는 몰랐던 것에 대한 재인식, 또는 새로운 눈뜸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한국춤의 내적 에너지 흐름의 변용과 자각을 기(氣)적 요소로 인식하여 자각하는 몸, 자연에 동화되는 자연스러운 몸, 움직임의 생성과 발현에 치중한 김현자의 생춤적 몸인식론은 어쩌면 신무용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춤의 가치를 내걸었던 70년대 후반 한국창작춤의 또 다른 변형 내지는 또 하나의 의식적 산물인지도 모른다.
동양사상 및 동양예술관의 언저리에서 창작작업을 펼쳐온 김현자는 무용수 스스로 몸의 근원에 대한 의식적 자각을 요구하는 혁신적 발상을 꾀한 신무용에 반기를 든 한국창작춤의 의식적 산물이다.
김현자가 추구하였던 ‘생춤’은 무의식적, 무계획적, 무정형적 또는 순간의 즉흥성을 십분 존중하면서 몸짓의 자율성을 무한정으로 허용한 표현방식으로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는 생동적인 춤을 추구하고자 함에 있다. 즉 무용수 스스로 몸의 근원에 대한 의식적 자각을 요구한 것으로 그동안 지나치게 경직된 채 관념적으로만 이해해 온 단순논리의 몸 인식론에 비하면 꽤 혁신적인 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김영태. 춤. (1995.11월호)
[‘춤 속의 만물의 이치’]. 춤.
‘샘’ 4인무는 김현자가 추구했던 만물의 이치 중에 여백미를 강조한 작품이다.
그녀는 춤이 자연이고, 자연이 춤인 경지를 보여주었다.
‘샘’과 ‘묵’에서 만나는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 고여 있는 아름다움 속의 외침,
빛과 그늘, 스러져가는 무늬는 음미할 만하다.
-이종호. 객석. (1995.11월호)
김현자의 생춤의 철학은 나는 잘 모르겠다. 오묘하고 신비한 동양철학의 원리는 어쩌면
우리 모두 배우지 않아도 생태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아무리
들어도 모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애기할 수 있는 것으로 그의 춤들이 그런
사상적, 철학적 표방과 무관하게 잘 추는 춤이라는 것이다.
춤보다 말이 낳은 무용가들이 꽤 많지만 김현자의 경우는 춤이 말보다 낫다.
생춤을 설명하는 그의 말과 글은 조리 있고, 깊이도 있어 보이지만, 춤의 모습은 그보다
훨씬 또렷하게, 게다가 통째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문애령. 예술세계. (1996.6월호)
[‘메꽃’ 도전적 발상과 에로티시즘의 정수]
당당히 육체의 아름다움과 그 에로틱한 매력을 탐구하는 김현자의 행위는 매우 도전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보면 춤의 근원적인 특성 중 한 가지에 귀착한 결과라고도 하겠는데 ‘메꽃’의 경우 에로티시즘의 정수였다.
-도올 김용옥. 석도화론
[‘백남준과 김현자의 만남’ 김현자의 탁월한 춤]
백남준 해프닝과 춤이 곁들인 두 개의 퍼포먼스가 한 무대에 있어야만 하는 의미나 연결을 발견할 수 없으나, 얼음덩어리들이 매달려 있는 좁은 연단 위에서 추는 김현자의 춤은 탁월한 수작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이세기. 서울신문. (1996.11.2)
[일체의 형식 거부, 생명 자유를 춤춘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그것이 한낱 시도나
실험정신이 아닌 ‘완성된 작품’이기를 원하는 그는 이 시대의 찬연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준다.
-김태원. 공연과 리뷰. (1997.10월호)
[‘메꽃’ 신무용의 세련미와 미니멀적 미학의 수용]
그녀의 춤은 순수한 창작춤 어법을 따르기보다는 신무용의 세련미와 창작춤이 요구하는 창작이념 ‘절충된’, 즉 예술상의 이념으로서는 창작무용가이지만 그 기교는 신무용 어법을 좀더 단순화시키고 돋보이게 하는 일종의 ‘신고전주의’이거나 ‘미니멀적’ 미학을 수용하고 있다.
-성기숙. 공연과 리뷰. (1998.11.12월호)
[‘모란관찰’ 동양적 사유와 고전적 춤미학]
고전의 일차적 수용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변용인 ‘모란관찰’은 전통자산의 수용의 폭이 꽤나 넓어 보이는데, 예컨대 신무용이 추구한 유미주의적, 형식주의적 춤미학을 일부 차용하였는가 하면 정재에서 표출되는 엄격한 형식과 규범을 동원하고, 또 언뜻 스치는 춤길 속에는 은밀한 교태미가 살포시 얹혀 있음도 감지된다.
-이지현. 춤과 사람들. (1999.6월호)
[‘십오야’ 한 허리의 밤과 에로스]
김현자의 춤사위는 섬세하다. 그러나 그 섬세함은 또 다른 법칙을 알아버린 자의 당당함과 더 균형을 이뤘다면 한국춤으로 낮이 아닌 밤의 이야기를,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숨결을 찾아내어 풍요로운 여성의 춤으로 탄생시키는 대장정을 시작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성기숙. 몸. (2000.1월호)
[‘움’ 생명 틔움의 경외감과 무정형의 춤미학]
김현자의 춤세계를 자세히 이해하려면 그녀의 의식저변 그 배경을 주의 깊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 존재와 소멸, 또는 있음과 없음 등 극단적으로 대립의 극점에 놓여진 두 축에 대한 김현자의 인식은 언제나 초연하다. 자연에 대한, 삶에 대한 이렇듯 초월적 세계관에서 오는 인간 심성의 자율적 해방감, 또는 달관의 미학이 새 생명의 탄생을 상징적으로 암시한 ‘움’에서도 예외 없이 반영돼 있다.
-김채현. 방일영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총서 6. (2006)
[‘우리 무용 100년’]
김현자에게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전통춤은 동일한 차원에 놓이되 그들 사이의 합치점은 생춤으로 구축되었다. 다시 말해 생춤은 하나의 장르로 간주되기 이전에 무대 춤의 자연스러운 작동에 따른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춤 언어의 창작을 주요 과제로 삼고 출발했던 창작춤은 김현자의 생춤을 거치면서 다시 춤 언어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무위의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창작춤의 전반적인 동향 속에서 김현자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간의 벽을 앞장서서 허물었고 창작춤 무대에서 전통춤에 대한 의무감을 대폭 경감시켰다.
-성기숙. 춤. (2002.12월호)
[‘바다’ 김현자와 시인 정지용의 정서적 교감]
바다의 몸짓을 움직임 언어로 환원함에 있어 단순한 감각적 기교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나름대로 명징한 몸언어 창조에 심혈을 기울인 김현자의 상상력은 역시 탁월한 수준이었다.
신무용적 표현어법의 긍정적인 수렴. 창작춤의 구성원리 및 창작춤의 창조지평을 절묘하게 배합시킨 보기 드문 수작으로 평가된다.
-성기숙. 춤. (2002.8월호)
[‘누항(陋巷)의 끝’, 담담한 관조, 절제된 춤미학]
한국창작춤 기수들이 대개 예술적 파산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침체기에 직면하고 있는
이 즈음 절학적 사색과 관조의 미학으로 사물과 대상을 접근해가는 김현자의 깊은 사유의 흔적을 작품을 통해 연속적으로 만나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김승현. 춤. (2003년1월호)
[‘그 물 속에 불을 보다’]
눈을 즐겁게 하는 아름다운 춤선과 고난도 테크닉, 그리고 생각의 폭을 넓히는 자유로움이 현대춤의 형식과 내용의 요체라고 할 때 이 작품은 이 두 가지를 조화롭게 끌어안은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우선 ‘기(氣)춤’, '생춤(lived dance)' 등으로 알려진 기존의 다소 난해하면서도 내공의 힘을 중시한 김현자의 춤과 상당히 다른 작품이었다. 절로 탄성이 일만큼 가벼운 고난도 테크닉에 물에서 불로, 불에서 다시 물로 이어지는 내용을 마치 물 흘러가는 듯이, 기름에 불을 붙이듯이 쉽고 편안하게 담아냈다. 이와 관련 김교수는 “그동안 불립문자(不立文字),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춤을 만들고 싶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성기숙. 객석. (2003년1월호)
[한국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한국춤에 있어 전통의 현대화는 오랜 화두가 되어 왔다. 1970년대 중반 소위 ‘맨발의 한국춤’으로 신무용의 파기를 부르짖으며 출현한 창무회의 예술적 화두는 바로 오늘의 한국춤, 그리고 전통의 현대화였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적 화두는 일제 강점기 신무용가로 세계적 무용가라는 명성을 쌓은 바 있는 최승희가 그 원조였다. 전통과 근대의 접점에서 최승희는 전통의 현대화를 화두로 세계를 휘어잡았다. 신무용 이후 한국춤의 사조는 1970년대 중반 한국창작춤으로 대체되었고, 한국창작춤은 유파별 여러 경향의 공존 속에 25년의 세월을 보내왔다. 그러나 한국창작춤의 생명력은 이제 소진되어 퇴화의 경향마저 드러내고 있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한국창작춤을 주도한 대표적인 무용가의 한 사람인 김현자가 실로 오랜만에 신작을 갖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 물 속의 불을 보다’는 한마디로 한국창작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전통의 현대화가 구호로서 남발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 내면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각인되어 실현화되고 있었다. 여자 무용수들의 발짓춤, 곡선의 미학으로 점철된 팔선, 호흡을 타고 넘는 어깨춤과 허리사위 등 이미 장르를 초월한 동작들이 즐비하지만, 춤사위의 기저에는 이처럼 전통 우리춤의 가락들이 폭넓게 깔려 있다.
안무에 있어 불필요한 장식적 구호를 자제하는 김현자의 표현법은 이번 작품에 참여한 전수천의 무대 미술과 이미현의 의상에도 그대로 전이된 듯하다. 전수천은 아쉬울 만큼 무대 미술의 역할을 절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구화된 몸으로서의 무용예술 본연의 존재론적 의미를 극대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연습복을 연상시킬 정도로 움직임의 기능성을 강조한 장식 없는 깔끔한 의상에서도 허위의식은 이미 사양된다.
이번 작품에서 안무자는 탁월한 신체적 조건과 철저하게 훈련된 무용수들을 무기로 새로운 경지의 춤 미학을 잉태해 냈다. 도구로서의 몸의 기능성을 신봉하는 안무자에게 있어 이번 작품은 최고의 실험 대상이 된 듯도 하다. 무용수들은 한국춤이 내포하고 있는 기교적 약점을 무난히 극복하였고, 어떻게 보면 발레, 현대춤보다 우위를 점유하는 고난도의 테크닉컬한 움직임마저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한국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장르를 뛰어넘거나, 또는 장르를 초월한 동작으로 현대적 감성을 충분히 드러낸 이번 공연은 무용원의 정체성을 유감없이 드러낸 무대이기도 했다. 김현자의 이번 공연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은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우리 시대 진정한 예술가의 상(像)을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오랜 창작적 화두가 되어 온 동양적 사유의 결정체를 이번 작품에서도 의미 있게 실현하였으며, 그것은 작품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기호화된 상징적 코드로 표현되었다.
4. 마치면서
이상으로 비평을 통한 김현자의 작품세계를 분석한 결과, 김현자는 한국창작무용의 대모 중 한 사람으로, 최승희 이후 가장 오랫동안 뛰어난 기량의 무용수, 최고의 안무가로 주목 받아 왔으며, 작품을 통해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변화 발전되고 있는 예술가임을 알 수 있다.
평론가 김채현의 말을 빌리면, ‘김현자에게서 한국무용. 현대무용. 전통춤은 동일한 차원에 놓이되 그들 사이의 합치점은 생춤으로 구축되었다. 다시 말해 생춤은 하나의 장르로 간주되기 이전에 무대 춤의 자연스러운 작동에 따른 과정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춤 언어의 창작을 주요 과제로 삼고 출발했던 창작춤은 김현자의 생춤을 거치면서 다시 춤 언어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무위의 단계를 경험하게 된다. 창작춤의 전반적인 동향 속에서 김현자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간의 벽을 앞장서서 허물었고 창작춤 무대에서 전통춤에 대한 의무감을 대폭 경감시켰다.’라고 정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발전단계를 4期로 나눈다면, 제1기는 부산시립무용단 상임안무자로 재직 시기로
전통춤사위를 바탕으로 새로운 춤을 창출하려는 노력과 현대무용의 방법론을 차용한 극무용 형태로써, 선배들이 걷던 전통춤의 맥을 잇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제2기는 한국창작무용단(럭키무용단) 상임안무자 시절로 총체예술로써의 무용과 한국무용의 영역확대, 극장예술의 전문적 조화 등, ‘오늘의 춤은 새로운 현대를 표현하고,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본인의 예술관을 충실히 이행한 실험성과 파격성이 작품으로 표출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제3기는 춤 아카데미와 새남무용단, 부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의 작품 활동기로
동양적 예술관에 심취하여 독무와 5인 이내의 소규모 작품으로 주조색은 ‘氣’라고 볼 수 있다. 미모를 겸비한 무용수로 본인의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스승 세대와 동료들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했으며, 도구화된 몸을 바탕으로 육체의 당당한 아름다움과 신고전주의적(신무용 어법을 좀더 단순화시키고 돋보이게 한) 어법으로 주목받던 시기이다.
제4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이직하여 동양적 예술관의 표출과 한국창작춤의 현대적 모색이란 관점으로, ‘氣’의 운용과 장르를 초월한 동작으로 전통적인 예술관과 정서를 내포하면서, 기교적으로 한국춤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은, ‘생춤’과 무대 메커니즘(mechanism/어떤 사물의 구조, 또는 그것의 작용 원리)의 조화를 이뤄낸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작가로서 끊임없는 탐구와 작품에 나타난 변화와 발전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며, 작품을 통해서 한국창작춤의 지표(방향을 가르켜 보이는 표지, 사물의 가늠이 되는 표지)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