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는 사역으로의 부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로의 부름입니다.제임스 휴스턴이라는 영성신학자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말해달라,그러면 나는 당신의 기도가 어떤지 말해줄 수 있다."하나님과의 관계가 우리의 영적인 깊이,기도의 수준을 말해줍니다.하나님께는 우리가 어떤 기도를 드리느냐보다 "내가 하나님께 누구인가?" 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관심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누리는 것이 모든 신앙생활의 열쇠입니다.따라서
중보기도는 응답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한번은 유치부 전도사님이 여섯 살 유치부 아이의 헌금 봉투를 가지고 왔습니다.그 봉투에는 빼뚤빼뚤한 글씨로 기도 제목이 써 있었습니다.
"하나님.제가 하나님께 만 원을 드리는 게 아까워요.그레치 않게 해주세용"
"하나님 아버지 제가 돈을 조아해서 하나님게 돈을 드리기 실은 마음을 받아주세요"
두 개의 헌금 봉투를 가지고 나온 아이가 너무 귀여워서 전도사님이 물어보았답니다.
"뭐라고 기도해줄까?"
"제가 돈보다 하나님을 좋아하게 해주세요."
유지원생만 되어도 돈이 가진 힘을 압니다.물론 어른들은 이 아이보다 돈을 더 잘 알고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이런 기도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정직한 기도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임을 믿어야 가능합니다.또한 정직한 기도가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실제가 되는 것입니다.
2015년 예멘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대부분의 선교사님들이 철수하였습니다. 끝까지 남아 있던 한 팀의 선교사님들도 이제는 철수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 제목이 올라왔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사역하는 곳에서 수도인 사나(Sanaa)까지 차를 구하고 연료를 구해 안전하게 나오는 것,사나까지 무사히 온 다음 비행기를 타는 일,이 모두가 너무 긴박하고 보안을 요하는 매일 기도 제목들이었습니다.
'오늘은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오늘은 가능할까?'
보안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모든 교우들에게 오픈하지는 못하고 중보기도팀에게만 기도 부탁을 하며 피 말리는 3주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마침내 비행기를 탔다는 소식을 듣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얼마나 울었는지요.비행기를 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월요일이었는데,
금요일에 저희 교회 성령 집회에 선교사님들이 참석하여 간증을 하셨습니다.
함께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극적인 과정을 통해 나오게 하셨는지 듣고 싶었습니다.그것이 살려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1세 아이의 고백,16세 청소년의 고백,50세 선교사의 고백까지 하나같이 다 그 땅에 남아 있는 예멘 사람들 걱정뿐이었습니다.
팀 리더인 선교사님은 "우리는 이곳에 난민으로 온 것입니다.그 곳에 문이 열리면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우리가 속히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저 같으면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살아나왔으니 당분간은 좀 쉬면서 안정을 찾으려 했을 것입니다.그런데 이분들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예멘 사람들의 영혼이 더 중요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아는 수준은 다 다릅니다.거기서 기도가 달라집니다.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으로 알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께 잘 보여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생각하면 완전한 연합으로 나아가기를 힘쓸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관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에서 나옵니다.신뢰는 상대방의 본심을 아는 데서 나오지요.그 마음속에 있는 사랑을 볼 때 신뢰가 됩니다.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본심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붙잡고 누리게 될 때 믿음이 생깁니다.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믿음은 순간에 깨어지고 흩어질 수 있는 공중누각에 불과합니다.그런데
사랑에 기반을 둔 믿음은 풍파가 커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박리부가 <기도를 송두리째 바꾸신 예수 그리스도>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