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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중국이 만리장성이라고 주장하는 천리장성은 엄연한 고구려성이다!”
역사를 알아야 우리 역사를 지킬 수 있다.
신형식 교수가 답사한 해외의 유적을 통해 한국 고대사의 이면을 확인하는 동시에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선 한국 고대사의 진실을 확인한다.
이 책은 ‘해외유적을 통해서 보는’ 한국 고대사이며, 그 속에서 기록이 별로 없는 우리 고대사의 진면목을 찾아보려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고구려의 진정한 모습은 고구려의 수도(오녀산성과 국내성)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고, 화려한 고구려의 고분벽화 속에서 고구려의 멋을 찾아보았다. 나아가 중국이 만리장성이라고 우기는 천리장성의 험한 현장을 실제로 밟아보면서 고구려인의 아픔과 그들의 시련을 체험해 보았으며, 다 쓰러져 가는 부경(桴京)을 통해서 고구려인들의 삶의 모습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우리에게는 고구려 안시성으로 알려진 ‘영성자성’의 이름이 ‘주가향산성’으로 바뀐 것도 직접 현장을 방문해서 확인한 내용이다.
또한 일본 각처에 남아있는 백제인의 손길과 중국의 한 구석에 처박혀 있는 백제인의 숨결에서 해양대국 백제사의 긍지와 멋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큐슈 외딴섬(가카라섬: 加唐島)의 허술한 동굴에서 태어난 무령왕(武寧王)의 모습에서 백제사의 슬픈 현실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 산동・강소・절강성 일대에 남아있는 신라방 유적은 장보고(張保皐)로 대표되는 신라인들의 활달한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안휘성 남쪽 끝자락의 구화산에서 김보살[金喬覺]의 체취를 느끼면서 우리 고대의 선조들이 남긴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러한 해외 유적의 추적을 통해 고대사에서 부족한 문헌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로써 고구려인들은 만주의 주인공으로서 ‘중국 지방정권의 주민이 아니라’ 당당한 우리 조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화려한 벽화 속에서 그들의 삶(현세와 미래)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백제인들은 국내에서는 고구려와 신라에 수모를 당한 나약한 처지였으나, 발달된 문화를 일본에 전해주었고, 해양대국으로서 국제화의 길을 통해 ‘바다로의 진출이 강국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대백제의 위상을 남겼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라도 당나라와 함께 동아문화권을 일으켰으며, 중국의 연해지역(산동성, 강서성, 절강성)에 진출한 무역대국이었다. 이로써 과거문헌(기록)으로 보던 한국 고대사를 해외유적을 통해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 보았다.
한편 해외유적의 사진은 옛것과 현재의 것을 비교하기 위해서 두 가지 사진을 넣으면서 고대유적의 변화상을 보여주었다. 한국고대사를 간직한 해외유적이 날로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그 일부의 모습이나마 간직하려는 뜻에서 이 책에 담아낸 것이다.
목차
제1장 | 한국 고대사의 모습과 전개과정
1. 한국 고대사는 어떤 모습이었나 ····································· 13
더 알아보기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은? ····················· 21
2. 한국 고대사는 어떻게 전개 되었는가 ···························· 26
더 알아보기 남북한 역사 해석의 차이점은? ······························· 33
제2장 | 고구려의 어제와 오늘
1. 고구려가 가르쳐 주는 역사의 의미는? ·························· 39
더 알아보기 ‘고구려’라는 표현이 지닌 뜻은? ····························· 47
제3장 | 만주에 남아 있는 고구려 문화유산
- 고분벽화와 천리장성 -
1. 무용총(舞踊塚)과 각저총(角抵塚) ··································· 89
더 알아보기 고구려 벽화의 멋 ··············································· 100
2. 집안의 5회분 4호묘 벽화 ············································· 106
더 알아보기 세발 까마귀(三足烏)의 뜻은? ································ 111
3. 장천 1호묘와 국동대혈 ················································· 113
더 알아보기 현재 남아 있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얼마나 될까? ···· 121
4. 요녕성에 남아 있는 고구려의 천리장성 ······················ 124
더 알아보기 천리장성은 어디서 어디까지인가? ························· 136
5. 요동반도에 남아있는 천리장성 ····································· 139
더 알아보기 천리장성을 쌓은 이유는? ···································· 144
제4장 | 해외에 남아 있는 백제 유적
1. 백제는 어떤 나라였는가? ············································· 151
더 알아보기 온조(溫祚)가 오늘의 서울에 나라를 세운 이유는? ···· 156
2. 북망산 기슭에 잠든 비극의 의자왕 무덤 ···················· 159
더 알아보기 의자왕 두 아들 풍(豊)과 융(隆)의 슬픈 이야기 ········ 163
3. 중국 광서 장족자치구(옹녕시)의 백제촌(百濟墟) ········ 166
더 알아보기 과연 백제는 요서지방으로 진출하였는가? ··············· 170
4. 일본 큐슈(加唐島)의 무령왕 탄생지 ····························· 172
더 알아보기 백제와 남조와의 관계는? ···································· 176
5. 미야자키(宮崎) 남향촌의 백제마을 ······························· 178
더 알아보기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어떠하였나 ························· 181
제5장 | 중국에 남아 있는 신라 유적
1. 신라의 역사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 189
더 알아보기 1 화백(和白)을 보는 시각은? ······························· 194
더 알아보기 2 화랑도를 다시 생각한다 ··································· 198
2. 신라의 통일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 200
더 알아보기 김춘추가 삼국(고구려・당・왜)을 왕래한 이유는? ······· 204
3. 산둥반도(山東半島) 일대의 신라 유적과 법화원 ········· 206
더 알아보기 장보고는 누구인가? ············································ 217
4. 중국 연해지역(강소・절강성)의 신라유적 ······················ 219
더 알아보기 통일신라때 해외에서 활약한 인물은 ······················ 225
5. 중국 안휘성 구화산의 신라혼 ······································· 227
더 알아보기 김교각은 누구인가 ·············································· 233
[참고] 포석정에 얽힌 사연은 ············································· 235
더 알아보기 마의태자는 부흥운동을 일으켰는가 ························ 238
제6장 | 만주 벌판에 남아 있는 발해 유적
1. 발해는 어떤 나라였는가? ············································· 245
더 알아보기 고구려 유민의 동향 ············································ 247
2. 발해의 첫 도읍지 동모산성 ·········································· 250
더 알아보기 발해와 일본과의 관계는 ······································ 254
3. 발해의 두 번째 서울 서고성 ········································ 256
더 알아보기 발해가 수도를 자주 옮긴 이유는? ························· 259
4. 발해의 중심 서울인 상경성 ·········································· 262
더 알아보기 그 밖의 대표적인 발해 유적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 267
5. 정효공주묘(貞孝公主墓)와 정혜공주묘(貞惠公主墓) ····· 270
더 알아보기 발해가 일찍 멸망한 이유는? ································ 273
제7장 | 우리가 알아야 할 주요 역사 문제
1. 동북공정을 바로 알자 ··················································· 277
2. 간도(間島) 문제를 바로 보자 ······································· 281
3. 독도는 우리 영토이다 ··················································· 285
4. 압록강과 두만강은 천지에서 흐르지 않는다 ··············· 288
5. 2천 년간 우리 역사의 심장부였던 서울 ······················ 292
만리장성 늘이는 중국의 역사왜곡
중국이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늘이며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만리장성 동단(東端)이 압록강변이란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역 일간지 화상신보(華商晨報)는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가 지난해
벌인 중대 사업으로 압록강 유역 명나라 요새 유적 발굴을 꼽았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랴오닝성 단둥(丹東)시 러우팡(樓房)진 둥청(東城)촌 동쪽의 압록강 지류 하천변에 있는 요새 유적 1만8800㎡를 발굴한 뒤 1565년 명나라가 세운 만리장성 동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만리장성 동단은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秦皇島市)의 산해관(山海關), 서단은 간쑤성(甘肅省) 가욕관(嘉峪關)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런 정설을 뒤집고 만리장성 동단이 산해관이 아니라 압록강 하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만리장성 동쪽 끝을 고무줄 잡아당기듯 늘이는 저의는 중국 영토 만주에 세워졌던 나라는 모두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란 억지 주장을 펴기 위함이다. 중국이 집요하게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과 날조를 자행하는 근본 원인은 중국사의 뿌리가 한국사보다도 짧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중국사의 시원(始原)은 황하문명설이 주류였다. 그러던 중 1980년대부터 요하·발해만 유역에서 기원전 7000~1500년의 신석기·청동기 유적이 대거 발굴되는 과정에서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청동검 등 고조선 문명의 대표적 특징인 유물이 대거 출토되면서 황하문명설이 뿌리째 흔들렸다. 특히 중국 측이 위기를 느낀 것은 기원전 1700~1100년대의 은허(殷墟) 유적보다 훨씬 오래전의 갑골문이 바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사실이다. 이는 고조선의 발해만·요하문명이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섰다는 움직일 수 없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자기 땅에 있던 나라의 역사가 모두 중국사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중국사의 뿌리는 고조선사라고 우리가 당당히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조선의 발해·요하문명이야말로 황하문명보다 천 년이나 앞선 고대 문명이 아닌가. 중국의 역사 왜곡·날조의 밑바닥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주변국은 모두 오랑캐라는 중화사상과 역사 패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중국에 역사 전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조선일보 |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 입력 2015.02.10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