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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에 나비가 난다
무거운 날개를 파닥이며 어디로인가로 향하는 그 나비의 날갯짓에 가슴이 아리다. 저 나비는 이아침 무엇을 위하여 빗속을 날고 있을까? 무엇인가를 구하기 위하여 나는 듯한 그 날갯짓을 따라가며 가슴이 빗물에 젖어든다.
얼마 전 일이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 있는 딸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휴일 아침에 아이들을 일찍 깨우기가 미안해서 살그머니 일어나 집으로 가자고 나섰다. 막상 나서고 보니 아침은 먹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찾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그 앞에 간판이 있다. 아침식사가 된다는 그 안내문에 선뜻 지하계단을 내려간다. 아무 음식이면 어떠랴. 아침이니 시장기만 면하면 될 듯 싶다. 식당에 들어서니 뷔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뷔페라기보다는 셀프서비스라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 같은 구조다. 접시 하나와 수저 한 벌을 들고 반찬과 국을 담는다.
한 눈에 보아도 부실한 식재료의 반찬들이다. 분명 중국에서 건너온다는 포장된 식품일 것만 같아 꺼림칙하다. 밥도 국도 반찬도 직접 조리된 것 같은 것은 없다. 미역국은 국물뿐이고 밥은 흩어진다.
잘못 들어왔나 보다 생각하며 자리에 앉으니 이 식당을 채우는 손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 노동자의 옷차림새다. 신발도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니 건설 현장의 근로자들임이 틀림없다. 빠른 동작으로 아침식사를 끝내고 계산대에 펼쳐져 있는 메모장에 서명을 하고 나간다.
가슴이 찡하다. 이렇게 부실한 식사를 하고 한나절을 버텨야 하는 저 사람들은 가장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나이들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가족은 어디에서 생활하고 있을까? 어느 지방이거나 아니면 어느 소도시이거나 아니면 서울 변두리의 어느 허름한 집에서 살아갈 것만 같은 것은 나의 기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분명 저들의 가정은 멀리 있기에 식구가 해 주는 아침밥을 먹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아침 인사를 받지 못하고 일터로 나가는 가장들의 어깨가 축 늘어져 보인다.
아주 오래 된 일이다. 전문자격을 이수하기 위해 나는 실습과정에 있었다. 마침 내가 실습을 해야 하는 기관이 있는 지방의 작은 도시에 큰 오빠는 교육청의 장학사로, 형부는 그 도시의 어느 고등학교 교감으로 근무를 하고 계셨다. 오빠도 형부도 나도 모두 집은 춘천이다. 때문에 오빠의 하숙집에 기거하게 되었다. 식당은 한정식 집이었는데 가족을 떠나와서 그 도시의 기관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아침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주는 곳이었다. 자연히 그 식당에서 나도 식사를 하게 되었고 오빠와 한 지붕 인접한 방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지낸 몇 주 동안에 나는 가장의 외롭고 고달픈 인생살이를 곁에서 보아야 했다. 가족을 떠나와서 정 하나 섞지 않은 음식을 사 먹는 형부와 오빠의 식사시간도 슬펐지만 지척에 있는 오빠의 잠자리는 더욱 가슴 아팠다. 간혹 술에 취해 늦게야 들어오는 오빠의 방문 소리에 잠이 깨면 오빠의 기침소리와 코고는 소리까지 온통 내 가슴을 아리게 후벼 파고는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의 가장들이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되었다.
예전 파월장병이 있는 집에는 어김없이 텔레비전이 있고 저녁이면 연속극을 보기 위해 그 집 마당에 모여 앉던 때가 있다. 가장은 목숨을 내 놓은 전장에 있을지언정 그 가족은 남들보다 많은 현금을 손에 만질 수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풍요로웠다. 그렇기에 남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전자제품도 쉽게 사들일 수 있는 ‘월남 댁’으로 불리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 때 전장에 보내고 난 가족의 아리고 슬픈 속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까.
이런 기억들 때문에 나는 아직도 가장이라는 단어가 슬프게 느껴진다. 전장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가장도 그렇게 집을 떠나서 보낸 세월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 날들을 나 또한 가장으로 살았던 때가 있다. 가장이 없는 집을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가는 아내는 그 역시 또 하나의 가장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나보다 약하고 나에게 보호받아야 할 내 식구들을 지키고 책임지며 살아야 한다는 그 자체가 아픔과 고난의 시간이지 않았을까.
이제 들고 나는 나의 몸짓을 바라보는 아이들은 없다. 그렇지만 홀로 나는 나비처럼 집을 나선다. 어느 누구도 나의 춤사위를 눈여겨 바라보지 않는 오늘이다. 치맛자락 추적추적 적시며 비로 내리는 추억 속을 날아오르는 나비가 되고 싶다.
나비의 몸에 젖은 빗물이 마르고 나면 그의 몸짓은 가벼운 춤사위가 되겠지.
등단: 2012년 월간 수필문학 천료
저서: 사진 수필집 「두 번 울던 날」
수상: 제7회 백교문학상. 제15회 춘천여성문학상
활동: 한국문인. 강원수필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