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귀가 붓다 앞에 나타나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붓다는 답했습니다.
베풀어라.
단 한 움큼이라도 나누어라.
나눔은 단순한 선행이 아닙니다.
집착의 사슬을 끊는 수행입니다.
조금 덜 가지려 할 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조금 더 나누려 할 때
비어 있던 마음은 채워집니다.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불교는 끊임없이 말합니다.
행복은 체험이 아니라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고
지금 이 순간 멈추어 바라보십시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인가?
아니면 이 갈증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지금 당신의 마음은 무엇에 목말라 있습니까?
아귀 《餓주릴아鬼귀신귀》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는 욕심 많은 사람을 보며 아귀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아귀라는 말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불교에서 온 용어입니다.
불교에서는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육도라 부르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악귀道입니다. 아기는 굶주린 존재라는 뜻입니다.
잡아함경에서는
탐욕이 많은 중생이 죽은 뒤
아귀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또 정범염처경에서는
그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배는 산처럼 크고
목은 바늘처럼 가늘어
항상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린다.
채우려 할수록 더 비어가는 존재
그것이 아귀입니다.
왜 이런 존재가 되었을까요?
불교는 말합니다.
탐욕은 채워도 끝이 없고 집착은 스스로를 먹는 사슬이 된다
고 단 한 번의 탐욕이 아니라 평생 쌓아온 갈망의 숲이 그 존재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욕망은 강물과 같아
채우려 할수록 더욱 흐른다.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더 가지려 하고 더 채우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허기집니다.
좋은 집을 얻으면 더 큰 집이 보이고
충분한 돈이 생기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집니다.
원하던 것을 손에 쥐는 순간
이미 다음 것을 통해 손이 뻗쳐 있습니다. 이것이 아귀의 삶입니다.
죽어서만 가는 세계가 아니라
지금 이 마음에서 시작되는 세계
입니다. 유마경은 말합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
반대로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 찼다 하면 어떤 풍요 속에서도 지옥을 삽니다.
그렇다면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요?
줄이는 것
그리고 나누는 것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갈증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잡보잠경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귀가 붓다 앞에 나타나
어찌하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붓다는 답했습니다.
베풀어라 단 한 움큼이라도 나누어라. 나눔은 단순한 선행이 아닙니다.
집착의 사슬을 끊는 수행입니다.
조금 덜 가지려 할 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집니다.
조금 더 나누려할 때 비어 있던 마음은 채워집니다.
많이 가진 것이 아니라 집착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불교는 끊임없이 말합니다.
행복은 체험이 아니라 집착에서 벗어나는 데 있다고
지금 이 순간 멈추어 바라보십시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것인가?
아니면 이 갈증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지금 당신의 마음은 무엇에 목말라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