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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청년의 선택 10:17~22
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부자와 하나님 나라 10:23~31
23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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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어떤 이가 영생 얻는 길을 묻자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 하십니다. 그가 다 지켰다고 하자,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라 하십니다. 그가 근심하며 돌아가니, 예수님이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와 내세에서 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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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청년의 선택 10:17~22
성도는 신앙보다 재물을 우선시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는 부자 청년이요 관리입니다(마 19:20; 눅 18:18). ‘달려와서 꿇어앉아’ 질문하는 행동에서 영생을 탐구하는 겸손과 열정이 느껴집니다(17절).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즉 재물에 대한 집착을 지적하십니다(21절).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는 말씀에 청년은 슬픈 표정으로 돌아갑니다. 재물에 대한 청년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청년의 선택은 재물이었습니다. 이 땅의 재물을 얻고자 영원한 생명을 저버리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 더 깊은 묵상
부자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나의 신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만큼 내가 집착하고 신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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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하나님 나라 10:23~31
마지막 때의 특징은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딤후 3:2).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려운 이유는 재물을 소유해서가 아니라 재물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는 예수님 말씀에,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는가?”라며 수군거립니다. 예수님은 인간적 관점에서 구원을 이해하는 제자들에게 구원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키십니다. 각 사람의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부자 청년과 달리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받을 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재물보다 주님을 선택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에게 주어진 약속은 무엇인가요?
영생을 소망하며 내가 가볍게 여길 이 세상의 일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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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수지맞는 선택
한번은 어느 수련회에 강사로 갔다가 목욕탕에서 구두를 잃어버렸습니다. 수련회에서 하나님이 많은 젊은이에게 큰 은혜를 주셨지만, 구두만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잠시 기도하고 조용히 대차 대조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말로 할 수 없는 이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청년들의 영혼을 건지기 위해 저를 써 주신 것이 큰 영광이고, 그러한 사역은 제가 그 장소 외의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을 때와 비교할 수 없는 대어를 낚은 것과 같았습니다. 청년들과 4박 5일 정도 함께 말씀을 나누면, 그들 중 많은 영혼을 건질 수 있습니다. 구두 한 켤레와 비교할 수 없는 열매입니다. 이런 영적 대차 대조표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울어야 할 때 웃고, 웃어야 할 때 화를 냅니다. 어떤 상황에 대해, 내가 당장 얻는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나 내가 편해졌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얼마나 복음이 전파되는가,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유익한가로 판단해야 모든 것이 제대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적으로 아무 의미 없는 일을 위해 뛰어다닙니다. 내가 그런 상황에 있다면 통곡해야 합니다. 복음의 진보 기준에 맞추어 삶을 정리해 봅시다. 영적 대차 대조표를 작성합시다. 예수님의 초청을 기쁘게 받아들입시다.
교회를 치유한 편지 / 김서택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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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0장 17절
복음은 좋은 충고가 아니라 좋은 소식입니다. 내가 무엇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믿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엇을 행할지' 묻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여정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행위로 영생을 얻으려는 사람에게는 좌절만 남습니다. 구원과 영생은 예수님과 그분이 하신 일을 믿어 은혜로 얻는 것이기에,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아는 무지와 오만이 두려운 영벌에 처해질 치명적 죄를 낳는다. - 앤서니 더스테퍼노
오늘의 기도
주님! 말씀대로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이것만은 내려놓지 못한다며 고집부리는 것은 없는지 제 삶을 돌아봅니다. 그 어떤 재물보다도 값진 구원을 주시는 주님을 더욱 갈망하며 사랑하게 하소서. 세상에서 잃는 것이 많고 어려움이 많더라도 언제나 주님을 선택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41 십자가를 내가 지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우리를 당신의 양으로 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깨달아 알게 하시고, 당신 안에 거하게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그분의 양으로 삼아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음성을 들려 주시고, 당신을 따르며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신 그 큰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자
그분이 바로 구원의 유일한 문이 되시고, 그분을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분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기 위해 노력하자
그분을 믿고, 그분의 백성으로, 그분의 제자로서 이 세상 속에서 그분을 전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이 찾아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자, 예수님은 그 사람의 가장 취약점을 지적해 주며 모든 것을 버려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답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를 보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면 현재와 내세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영생을 얻기 위한 질문, 그리스도의 대답, 부자의 반응, 세상의 먼저 된 자와 내세에 나중 된 자 등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 예수께서 부자가 하나님나라로 들어가는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를 놓고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합니다. 우선, 예루살렘에 ‘바늘귀 문’이라고 매우 작은 문이 있는데 이 문에 낙타가 들어가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그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다음, 헬라어 ‘낙타’와 매우 유사하게 들리는 말이 ‘밧줄’인데, 이 밧줄을 바늘귀에 꿰는 것을 비유한 데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유대교 랍비들은 ‘코끼리가 바늘귀로 들어가려고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봐도 매우 불가능한 일을 비유할 때 쓰는 말로, 일종의 과장법입니다.
문제는 이 말에 사람들이 기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라는 항의성 질문을 한 것입니다. 본문의 예수님께 온 한 사람은 정말 하자가 없었던 사람 같습니다. 모든 율법들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겸손하게 주님에게 영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로도 채울 수 없는 어떤 영적인 갈망을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매몰차게 그의 약점을 드러내십니다. 돌려 말하지 않습니다. 귀하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그에게 있는 단 한 가지 부족한 것을 지적해 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를 사랑했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그는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여 갔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수많은 재물을 포기하는 것은 영생을 얻는 것 보다 어쩌면 더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재산이 적은 사람은 실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잃어봐야 여전히 전과 같이 가난한 상태라 그렇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부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재물을 잃어버리면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자로 신분이 바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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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오늘 본문을 여는 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그렇게 무리한 제안을 하신 것은 다름 아닌 그가 영생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최소한 재물보다는 귀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이 세상에 귀한 것이 없으니,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그것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즉, 재물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라도 말입니다. 영생을 얻기 위하여 그 어떤 것도 잃어버리고 포기할 각오가 서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영원한 생명을 막는 걸림돌 같은 것들, 우리의 약점이나 취약점 같은 것들입니다. 그 부자에게는 재물과 같은 것입니다.
초대 교부 중에 오리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 성경연구를 한 수도자로서 순교로 생을 마친 인물입니다. 그는 성경해석과 유대주의적 해설, 그리고 헬라 철학에 능통한 신학자입니다. 유대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거세를 하였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9:43절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실행한 것이지요.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는 자신이 관할하는 성경학교에서 젊은 여인들을 가르치면서 하등의 스캔들 거리들을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했답니다.
그의 극단적인 신앙태도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의 위대한 점은 그러한 삶의 태도가 신학적, 학문적 세계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약점이 있습니다. 부자 청년에게 재물이, 오리겐 같은 성자에게도 있는 정욕처럼 말입니다. 우리도 조금 있는 재물을 버려야 할까요? 역시 우리도 잘라야 할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짜 의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영생을 위하여 그 어떤 것도 우리 앞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평생 쌓아놓은 금자탑과 같은 것일지라도 미련 없이 버려야 할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그의 자존심인 유대교의 모든 지식과 업적을 포기한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아무리 손을 자른다고 하더라도 또 같은 죄를 범할 수 있지요. 마치 도박중독자처럼 말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해답을 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성령께서 거하시면 성령님이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이 있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을 과감하게 끊어버리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나라로 선포하기를 바랍니다.
부자는 근심하며 자기 길로 갑니다. 오리겐은 극단적인 조치라도 행합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다’는 최선의 팁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면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을 누가 통치하느냐? 우리의 선택이 남습니다
사람들은 부자 되는 꿈을 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라 말씀합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잠23:4)
올무에 걸려 멸망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어떤 올무일까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은 자기를 옳게 여기고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는 교만이라는 올무입니다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잠28:11)
그래서 이 부자도 자신이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켜서 옳게 살고 있고 그래서 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옳게 살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라면, 엘리야는 세계 최고 부자가 되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교만하여 자기에게 부족함 따위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부자에게 부족함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계3:17)
그렇다면 그 부족한 것 한 가지는 뭘까요? 재물에는 부요했으나,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12:21)
즉, 재물의 힘은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힘은 의지하지 않으니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시52:7)
그래서 그 재물이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렘17:5)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기 원합니다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계2:9)
자기 십자가의 불 연단의 금을 사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3:18)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3-27절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당시 유대 사회는 ‘부’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 여겼기 때문에 부자가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이의 ‘부’는 하나님의 선물이 맞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부’는 불의와 탐욕의 열매일 수 있습니다. 깨끗하다 하더라도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는 ‘부’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눅 19:1-10).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7-22절 땅의 재물을 가난한 자들과 나눌 때, 하늘의 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찾아올 만큼 영생에 관심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계명들을 온전히 지켜왔습니다. 만약 계명 준수가 영생의 조건이라면 가난한 이들보다 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재물’이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재물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데 최대 걸림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 소유가 없는 어린아이나 가난한 자들이 부자보다 훨씬 하나님 나라에 가깝습니다. 소유를 나눔 없이 적당한 선에서 헌신하는 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내가 집착하고 있는 소유는 무엇입니까?
28-30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현세와 내세에 보상을 받습니다. 현세의 보상은 주의 나라가 임할 때 이미 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들을 얻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결코 헛된 수고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31절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천국의 역설은 부와 가난에도 적용됩니다. 이 땅에서 부를 누리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잃고, 가난한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얻을 것입니다. 땅에 재물을 쌓고 높아지고 먼저 되려고 하지 말고, 비록 이 땅에서는 나중 된 자로 살더라도 하늘에 우리 보화를 쌓는 삶을 살아갑시다.
기도
제 소유로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섬기며, 이 땅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게 하소서.
1.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17-22절)
오늘 예수님을 찾아온 한 사람은 아주 잘 훈련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부터 종교적인 모든 부분에는 험 잡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참된 뜻을 알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가진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지만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족하다고 말씀하신 그 한가지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 전부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종교적인 일에만 열심을 낸 사람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신앙생활에 취하여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 많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헤아리는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기를 즐기는가?
2.부자와 천국(23-27절)
예수님께 영생을 길을 물었던 한 부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가진 재물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을 듣고는 근심하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희생하지 않는 신앙은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물질을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신앙에는 관심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이 부자의 예를 들어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소유한 자들에게 천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어려운 것임을 말합니다. 그만큼 소유하고 누리고 가지는 즐거움이 주는 유혹이 얼마나 강력하고 우리의 신앙에 큰 위험요소 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물질의 풍요함을 누릴 수록 더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삶속에서 나타내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나의 소유를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고 헌신하기에 주저하지 않는가?
3.진정한 첫째의 삶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낙심하였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어렵고 힘든 일이 가능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고 여기는 그 어떤 일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로 인하여 내것을 기꺼이 주님을 위해 희생하기를 즐긴다면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힘으로 가능함을 깨닫고 감사함과 겸손함을 잃지 안항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것을 희생하고 주님을 위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에게는 이땅에서도 백배의 복을 허락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까지 주실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 이 땅에서는 꼴찌와 같은 삶처럼 취급당할지 모르나 주님께서는 그 꼴찌를 진정한 첫째로 여기시고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묵상하기
나는 주님앞에 첫째가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부자’이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기보다는 그 부요함에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마음과 예수님과의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낙타가 ‘바늘귀’라는 예루살렘의 작은 통로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몸을 숙여 겨우 통과해야 했을 텐데
부자와 같이 모든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도 그토록 붙들고 있는 세상의 우상들을 짐을 내려놓은 낙타와 같아야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임을 빗대어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고백하였는데 주님께서는 그들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는 이들은 주님을 따라 핍박까지 받게 되는 자들이 되고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얻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시면서도
오직 은혜 아래 거하지 않고 단지 자기 의로서 감당하려 할 경우 ‘나중’이 될 수 있음도 경고하십니다. 오직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어진 이 땅 가운데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며 바라보며 그 기쁜 소식 전하는 거룩한 주님의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남은 한 가지마저 내어드리는 삶❞
온전한 드림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위대한 구원의 문을 열게 하는 믿음 입니다
✔ 온전한 드림, 얻는 복은 무엇입니까?
➲ 하늘의 보화를 얻게 되는 복입니다(17~22절).
영생에 관한 한 부자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여러 계명에 관하여 언급하시면서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20절)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 사람을 예수님은 ‘...보시고 사랑하사...’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부자의 외적 신앙은 훌륭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큼 그것을 팔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이었습니다. 즉,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고 하늘에 속한 보화를 가지라고 주님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가 가진 재물로 훌륭하게 보이던 그의 신앙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가 바라고 소망하던 영생 그리고 제자의 삶의 기회마저 놓치고 말았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믿음과 순종으로만 가능합니다. 믿음과 순종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타인을 위한 사랑과 섬김의 삶을 거부한다면 이는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훌륭해 보이는 신앙일지라도 내면은 썩어질 세상의 것에 집착해 있다면 정작 중요한 하늘의 보화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부요한 삶이 분명 죄는 아닙니다. 또한 가난한 자들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 또한 아닙니다.
영생을 얻고,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로 대치할 수 없는 것이기에 때로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야 할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 남은 한 가지는 무엇일까?’ 고민해 봅니다. 육적 욕망, 물질의 욕망등은 하늘의 보화를 바라고 소망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됩니다. 마지막 남은 ‘두 렙돈’마저 온전히 드릴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회복의 기회를 얻게 되는 복입니다(23~27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3~25절)... ‘재물이 있는 자’는 단순히 물질만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이 많은 자’를 가리킵니다. 즉,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은 자들과 누릴 것이 많은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더욱 멀리 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26절)..서로 말하였습니다. 유대의 관원으로서 부자 청년이었고, 율법의 문구를 잘 지켰던 청년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하는 낙담이 섞인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절)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시며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은 더더욱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의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나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고, 주 안에서 영적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다시금 고백하게 됩니다. 비록 순간순간 넘어지는 내 모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다시금 마음을 새롭게 다 잡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을 이끌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적인 드림의 삶은 다시금 회복의 기회를 얻게 하는 복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 진정한 영생을 얻게 되는 복입니다(28~31절).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을 대표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28절)라고 고백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와 복음을 위하여...’(29절)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 받게 될 복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29b~30절).. 주님이 버리라고 명하신 것은 사실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요, 버릴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행하기 어려운 것들을 행하라고 하십니다. 아니 행할 수 없는 것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삶의 주인이요, 주관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하나님 주권적 은혜(31절)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것이요, 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혹 고난이 수반될 수도 있지만 영생을 누리게 될 그날을 학수고대하며 포기하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다고 해서 안심하거나 안주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는 온전한 드림이요, 타인에게는 아낌없이 나눔의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영생의 복을 받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세상적 풍요를 열망한 나머지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자신 또한 아낌없이 희생하는 삶을 통해 믿음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10:17~31절)... 빛이 있으라...
오늘의 말씀요약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그가 근심하며 가자,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에서 보답받되 박해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영생을 얻으려면(10:17~22)
영생이란 단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참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는 선한 행위나 율법 준수로 얻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영생 얻는 법을 묻습니다.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님 말씀에 그는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가서’ 그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도전으로 그가 재물보다,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갑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예수님보다 더 자랑할 것이 있다면, 아직 영생의 길에서 멀리 있는 것입니다.
- 묵상 질문: 부자 청년(마 19:22)이 근심하며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예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데 어떤 것이 걸림돌이 되나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10:23~31)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기보다 어렵다고 하십니다.
재물의 유혹이 그만큼 크고, 이기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구원은 사람의 능력과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하십니다. 이때 베드로가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또 예상 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버림에 대한 이 땅에서의
보상은 박해와 더불어 온다는 것입니다. 버림이 영생(구원)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현
재의 고난과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하는 삶의 양상입니다.
- 묵상 질문: 현세에서 보상을 받지만 동시에 박해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 적용 질문: 영생을 위해 이 땅에서 버려야 할 것, 감내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제게 주님의 전부를 주신 것처럼 제 시간, 능력, 물질을 주님께 드리고
이웃과 나누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걸림돌이 있다면 미련 없이 버리고,
고난이 온다면 두려움 없이 견디게 하소서.
마가복음 10:17~22 하늘의 보물을 얻으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사람이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하고 이혼에 대한 질문을 했다.
예수님은 결혼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고
결혼과 이혼에 대한 말씀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시고 어린아이를 안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다.
오늘은 한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이 있다.
개인적으로 인간적으로 참 멋있는 청년으로 보인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7) 라고 질문하는 청년이다.
예수님께 질문 하는 내용도 그렇지만 질문의 태도도 남다르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고 계시는 상황이다.
아마도 길 바닥에 꿇어 앉아 예수님께 여쭙는다.(17)
대단히 겸손한 청년인 것 같다.
선한 선생님이여(17) 하고 부른다.
예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이 있었던 것 같다.
질문의 내용보다 이 젊은 청년의 태도가 마음에 든다.
주님 앞에 겸손한 태도이며 주님에 대한 경외감 존경심이 보여진다.
주여 나도 이런 마음이 늘 있게 하옵소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이 내 안에 있게 하옵소서.
또 놀라운 것은 어려서 부터 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20)
대단한 일이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19)하는
예수님이 열거하는 계명을 어려서 부터 다 지켰다(20)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한다.
유대인들의 신앙적인 열심은 상상은 초월하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부터 이 모든 율법을 다 지킨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결단인 것 같다.
율법주의자라고 욕 할것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도덕적, 윤리적인 수준이
종교적 신앙적 열심 만큼 되어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너무 버릇없고 예의없고 무례하고 교회 앞에 무질서 하고
사회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내 모습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인간적인 겸손한 태도나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나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켜 행해 온 젊은 청년에게 주님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21)고 말씀하신다.
이 청년에게 한가지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요
율법을 다 지키며 살아온 인생이 부족한 것도 아니요
가난한 자를 구제하지 않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물질을 의지하는 것이 부족한 것이였다.
재물을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문제라는 말씀이다.
주님은 나에게 한 가지만 부족하겠는가마는 부족한 것이 무어라 말씀하실까?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21)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21) 하신다.
왜냐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기 때문이다.(21)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주님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부르실 때
그들을 고기잡이 배도 그물도 가족도 버려두고 주님을 좇았는데
이 청년은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재물이 많은 고로 슬픈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버렸다.(22)
결정적으로 한가지 부족한 점이다.
유대인인 이 청년의 질문에서 보듯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는 질문에서
유대인의 생각처럼 율법을 모두 지킬 때에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무엇을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는 열할만 할 뿐이다.(롬3:20)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7:3)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고 온전히 그 놀라운 은혜를 붙들게 해주시니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구원이 세상의 모든 우상을 통해 방해받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고
오직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양식과 변하지 않는 기쁨을 누리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그 은혜의 손길로 덮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능력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거룩한 제사장으로 행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