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자 수익 15조… 은행·금융당국 서로 ‘네탓’
작년 8월 KB국민은행에서 6000만원을 신용대출로 빌린 박모(37)씨는 최근 대출 연장을 위해 은행을 찾았다가 발길을 돌렸다. 창구 직원으로부터 연 2.38%였던 대출 금리가 연장을 하면 3%가 넘어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대금리 혜택도 0.2%포인트나 줄었다. 박씨는 “다른 은행도 가보려고 하지만 큰 차이가 있겠나 싶다”며 “매달 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생활비도 빡빡한데 이자까지 오르니 갑갑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대출 급증을 막기 위해 대출 금리를 올린 결과, 올해 상반기 은행 순익이 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자 이익은 3조6972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상반기보다 12.9% 증가한 규모다. 은행들은 “금융 당국 압박에 어쩔 수 없이 이자를 올렸다”는 입장이지만, 금융 당국은 “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라고 한 것이지 이자를 올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상반기 5대 은행 이자이익 첫 15조 돌파
다른 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신한은행은 7.3% 늘어난 3조1662억원, 하나은행은 9.5% 증가한 2조9157억원의 이자 순이익을 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도 각각 7.6%, 9.6% 늘었다. 이 5대 은행의 올 상반기 이자 수익은 작년 상반기보다 1조3421억원(9.5%) 늘어난 15조4585억원으로 사상 최대다.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등으로 대출이 많이 늘어난 상태에서 금리를 올리니 이익이 쉽게 불어난 것이다.
또 시중에 돈이 풀리면서 금리가 낮은 예·적금에도 돈이 몰렸고, 기준금리도 낮아지면서 은행들의 자금 조달 여건도 좋아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요구불예금 잔액은 374조2654억원으로 작년 5월보다 27% 늘어났다.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의 2분기 기준 저금리성 예금 비율은 각각 53.6%, 54.4%, 41.3%, 47.0%, 49% 수준이다.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3.5~6.7%포인트 높아졌다.
◇사라져가는 대출 우대금리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높이면서 금리를 깎아주는 우대금리 혜택까지 축소했다. 실질적인 금리는 더 올라간 셈이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신나는직장인대출, NH튼튼직장인대출 등 신용대출 상품에 적용하던 우대금리를 0.1%포인트 낮췄다. 전세대출에 제공하던 0.3%포인트 우대금리도 폐지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6월 5개 신용대출 우대금리를 최대 0.5%포인트 축소했고,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는 조건도 대폭 상향했다.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도 작년 하반기부터 우대금리 혜택을 줄이고 있는 추세다.
반면 은행 적금상품에선 금리를 추가해주는 혜택을 받기 어렵다. 은행들이 5% 이상 고금리 적금 상품을 내놓고 있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속 빈 강정’인 경우가 많다. 신한은행이 지난 6월 최대 7% 이자를 준다며 출시한 ‘신한 더모아적금’의 경우 최근 6개월간 신한카드 이용 이력이 없어야 하고, 신한 더모아카드를 발급받은 뒤 그 카드로 6개월간 60만원 이상 써야 5%포인트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마케팅 동의 등을 해야 1%포인트 이자를 더 받는다.
◇은행과 당국은 서로 책임 떠넘기기
은행의 대출 이자 인상은 이자 수익을 늘리기 위한 방편이라기보다는 금융 당국이 가계 부채 대책의 하나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은행권은 주장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적금 금리는 시장 유동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지금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있다 보니 금리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라며 “그런데 대출금리는 정책적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도 곤혹스럽다”며 “금리는 매달 공시를 해야 하는데 쉬쉬하며 금리를 올릴 이유도 없다. 우대 금리 혜택을 주려고 하면 이마저도 당국이 눈치를 주니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금융 당국 관계자는 “당국이 금리를 올리라 말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고 방법도 없다”며 “은행들이 스스로 대출 증가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금리를 낮추려는 경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