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지에서 만나는 오묘한 아름다움( 부여의 정림사지)
9월 18일 오후 5시 서울 동대문 상상책방 상상갤러리에서
<사라진 옛 절터> 북토크를 하는 날이다.
아름답지만 사라져서 쓸쓸한 옛 절터를 보고 또 보며 쓴 책이라서 그런지
문득 쓸쓸한 것은 가을의 초입에 느끼는 내 마음 탓일까?
아니면 온통 뒤죽박죽인 시대 탓일까,
“멀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더 아름다운 사람이 있듯이, 멀
리서 보아도 아름답고 가까이 가면 더 아름다운 석탑이 있다. 부여 정림
사지 오층석탑이다.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라는 존 키츠의 이 말이 가장 잘 어울
리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적 정림사지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이름난 팔경이 많다. 관동팔경은 양양의 낙산
사,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 통천의 총석정, 고성
의 삼일포, 간성의 청강정, 강릉의 경포대를 가리킨다. 단양팔경은 도담
삼봉, 사인암 등을 비롯해 단양의 빼어난 절경 여덟 곳이다. 그렇다면 백
제의 마지막 도읍 부여에는 어떤 팔경이 있을까.
부여팔경은 화려한 절경을 자랑하기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 간직
한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함께 보여 준다. 구체적으로는 ‘정림사의 저녁
종소리(정림모종定林暮鐘)’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의 저녁노을(수북
낙조水北落照)’ ‘고란사의 저녁 종소리(고란모종皐蘭暮鐘)’ ‘부소산에 내리
는 저녁 비(부소모우扶蘇暮雨)’ ‘낙화암의 소쩍새 울음(낙화암효제落花巖曉
啼 또는 낙화암제조落花巖啼鳥)’ ‘백마강에 비친 달(백마야월白馬夜月)’ ‘구룡
평야에 내려앉는 기러기(구룡낙안九龍落雁)’ ‘규암나루로 돌아오는 돛단배
(규암귀범窺巖歸帆)’를 말한다.
그 가운데 정림사지는 백제 성왕이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창건한 사찰 터로 알려져 있다. 사비도성을 중앙·동·서·남·북
의 오부五部로 나누고 왕궁과 관청, 사찰을 배치할 때 나성으로 둘러싸
인 도성의 중심부에 정림사를 세운 것이다. 정림사와 왕궁의 배치는 중
국 북위 낙양성의 황궁과 영녕사의 관계를 본뜬 것으로, 사비도성의 도
시 계획이 북위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 준다.
가장 아름다운 석탑이 쓸쓸히 서 있는 곳
1979년부터 1980년까지 충남대학교박물관이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정림사지의 가람 규모와 배치, 그리고 1028년 고려 현종 때 중건된 사
실 등이 확인되었다. 정림사지는 백제 사찰의 전형적인 일탑일금당식 가
람 배치를 갖추고 있다. 남북 중심축을 따라 중문·오층석탑·금당·강당이
차례로 놓이고, 그 둘레를 회랑이 감싸는 구조다. 지금도 정림사지 오층
석탑과 석불좌상(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이 남아 천오백 년 전 백제
문화의 높은 수준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부여 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국보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익산의 국보 미
륵사지 석탑과 함께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계보를 세운 대표적인 문화
유산이다. 특히 백제 석탑의 완성된 비례와 조형미를 보여 주는 작품으
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백제의 옛 땅을 찾았던 가람 이병기는 「사비성을 찾는 길
에」라는 기행문에서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왕릉을 다 보고는 일행과 같이 동문지를 지나 부여읍으로 들어가다가
평제탑을 찾아보았다. (……) 전부 화강암으로 만든 5층 탑이고 기발웅건
奇拔雄健한 남조선 최고의 예술품이다. 비록 백제는 망하였으나 이 예술품
만은 아니 망하였다. (……) 탑은 탑대로 이름을 전할 것이다. 그동안 전해 온
의미도 그러하려니와 이 뒤로 얼마든지 전해 갈 의미도 그러할 것이다.”
이병기 선생의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오늘날 백
제 석탑을 대표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석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사라진 옛 절터> 중
문득 찾아가서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2026년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