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진심으로 사랑한 대통령 박정희.
의장실(議長室)에 무상출입(無常出入)하게 된 나는 30년 지기(知己)였건만 인간(人間) 박 정희의 새로운 편모(片貌)를 보게 되었다. 내가 의장실(議長室)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의 첫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장식물(裝飾物)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특별한 기물(器物)도 없었다. 마치 야전사령관(野戰司令官)이 있는 천 막 속을 방불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품(最高品)인 "청자"였고, 때로 는 선물(膳物)로 받은 미국제(美國製) "바이스로이"를 피웠는데, 그것도 저것도 아닌 "아리랑"을 그가 피우는 것을 보고 놀랐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다.
노랑무 서너 조각이 그날 식단(食單)의 전부였다. 마침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 원짜리 고급 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받았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한 나라 의 최고 집권자(執權者)가 이렇게 험한 음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일이 어디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깊은 감명 (感銘)을 받았다.
(議長) 공관(公館)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눈비 내리는 겨울 아침에 국민학교 6학년인 장녀(長女) 근혜(槿惠) 양을 운전 병(運轉兵)이 지프차로 등교시켜 준 일이 있었다.
가 아버지 차냐?" 하고 힐책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울고만 있는 딸에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차는 나라 차야, 나라 차를 니(네)가 감히 등교용(登校用)으로 쓸 수 있는가 말이다!"
밀하게 그리는 작업을 한 일이 있었는데, 여러 급우들이 그린 것들 중에서 최고 평점인 "G"를 박(朴) 군이 차지했었다.
들 만이 응시했던 대구사범(大邱師範)의 9 : 1이라는 입시경쟁(入試競爭)을 돌파한 엘리트였고 그 엘리트들 중에서도 "G"라는 평점(評點)을 받을 만큼 그의 두뇌(頭腦)는 비상했던 것이다.
따를 수 없다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랬기에 스러져 가는 이 나라의 구출을 위한 한강도강작전(漢江渡江作戰)에도 성공 하지 않았던가?
이름 글자로는 드물던 "희(熙)"를 우리 둘은 공유(共有)했기에, 나는 너에게 비록 성(姓)은 달랐어도 형제(兄弟)와도 같 은 친근감(親近感)을 느꼈었다. 내가 보던 너는 항상 모든 일에 총명했다. 게다가 너는 또 의분(義憤)을 느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용감한 사나이였다.
와 같았던 S는 주(朱) 군을 단숨에 때려 눕혀놓고, 그래도 모자라서 맥주병(麥酒甁)을 깨어 머리를 쳤는지라 유혈(流血) 이 낭자(狼藉)했다. 모두가 겁을 먹고 도망쳤는데, 오직 우리 박(朴) 군만이 뛰어들어 그 S를 때려눕히고 주(朱) 군을 구 출했었다.
불(弗)의 헐벗은 백성들이 사월남풍(四月南風)에 대맥(大麥, 보리)이 누렇게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른바, 우리 겨레의 비운(悲運)이었던 보릿고개를 알았기에 그는 10원짜리 냄비우동으로 점심을 때우면서도 그런 것조차도 못 먹는 불쌍한 동포(同胞)들의 굶주림을 걱정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궐련은커녕 한 봉지의 장수연(長壽煙)이나 희연(囍煙)조차도 손쉽게 못 얻어 피우시던 일을 회상(回想)하면, 그 "아리랑"을 피우기조차 송구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서 그를 비방(誹謗)하는 일부 인사(人士)들도 있지만, 진정 그를 아는 사람이 몇 이나 될까? 나는 그 당시 그를 가까이 모 시면서 만사에 청렴결백(淸廉潔白)했던 그를 보았지만, 아무리 맑게 한다 해도 후일의 가족을 위해 어느 구석 진, 이를테 면 MBC 재단 같은 곳에 그들의 생활비 정도는 나올 무엇인가는 마련해 두었으리라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 와서 보니 그것도 아니었으니, 이 세상에 그처럼 결백한 집권자(執權者)가 또 어디 있었을까, 있을까?
▲ 사진 좌측은 박대통령 국장 모습으로, 운구행열이 세종로를 통과할 때 수 많은 국민들이 연도로 나와 애도의 눈물을 흘리는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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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상사 바로보기 원문보기 글쓴이: 샘물
첫댓글 진정한 지도자는 박정희대통령 뿐입니다...
네~예 오른말씀입니다 나라사랑과 국민을 위한 인정넘치는 국부였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돈에눈이어두어 도둑질하기에 바뻤지만 우리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정치에 돈없는것은 국민모두가 인정하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첨부 사진의 박대통령 국장 모습은 육여사의 국장모습이 잘못 올려졌읍니다.