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름, 주말농장에서 지낼 때 일이다.
어느 날 순댓국으로 점심 한 끼 때우려 읍내로 나갔다.
북적이는 시장을 조금 벗어나니 저 건너편으로 ‘전주콩나물국밥’ 집이 보인다.
‘그래, 오늘은 순댓국 먹기 틀렸나보다’하고..차선의 선택을 했다.
12시가 넘었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다. 주인 아줌마가 메뉴를 선택하란다.
하나는 ‘전주식’ 오리지널이고, 또 하나는 ‘남부시장식’이란다.
‘전주식’은 계란을 넣어 팔팔 끓여주는 식이고, ‘남부시장식’은 뜨거운 국물만 넣어
계란 반숙을 따로 주는 스타일이다. 오늘은 남부시장 스타일을 맛보기로 했다.
국밥이 나오기 전에 기다란 접시에 한줌씩 밑반찬이 나온다.
김치며 새우젓, 오징어젓, 무말랭이무침 등과 바짝 구운 김이다.
드디어 밥을 말은 국이 나왔는데, 한술 떠 맛을 보니 영 미지근하다.
역시 콩나물국은 뜨끈뜨끈한 '전주식' 오리지널이 나은듯하다.
거의 다 먹고 마지막 국물 한 스푼을 뜨려하는데,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12시 반이 지나가니 점심시간이 무르익는 모양이다.
아이들 셋과 젊은 엄마가 옆 테이블에 둘러 앉는다.
그런데 그 뒤를 따라 한 노신사가 들어온다. 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히 내가 아는 그 친구인 듯한데, 몰골이 말이 아니다.
머리카락은 다 빠져있고 턱밑에 흰 수염 가닥이 무성하다.
그런데 날 쳐다보더니 ‘어, 00야~'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것 아닌가?
맞았다. 그는 바로 절친한 내 친구였다.
한때 며칠에 한 번씩 만나 술 한 잔씩 기울이던 친근한 사이였지만,
미국으로 들어갔다 해서 한동안 서로 보지 못했다. 와이프와 운전기사 일행이 함께였다.
“아니, 웬일이야? 여기에? 근데 몸이 안 좋은가?”
“너야말로 여기 웬일이냐? 혼자 왔나?”
“난 여기 농장이 있어서 잠시 내려와 있지..방학 동안에..근데 너는?”
“그게 말이야..내가 얼마 전에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위암 3기래..
그래서 미국에 가서 수술 받고 여기 휴양림이 좋다고 해서 쉬러내려왔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그는 참 풍채도 좋고 잘 생기고, 술도 잘마시던 건강한 친구였다.
술과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비만증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 그가 암 치료 후유증으로 전연 다른 모습으로 1년 만에 나타났으니..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친구들은 그저 내가 미국 가서 잘 있는 줄만 알지..
몇 차례 수술 받고..올해 초부터니까..한 6개월 넘었지..너도 건강 조심해라..”
“참 나, 널 보려구 오늘 내가 여길 왔나보다. 아무튼 좋은 모습으로 못 봐 좀 그렇지만,
너랑 나랑 인연이 특별한 모양이다. 요즘 위암이야 뭐 큰 병이 아니니까,
공기 좋은 곳에서 잘 조리하면 나아질 거야..”
“글쎄 말이야..그래서 여기 휴양림이 암환자들에게 아주 좋다고 해서..
삼림욕을 통해 치유된 환자들이 많다고 하더라구..그래서 와이프랑 같이 왔지..
한 열흘 쉬다 가려구..참 인사해..우리 와이프다..나 간호하느라 한국에 들어왔지..”
“어쩐지 제가 볼 때도 여기 분은 아닌 것같아 보이더라구요.
처음 봤을 때 친구 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퍼뜩 스치긴 했지요..
여기서 두 사람이 만나려구 이리 들어온 모양이네요..”
“맞아, 우리도 순두부집 잘하는데 찾다가 이리 들어왔는데, 널 만나려구 그런 모양이다. 하하~~
여보. 이 친구가 내가 총각시절 영어회화 테이프 세일즈할 때,
제일 첫 번째로 사준 친구 아니야..절대로 못 잊지..하하~~”
나는 이미 다 잊었던 일을 새삼 꺼내 치켜세우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친구가 웃으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건강한 모습으로 이런 곳에서 만났다면 술이라도 거나하게 했을 텐데 말이다..
친구는 반가우면서도 영 아쉬운지, 편육 한 접시와 모주 두 잔을 시켰다.
“아니 술 마셔도 괜찮은가? 수술했다면서?”
내가 난색을 표하자, 그는 한잔은 무방하다고 의사가 말했다면 껄껄 웃는다.
가만히 지켜보던 와이프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한모금만 마시고 자기에게 달란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친구가 애처로웠다.
그렇게 뜻밖의 조우를 한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자, 가서 푹 쉬고..몸조리 잘해..무엇보다 투병의지가 중요한 거니까..
나중에 시간되면 내가 한번 갈 테니..”
“그래, 나랑 같이 걸으면 좋은데..어디 가서 차라도 한잔 더 했으면 좋겠는데..”
“아니, 환자가 빨리 가서 요양을 해야지..자 빨리 데리고 가세요..고생이 많으시겠군요.
환자보다 보호자가 더 마음고생이 많은 법인데..”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의 짧은 만남을 못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를 휴양림으로 떠나보냈다. 그게 그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떴다.
참 사람과의 인연이란 묘한 것이다. 그런 자리에서 마주치다니 말이다.
그는 학창시절에 그리 크지 않은 몸집의 친구였다.
졸업 후 어느 날, 내 눈앞에 다시 나타난 그는 코끼리같은 풍채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나는 언제 저런 몸을 가져볼까..하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그런 친구였다.
부친이 창업한 제약회사 임원으로, 해외를 드나들며 전천후로 영업활동을 하던 세일즈맨이었다.
언제 만나도 '두주불사'하던, 호탕한 성격의 ‘무골호인’이었다.
그런 그가 그렇게 어이없이 세상을 뜨다니, 참 알 수 없는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새삼 건강과 인생에 대해 다시 되새겨보는 순간이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그 친구의 인생과 내 인생이 오버랩되며 스쳐갔다.
나 자신도 내 건강을 장담하지 못하지만, 얼핏 떠오른 건
그렇게 건강을 자랑했던 친구들은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지 오래다.
반면에 폐암이니 간암이니 암 판명으로 시한부 인간으로 지내던 친구들은
아직도 버젓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인생관, 사생관에 달려있지 않을까?
하루를 후회 없이 아낌없이 살아가는 것,
죽을 때가 다가오면 피하지 않고 기꺼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자세 말이다.
어디 말이 쉽지 실천이 그리 쉽겠는가 하겠지만, 세상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병에 걸리면 별도의 수술을 거부하고
그저 마음 편하게 가리라고 마음먹은 지 오래다.
가끔 속으로는 ‘나도 혹시 암일지 모른다’는 우려는 늘 하고 있지만,
구차하게 오래 살며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란 죽기보다도 싫다고 할까?
때가 닥쳐와야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아직은 분명하다.
죽을 때가 되면 그냥 미련 없이 죽겠다는 마음 말이다.
세상에 지은 죄가 많으면 오래 산다는데,
아무래도 하나님은 나에게 고통을 더 주실 모양이다. (*)
첫댓글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달마선배님도 건강잘
챙기세요 ㅡ굿밤요
달마선배님이라니, 누가 들으면
'달마대사'로 오해할지도~ㅎㅎ
전 건강하답니다. 첫 댓글 감사..^^
특별한 만남이였네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사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 할것 같습니다..
가슴 뭉클한 글 잘 읽었습니다..
너무 무거운 화두를 던진 게 아닌지, 조심스럽습니다.
말씀대로 죽음을 극복해야 최선을 다하는 삶이 보장되지요.
그 친구와는 특별한 인연이었기에, 저도 가슴 뭉클하답니다.
'김포인'님도 늘 건필, 건행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죽는 다는것..
이것은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사는 그 순간까지..
그냥..
최선을 다하면서
사는것이 가장 좋을 듯 싶지만
제가 그러하지는 못합니다..ㅎ
'생로병사'는 진리 중의 진리이지요.
보람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도 중요하기에
오늘이 마지막이라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봅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죽습니다만 너무 일찍 죽으면 억울합니다
요새는 수명이 많이 늘어났지만 죽음은 피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거는 살만큼 살다가 제 수명에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내마음대로 안된다는게 문제 입니다
그래도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기 위해서 노력합시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무병장수'란 어리석은 말이라고 하지요.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행복하겠지요.
님의 '향복무강(享福無疆)'을 기원합니다.
건강!건필! 행복! 우하하~~감사합니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부모는 마음을 내려 놓고 조금 달관 하는
시선으로 자식을 보게 됩니다
어디 가서 자식 자랑에 조심하고 신중합니다
사람이 평생 건강하고 그런대로 살면 오만해 집니다
중병에 한 두 번 시달리다 보면
겸손해 지고 남의 아픔에 눈이 갑니다 일상의 소박한 것에 감사 할 줄 알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려 애쓰게 되기도
고로.. 사람은 속 썩어 봐야하고 아퍼 봐야 한다는 건데
사실 무탈하게 살고 비바람 피하고 살다 가는게 최고긴 하지요 ㅎ
'달관의 시선'이라! 대단한 도의 경지에 이르셨군요.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측은지심'도 갖게 되지요.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아픈 마음 달래주려면,
중병이나 견디기 힘든 불치병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세파'에 시달려봐야겠네요. 감사합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암에대한 두려움과 혹시 ? 하는 염려가 있기 마련 이지요~~
먼저간 제 친구들중 대다수도 그놈의 암 때문 이었습니다
빠트리지 않고 건강검진 받아도 걱정을 아주 내려 놓을수는 없더라구요
친구분 요양 잘 하셔서 건강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친구는 그날 이후 몇 달 만에 안타깝게도 세상을 떴답니다.
모든 것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먹으면, 몸은 물론 마음의 병도
사라진다고 합니다. 물론 주기적인 건강 검진도 중요하지만,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고 아프지 않을 때 건강에 힘쓰는 일이
긴요하다고 봅니다. 공감과 따뜻한 관심 감사합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전주식 한방콩나물국으로 해장했습니다 ㅎ
어제과음해서 그외에도 영양소 골고루챙기고 운동중이지요ㅡ
그분외에도 체격이 푸짐하던분들이 병들고 일찍사망하는 이유는 과체중과 비만이 가장 큰 이유일겁니다 ㅡ
체중관리 특히 허리둘레 관리잘하시길 ㅡ
'전주식 한방 콩나물국' 해장이라~~
저도 한 번 맛보고 싶네요.ㅎㅎ
과체중과 비만을 조심해야겠군요.
전 너무 건강해서 탈이지만.ㅎ
열심히 운동하시며 건행하시길~~
유익한 건강 정보 감사합니다..^^
맘이 짠하네요
극복해서 낳았으면 좋으련만
이미 떠난 친구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먹먹하지요.
부럽도록 건강했던 친구였기에 더 안타깝답니다.
건강 파워 체질 지존님 늘 건행하시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누구나 다 가게 되어있는 길
사는 동안은
아프지 말고.
즐겁게
해보고 싶은 것
다 하고 가야
후회가 없을텐데요.
즐겁고 행복한 주말에 너무 버거운
주제를 거론한듯해 죄송하네요~~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주어진 하루를
보람차고 소중하게 보내야겠지요.
'생전 소망 목록'을 만들어 활용하면,
해보고 싶은 것들 다하고 갈 수 있죠.
건강한 몸과 행복한 영혼으로~~
페이지님의 '버킷 리스트' 성공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감사~~^^
네 한번 생각해 봅니다.
너무 곰곰히 생각은 마시고
부담없이 가볍게~~감사..^^
좋은친구
쾌차를 기원함니다
참 안타깝죠
그 친구는 몇 달 후 세상을 떴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걱정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