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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교훈 11:20~26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없음)
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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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말라 버립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교훈하십니다. 또한 기도할 때 먼저 남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권위의 출처를 묻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 반문하시니, 그들은 답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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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대한 교훈 11:20~26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에는 신적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자 베드로가 놀랍니다. 예수님은 이런 능력의 원천이 ‘믿음’에 있다고 하시며 믿음의 기도에 관해 교훈하십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확신에 찬 기도는 산(감람산)을 바다(사해)에 던져 버릴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23절). 하나님께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이미 받은 줄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24절). 의심과 염려는 믿음의 기도를 가로막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기도하기 전에 서로 불화한 일이 있다면 ‘용서’하라고 하십니다(25절). 미움과 불화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를 드릴 수 없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능력은 기도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의 두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요?
믿음의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내가 진심으로 용서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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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대한 논쟁 11:27~33
예수님이 거룩한 분노를 발하시며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대제사장들의 권위를 실추시켰습니다. 이에 종교 지도자들이 “누가 성전을 정화하는 권세를 주었느냐.”라며 예수님께 따집니다(28절). 이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성전 모독죄를 적용해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 출처’로 그들에게 반문하십니다(30절).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당황합니다. 하늘로부터라고 답하든, 사람으로부터라고 답하든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실상 그들은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하나님이 보내신 종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비양심적인 침묵에 예수님도 지혜롭게 답변을 거절하십니다.
● 더 깊은 묵상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회피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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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훈련
이 세상은 배척과 쓴 뿌리와 모욕이 난무하기에 누구든 무시당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불의를 겪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잘 용서해야 한다. 기독교의 용서는 일련의 훈련이다. 본래 용서는 감정이 주가 아니다. 용서란 대개 우리가 용서하고 싶다고 느껴지기 이전에 베푸는 것이지, 느껴지고 나서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감정과 무관하게 지키려는 약속이다. 당신은 ‘일단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들어야 그때부터 상대를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막 11:25)라는 예수님 말씀은 용서가 감정이 아닌 의지의 행위임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용서하다 보면 결국 우리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고 부드
러워져서 미움과 분노의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악을 이기는 비결은 악과 그 악을 저지른 사람을 떼어 놓고 보는 것이다. 진짜 원수는 그 사람 속의 악이며, 우리가 이겨야 할 것도 그와 우리 안의 ‘악’이다. 그럴 때 악이 우리에게로 확산되지 않고 통제된다. 증오와 교만이 우리에게 옮지 않는다. 가해자가 우리를 분노와 복수의 악순환으로 끌어들이지 못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며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최고의 부유한 신분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가해자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나를 망칠 수 없다. 내 참된 부요함을 결코 앗아갈 수 없다.”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 팀 켈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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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1장 24절
성도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수단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힘'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열매를 맺는 '길'입니다. 기도는 주님의 놀라운 권위가 나의 삶으로 들어오는 '대로'입니다.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며 기도하면, 그분의 권세와 능력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상황 속에서 역사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의 열매와 충만한 은혜의 역동은 기도할 때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요 생명입니다.
기도의 응답뿐 아니라 기도와 인내의 과정이 우리 영혼과 삶을 강하게 하고 아름답게 만든다. - 이동원
오늘의 기도
주님, 많은 기도 제목을 쏟아 내면서도 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제 삶이 합당한지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의심과 염려를 버리고 먼저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기도를 통해 제 생각과 능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다른 사람에게 간증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27 주님 주실 화평)
오늘 본문은 의심하지 않는 기도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과 성전에서 가르치는 권위로 인해 종교지도자들로부터 도전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르치는 권위의 출처를 묻는 이들에게 요한의 세례의 출처를 반문하시니 그들은 답하지 못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뿌리째 마른 무화과나무, 기도에 대한 교훈, 종교지도자들의 질문과 주님의 답변, 주님의 질문과 그들의 고심 등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 믿음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으로, 그 조건은 의심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그러한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산을 향해 땅에서 들려 바다에 빠져라 하고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이다’라는 말은 일종의 과장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뜻은 부패한 성전의 심판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올바른 기도에 대한 예화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의심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하는 두드림이 되기 때문에, 그대로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한 질문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자격문제입니다. 이는 ‘성전에서 강의할 수 있는 자격은 우리가 갖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느냐?’라는 말입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 대답할 일고의 가치가 없지만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 주는 것으로 역 질문하십니다. 그렇게 하신 까닭은 요한을 선지자로 알아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그들은 오히려 난감해 집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면 왜 그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나왔다고도 답할 수 없는 것은 많은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 그들이 나름대로 합의한 결론입니다. 그 당시 지배자인 헤롯의 스캔들을 낫낫이 고발한 요한을 백성들이 매우 존경했기 때문에, 그를 무시했다 가는 백성들의 분노가 자신들에게 미칠 수 있기에 한 궁여지책의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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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 온전히 응답받는 믿음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의 말씀입니다. 이는 실은 불가능한 믿음입니다. 왜냐면 본문의 믿음은 티끌만큼도 의심이 없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동안 숱하게 기도를 드렸는데 응답받지 못한 것이 더 많은 걸 어떻게 해요? 마음이 절절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분명히 기도하는 그 순간은 의심 없이 충만한 믿음으로 기도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후 의심 없는 그런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본문의 믿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하나요? 실패 경험 때문에 무엇이든 받는 응답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성경은 거짓말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다름아닌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힌트를 주셨으니, 그 서광의 말씀이 바로, ‘하나님을 믿으라’입니다. 이는 ‘말하는 것이 그대로 되리라’라는 말씀 직전에 해 주신 말씀으로, 그 증표로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입니다. 단지 열매가 없어 마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님이 하나님을 믿고 의심 없이 구한 믿음의 시청각 모델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의심 없는 믿음은 바로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내 믿음을 가지라는 도전입니다.
이로써 그 가능의 장이 활짝 열립니다. 우리에게는 그 믿음의 씨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주님을 영접하여 죽고 주님의 생명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날 때, 가진 믿음을 말합니다. 그때 우리의 생명이 아닌 예수님의 생명, 우리의 성품이 아닌 예수님의 성품, 우리의 사랑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 거기에 우리의 믿음이 아닌 예수님의 믿음이 태동된 것입니다. 단지 씨앗으로 잉태되었기에 자라지 않을 뿐입니다. 이제 서광이 비칩니다. 그 믿음을 키우면 됩니다, 작은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듯이 우리의 믿음도 예수님의 믿음으로 성장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의 폭풍을 맞더라도 열매가 자라듯이, 모진 영적 환경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믿음도 훈련하고 닦여져 예수님의 믿음의 열매를 맺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의 잘난 믿음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죽어야 예수님의 생명이 나오듯이, 우리의 믿음도 버려야 예수님의 믿음을 취할 수 있습니다. 둘 다 가질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경험한 실패를 본다면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지 자명합니다. 예수님의 믿음을 갖고 온전히 응답받는 아름다운 믿음의 결실을 맺는 우리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튿날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들어가시자 종교인들이 와서 물었습니다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막11:28)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것과 전날 성전에서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을 내쫓으신 일로 따져 물은 것입니다 그때 되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눅20:4)
예수님께서 이렇게 반문하신 것은 그들의 본질을 드러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본질 곧 종교 강도들의 결정적인 특징은 항상 사람의 영광을 구하고
사람으로부터 오는 권위에 뿌리 내렸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믿지 아니하였느냐 물으실 것이고,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러한 본질적 차이가 종교인과 신앙인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교인을 찾습니다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23:15)
그러나 신앙인은 자녀를 찾습니다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사49:25)
또한 종교인은 돈을 기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눅16:14)
그러나 신앙인은 진리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요삼1:4)
지금도 사람의 영광을 사랑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3)
그러나 사람의 영광을 구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질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29:25)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경외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것만 사모하기 원합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고후5:2)
그리하면 주께서 돋는 해를 위로부터 임하게 하셔서 우리를 평강의 길로 항상 인도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1:78~79)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0-25절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요청하십니다. 이것은 성전의 종교 지도자들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다. 성전 종교는 이미 뿌리째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처럼 그 운명이 다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외형적인 제도가 아니라, 믿음의 백성이 이룰 하나님 나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성전의 외식적인 종교 의식은 믿음으로 대체되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닌, 풍성한 기도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4,25절 믿음의 기도는 응답됩니다. 그러나 자기 욕망이 개입된 기도는 응답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웃을 저주하는 기도, 타인과 불화한 채 드리는 기도,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형식만 갖추면 이룰 수 있는 주문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께 드리는 인격적인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을 면밀히 살피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이미 필요를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기도하면서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기도는 믿음의 삶을 담아낸 믿음의 기도입니까? 오늘 나의 기도를 살펴보십시오.
27-33절 성전 상인들을 쫓아낸 일로 인해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의 권위의 출처를 묻습니다. 이들은 로마 권력의 하수인으로, 이스라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의 회원이자, 성전에 기반을 둔 정치 종교의 권력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성전 척결을 정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질문에 답하는 대신 요한이 세례를 베푼 권위의 출처를 질문합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들은 이 질문에 침묵함으로 자신들의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그분이 누구에게서 왔는지는 처음부터 그들의 관심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기득권을 지키고 제 욕망을 이루는 것만 목적이었습니다. 결국 성전을 섬기는 이들이 성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하고 있습니까? 자칫 공동체의 주인 행세를 하며 주님의 자리를 넘보는 일이 없도록 가장 낮은 자리부터 채워야겠습니다.
기도
우리 공동체가 주인이신 주님의 권위에 늘 순복하게 하소서.
2월2일 동인천지하상가 에서 전도
✞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삶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며 믿음으로 간구할 때,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응답을 얻는 은혜가 있습니다.
✔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20~24절).
예수님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무화과나무의 뿌리가 완전히 말라 버린 상태로 있음을 보고 놀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2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3~24절)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마음과 눈을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서 어느 하나를 정하지 못하는 것은 의심을 하는 마음입니다. 의심하는 마음 없이 믿고 기도하면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가능하게 되는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산이 들려 바다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나의 깊고 높은 죄가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믿음으로 간구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나의 삶에 구체적으로 응답되는 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 말씀을 믿고, 용서하는 것입니다(25~26절).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우리의 허물을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누구든 예외 없이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의 허물을 계속해서 용서해 주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고 말씀하셨고, 원수를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내 자신이 용서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종교 행위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정작 나의 삶 속에서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원수 됨을 풀지 못하고 있다면 내 자신이 진정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의 은혜를 받은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큰 빚을 탕감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답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이 구원의 선물을 받은 나의 징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 말씀을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27~33절).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 성전을 거니실 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28절)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대답하라...’(30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 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대답할 수도 없지 않은가...’(31~32절)라면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나도 내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33절)라고 하십니다.
오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합니다. 아울러 내가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독생자이심을 또한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권위를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심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나는 마땅히 그분의 권위 앞에 복종합니다. 확신하지 못한 채 내 판단과 내 경험과 세상의 지식과 힘을 의지하려는 어리석은 가짜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말씀을 믿고,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의 권위를 믿고, 확신함으로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온전한 믿음을 가짐으로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의 풍성한 은혜아래 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11:20~33절)..
마카비가 유대를 독립시키고 하스몬왕조를 세웠을 때 그들은 왕과 제사장을 같이 겸임했습니다.
그 이후 헤롯 왕가가 즉위하고 로마의 통치를 함께 받으며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세상의 권세에 의해 임명되었고 그들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질 수 밖에 없는 정치적 하수인으로 이미 전락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셔야 할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의 권위의 추락은 오지 갈릴리로부터 오셔서 상상할 수 없는 능력과 권세를 드러내시는 예수님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그 권세의 출처에 대해 질문하시자 주님은 도리어 요한의 세례에 대해 되물으시며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행할 수 없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능력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님을 교차하여 알려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부여받아 그분으로부터 오는 참 자유와 회복을 그 성전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거룩한 신앙의 통로여야 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는 처지였던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좇아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세상을 밝히고
그 복된 소식을 담대하게 전하는 거룩한 증인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1.기도 응답의 비결(20-26절)
예수님께서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제자들은 그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 한마디에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 베드로가 그 사실을 예수님께 알려 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무 의심없이 믿음으로 말한 것이 이루어질 줄로 믿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간구의 힘을 큽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바랄 때에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한 신앙적인 기준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만약 기도할 때에 다른 사람과 원수 된 일이 있을 때에는 먼저 그를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신앙적인 공식입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워하는 자는 이웃과의 화평을 먼저 행하여야 합니다. 즉 기도의 능력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정결하고 성결함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묵상하기
나는 이웃과 화평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가?
2.예수님의 권한을 문제삼은 사람들(27-33절)
유대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그것을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예수님의 권한이 누구에게 받은 것이냐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한 마음을 아시고 그들이 답할 수 없는 세례요한의 문제를 가지고 그들이 꼼짜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성경적인 지식은 많았지만 그 중심에 그리스도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서 행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보면서도 오히려 예수님에 대하여 대적하는 악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들의 영성은 순전치 못하여 하늘로 부터 오는 권세임을 알면서도 자신들이 그것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였습니다. 참된 믿음은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이나 눈 앞에 많은 것을 본다고 하여도 믿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믿음을 허락하셔야만 믿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에게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의 믿음은 순전함을 잃지 않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요약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을 보고 언급한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의심 없이 말하면 그대로 된다고 하십니다.
기도할 때 남을 용서해야 하나님도 우리 허물을 사하십니다. 예수님은 권위 출처를 묻는 사람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지 물으시고 그들은 답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기도 응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기도가 응답될 것을 의심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이는 나와 이웃,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을 정화했는지 묻습니다. 하늘 곧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위라 하면 신성 모독 죄로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신 하나님 아들임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백성을 두려워하는 그들은 비겁하고 무지한 종교인입니다.
- 묵상 질문: 산이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도록 할 만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 적용 질문: 받은 줄로 믿고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마가복음 11:20~33 내게 상처 준 사람들을 용서하라.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떠나실 때에 배가 고프셔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무엇이 있을까하여 가셨다가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무화과 나무가 뿌리째 말라버렸다.(20)
베드로가 어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21) 라고 예수님께 말씀한다.
예수님은 이 기회를 통하여 또 제자들에게 특강을 해 주신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고 꾸짖지 않으시고
주어진 환경 가운데서 말씀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다.
가르치심의 핵심은 신앙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한 말씀이다.
응답받는 기도의 비밀에 대한 말씀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22)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23)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
신앙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이요
인간적으로 불가능 해 보이는 일일 지라도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신뢰가
신앙의 능력이요 위대함이다.
응답받는 기도란 어떤 기도인가?
1. 마음에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되리라.(23)
믿음의 기도가 응답 받는 기도로구나.
2. 무엇이 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24)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24) 아멘.
응답받는 기도는 응답을 기대하는 기도로구나.
미리 받은 줄로 믿고 감사하는 기도로구나.
3.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25) 아멘.
응답받는 기도는 용서하는 기도이고 사랑의 기도이구나.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구원받지 못할 영혼이 없도록
먼저 기도하시고 앞서 행하신 주님을 높여드립니다.
날마다 그 은혜를 노래하며
그 기쁨을 전하며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눈물로 엎드린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복음의 빛을 비추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오직 아버지를 높이고
그 사랑과 은혜를 노래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