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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ropa Universalis
 
 
 
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기타 프랑스왕 필리프 2세와 국토수복
럽라 좋은것 추천 0 조회 1,020 16.09.25 04:11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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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6.09.25 07:38

    첫댓글 그 결과 필리프는 Auguste가 되고, 존은 Lackland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ㅠ

  • 16.09.25 07:48

    참고로 아키텐은 백작령이 아닌 공작령이었어요. 그래서 헨리2세와 재혼한 Eleanor(Eleonore)는 countess(여백작)가 아닌 duchess(여공작) of aquitaine 이었어요.

  • 작성자 16.09.25 09:23

    @Caligula 수정했습니다.감사합니다!

  • 16.09.25 09:21

    그리고 가늘게 이어지던 카페왕가가 아들 숨풍숨풍 낳고 장족의 발전을(카페왕가가 신롬소속이면 벨붕인데ㄷㄷ)

  • 16.09.25 17:56

    그나저나 중세 최대의 전투 중 하나인 부빈전투의 동원규모를 보니 양측이 1~2만명 정도던데, 확실히 동시대 아시아에 비하면 카와이(???)한 규모인듯. 이전 시기 고려만 해도 몇만명 동원은 예사였으니(....)

  • 작성자 16.09.25 18:19

    그쵸 ㅋㅋ
    근데 중국은 뻥튀기가 심해서.....
    에매하죠 ㅋㅋ
    프랑스 혼자서 9천명인데
    이것도 프랑스가 국토가 좋고 인구도 많아서ㅡ...ㅡ
    근데 당시 프랑스는 아직 중앙집권도 안됬고 프랑스 절반은 자기께 아니였으니요 ㅋㅋ

  • 16.09.26 13:54

    @럽라 좋은것 중국이 뻥튀기가 심하긴 해도, 비교하자면 월등히 중국이 많죠. 인구수로 밀어붙여!!!!

  • 16.09.26 19:35

    @럽라 좋은것 다만 일개 영주에 불과한 고드프루아 같은 사람들도 몇천명씩 병력을 거느렸던걸 보면 프랑스 전체 병력은 꽤 많았을것 같습니다. 단지 이 중 국왕이 통솔 가능한 병력이 적었다는게 문제겠죠(....)

  • 작성자 16.09.26 21:08

    @루테티아 실제로 중앙집권이후에는 상비군 10만씩 뽑고다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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