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김건희 여사에 의한, 김건희 여사를 위한
전혜원 기자2024. 10. 22. 06:27
2023년 9월8일 김건희 여사가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공동취재
대통령 배우자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해외순방이나 국가 공식행사에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며, 때로는 대통령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희호 여사가 건강이 좋지 않던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대신해 2002년 5월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 게 대표적이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배우자 미셸 오바마는 2016년 “그들이 저급하게 나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와 같은 명연설로 감동을 줬다.
동시에 대통령 배우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미국 연방법(USC) 제3편 제105조는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하는 데 대통령의 배우자가 대통령을 지원하는 경우,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지원 및 서비스가 대통령의 배우자에게도 부여된다”라고 법적 근거를 명확히 했다(이철호,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지위’, 〈법학연구〉 제91호, 2023). 반면 한국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외에는 배우자의 권한과 책임을 법에 따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관심을 가진 ‘한식 세계화’에 거액의 세금이 투입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의 인도 방문을 문제 삼았다.
배우자를 비롯한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이 그동안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만큼은 아니었다. 대선 기간이던 2022년 1월16~22일에는 구글 트렌드상 ‘김건희’ 검색 빈도가 ‘윤석열’을 뛰어넘기도 했다.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 재직 중 주가조작 연루 의혹과 명품 백 수수로 검찰 수사를 받은 첫 대통령 부인이다. 한데 두 혐의 모두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 아들 현철씨가 비리 의혹으로 구속되고, 이명박 전 대통령 일가가 내곡동 사저 의혹으로 재직 중 특검 수사를 받은 것과 대조된다.
김건희 여사는 온라인 매체 ‘서울의소리’의 이명수 기자와 5개월간 50여 차례 통화했고, 한국계 미국인 통일운동가 최재영 목사(NK VISION 2020 대표)에게서 300만원 상당의 명품 백을 받았으며, 경남 창원에서 활동하는 정치 컨설턴트 명태균씨에게 “완전(히) 의지”한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이 과정은 모두 상대에 의해 녹음·녹화·캡처되어 일반에 공개되었다. 김건희 여사는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며 그를 둘러싼 논란에는 거의 예외 없이 ‘녹취록’ ‘카카오톡’이 있다. 가히 ‘김건희 녹취록 정권’이라고도 할 만하다.
2024 〈시사IN〉 신뢰도 조사 결과 ‘명품 가방 수수 등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불신한다’는 응답은 보수(53.2%), 대구·경북(60.8%)에서도 절반 이상이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을 만난 법조계 선배들이 김 여사와 관련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하면 대통령은 ‘선배님, 저한테 앞으로 그 얘기 하지 마십시오. 제가 집사람한테 그런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라고 답한다는 것이다(〈중앙일보〉 9월26일자 칼럼 ‘강찬호의 시선-국민 품에 안긴 육영수 특활비 장부의 뜻은’)”. 대권주자로 급부상했지만 정치 경험 없이 이준석·안철수 등 이질적 세력과 연합해 가까스로 정권을 잡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권에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김건희 여사의, 김건희 여사에 의한, 김건희 여사를 위한’ 각종 논란들로 휘청거리고 있다.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 잡듯이 뒤졌는데 나온 것이 없었다”라며 일축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결국 최태민 딸 최순실씨(현 최서원)에 의해 무너졌다. ‘비선’ 논란이 갈등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한국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해결할 ‘비전’은 자취를 감출 때, 손해 보는 쪽은 공동체의 시민들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민주주의 핵심에 가닿는 중차대한 질문이다. 이번 호 〈시사IN〉이 거의 모든 기자를 동원해 윤석열 정권의 명실상부한 ‘아킬레스건’인 김건희 여사를 들여다본 이유다.
[김건희라는 아킬레스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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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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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권주자로 급부상했지만 정치 경험 없이 이준석·안철수 등 이질적 세력과 연합해 가까스로 정권을 잡은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권에 등장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김건희 여사의, 김건희 여사에 의한, 김건희 여사를 위한’ 각종 논란들로 휘청거리고 있다.
‘한국에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 통제가 가능한가’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민주주의 핵심에 가닿는 중차대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