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대 명산 중 화악산은 설악산과 함께 최북단의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향로봉, 대성산처럼 전선(戰線)을 마주하고 있지 않지만 트레커들이 오를 수 있는 최고 북쪽의 산인 셈이다. 그래서 화악산의 아이콘은 ‘분단’이다. 실제로 화악산엔 위도 38도선이 지나간다. 서쪽의 개성이나 연백보다 위도 상 훨씬 북쪽엔 위치해 있다. 주봉인 신선봉(1,468m)엔 군사기지가 들어서있다. 당연히 출입은 통제된다. 군데군데 철조망들이 등산객의 옷덜미를 잡아채고 대간을 누비는 산꾼들도 ‘지리매설’ 경고문 앞에서는 정숙보행 모드로 들어간다.
화악산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전남 여수와 북의 중강진을 긋는 국토자오선(127도 30분)과 위도 38도선을 교차시키면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화악산이다. 군사시설이 들어선 신선봉을 대신해 현재 정상을 대신하고 있는 중봉(中峰‧1,450m)도 ‘가운데 봉우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한반도의 중앙 봉우리’란 뜻이다.
가평군 북면 끝자락과 강원도 화천군의 경계를 이루며 높이 솟구친 화악산은 높이 면에서 경기도의 최고봉을 자랑한다. 운악, 관악, 송악, 감악산과 아울러 ‘경기 5악’의 맏형격인 산이다.
#화악터널 개통 후 새롭게 주목=그동안 오지의 산으로 일반인들의 발길을 들이지 않다가 화악지맥을 종주하는 산꾼들의 노력 덕분에 등산로가 개척되면서 산이 새롭게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8년 뚫린 화악터널은 화악산을 대중코스로 데뷔시킨 1등공신이다.
포천, 철원, 가평, 화천은 우리나라 중서부의 대표적 산악지형이다. 1,000m급 봉우리가 20개를 넘고 명지산, 운악산, 국망봉, 명성산 등 100대 명산도 7, 8곳이나 된다. 규모 면에서 한국의 알프스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하겠다.
화천은 대표적인 산악도시다. 군의 총 면적은 900여 ㎢, 그중 산이 86%고 논은 2% 남짓. 산 깊고 풍수 좋은 땅이니 선비들의 은둔지로 제격이었다. 조선 초 학자 이지직(李之直)은 ‘구름이 가까우니 옷이 젖을 정도’(雲近衣裳濕)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오지임에도 하남면에서 대규모 청동기 유적지가 발견된 것은 무척 흥미롭다. 지금의 고립과 은둔은 찬란했던 선사시대의 ‘그늘’일지도 모른다.
처서(處暑)에 한풀 꺾인 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릴 무렵 취재팀은 화악산으로 향했다. 버스는 가평천변을 달려 들머리인 관청리 입구에 이르렀다. 산의 위상에 비해 인프라는 초라했다. 탈색된 안내판만 덩그러니 서있다.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일행은 스틱을 내딛는다. 들어서자마자 시원한 물소리가 일행을 맞는다. 원시림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은 더없이 차고 맑다. 이물에서 산천어가 산다니 수질은 보증수표 일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가 끊어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경사 길이 시작된다.
#길섶 야생화들 카메라 유혹=정상인 중봉까지는 6, 7km. 오르막길은 지겹게 계속된다. 지겨운 산길엔 야생화들이 피로를 덜어준다. 개망초, 둥근이질풀 같은 들꽃들이 렌즈를 유혹한다. 작가들도 접하게 힘들다는 금강초롱도 사진에 담았다. 태백산 금대봉처럼 군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종류와 가짓수 면에서는 크게 뒤질 것 같지는 않다.
급경사 길은 1,220봉 고지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제야 노역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일단 능선에 오르니 등산로가 한결 수월해진다. 이제부터는 능선레이스. 우거진 숲에 가려졌던 경기의 명산들이 좌우에서 산 너울로 물결친다. 산이 높고 공기가 맑아 ‘사방 100km 이내의 산이 모두 가시권에 들어온다고 한다. 능선에서 군부대가 보이기 시작하면 정상이 가까워 온다는 신호다. 미역취, 오리방풀을 카메라에 담다보니 오늘의 정상 중봉 앞에 이른다. 중서부권 최고의 산악지대답게 멋진 조망이 펼쳐졌다. 멀리서 북한강이 박무(薄霧)속에서 일렁인다. 춘천호도 동쪽에서 은빛너울을 털어낸다. 광덕산, 석룡산, 용화산 같은 경기의 명산들이 사위(四圍)에서 산꾼들을 맞아준다.
환호는 이내 탄성으로 바뀐다. 정상으로 가는 길이 철조망으로 굳게 닫혀있기 때문이다. 온 능선을 이렇게 막아놓을 필요가 있을까. 군부대 주변만 통제하면 될 것을. 날카로운 철책에 산꾼들의 등정욕구는 덜컥 걸리고 만다. 신선봉은 눈으로만 스치고 지나친다.
#새소리에 피로를 잊는다 조무락골=정상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무락골로 하산 길을 잡는다. 중봉에서 언니통봉골을 피해 10분쯤 걸으면 본격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다시 일행은 원시림의 녹음 속으로 들어간다. 구상나무와 활엽수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깊은 숲에선 새소리의 공명도 크다. 조무락골 계곡이름도 새가 물어온 것이다. 새들이 춤추고 즐겁게 노닌다고 해서 ‘조무락’(鳥舞樂)이라나.
야생이 가득한 숲, 바위엔 이끼가 울창하고 계곡엔 덩굴과 잡목이 울창하다. 계곡의 풍부한 수량은 수시로 등산로까지 적셔 놓는다. 일행은 어느덧 복호동(伏虎洞)폭포에 이른다. 폭포소리가 호랑이의 포효처럼 우렁차다. 쏟아지는 폭포수의 서늘한 기운 뒤에서 퇴장하는 여름의 뒷모습이 보인다.
시원한 계곡을 따라 30분 쯤 내려오면 석룡천이 우렁찬 물소리로 흐른다. 일제강점기 때 악명 높은 백백교(白白敎)의 전용해 잔당들이 마지막으로 은신했다는 석룡산 밑자락을 지나 일행은 오늘 산행의 종점 38교를 건넌다. 이곳은 위도 상 38도선이 지나는 곳. 갑자기 월북이라도 하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진다. 다리하나 건너는데도 이렇게 민감할 수 있다니.
서둘러 몇 걸음을 옮긴다. “휴~ 이젠 37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