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일기처럼.
색 없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다시.
가슴 아파해야 되는 날로 돼 돌아가야 되는 곳
가슴 한견에.
슬픈 나무 한그루 아직 자라고 있었다
눈 떠.
내가 사람도 아니었던 군생활
인격도.
인간의 존엄성까지
존재되지 않았던 졸병생활
처얼석. 파도소리
엄마 생각에 눈물짓고.
순검 끝 취침소리에
고향생각 절로 나지만
작은 불 앞에
선임수병들의 편지를 대필하고 있었다
pan pell로 시작하여
제대하면 끝나버리는 짧은 여독....
여자분 들은 거의
영등포 가리봉동에 밀집된 가발 회사와
봉제공장.
일주일 내내 편지를 기다리는
선임 수병들의 마음도.
들뜬 마음으로 내 편지를 읽는 여자들에게
살점을 에리는 애절한 그리움과
바위처럼 정직함
봄 향기처럼 향기로운 글을
내가 그 여자분들의 남자인듯
편지지를 꼭꼭 채워 보내고 있었다
많은 여자분들 속에
마치. 내 여자처럼. 정성을 담은 분이 있었다
그 분의 사랑을 동봉한 편지가 밤새 달려
선임수병 손을 거쳐 다시 내손에 쥐어졌다
**별빛 내리는 하늘밑에
작은 새 내가 되어
입 벌려 나 온소리
하나 되어 공허 하지만
내가 정한 임이기에
이 밤 물고 당신께 갑니다
내가 바친 사랑으로
낯을 닦고
내 정성 모아 모아
당신 길 앞에 뿌리니
편한 미소 입에 물고
발 재촉 하세요..**
그녀의 애틋한 편지는
이틀이 멀다 하고 내 손에 쥐어졌지만
당사자인 선임수병은
이미. 아들 딸이 있는 기혼자
길 옆에 핀 코스모스를 따 입에 물고
후 ``불고 버스에 오르는...
그 선임수병이 전역을 했다
그가 버리고 간 사연을 사랑을
내가 짐처럼 지고 가야 했다
가급적이면 위로가 되는 글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편질 그녀에게 보냈다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진 그녀의 답장은
항상 눈물에 젖어 있었다
그녀의 글을 읽을수록 내 마음이 괴로웠다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 늦은 까닭에
슬픔의 날들은
전역을 앞둔 나의 가슴에 빈둥지의 아픔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가슴이 얼마나 아팟을까..
하루 만에 달려온 그녀의 편지에
긴 밤을 새워 글을 보냈다
개나리 만개한 어느 봄날
이젠 내가 그녀의 편질 기다리고 있었다
나 역시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나의 고갈된 마음을
그녀의 사랑으로 채우고 있었지만
하지만 나 엮시
제대 날자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는 것을...
전역을 앞둔 늦은 겨울
위병소 앞을 지나가다
애타게 발 동동 구르는 여인을 보았다
그녀였다
면회가 단절된 내무실에서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인적도 없는 비 포장길로
흘쩍 뒤 돌아보며 그녀가 가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소아마비인 그녀는....
그녀는..
그녀는.
만삭이었다.
두 손으로 배를 감 쌓며
자꾸. 자꾸만 뒤 돌아보고 있었다
슬픔이 격해저 울 수도 없었다
나를 스스로를 자책하며
더이상 숨을곳이 없어
살점을 파내는 유격 훈련도. 완전무장 구보도
미친놈처럼 꺼억꺼억 소릴 질러 댔다
날 혹사하고 싶은 죄책감 때문에
등이 오싹한 공수훈련의 수송기 속에서
죽고 싶어 환장한 놈처럼 뛰어 내렸다
그 가슴. 해이는 겨울을 그리 보냈다
그리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글과
더 감당지 못할 애절한 글로
사랑했었다는 편질 끝으로
그해 전역을 했다
눈물로 적은 그녀의 편지가 수 없이 나를 찾았으련만..
그랬으련만..
겨울이.
다 기억도 할 수 없는 겨울이
품에 안겼다 사라졌다
마음은 항상 슬픈 교향곡 처럼 두드렸지만
몸은 세상과 싸워 가며
먹고 살기에 연연 했다
겨울은
소복한 여인처럼 길을 막았지만
봄은.
여린 베일을 벗기며 찾아 왔다.
비 개인 어느 날
허름한 책방에 몸을 밀어
손에 쥔 책을 펼칠 때
갑자기 내 입에서
까마귀 울음 같은 괴성이 터져 나온다
군에 있을 때
밤새워 내가 쓴 글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반 명함판 사진과 함께...
그녀는 이미
이름만 내밀어도 알만한
시인이며.
방송 작가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엔
돌아 올리 없는 군 선임수병을 기다리며
내 편지를
책 갈피 속에 간직한 잎새 처럼 보관하며
망울 슬픈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질 손에 쥐고...
남루한 책방에 글이 되어
슬프게 앉아 있었다.
첫댓글 잔인하도록 아픈 인연이었네요.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거죠
감사드려요
편안 한 밤 이루시길 바랍니다
아,~~ 슬퍼라.
엊 저녁에"베를린 에서" 라는 영화를 보고 밤새 꿈속에서 가슴 아팠는데.~~
뉴욕 블루클린 유대인 공동체 생활을 벗어나는 힘 없던 여인의 이야기 였어요. ㅎ
베를린에서 영화를 저도 봐야겠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영화도 실화이겠지요
과거이든 현재든
사람이 사람에게 가슴 아프게 하는일은 없어야 하는데요~~
감사드려요 시호님
편안한 밤 이루시길 바랍니다~
70년대 연애편지 많이도 썼는데..
아직도 간직 하고있는 편지 가끔 비오는날 심심 하면 꺼내 보기도 하지만
순정파는 아니였지요
그냥 바다님 글처럼 글을썼던거 같은데..
나두 낭중에 안 일이지만 대필로쓴 편지였다는걸 안적도 있었지요
그중에도 필이 통하는 편지도있었는데
인연이 되지못함은
울 오라버니가 전해 주지 않았다는거..
그때 울 오라버니 우체국 근무 했고 우편물 담당 했기에 ..
오빠한테 울면서 했던말 ..
난 글을 쓰고 있는거야!!
그시절 엔 다그랬을거에요 ㅎㅎ
군에서는 대필도 많았고
면회와도 대신 나가는 경우도 있었지요
그 당시는 편지봉투에 흑백사진 보내주는게 전부였거든요
러브님의 오빠도 동생을 생각해서 그랬을거예요
힘들었고
가슴 아팟던 그 시절이었지만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대필은 안 할 것 같아요
감사드려요 러브님
편안한 밤 이루시길 바랍니다
@시골바다 울오라버니 울친구들 한태 미움많이 받았죠
편지중에 생각나는 섬돌이 친구 그친구가 지금 궁금하지요
그친구 가 군에서 다른사람한태 부탁 대필받았는데 재대 무렵 고백했지요 난 글재주가없다고ᆢ 그래서 그랬다고ᆢ
기다리던 님은 안왔지만,
명품 문장은 남아있네요!
감사드려요 별 둘님
일기장을 들추다가 먼 그날이 오늘 이기에 올려 봤습니다
조석으로 기온차가 큽니다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
@시골바다
시골바다님도
환절기 감기 조심하십시오~
가슴아푼 사연이네요
그시절 70년대 는 유행처럼 팬팔을 마니들 했던 기억이~~~~
저도 그시절 포천 금주산 언저리 에서 군생활을 했었는데 휴가 귀대 술 먹다 안주로 비상식량 별사탕 봉지 에서 나온 쪽지에 적힌주소 서울답십리 최 ㅇㅇ 이라는 분과 편지를 나누기 시작 했지만 졸필이라 그랬는지 오래가진 못한 사연이 있었지요
이른 새벽 뒤척이다
글 잘보고 갑니다
그 시절에는 펜팔이 군생활에 큰 위로가 되었다 생각합니다
훈련이 힘들었지만
그 얼굴 모르는 그 여자 분의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 ..
힘들었지만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능성님 감사합니다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